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2화 충돌하는 두 경지
신서울의 밤은 짙은 납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타워 꼭대기에서 쏟아지는 불꽃과 파편들이 비처럼 대지를 두드리는 와중에도, 강진혁의 시야는 고요하다 못해 서늘할 정도로 정밀했다.
[SYSTEM: 경고. 외부 출력 초과. 심장 구역 마기 폭주율 18.7%.]
[SYSTEM: 나노머신 동기화율 일시적 저하. 물리적 엔진 부하율 92%.]
허공에 떠다니는 시스템의 붉은 경고창은 더 이상 진혁에게 제약이 되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앞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회장의 마지막 보루이자, 기계와 생체 마공이 뒤틀린 형태로 융합된 괴물, 백무현이 서 있었다.
백무현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증기가 대기를 태웠다.
"크아아아!"
그것은 인간의 비명이 아니었다. 수천 개의 고대 마공 회로가 강제로 과부하를 일으키며 뿜어내는 비명. 백무현의 몸을 감싸고 있던 티타늄 아머가 찢겨 나가며, 그 안에서 시뻘건 마기가 용암처럼 끓어올랐다. 오버드라이브 모드. 티타늄 그룹이 내놓을 수 있는 최후의, 그리고 가장 파괴적인 기술이었다.
"네가 아무리 천마의 그릇이라 한들, 데이터의 한계를 넘을 순 없다!"
백무현이 도약했다. 찰나의 순간,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고주파 진동도가 진혁의 흉부를 향해 쇄도했다. 공기가 찢어지는 파열음이 귀를 찔렀다.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오른손에 마기를 응축했다. [신천마신공] 제3식, 진동파쇄강(振動破碎剛). 파쇄의 성질을 극대화하여 분자 단위의 결합을 끊어버리는 파괴적인 마공. 동시에 왼손에는 고대 마교의 비전이자 현대의 전력망을 역이용하는 [천뢰마강(天雷魔剛)]을 얽어맸다.
콰아아앙!
두 경지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단순한 충격파가 아니었다. 진혁의 마기와 백무현의 오버드라이브 에너지가 맞닿는 지점에서 공간이 일그러졌다. 파란 뇌전과 붉은 마기가 뒤엉켜 타워의 상층부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바닥이 쩍쩍 갈라지며 철골 구조물이 비명을 질렀다.
"이게 네 한계인가, 백무현."
진혁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고작 기계 쪼가리에 마공의 껍데기를 씌운 것만으로는, 진짜 천마의 검을 감당할 수 없다."
진혁은 발을 땅에 박았다. 발밑의 콘크리트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마혈회로]가 초당 3,600회 이상 회전하며 단전의 에너지를 뿜어냈다.
우득, 우드득.
백무현의 진동도가 비명을 질렀다. 진혁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뇌전이 백무현의 장갑을 타고 흐르며 내부의 나노 회로를 마비시키기 시작했다. 시스템의 보조가 끊긴 상태에서도, 진혁은 오직 자신의 의지만으로 마기를 제어하고 있었다. 그것은 계산된 수치가 아니라, 뼈를 깎는 수련으로 얻어낸 본능이었다.
"아, 아아...!"
백무현의 눈에서 붉은빛이 깜빡거렸다. 그의 얼굴 위로 사이보그의 차가운 금속판과 인간의 일그러진 표정이 교차했다.
"데이터... 분석 불가. 출력... 초과... 어떻게, 네놈이..."
"분석할 필요도 없다. 무공이란 본래 계산하는 것이 아니니까."
진혁이 오른팔에 힘을 실었다. [만법귀마(萬法歸魔)]가 발동했다. 상대의 에너지 흐름을 역류시키는 천마의 권능. 백무현의 가슴팍에 박혀 있던 수십 개의 생체 코어가 진혁의 흡원천공에 반응하며 폭주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백무현의 몸 안에서 내력이 역류했다. 기계와 결합된 생체 조직이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끔찍하고도 처절한 파멸의 징조였다.
"내 모든 것을 바쳐... 너를 지옥으로 끌고 가겠다!"
백무현이 자신의 코어를 강제로 자폭시키려 했다. 가슴 중앙의 코어가 푸른색에서 검붉은색으로 변하며, 폭발 직전의 불안정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타워 전체가 흔들렸다.
하지만 진혁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더 깊숙이 백무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 폭발마저, 내 마공의 자양분으로 쓰겠다."
진혁의 손이 백무현의 가슴팍, 그 뜨거운 중심부를 꿰뚫었다. 나노마갑이 백무현의 장갑을 녹여내며 그 안의 기괴한 동력 구조를 드러냈다. 수십 개의 단전 코어가 복잡하게 얽힌, 그야말로 '인간의 고통을 연료로 삼는 기계'의 본질이었다.
진혁은 그 끔찍한 광경을 똑바로 응시했다.
[SYSTEM: 경고. 내부 침입 감지. 코어 폭주 위험 극대화.]
시스템은 여전히 멍청한 경고를 보내고 있었지만, 진혁은 HUD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오직 자신의 기혈이 흐르는 궤적에만 집중했다.
'흡수(Absorption)의 단계를 넘어, 융합(Fusion)으로.'
진혁이 마기를 쏟아붓자, 백무현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던 폭주 에너지가 거짓말처럼 진혁의 혈관을 타고 역류하기 시작했다. 백무현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자신의 힘이, 자신의 존재가, 마치 둑이 무너진 강물처럼 진혁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건... 말이 안 돼. 이건 마공이 아니다! 이건..."
"이것이 내가 완성할 신천마신공이다."
진혁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백무현의 가슴에서 뜯어낸 것은 단순한 에너지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티타늄 그룹이 1,000년 동안 숨겨온, 천마의 유골에서 추출된 원초적인 마기 데이터가 들어 있었다.
백무현의 몸이 급격하게 쪼그라들었다. 기계적인 동력을 잃은 살점들이 잿더미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지막 순간, 백무현의 눈에 인간적인 감정이 스쳤다. 증오도, 광기도 아닌, 구원받고 싶어 하는 희미한 갈망.
"진혁... 놈들... 지하 3,500층의... '뿌리'를... 조심..."
그 말을 끝으로 백무현의 몸은 형체도 없이 붕괴했다. 거대한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진혁이 그 모든 에너지를 자신의 단전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정적이 찾아왔다.
타워의 꼭대기, 부서진 창틈으로 신서울의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진혁은 숨을 고르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단전 속에서 거대한 에너지가 요동쳤다. [마신경]의 경지가 한 단계 더 견고해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진혁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백무현이 죽기 직전 남긴 말. 지하 3,500층의 '뿌리'. 그것은 단순히 티타늄 그룹의 시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탄생과, 이 모든 거대한 음모의 시작점.
"뿌리라..."
진혁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았다. 신서울의 마천루 너머, 구름 뒤에 숨겨진 차원의 균열이 희미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곳에서 자신을 응시하는 수많은 눈동자들을 느낀다.
[SYSTEM: 마기 폭주율 0%. 모든 시스템 복구 완료.]
[SYSTEM: 하지만... 새로운 데이터 스트림 감지. 지하 3,500층으로부터의 동기화 신호.]
진혁의 HUD에 처음 보는 좌표가 떴다.
지하 3,500층.
티타늄 그룹조차 기록에서 지워버린 금단의 구역. 진혁은 그곳에 자신의 '기원'이 있음을 직감했다.
그는 타워의 잔해를 뒤로하고, 지하로 내려가는 승강기 구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백무현을 처단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제 그는 자신을 사육한 그 거대한 악의 심장부를 향해, 천마의 이름으로 심판을 내리러 갈 것이었다.
"기다려라."
진혁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내 그릇을 탐낸 대가를, 뼈저리게 치르게 해주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 위로, 신서울의 거대한 네온사인 조명이 스산하게 일렁였다. 진짜 사냥은, 이제부터였다.
지하 3,500층으로 향하는 급행 승강기는 일반적인 시민들의 궤도와는 완전히 격리된 통로를 타고 있었다. 진혁이 승강기 내부의 제어반을 강제로 해킹해 조작하자, 금속음이 울리며 무거운 강철 문이 닫혔다.
[SYSTEM: 현재 위치, 지하 150층 통과 중.]
[SYSTEM: 하강 속도 임계치 돌파. 기압 안정화 장치 가동.]
승강기는 마치 심해 속으로 침잠하는 잠수정처럼 빠르게 하강했다. 진혁은 벽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은빛 회로가 흐르는 손목, 그 아래로 맥동하는 마기가 붉은 잔영을 남기고 있었다. 백무현을 흡수하며 얻은 마기 데이터는 그의 단전 안에서 미세한 파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힘의 축적이 아니었다. 1,000년 전 천마의 파편들이 기록된 암호문과도 같았다.
‘기억인가, 아니면 데이터의 잔재인가.’
진혁은 눈을 감고 백무현의 코어에서 추출한 기억의 파편을 더듬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진무극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 “07호, 넌 실패작이 아니다. 다만, 아직 채워지지 않았을 뿐이지. 네가 담아야 할 것은 내 영혼이 아니라, 이 세상의 ‘질서’ 그 자체다.”
그 질서라는 것이 결국 차원 너머의 존재들을 신서울로 불러들이는 통로였다는 사실을, 진혁은 이제야 명확히 이해했다. 티타늄 그룹은 기업이 아니었다. 그들은 인류를 사육하여 ‘제물’을 생산하는 농장이자, 심연의 주인들을 위한 안테나였다.
쾅!
승강기가 거대한 충격과 함께 멈춰 섰다. 하강하는 동안 들려오던 기계음이 일순간 잦아들더니, 묵직한 침묵이 공간을 메웠다.
[SYSTEM: 도달 완료. 지하 3,500층 ‘마스터 돔(Master Dome)’에 진입했습니다.]
문이 열리자,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낡고 부식된 폐기장이나 차가운 연구소일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그곳은 거대한 식물원 같았다.
아니, 식물원이 아니었다. 투명한 배양액 속에 잠겨 있는 수천 개의 관들. 그 안에는 백무현과 같은 전신 사이보그들이, 혹은 강진혁과 똑같이 생긴 어린아이들이 줄지어 매달려 있었다. 배양액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광채가 돔 전체를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여기가... 뿌리인가.”
진혁의 목소리가 돔 안의 고요한 공기를 흔들었다. 그가 한 걸음을 뗄 때마다 바닥에 깔린 케이블들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반응했다.
[SYSTEM: 경고. 개체 식별 코드 ‘강진혁’의 복제본 다수 발견.]
[SYSTEM: 돔 전체의 에너지 출력이 급상승합니다. 데이터 동기화 시작.]
돔 중앙, 가장 거대한 원통형 탱크가 서서히 회전하며 정면을 향했다. 그 안에는 배양액에 갇힌 채 잠들어 있는, 성인 남성의 육체가 있었다. 진혁의 얼굴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하지만 마기가 아닌 순수한 차원의 에너지가 흐르는 육체.
그것은 강진혁이 아니었다. 그것은 강진혁이라는 그릇을 완벽하게 완성하기 위한 ‘완성형 프로토콜’ 그 자체였다.
“나를 키우던 곳이 아니라, 나를 교체할 곳이었군.”
진혁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진무극이 죽기 직전까지 집착했던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는 단순히 진혁을 조종하려던 게 아니었다. 진혁이 스스로 마신경에 도달해 완벽한 그릇이 되면, 이 배양액 속의 존재와 자신의 정신을 ‘스왑(Swap)’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때, 돔의 스피커를 통해 기계적이면서도 묘하게 뒤틀린 음성이 울려 퍼졌다.
— “실험체 07호, 강진혁. 네가 여기까지 도달할 확률은 0.0004%였다. 하지만 너는 그 확률을 뚫고 스스로의 경지를 증명했지. 축하한다. 이제야 비로소 교체 수술을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
공간이 왜곡되며 검은 그림자들이 돔의 천장에서부터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심연의 주인들이었다. 물리적인 육체를 가지지 않은 채, 오직 시스템의 코드를 타고 현세에 발을 들이려는 고대의 존재들.
진혁은 검게 변하는 돔의 공기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교체 수술이라고 했나.”
그의 손끝에서 보랏빛 마기가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이제 HUD는 필요 없었다. 시스템이 무엇을 경고하든 상관없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배양액 속의 육체 또한, 결국 자신이 부수어야 할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주인이든, 신이든, 그릇을 탐내는 놈들은 전부 다 찢어발겨 주지.”
진혁의 눈동자가 신적인 마기를 머금고 붉게 타올랐다. 신천마신공 제9식, 마계천열(魔界天裂). 차원의 균열을 강제로 봉인하고, 그 안에 깃든 존재들의 근원을 멸하는 절기.
쿠구구구!
돔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배양액 탱크들이 하나둘씩 금이 가며 쏟아져 내렸다. 수천 개의 복제본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거품을 물었다.
진혁은 그 혼란스러운 돔의 한복판에서 허공을 향해 도약했다. 자신의 근원을 부정하고, 자신을 실험체로 전락시킨 모든 운명의 끈을 끊어내기 위해.
그가 뻗은 손이 돔의 천장을 가리켰다. 보이지 않는 차원의 장막이 찢어지며, 심연의 주인들이 내뱉는 비명이 돔 내부를 가득 채웠다.
“천마(天魔)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혁의 검지가 허공에 궤적을 그렸다. 그 궤적을 따라 공간이 절단되었다.
“스스로가 신이 되어, 운명을 짓밟는 자를 일컫는 말이지.”
[SYSTEM: ERROR. 데이터 소실. 차원 좌표 무효화.]
진혁의 앞을 가로막던 시스템의 문구들이 조각나며 흩어졌다. 돔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 붕괴의 잔해 위로 강진혁이라는 존재가 오롯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실험체 07호는 죽었다. 이곳에 남은 것은, 스스로의 진리를 완성한 신천마(新天魔)뿐이었다.
진혁은 무너지는 돔의 잔해를 딛고, 더 깊은 곳, 심연의 진짜 입구가 보이는 곳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이제, 진짜 사냥이 시작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