제17화 방어막 파쇄
"제기랄……! 저 괴물 자식의 출력이 어디까지 튀는 거야!"
티타늄 그룹 본사, 85층의 메인 제어실.
네온 블루빛 홀로그램 스크린이 거칠게 깜빡이며 경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Warning: 85층 외부 방어 필드, 코어 공진 주파수 불일치!]
[위상 변환율 91.2% 하락!]
[대상(목표: 강진혁)의 단전 부근 에너지 출력: 6,350 MW 초과——!]
시스템의 비명은 무의미했다.
이미 통제 불능의 영역으로 접어든 강진혁의 존재는 티타늄 그룹의 정교한 방위 체계마저 산산조각 내고 있었다.
콰아아앙-!
빌딩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거대한 폭음과 함께 85층의 강화 방탄 유리 외벽이 박살 났다.
바깥의 차가운 야경과 함께 밀려드는 밤바람 속에서, 칠흑 같은 검은 머리를 휘날리는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강진혁.
그의 목과 손목을 따라 흐르던 은빛 회로 선은 이미 폭발적인 마기의 과부하로 인해 시뻘건 적색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손에 쥔 [천마검(프로토 타입)]의 검신에서는 고주파 공진음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주변의 공기를 뒤틀었다.
"이…… 이 자식! 온다!"
방어막 뒤에서 레일건을 겨누고 있던 블랙 실드의 잔당들이 경악에 찬 함성을 질렀다.
그들의 앞에 서 있던 부대장 드레이크는 이를 악물며 전신 수트의 출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렸다.
바스스스-!
드레이크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3세대 플라즈마 방어막이 눈부신 백색 빛을 발하며 고압의 장벽을 형성했다.
티타늄 그룹이 자랑하는 최정예 방어 체계.
웬만한 A급 초인의 폭격도 삼 초 이상 버텨낸다는 요새화된 에너지 실드였다.
하지만 강진혁의 눈에는 그 방어막의 빈틈이 선명하게 투영되고 있었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분석 개시]
[상대 방어 필드의 위상 주파수 궤적 스캔 완료.]
[공진 주파수: 142.8 GHz. 역상(逆相) 간섭을 통한 파쇄 가능.]
스스로 시스템의 보조에 의존하지 않으려 결심했음에도, 뼛속 깊이 새겨진 연산 능력은 본능적으로 적의 허점을 꿰뚫고 있었다.
아니, 이제 그것은 계산이 아니라 직관이었다.
마공의 흐름과 현대 과학의 출력이 하나로 융합된 감각.
진혁이 입술을 달싹였다.
"느려."
콰아아아궁-!
지면을 박차는 순간, [마광신보(魔光神步)]가 발동했다.
빛의 궤적조차 남지 않는 초고속의 잔상이 허공에 흩어지며 진혁의 형체가 드레이크의 코앞으로 순간이동하듯 파고들었다.
"방어벽을 최대출력으로 올려! 막아라!"
드레이크가 절규하듯 고함쳤다.
지-이-이-잉!
백색의 방어막이 더욱 짙은 장벽을 치며 진혁의 진입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진혁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가속되었다.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6,350 MW의 생체 코어 출력이 혈관을 타고 손끝으로 밀려들었다.
여기에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다져온 마기가 압축되며 [천마검]의 검신을 시커먼 검강(劍剛)으로 물들였다.
천마일검(天魔一劍)의 예비 단계.
고주파 진동 파쇄와 마기(魔氣)의 공진이 만나는 순간이었다.
챙강-! 팟!
"……어?"
드레이크의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3세대 플라즈마 방어막이, 강진혁의 검끝이 닿는 그 한 점을 중심으로 유리 조각처럼 박살 났다.
방어막의 위상 주파수와 정확히 일치하는 공진 주파수를 실은 검강이 방어 필드의 결합 에너지를 내부에서부터 붕괴시켜 버린 것이다.
방어막이 깨어지는 것은 단 0.1초도 걸리지 않았다.
푸쉭-!
"크하윽……!"
방어막이 터져나간 자리를 비집고 들어온 검은 섬광이 드레이크의 전신 수트를 두부 썰듯 양단했다.
티타늄 합금으로 만들어진 흉갑과 내부의 인공 근육, 그리고 그 속에 들어차 있던 생체 코어가 단숨에 반으로 쪼개졌다.
드레이크는 자신이 무슨 당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듯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가슴팍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시뻘건 혈류와 함께, 그의 시야가 서서히 아래로 기울어졌다.
툭, 툭.
지면으로 떨어지는 두 쪽 난 시체.
그것으로 끝이었다.
티타늄 그룹의 특수전술 부대장을 자처하던 사내가, 강진혁의 일검 앞에 단 한 홉의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절명한 것이다.
콰구구구궁-!
드레이크가 쓰러지며 남긴 충격파가 85층의 남은 벽면마저 무너뜨렸다.
먼지 자뿌라지는 황폐한 회의실 안에서, 진혁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서 있었다.
[Warning: 과부하로 인한 나노머신 회로 손상도 18.5%.]
[단전 구역의 마기 역류 현상 감지. 즉각적인 에너지 정제 요망.]
시야 한구석에 붉은색 경고창이 깜빡였다.
하지만 진혁의 표정은 흔들림 하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손아귀에 쥐인 [천마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쯧, 하고 검신에 맺힌 피와 잔여 에너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정도로 버거워할 때는 지났지."
진혁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그의 단전 부근에서 흡원천공의 마기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드레이크가 품고 있던 3세대 시제품 생체 코어의 잔여 에너지가 허공으로 흩어지려던 찰나, 강한 흡입력이 그것을 강제로 빨아들였다.
슈우우우욱-!
시퍼런 전기가 감도는 고순도의 코어 에너지가 진혁의 혈관을 타고 역류해 들어왔다.
[SYSTEM INFO: 외부 생체 코어 에너지 흡수 완료.]
[단전 출력 재조정: 6,350 MW → 6,800 MW 돌파.]
[누적 마력(내공): 25년치 추가 정제 완료. 총합 85년가량의 마기 축적.]
몸 안에서 폭발할 듯이 부풀어 오르는 내력의 홍수.
단순한 수치의 상승이 아니었다.
나노머신과 마기가 세포 구석구석을 재구성하며 [천마무상체]의 경지를 한 층 더 깊은 곳으로 밀어 올렸다.
두두두두-!
진혁의 어깨와 팔뚝에 얽혀 있던 은빛 회로들이 일제히 붉은빛으로 타올랐다.
피부 아래에서 용틀임하듯 요동치는 마기는 이제 물리적인 실체를 가진 검강처럼 주변의 공기를 태우고 있었다.
"흡원천공의 효율이 한계에 달했다. 이 정도면……."
진혁이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85층.
이곳은 아직 중간 지점에 불과하다.
티타늄 그룹의 본사 마천루는 총 100층.
그 꼭대기, 회장실이라는 왕좌에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을 진무극이 있는 곳까지는 아직 15층이 남아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지지직…… 지지직……!
바닥에 처참하게 나뒹굴고 있던 드레이크의 시체, 그 부서진 통신기 단말기에서 기괴한 노이즈와 함께 푸른빛의 홀로그램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오호.
나지막한 저음의 음성.
기계음을 거쳤음에도 듣는 이의 고막을 짓누르는 듯한 오만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진혁의 눈빛이 매섭게 가라앉았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바닥의 단말기를 내려다보았다.
-드레이크의 실드가 깨지는 데 걸린 시간, 단 3.4초.
그리고 그 방어막의 공진 주파수를 단 한 번의 스캔만으로 파괴해 버린 그 운기(運氣)의 궤적…… 정말 감탄스럽군, 실험체 07호. 아니, 이제는 그렇게 부르면 안 되려나.
홀로그램이 일렁이며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85층의 통신망을 해킹해 송출된 실시간 영상이었다.
화면의 너머, 수십 킬로미터 상공의 마천루 최상층.
은발을 정갈하게 넘긴 중년 신사의 얼굴이 렌즈를 통해 진혁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티타늄 그룹의 회장, 진무극.
그의 입가에는 기괴할 정도로 완벽하고 서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네가 강해질수록, 네가 저열한 하층가의 쓰레기들을 짓밟고 올라올수록, 내 안의 기대감은 한계치를 넘어 폭발하려 하는구나.
"진무극."
진혁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살의가 폭풍처럼 소용돌이쳤다.
화면 너머의 진무극은 진혁의 분노 어린 시선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마치 하찮은 장난감이 스스로의 힘으로 레벨을 올리는 것을 구경하는 오만한 창조주처럼, 그는 여유롭게 와인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내려오지 마라. 혹은, 올라오려고 애쓰지 마라.
내가 너를 이 빌딩의 가장 꼭대기로 초대할 테니.
그때까지 네가 가진 모든 기술과, 네가 발버둥 치며 얻어낸 그 더러운 무공을 한 점 남김없이 내게 보여다오.
"……네 놈이 내 몸으로 뭘 꾸미든 간에, 그든 아니든 상관없다."
진혁이 입꼬리를 비틀어 기괴하게 웃었다.
손에 쥔 [천마검]의 검신에서 지독한 살기가 뿜어져 나와 주변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결국 그 꼭대기 왕좌에서 끌려내려와, 내 손에 목이 꺾이게 될 테니까."
-하하하하! 그래, 그 패기다. 바로 그 오만함이야말로 내가 너를 위해 빚어낸 그릇의 진정한 가치지.
처억-!
진무극이 손을 들어 올리자마자, 화면은 찢어지듯 노이즈와 함께 꺼졌다.
지이잉-!
통신기가 완전히 박살 나며 스파크를 튀겼다.
텅 빈 85층의 잔해 속.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진혁의 찢어진 옷자락을 사납게 흔들었다.
하지만 진혁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위를 향하고 있었다.
100층.
진무극이 기다리는 그곳을 향해, 진혁은 다시 한번 [마광신보]의 궤적을 그리며 허공으로 도약했다.
콰아아앙-!
마기를 두른 신형이 백층탑의 천장을 뚫고 더 높은 곳으로 치솟았다.
시스템의 통제를 벗어나, 오직 자신의 힘으로 완성해 나가는 파멸의 진군이 시작되고 있었다.
쾅-! 쾅-! 콰아앙-!
마기를 두른 신형이 85층의 천장을 박살 내며 윗층으로 치솟았다.
비상 계단도, 엘리베이터도 필요 없었다. 강진혁에게는 오직 [마광신보(魔光神步)]의 궤적과 [천마검(프로토 타입)]의 날이 전부였다.
콘크리트 바닥과 철골 구조물이 종이장처럼 찢겨 나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SYSTEM INFO: 수직 상승 이동 중 경로 저항 감지.]
[출력 소모량 증가: 현재 코어 출력 6,800 MW / 팽창율 1.2% 상승.]
[주의: 과도한 수직 등반은 심장 구역 나노머신 회로의 열화 현상을 촉진합니다.]
시야 한구석에서 설화의 보조 HUD가 붉은 경고를 토해냈지만, 진혁은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이미 머릿속의 계산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내력과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마기는 기계적인 수치를 아득히 초월해 하나의 거대한 폭류(暴流)가 되어 있었다.
'그릇이라.'
머릿속에 진무극의 목소리가 쟁쟁하게 울렸다.
자신을 완벽한 '그릇'으로 만들어 회수하겠다는 그 오만한 의도.
천마 프로토콜이라는 거대한 미끼를 던져두고, 그 안에서 아귀처럼 발버둥 치며 강해지기를 방조했던 진짜 이유.
사방이 적이었다.
자신을 살려둔 것도, 강하게 키운 것도 모두 그 노인의 손바닥 안이었다는 사실이 뼛속까지 차가운 살의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박살 내주어야 했다.
그가 공들여 쌓아 올린 메가 코퍼레이션의 정점도, 불멸을 꿈꾸며 만든 그 거대한 왕좌도.
챙강-! 팟!
90층에 도달한 진혁의 검이 로비의 대형 방어 유리벽을 단숨에 베어 갈랐다.
쏟아지는 유리조각 속으로 착지한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더 이상 인간의 형상을 한 군사들이 아니었다.
휘이익-! 콰아아앙-!
지이잉, 카캉!
양 벽면의 시크릿 해치에서 튀어나온 것은 티타늄 그룹이 숨겨둔 최종 기동형 경비 로봇, '저거너트(Juggernaut)'였다.
전신이 초고주파 장갑으로 도배된 거구의 기계 병기 네 기가 일제히 중기관총과 플라즈마 포를 난사하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두-!
사방이 탄막으로 뒤덮였다.
일반적인 초인이라면 그 탄우 속에서 벌집이 되었을 상황.
그러나 진혁의 입가에 짙고도 잔인한 미소가 떠올랐다.
"잘 됐군."
쿠우우우웅-!
진혁의 몸에서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온 마기가 거대한 방패 형상을 만들어냈다. [마기 실드]였다.
플라즈마 포의 고열이 실드와 부딪치며 사방으로 불꽃을 튀겼지만, 진혁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전신에 장착된 [나노마갑 lvl.3]의 표면이 격렬하게 진동하며 적의 탄환에서 뿜어져 나오는 동력 에너지를 억지로 포집하기 시작했다.
흡원천공의 변형 응용.
적의 공격을 받아내는 것과 동시에 그 안의 에너지를 역으로 빨아들이는 괴랄한 방식이었다.
[SYSTEM INFO: 외부 에너지 강제 포집 중.]
[저거너트 코어 출력 역류 확인. 3,200 MW 추가 흡수.]
[단전 출력 재조정: 6,800 MW → 7,300 MW 돌파!]
"크윽……!"
몸 안에서 끓어오르는 에너지가 터져 나갈 듯 소리쳤다.
살갗이 찢어지고 핏물이 맺혔지만, 그 고통조차 진혁에게는 쾌락으로 다가왔다.
근육의 밀도가 한계 이상으로 압축되며 [천마무상체]의 뼈대와 살이 더욱 단단한 강철처럼 재조립되었다.
진혁이 눈을 번뜩이며 검을 치켜들었다.
"받은 만큼 돌려주마."
파앗-!
빛의 잔상조차 남지 않았다.
[마광신보]와 극한으로 압축된 마검기가 하나로 융합되는 순간, 네 기의 저거너트를 감싸고 있던 초고주파 방어막이 동시에 비명과 함께 박살 났다.
푸스스스-! 콰창!
기계 장비의 중앙 코어가 양단되며 네 기의 거대 로봇이 일제히 고철 덩어리로 무너져 내렸다.
그 속에서 새어나오는 푸른색 코어 에너지를 진혁이 잔인하게 손아귀로 쥐어짜며 흡수했다.
더 이상 뒤를 돌아볼 필요도 없었다.
95층, 98층,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100층.
티타늄 타워의 최상층, 회장실로 향하는 거대한 강화 티타늄 대문 앞에 진혁이 멈춰 섰다.
사방은 고요했다.
오직 천장의 환풍기 소리와 자신의 거친 숨소리만이 귓가를 때렸다.
진혁은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천마검]을 꽉 움켜쥐었다.
단전에서 치솟는 7,300 MW의 출력이 검신을 타고 시커먼 마기(魔氣)와 함께 폭발적인 파동을 뿜어내고 있었다.
쾅-!
진혁이 일순간에 검을 휘둘렀다.
티타늄 그룹의 모든 기술력이 집약된 최고 등급의 문짝이, 단 한 번의 참격에 맥없이 반으로 쪼개지며 안쪽으로 무너져 내렸다.
뿌우우우우웅-!
거대한 회장실의 내부가 드러났다.
수천 층의 높이에서 신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통유리 벽.
그 한가운데 놓인 거대한 가죽 소파에 한 중년 신사가 여유로운 자세로 앉아 있었다.
은발을 정갈하게 넘긴 채, 와인잔을 흔들며 이쪽을 바라보는 남자.
진무극.
"어이, 회장."
진혁이 피투성이가 된 발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악마의 귓속말처럼 차갑고도 무거웠다.
"초대해 줬으니, 기꺼이 받아주마. 네가 만든 이 지옥의 왕좌를."
진무극의 입가에 마침내 완전히 뒤틀린 환희의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