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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171화목차

제171화 프로토콜: 천마(天魔)

티타늄 타워의 공기는 차가웠다. 인공지능이 제어하는 항온 시스템은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었지만, 500층 통제실을 감싸고 있는 냉기는 물리적인 온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도처에 깔린 죽음의 기운, 마기(魔氣)가 뿜어내는 압도적인 위압감이었다.

강진혁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에 미세한 균열을 남겼다.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500,000 MW의 출력이 그의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더 이상 상태창의 도움은 없었다. 시스템 HUD의 붉은 경고등도, 나노머신의 자동 연산 보조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제 그의 모든 움직임은 오직 스스로의 의지와 깨달음으로 완성되는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의 궤적이었다.

"진세린. 준비는 됐나?"

진혁의 물음에 옆에 서 있던 진세린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에는 티타늄 그룹의 기밀 보안 키가 쥐여 있었다. 한때는 아버지 진무극의 충실한 사냥개였던 그녀였지만, 이제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아버지가 숨겨온 추악한 진실을 목격한 자의 서늘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후사대 본대와는 이미 채널을 분리했습니다. 아버님의 죽음 이후, 시스템은 백무현 사령관에게 모든 권한을 집중시켰어요. 그 말은 곧, 우리를 소모품으로 취급하겠다는 뜻입니다."

진세린의 목소리가 통제실의 차가운 벽에 울렸다.

"내 명령을 따르는 잔존 병력은 약 300명. 그들은 지금 타워의 중앙 제어실을 장악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백무현의 에너지 공급선을 끊어내면, 그놈은 고철 덩어리가 될 겁니다."

"좋아."

진혁이 낮게 읊조렸다.

백무현. 전신 사이보그화된 살인병기이자, 티타늄 그룹의 블랙 가드를 이끄는 통곡의 벽. 그는 진무극이 남긴 가장 완벽한 방패였다. 하지만 방패도 에너지가 없다면 종잇장에 불과하다.

진혁은 시선을 돌려 통제실 중앙의 메인 프레임을 바라보았다. 붉게 점멸하는 서버 타워들이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신서울의 모든 생체 코어 출력을 제어하는 심장부였다.

"가자."

두 사람이 통제실 내부로 진입하자, 복도 끝에서 중무장한 경비 로봇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반적인 경비병이 아니었다. 티타늄 그룹의 최정예, '블랙 가드'의 하위 부대였다. 그들의 몸에는 4세대 생체 코어가 이식되어 있었고, 손목에서는 고주파 진동검이 윙윙대며 소리를 냈다.

"침입자 확인. 제거 프로토콜을 가동한다."

기계적인 음성이 들리는 순간, 강진혁의 몸이 사라졌다.

[뇌신보(雷神步)]

천둥소리와 함께 진혁의 잔상이 허공에 흩어졌다. 0.1초도 되지 않는 찰나, 진혁은 선두에 서 있던 경비 로봇의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분석할 필요도 없군."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로봇의 중앙 제어 회로를 타고 역류했다. [만법귀마(萬法歸魔)]. 현대 공학의 집약체인 회로가 진혁의 마기에 휘말려 강제로 공진을 일으켰다.

쿠구궁!

경비 로봇들이 서로의 주파수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굉음과 함께 파편이 튀었지만, 진혁은 그 폭발의 중심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에게 화염과 파편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했다.

"세린, 통제실로!"

진세린은 진혁의 등 뒤에서 자신의 전술 라이플을 사격하며 길을 열었다. 그녀의 사격 궤적은 정교했다. 그녀 역시 티타늄 그룹의 후계자로서 받은 교육이 있었기에,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정확히 찔렀다.

통제실 문 앞에 다다르자, 거대한 기계 장치가 길을 막아섰다. 백무현이 심어놓은 자동 방어 포탑이었다. 플라즈마 탄환이 비처럼 쏟아졌지만, 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팔을 뻗어 허공을 가볍게 그었다.

[신천마신공 - 제7식 : 만상멸세(萬象滅世)]

허공이 찢어졌다. 공간의 파동이 플라즈마 탄환들을 허공에서 강제로 비틀어 버렸다. 탄환들은 진혁의 몸에 닿기도 전에 분자 단위로 분해되어 사라졌다. 그것은 힘의 차원이 다른 기술이었다. 시스템이 계산할 수 있는 물리 법칙의 영역을 넘어선, 진정한 '마(魔)'의 권능이었다.

"뚫어라!"

진세린이 보안 키를 슬롯에 꽂아 넣었다.

"권한 승인… 시스템 재부팅… 티타늄 타워 내부 통제권, 탈취 성공."

메인 프레임의 붉은 불빛이 푸르게 바뀌었다. 통제실 전체에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경고: 중앙 에너지 그리드 연결 차단. 백무현 사령관의 외부 공급 전력 85% 강제 차단됨.]

동시에, 타워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백무현이 있던 최상층 전투 구역에서부터 비명이 들려오는 듯했다.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한 사이보그의 육체가 스스로의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삐걱거리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진혁은 그 흔들림을 느끼며 미소 지었다. 그의 눈에는 이미 백무현의 최후가 그려지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다."

그는 통제실의 창문을 깨고 신서울의 야경을 내려다보았다. 불야성을 이루는 마천루들, 그리고 그 아래 신음하는 슬럼가. 이제 곧 저곳의 질서가 바뀔 것이다.

진혁의 등 뒤로 진세린이 다가왔다. 그녀의 표정은 복잡했다. 자신이 평생을 바쳐 지켜온 조직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흔들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빛만은 꺾이지 않았다.

"진혁 씨, 이제 저 위로 올라가면… 백무현이 기다리고 있겠죠."

"그래. 그놈은 내 손으로 끝낸다."

진혁은 자신의 주먹을 꽉 쥐었다. [마신경]에 도달한 후, 그의 몸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단련되어 있었다. 근육의 미세한 떨림 하나하나가 마기와 결합하여 폭발적인 힘을 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타워 전체가 거대한 진동과 함께 요동쳤다.

[시스템 메시지: 긴급 사태 발생. 백무현 사령관, '오버드라이브' 모드 강제 기동. 코어 출력 제한 해제. 타워 구조 유지 장치 붕괴.]

진세린의 눈이 커졌다.

"미쳤어… 전력을 다 차단했는데도, 자체 비상 코어를 폭주시키고 있다고? 저러면 타워가 무너질 거야!"

"무너지게 둬."

진혁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썩어버린 건물을 새로 세우려면, 기반부터 다 뜯어내야 하니까."

진혁은 통제실을 박차고 나갔다.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그가 밟고 지나간 자리는 녹아내리듯 흔적이 남았다.

통제실 복도를 지나 최상층을 향해 달리는 진혁의 귀에 백무현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것이 자신과 백무현의 마지막 대결이 될 것임을. 그리고 그 끝에서 자신이 무엇을 마주하게 될지도.

심연의 주인들, 고대의 그림자들.

진혁은 타워의 최상층으로 향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 힘은, 너희가 설계한 그릇의 크기를 이미 넘어섰다.'

그는 도약했다.

수백 층의 계단을 단번에 뛰어넘어 최상층 전투 구역으로 몸을 날렸다. 그곳에는 붉은빛을 발산하며 인간의 형상을 잃어가는 기계 괴물, 백무현이 서 있었다.

백무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타워의 강철 벽을 녹이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오직 강진혁을 죽이겠다는 하나의 목표만을 가진, 고장 난 파괴 병기였다.

"강, 진, 혁…!"

기계음이 섞인 백무현의 비명 같은 외침이 울렸다.

진혁은 착지하며 자세를 낮췄다. 그의 전신에서 검은 마기가 뿜어져 나오며 거대한 형상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전설 속 천마의 그림자였다.

"왔나, 백무현."

진혁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네 놈의 톱니바퀴를 하나하나 다 뜯어내 주마."

백무현이 땅을 박차고 돌진해왔다. 그 속도는 이미 음속을 넘어선 상태였다.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단전에 모여 있는 500,000 MW의 에너지를 손끝 하나로 압축했다.

[진동파쇄강(振動破碎剛)]과 [천뢰마강(天雷魔剛)]의 융합.

진혁의 주먹이 백무현의 가슴팍을 향해 뻗어 나갔다. 타워의 천장이 무너져 내리고, 신서울의 밤하늘이 그 사이로 보였다.

두 거대한 힘이 충돌하기 직전, 진혁은 보았다.

백무현의 가슴 중앙, 코어의 파편 사이로 비치는 낯익은 문양을. 그것은 1,000년 전 천마의 유골에서 발견되었던, 차원을 넘나드는 고대 마공의 문장이었다.

'이놈도 결국… 거대한 운명의 부품이었던 건가.'

진혁은 찰나의 순간, 깨달았다. 이 싸움은 단순히 티타늄 그룹을 무너뜨리는 복수극이 아니라는 것을. 이것은 자신을 이 세상에 던져놓은, 차원 너머의 무언가와 벌이는 첫 번째 전쟁임을.

쾅-!

세상이 하얗게 뒤덮였다. 타워의 최상층이 완전히 붕괴하며 파편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강진혁의 주먹은 백무현의 가슴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러나 백무현은 죽어가는 와중에도 기괴하게 웃고 있었다.

"…아직… 끝이 아니다… 07호… 네가… 선택받은… 그릇인 줄… 알았나…?"

백무현의 몸이 분해되면서 그 안에서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마기가 아니었다. 더 차갑고, 더 공허한, 차원 저편의 '그림자'였다.

진혁은 직감했다.

지금 자신이 쓰러뜨린 것은 그저 껍데기일 뿐, 진짜 사냥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진혁은 백무현의 잔해를 짓밟으며 타워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무너지는 타워 밖, 신서울의 밤하늘 저 너머로 거대한 눈동자 수천 개가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진짜 흑막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백무현의 몸에서 흩어진 검은 안개가 허공에 기괴한 기하학적 형상을 그리며 뭉쳐졌다. 그것은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차원의 틈새였다. 진혁은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그 안개를 움켜쥐려 했다. [만법귀마]. 적의 모든 에너지를 흡수하는 마공의 권능이 작동하려던 찰나, 진혁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드는 거대한 압력이 그를 짓눌렀다.

"흡수할 수 없다…?"

진혁의 미간이 좁혀졌다. 마기가 닿은 안개는 마치 유령처럼 진혁의 손을 통과해 버렸다. 그것은 에너지가 아니었다. 차원 저편에 존재하는 누군가가 보낸, 감시의 눈이자 전언(傳言)이었다. 안개 속에서 수만 개의 목소리가 겹쳐 들려왔다. 기계적인 소음과 인간의 비명이 섞인 불쾌한 불협화음.

— '그릇은 완성되었으나, 내용물이 오염되었다.'

단 하나의 문장이 진혁의 뇌리에 직접 박혔다. 그것은 외부의 음성이 아니었다. 진혁의 유전자 깊숙한 곳, 천마 프로토콜이 처음 이식되었던 그 세포 단위의 기억에서 울려 퍼지는 경고였다. 진혁은 헛웃음을 흘렸다.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며 부수어 온 모든 서사가, 결국은 저 거대한 차원 너머의 정원사가 가꾸는 거대한 정원 중 하나에 불과했다는 사실.

"오염이라."

진혁은 발밑의 파편을 짓밟으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응시했다. 무너져 내리는 타워의 철골 사이로, 신서울의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노을이 아니었다. 차원의 벽이 얇아지며 저편의 이계(異界)가 비치기 시작한 징조였다.

"내가 오염된 게 아니라, 너희가 만든 그릇이 내 의지를 담아내기에 너무 좁았던 거겠지."

진혁의 몸에서 폭발적인 마기가 솟구쳤다. 500,000 MW의 출력이 뇌전이 되어 타워 전체를 감쌌다. 그는 더 이상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의 단전은 이제 스스로 차원의 에너지를 끌어다 쓰는 블랙홀이 되었다. 주변의 공기가 비명을 지르며 뒤틀렸고, 붕괴하던 타워의 철골들이 진혁의 의지에 반응해 허공에 부유하기 시작했다.

[신천마신공 - 제8식 : 천마강림(天魔降臨)]

진혁의 형상이 거대해졌다. 칠흑 같은 마기가 하늘을 덮어버린 차원의 틈새를 향해 날아갔다. 단순한 무공의 격돌이 아니었다. 이것은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인간의 반역이었다.

"내 이름을 기억해둬라. 너희의 그릇이 될 생각은 없으니까."

진혁의 주먹이 차원의 틈새를 향해 작렬했다. 공간이 유리창 깨지듯 조각났다. 그 너머로 언뜻 비친 것은, 끝을 알 수 없는 심연과 그 속에서 진혁을 내려다보던 거대한 '눈'들이었다. 그 눈들이 당혹감을 느끼며 서서히 멀어졌다. 차원의 틈새가 억지로 닫히기 시작했다.

쾅!

타워의 잔해가 지면으로 쏟아졌다. 통제실에서 달려 나온 진세린이 넋을 잃은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진혁 씨… 저건 대체…?"

진혁은 공중에서 가볍게 착지했다. 그의 옷은 너덜너덜해졌지만, 눈빛만은 그 어느 때보다 명료했다. 그는 무너진 티타늄 타워의 잔해를 뒤로한 채, 이제 막 시작된 진정한 전쟁을 직감했다. 진무극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진짜 적은 이 도시의 지배자들도, 기업의 수장들도 아니었다.

이 행성 전체를 하나의 실험장으로 삼고 있는, 차원 너머의 신(神)들이었다.

"아영아."

진혁이 허공에 대고 불렀다. 윤아영이 실시간으로 동기화해둔 보조 장치가 진혁의 손목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데이터는?"

[전부… 전부 다 분석했어요. 진혁 씨가 차원을 찢어버리는 순간, 심연의 좌표가 역추적 됐어요. 지금 신서울 지하 3,500층 밑으로… 무언가 거대한 것이 움직이고 있어요.]

윤아영의 다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게 뭔데?"

[천마의… 진짜 유골. 아니, 1,000년 전 그분이 남긴 마지막 프로토콜이에요. 티타늄 그룹이 숨겨온 진짜 보물이, 이제야 자신의 주인을 찾기 시작했어요.]

진혁은 입꼬리를 올렸다.

1,000년 전의 천마. 그 역시 이 길을 걸었을까. 시스템의 족쇄를 부수고, 운명을 거스르려 했던가. 진혁은 천천히 발을 옮겼다. 그의 등 뒤로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그 그림자 속에서 새로운 마기가 꿈틀거리며 다음 단계로의 진화를 갈구하고 있었다.

이제 신서울의 밤은 끝났다. 진짜 전설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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