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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175화목차

제175화 백무현의 후퇴와 중앙 생체로

천둥이 쳤다. 아니, 지하 3,500층의 마스터 돔을 뒤흔든 것은 뇌전이 아닌 강진혁의 일격이었다.

공간이 비명에 가까운 파열음을 냈다. 강진혁의 손끝에서 뻗어 나간 검강은 천마의 잔영과 백무현의 합공을 단숨에 갈라놓았다.

“크윽…!”

백무현의 비명은 짧았다. 강진혁의 신형이 그가 눈치채기도 전에 좁혀졌다.

[SYSTEM: [마혈회로(魔血回路)] 가동. 초당 3,600회 기혈 회전 활성화.]

[SYSTEM: [천마무상체(天魔無相體)] 연동. 신체 밀도 재구성.]

공기 중의 마기를 실시간으로 흡수하며 재구축된 강진혁의 신체는 이미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지 오래였다. 그는 백무현의 어깨를 뚫고 들어온 공격을 가볍게 쳐내며, 왼손으로 백무현의 오른쪽 기계 의수를 움켜쥐었다.

찌지직, 지지직!

나노 회로가 과부하를 일으키며 붉은 불꽃을 튀겼다. 백무현의 사이보그 의수가 강진혁의 손 안에서 비틀렸다. 티타늄 그룹이 자랑하던 초고밀도 합금조차 강진혁의 악력 앞에서는 종잇장이나 다름없었다.

“이 힘은…!”

백무현의 단안(單眼) 센서가 붉게 점멸했다. 경악하는 그의 면전에서 강진혁의 흑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네놈의 모든 연산과 회로를 마기로 뒤덮어주지.”

우득!

강진혁이 손목에 힘을 주자, 백무현의 기계 의수가 완전히 박살 났다. 절단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각수와 오일이 마기에 휩싸여 순식간에 기화했다. 백무현은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뒤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강진혁은 추격하지 않았다. 그저 싸늘한 눈으로 백무현의 도주를 지켜볼 뿐이었다.

백무현은 알고 있었다. 여기서 더 머무르면 자신의 코어마저 강진혁의 흡원천공에 영구적으로 귀속되리라는 것을.

“회장님의 의지는 꺾이지 않는다. 강진혁, 네놈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 신서울은 결국 ‘그릇’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백무현은 피 섞인 파편을 흩뿌리며 타워의 상층부로 연결된 통로를 향해 급격히 후퇴했다. 그의 뒷모습은 기괴했다. 기계 의수가 잘려 나간 자리에서 비상용 나노 리페어 시스템이 가동되었지만, 강진혁이 주입한 마기가 끈질기게 회로를 갉아먹고 있었다.

그는 타워 최상층, ‘중앙 생체로’의 동력을 강제로 원격 추출할 셈이었다. 그곳에 저장된 막대한 에너지를 끌어와 손상된 신체를 복구하고, 다음 수를 노리겠다는 계산이다.

강진혁은 그 뒷모습을 보며 낮게 읊조렸다.

“도망쳐라.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자.”

도주하는 백무현의 궤적을 쫓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의 체내에서 유출되는 마기의 흔적이 선명했다. 강진혁은 천천히 발을 옮겼다. 그의 걸음마다 지면이 미세하게 갈라졌고, 복구되려는 돔의 잔해들이 마기에 눌려 산산조각 났다.

그때, 등 뒤에서 천마의 기운이 다시 한번 요동쳤다.

“강진혁.”

천마가 입을 열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감정을 읽을 수 없는 가면 같았다.

“너는 지금 시스템의 껍데기를 벗겨내고 있다. 하지만,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가?”

강진혁은 멈춰 서서 어깨너머로 그를 보았다.

“네가 말하는 그 ‘끝’이라는 게 저 지하 3,500층의 배양소나, 차원 너머의 신들을 말하는 거라면 이미 흥미가 식었다.”

“오만하구나.”

“아니, 명확한 거다. 너희가 만든 그 어떤 각본도 이제 내 검 끝에서 끝난다.”

강진혁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백무현이 사라진 통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뇌신보(雷神步)가 전개되며 잔상조차 남기지 않는 속도로 공간을 도약했다.

지하 3,500층에서 상층부로 이어지는 수직 통로는 복잡했다. 수많은 보안 장치와 감시 카메라가 진혁을 향해 포문을 돌렸지만, 그가 지나는 자리마다 폭발적인 마기가 휩쓸고 지나가며 모든 전자기기를 무력화시켰다.

[SYSTEM: 경고. 타워 상층부 진입로 방어 프로토콜 가동.]

[SYSTEM: 중앙 생체로에서 비정상적인 에너지 출력이 감지됨.]

HUD가 사라진 시야였지만, 강진혁의 감각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그는 백무현이 중앙 생체로의 에너지를 빨아들이며 자신의 코어를 강제로 오버클럭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에너지를 회복하겠다고? 아니, 그건 자폭에 가깝다.’

백무현의 몸은 이미 한계였다. 강진혁이 주입한 마기가 그의 기계 육체를 갉아먹고 있었기에, 생체로의 동력을 직접 받아들이는 것은 육신을 불태우는 행위와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진무극이 설계한 최후의 함정인가.’

강진혁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백무현을 쫓아 통로를 빠르게 돌파하던 그는, 문득 통로 끝에 서 있는 거대한 차단문을 마주했다.

중앙 생체로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웅웅거리는 진동음이 발밑을 타고 올라왔다. 백무현이 생체로와 접속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강진혁은 주저 없이 손을 뻗어 차단문의 중심을 잡았다.

“열려라.”

[만법귀마(萬法歸魔).]

강진혁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차단문의 잠금장치 속으로 침투했다. 물리적인 힘이 아닌, 시스템의 기저 회로를 직접 뒤흔드는 방식이었다. 차단문이 비명을 지르며 천천히 옆으로 갈라졌다.

그 안쪽, 붉은 조명으로 가득 찬 거대한 중앙 생체로가 보였다.

그곳에는 백무현이 있었다.

그의 몸은 이미 사람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뒤틀려 있었다. 잘려 나간 의수 대신 생체로에서 연결된 수십 개의 케이블이 그의 신경계에 직접 연결되어 있었다.

백무현의 가슴팍, 코어가 위치한 자리에서 푸른 불빛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강진혁…!”

백무현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제 인간의 감정 대신 기계적인 노이즈가 가득했다.

“네놈을 여기에 묶어두는 것이 나의 마지막 임무다.”

“임무?”

강진혁은 비웃음을 흘리며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생체로 내부의 고농도 마기가 그의 피부에 닿아 따끔거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누구의 명령이지? 이미 죽은 진무극인가, 아니면 그 뒤에 숨어있는 그림자들인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백무현이 손을 뻗자, 주변의 모든 케이블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강진혁을 향해 쇄도했다. 수만 볼트의 전류와 마기가 섞인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강진혁은 검을 뽑지 않았다. 그저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제4식 - 마기장(魔氣障).]

보이지 않는 마기의 장벽이 쇄도하는 케이블들을 허공에서 멈춰 세웠다. 강진혁은 한 걸음 한 걸음 백무현을 향해 다가갔다.

“네가 에너지를 빨아들일수록, 그 에너지는 곧 내 양분이 될 뿐이다.”

강진혁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공간의 밀도가 변하며 백무현을 압박했다. 백무현은 비명을 지르며 생체로의 출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콰아아앙!

중앙 생체로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타워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거대한 에너지가 돔 내부를 가득 채웠다. 강진혁은 그 폭풍의 한가운데서도 흔들림 없이 백무현의 코어를 응시했다.

그의 눈에 비친 백무현의 코어는, 단순히 기계적인 장치가 아니었다.

‘이건… 천마의 유골 데이터 일부가 내장된 프로토콜의 핵심인가.’

진무극이 왜 백무현을 그토록 아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그는 단순한 가드가 아니었다. 강진혁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동기화하고, 최악의 경우 그를 봉인하기 위한 '백업 시스템'이었다.

“끝내주마, 백무현.”

강진혁의 오른손에 푸른 검강이 맺혔다.

[천마일검(天魔一劍).]

공간을 찢고 나가는 일격이 백무현의 가슴을 향해 직진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백무현의 입가에 기괴한 미소가 번졌다.

“늦었다, 강진혁.”

그와 동시에 생체로의 조명이 일제히 꺼졌다.

강진혁의 발밑, 바닥이 순식간에 함정으로 변하며 그를 지하의 심연으로 끌어내리려 했다. 아니, 함정 따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강진혁이 그토록 경계하던, 내공을 강제로 억제하는 '마기 차단 필드'였다.

"이현도의 함정인가…!"

강진혁의 전신에 흐르던 마기가 순식간에 멈췄다.

단전에서 맹렬히 회전하던 내공의 흐름이 끊기며, 강진혁의 몸이 묵직한 돌처럼 굳어버렸다.

그가 필드를 돌파하기 위해 힘을 쥐어짜려 했으나, 전신의 근육이 마비되어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백무현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이제 그의 가슴에는 강진혁의 검강 대신, 이현도가 설치한 특수 억제 장치가 박혀 있었다.

"이 필드 안에서는 그 어떤 마공도, 나노머신도 작동하지 않는다."

백무현이 싸늘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강진혁, 너는 이제 그냥 고깃덩어리일 뿐이다."

강진혁의 시야가 흔들렸다.

시스템의 도움도, 마기의 운용도 불가능한 상황.

오직 차가운 금속 바닥 위에 쓰러져, 백무현의 기계적인 발소리만을 듣고 있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백무현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신의 손을 무기 형태로 변형하며 강진혁을 향해 다가왔다.

"이제 너의 그 오만한 목을 가져가겠다."

강진혁은 굳어버린 육체 속에서 마지막 남은 의지를 쥐어짰다. 시스템이 없어도, 내공이 없어도.

자신을 '천마'라 부르게 만든 그 근원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눈을 감고, 단전 깊숙한 곳에서부터 잊고 있었던 가장 원초적인 무의 궤적을 떠올렸다.

[Warning: 생체 코어 출력 0%. 근육 경직률 98%.]

경고 문구조차 뜨지 않는 적막 속에서, 강진혁의 심장이 다시 한번 기이한 박동을 시작했다.

백무현의 기계적인 발소리가 10cm, 5cm, 그리고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그는 강진혁의 목을 움켜쥐기 위해 날카로운 합금 손가락을 뻗었다.

“가장 먼저, 네놈의 뇌 회로를 뽑아내어 그 속에 숨겨진 ‘천마’의 좌표를 추출하겠다.”

백무현의 손가락 끝에서 고주파 진동이 일렁였다. 그대로 내리꽂히면 강진혁의 두개골은 캔버스처럼 찢겨 나갈 터였다. 하지만 강진혁은 공포 대신 차가운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의 단전은 지금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하지만 강진혁이 깨달은 것은 ‘내공’이 시스템의 산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내공은 기의 흐름이자, 육신이 우주와 교감하는 진동 그 자체다. 억제 필드가 기의 흐름을 막는다면, 그 흐름의 ‘근원’을 바꾸면 그만이었다.

‘나노머신도, 프로토콜도 없다. 그렇다면.’

강진혁의 의식은 자신의 심장 깊숙한 곳, 태초의 혈맥으로 침잠했다. 1,000년 전 천마가 마공을 완성하기 위해 스스로를 깎아내며 새겼던, 가장 순수한 ‘마의 심지(心志)’.

그것은 시스템이 분석할 수 없는, 오직 인간의 의지로만 점화되는 불꽃이었다.

콰아앙!

강진혁의 가슴 속에서 묵직한 파동이 일었다. 억제 필드의 푸른 빛이 강진혁의 주변에서 불규칙하게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백무현이 당황하며 뒷걸음질 쳤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시스템 상으로는 네놈의 모든 회로가 정지되었을 텐데!”

“시스템? 착각하지 마라.”

강진혁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마비되었던 그의 눈동자가 칠흑 같은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는 여전히 몸을 움직일 수 없었지만, 그의 의지는 이미 필드 너머의 허공을 갈가리 찢고 있었다.

“네놈들이 만든 그 좁은 틀 안에서만 무공을 생각했으니, 진짜 마공이 무엇인지 알 리가 없지.”

강진혁의 의지가 다시 한번 요동쳤다. 이번에는 단순한 파동이 아니었다. 억제 필드의 주파수를 강제로 공진시켜 스스로를 파괴하는 ‘역공명(逆共鳴)’이었다.

우득, 우드득!

바닥에 깔려 있던 필드 발생 장치가 강진혁의 의지력에 눌려 균열을 일으켰다. 백무현의 사이보그 육체가 기괴한 소음을 내며 제어력을 잃고 휘청거렸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수치다! 데이터에 없는 에너지다!”

“데이터? 그게 바로 네놈들이 가진 유일한 한계다.”

강진혁은 굳어버린 근육을 비틀어 강제로 일으켰다. 뼈가 어긋나고 근육이 찢겨 나가는 고통이 엄습했지만, 그는 미소 지었다. 비록 시스템의 수치는 0%였으나, 그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의지는 억제 필드를 집어삼키며 다시 끓어오르고 있었다.

강진혁의 오른손이 백무현의 멱살을 낚아챘다.

“자, 이제 네놈의 그 잘난 데이터들을 지워주마.”

백무현이 저항하려 했으나, 강진혁의 손아귀에 갇힌 그의 몸은 이미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기에 침식되고 있었다. 강진혁은 억제 필드를 역이용해 백무현의 내부 회로를 과부하 시켰다.

찌지직! 펑!

백무현의 가슴 속, 이현도의 역작이라 불리던 특수 억제 장치가 박살 났다. 그와 동시에 억제 필드가 완전히 붕괴했다. 강진혁의 전신을 억누르던 구속이 풀리자, 그가 억눌러왔던 압도적인 마기가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악!”

백무현의 단말마가 생체로의 붉은 조명 아래 흩어졌다. 강진혁은 그의 코어를 움켜쥔 채, 차가운 눈으로 중앙 생체로의 깊은 어둠을 응시했다.

그 어둠 너머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현도가 남긴 마지막 함정, 그리고 천마의 비밀이 숨겨진 진짜 진실이 기다리고 있는 곳.

강진혁은 백무현을 바닥에 처박아 버리고, 거침없이 중앙 생체로의 심장부를 향해 검을 뽑아 들었다.

“나와라. 더 이상 숨을 곳은 없다.”

그의 검 끝이 허공을 가리키자, 생체로의 벽면이 서서히 갈라지며 잊혔던 고대 마교의 문양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진혁의 앞에는 이제, 그 무엇도 가로막을 수 없는 거대한 전설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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