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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173화목차

제173화 사이보그의 비밀

제시해주신 설정과 세계관을 바탕으로, 문장 교정 및 문체 통일, 서사적 긴장감을 보강하여 교정한 원고입니다.

제173화 사이보그의 비밀

공기는 차가웠다.

티타늄 타워 최상층, 백무현의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던 살기(殺氣)는 이제 바닥을 기는 냉기로 변해 있었다.

파쇄된 가슴 장갑 사이로 붉은 불꽃이 튀었다. 일반적인 사이보그의 동력원이라면 진작에 셧다운되었을 상황. 하지만 백무현의 내부는 달랐다.

그것은 단순한 기계 장치가 아니었다.

‘……이건.’

강진혁의 흑안이 가늘게 좁혀졌다.

백무현의 흉부 중심부, 텅 빈 갈비뼈 사이로 박혀 있는 것은 펄떡이는 생체 코어였다. 그런데 그 코어 주변으로, 1,000년 전 구무림의 비급에서나 보았던 ‘기혈(氣穴)’의 궤적을 형상화한 나노 회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그것은 기계가 아니었다. 기계를 흉내 내는 마공(魔功)의 흔적이었다.

“진무극, 그 영감탱이.”

진혁의 입술 끝이 비릿하게 올라갔다.

백무현은 단순한 블랙 가드의 총사령관이 아니었다. 그는 진무극이 실험체 07호인 자신을 만들기 전, 수없이 많은 ‘실패작’들의 단전을 강제로 추출해 합쳐 만든, 일종의 살아있는 마공 도서관이자 저장소였다.

[SYSTEM: 경고. 대상 ‘백무현’의 내부 구조에서 비정상적인 마기 역류가 감지됩니다.]

[SYSTEM: 기계 장치와 생체 단전의 직렬 연결 구조 확인. 데이터 분석… 99.8%.]

시스템의 알람이 귓가에서 울렸지만, 진혁은 더 이상 그 수치에 의존하지 않았다. 이제는 육감이 먼저였다. 나노머신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박동이, 마치 심장 고동처럼 마기와 공명했다.

“시스템, 꺼져.”

진혁이 나직하게 읊조리자, 시야를 어지럽게 하던 홀로그램 창이 툭 하고 끊어졌다.

고요함.

그것이 진정한 천마의 전장이었다.

쿠구구구―!

백무현이 파쇄된 장갑을 뜯어내며 포효했다. 그의 등 뒤로 거대한 기계 날개가 펼쳐졌다. 날개 끝에서는 푸른 플라즈마 화염이 방출되며 주위의 강철 바닥을 녹여내고 있었다.

“진혁…! 너는… 끝까지… 그릇일 뿐이다!”

백무현의 음성이 기계적인 노이즈와 인간의 광기가 섞인 괴이한 울림으로 변했다. 그는 자신의 가슴에 얽힌 수십 개의 생체 코어를 강제로 과부하시켰다.

파앗―!

전장 전체가 보랏빛 마기로 뒤덮였다. 그것은 고대의 마공과 현대의 핵융합 기술이 뒤섞인, 이름조차 붙이기 힘든 폭주 에너지였다.

백무현이 오른손을 휘둘렀다.

단순한 손짓이 아니었다. 그가 휘두른 궤적을 따라 공간 자체가 찢겨 나갔다. 마기와 고주파 진동이 결합한 절기.

[마도연격(魔刀連擊) – 파천(破天)]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린 신천마신공의 기운을 오른손에 집중했다.

‘흡수하는 게 아니다.’

이전의 자신이라면 시스템을 통해 저 기운의 파장을 분석하고, 그에 맞춘 카운터 코드를 짜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진혁은 달랐다.

그는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저 흉측한 구조의 근본은, 결국 인간의 욕망이 낳은 뒤틀린 마기일 뿐이라는 것을.

쾅―!

진혁의 주먹이 백무현의 궤적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충돌 지점을 중심으로 공간이 일그러졌다. 타워의 통유리창들이 비명과 함께 산산조각 났고, 백무현의 기계 팔이 굉음과 함께 뒤로 꺾였다.

“크으윽…!”

백무현의 안광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어떻게… 시스템의 보조 없이… 이 정도의 출력을…!”

백무현은 당황하고 있었다. 자신의 연산 코어가 진혁의 공격 궤적을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예측할 수 없었다.

진혁의 무공은 더 이상 알고리즘의 영역에 있지 않았으니까.

“네가 사용하는 그 마기.”

진혁이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건 내 단전에서 뜯겨 나간 찌꺼기들이다.”

진혁의 손바닥이 백무현의 가슴팍, 그 흉측한 생체 코어들의 집합소에 박혔다.

“돌려받지.”

우득, 우드득.

백무현의 내부 장갑이 진혁의 손아귀 안에서 비틀렸다.

[만법귀마(萬法歸魔)]

진혁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순수한 마기가 백무현의 내부 회로를 타고 역류했다. 그것은 백무현을 제어하던 진무극의 마스터 코드를 짓밟고, 강제로 그 안에 잠들어 있던 수십 명의 원혼과 마기를 강탈하는 행위였다.

“아, 아아아아…!”

백무현의 비명은 점차 잦아들었다.

그의 몸을 구성하고 있던 수천 개의 부품들이 마기의 침식에 의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고대의 단전들이 진혁의 의지에 반응하여,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듯 진혁의 혈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차갑군.’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전의 원한이 섞인 마기가 진혁의 몸으로 유입되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즉사했을 마기의 폭풍. 하지만 진혁의 신체는 이미 [마신경]에 도달한 상태였다. 그는 그 거대한 마기들을 단전이라는 거대한 용광로에 쏟아부어, 자신의 기운과 하나로 녹여냈다.

콰아아아!

진혁의 머리칼이 역류하는 마기의 폭풍에 흩날렸다.

눈앞에서 백무현의 육신이 껍데기만 남은 채 바스러져 내렸다. 그 안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고성능 연산 칩 하나가 진혁의 손에 쥐어졌다.

그 칩 안에는, 이 모든 실험의 시작점인 ‘지하 3,500층’의 좌표가 담겨 있었다.

“마지막 퍼즐인가.”

진혁은 바스러진 백무현의 잔해를 밟고 일어섰다.

타워 외부, 신서울의 밤하늘은 이제 검은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차원 너머의 존재들이 진혁의 각성을 감지하고, 이 세계의 문을 더욱 거세게 두드리고 있었다.

그는 손에 쥔 연산 칩을 으스러뜨렸다.

데이터는 이미 그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진무극은 죽었지만, 게임은 끝나지 않았어.”

진혁의 흑안이 지하를 향했다.

그곳에는 자신이 ‘그릇’으로 탄생하게 된 기원, 그리고 자신을 조종하려 했던 차원 너머의 신들이 숨겨놓은 진짜 비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발끝에서부터 거대한 마기가 회오리치며 타워의 바닥을 뚫어버렸다.

“사냥은 이제부터다.”

진혁이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지하 3,500층.

자신을 만든 신들의 제단으로, 천마가 직접 내려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Warning: 차원 간섭 수준 임계점 돌파.]

[Alert: ‘심연의 눈’이 당신을 응시합니다.]

허공에 나타난 붉은 안광.

진혁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백무현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기운이었다.

공간의 틈새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1,000년 전 천마가 전이하며 남겼던 ‘그것’과 매우 닮아 있었다.

진혁이 멈춰 섰다.

입가에 옅은, 그러나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기다리고 있었나 보군.”

지하의 어둠 속에서, 더 거대한 어둠이 진혁을 향해 손을 뻗어오고 있었다.

진혁의 발밑으로 타워의 철골 구조물이 비명을 지르며 붕괴했다. 지하 3,500층으로 향하는 수직 통로는 이미 티타늄 그룹이 설치한 차원 왜곡 장치로 인해 뒤틀려 있었다. 중력이 위아래로 역전되고, 공간이 종이처럼 접혔다 펴지기를 반복하는 아비규환의 공간.

그러나 진혁에게 그곳은 더 이상 위험 지역이 아니었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 제7식, 만상멸세(萬象滅世)]

진혁이 허공을 향해 가볍게 손을 뻗자, 주변을 감싸고 있던 왜곡된 공간의 파동이 그의 손가락 끝에서 멈춰 섰다. 차원의 벽을 찢고 들어오려던 심연의 안광들이 일순간 진혁의 기운에 눌려 멈칫했다.

“감시자라….”

진혁의 눈동자가 금빛으로 번뜩였다.

그는 백무현을 처단하며 흡수한 데이터 조각들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심연의 주인들이 이 세계에 손을 뻗는 방식은 단순히 물리적인 강림이 아니다. 그들은 신서울이라는 거대한 자본의 회로망을 ‘그릇’으로 삼아, 자신들의 파편을 이식하고 있었다.

백무현이 가지고 있던 고대의 기혈 궤적은 그들이 보낸 초대장이었다.

“내 몸을 빌려 이 세계에 발을 들이려 했던 건가.”

진혁의 발길이 닿을 때마다 층층이 쌓인 방어 시스템이 마기에 침식되어 붕괴했다. 수천 개의 자동 방어 터렛이 일제히 불을 뿜었으나, 진혁의 몸을 감싼 마기 장벽은 그 총탄을 튕겨내지도 않았다. 그저 소리 없이 마기 안으로 흡수되어, 진혁의 내공을 보충하는 에너지원으로 치환될 뿐이었다.

[만법귀마(萬法歸魔).]

진혁은 걷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모든 기술적 파동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지하는 더 이상 기업의 요새가 아니었다. 진혁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티타늄 그룹이 수십 년간 쌓아 올린 기술적 유산들이 그 가치를 잃고, 진혁을 위한 마기의 제단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그때, 지하 2,000층 지점의 통제실 문이 열리며 익숙한 실루엣이 나타났다.

“강진혁!”

윤아영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지만, 두 손은 여전히 허공에 띄운 수십 개의 홀로그램 창을 미친 듯이 조작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 안 돼! 진무극이 남겨둔 최후의 함정이 작동했어. 그건 기술이 아니야… 공간 자체를 삭제해 버리는 ‘차원 소멸 폭탄’이야!”

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아영아.”

“뭐?”

“폭탄을 멈출 필요 없다.”

진혁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폭탄도, 시스템도, 결국은 무언가를 유지하기 위한 틀일 뿐이다. 그 틀 자체를 부수면 아무런 의미도 없지.”

진혁은 윤아영의 옆을 지나쳐 통제실 중앙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곳에는 티타늄 그룹의 심장이라 불리는, 붉게 점멸하는 거대한 코어 ‘아마겟돈’이 가동되고 있었다. 진무극이 자신의 죽음을 대비해 신서울 전체를 매장하기 위해 설치한 파괴 장치였다.

코어 주변으로는 차원의 틈새가 벌어져, 심연의 주인들이 보낸 그림자들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들은 진혁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진혁의 육체를 향해 쇄도했다.

“너희들이 바라는 게 내 육체라면… 가져가 봐라.”

진혁이 단전을 개방했다.

그동안 억눌러왔던 마기의 본질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1,000년 전 천마의 살의와, 현대 기술이 낳은 비정한 에너지가 합쳐진 압도적인 마기였다.

콰아아아!

지하 3,500층의 공기가 비명을 질렀다.

심연의 그림자들은 진혁의 육체에 닿는 순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증발했다. 그들은 진혁의 육체를 탐냈으나, 그 육체에 담긴 격(格)이 자신들의 존재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이미 늦어 있었다.

진혁은 코어 ‘아마겟돈’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찌릿―.

수만 볼트의 전압과 차원의 붕괴 에너지가 그의 팔을 타고 흘렀다. 나노머신이 과부하를 일으키며 붉게 달아올랐으나, 진혁은 오히려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너희들의 진짜 힘인가?”

진혁의 팔 근육이 팽창하며 코어를 짓눌렀다.

그는 코어의 에너지를 외부로 방출하는 대신, 자신의 단전으로 강제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신(神)의 영역을 침범하는 행위였다.

[Warning: 생체 코어 출력 한계 초과.]

[Warning: 육체적 붕괴 확률 89%.]

시스템의 알람이 다시 울려 퍼졌으나, 진혁은 코웃음을 쳤다.

“한계라는 건, 넘으라고 있는 거다.”

그의 등 뒤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형상화되었다. 1,000년 전 전설 속에만 존재했던, 천마의 현신이었다.

지하 전체를 뒤덮고 있던 마기가 진혁의 검지로 집중되었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 제8식, 천마일검(天魔一劍)]

단 하나의 점.

공간의 모든 에너지를 단 하나의 점으로 압축한 진혁의 검지가 코어의 중심을 찔렀다.

콰드득!

코어 내부의 차원 좌표가 비틀리며, 심연으로 향하는 통로가 반대로 뒤집혔다. 진혁은 그 틈을 타 차원 너머의 주인들을 정면으로 노려보았다.

“내가 그리로 가는 게 아니다. 너희가 이 세계에 들어온 대가를 치르게 해주지.”

진혁의 기운이 차원의 벽을 넘어 심연의 성채를 강타했다.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차원 너머에서 들려오는, 신들의 비명이었다.

콰광―!

지하 3,500층의 마스터 돔이 찬란한 마기의 빛으로 물들었다. 신서울의 모든 불빛이 일순간 꺼졌다가, 다시 진혁의 마기를 머금고 붉게 점멸했다.

먼지 구름이 가라앉자, 진혁이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이제 코어의 잔재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심연의 주인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천마의 의지’만이 그의 흑안에 서려 있었다.

윤아영이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진혁아… 방금, 뭘 한 거야?”

진혁은 대답 대신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시스템은 완전히 소멸했다. 그의 안에는 오직 그 스스로 깨달은 무공의 진리만이 남아 있었다.

“청소했다.”

진혁이 고개를 돌려 윤아영을 보았다. 그의 눈빛은 이전보다 훨씬 더 깊고 차가웠다.

“심연의 주인들은 이제 이 세계를 더 이상 넘보지 못할 거다. 하지만….”

진혁의 시선이 다시 지하의 어둠 끝을 향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진무극이 이 모든 일을 꾸민 배후에는, 더 깊은 어둠이 남아 있다.”

그때였다.

붕괴된 마스터 돔의 가장 깊은 곳, 바닥 밑바닥에서 낡은 관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관 위에는 1,000년 전 사라졌던 천마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진혁의 심장이 요동쳤다.

단순한 데이터 조각이 아니었다.

저 관 속에는, 1,000년 전 천마가 남긴 ‘진짜 육체’와, 그가 전이하며 도달했던 세계의 진실이 잠들어 있었다.

진혁은 천천히 관을 향해 다가갔다.

관 뚜껑이 천천히 열리며, 차가운 냉기와 함께 1,000년 전의 진실이 쏟아져 나왔다.

“이건….”

진혁의 흑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 관 안에 잠들어 있는 것은, 자신과 똑같이 생긴 얼굴을 한, 그러나 훨씬 더 늙고 지친 기색이 역력한… ‘천마’ 그 자체였다.

관 속의 천마가 서서히 눈을 떴다.

“드디어… 올 자가 왔구나.”

심연의 주인들조차 경외했던 천마가, 천 년의 잠을 깨고 강진혁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네가 내 다음인가, 아니면… 내가 너의 다음인가.”

운명이 뒤섞이는 순간이었다.

진혁은 검을 뽑아 들었다.

이제, 진짜 사투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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