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바람을 베는 마기(魔氣)
피-융!
공기를 가르는 예리한 파열음이 하층가 4구역의 무너진 잔해 사이를 찢었다.
티타늄 그룹의 특수전술 부대 ‘블랙 실드’가 운용하는 고출력 저격 레일건. 마하 7의 속도로 사출된 텅스텐 탄환은 이미 눈으로 좇을 수 있는 영역을 아득히 벗어났다.
하지만.
슈우우우-!
강진혁의 잔상이 일그러졌다. 그의 두 발목을 감싼 은빛 회로가 미세하게 진동하며 눈부신 푸른 궤적을 토해냈다. [마광신보(魔光神步)]. 빛의 궤적 그 자체를 비틀어 공간의 허점을 밟고 나아가는 고대 마공의 보법이 발동된 순간이었다.
지이잉-!
강진혁의 귓가를 스친 탄환이 대기의 마찰열로 인해 붉게 달아오르며 뒤편의 철골 구조물을 종이장처럼 관통해 버렸다. 불과 머리카락 한 올 차이. 조금만 반응 속도가 늦었어도 두상은 흔적도 없이 증발했을 터였다.
그러나 강진혁의 표정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을 뿐, 한 점의 흔들림도 없었다.
"……놓쳤다?!"
저격 포인트를 잡고 있던 블랙 실드 대원의 입에서 경악 어린 단말마가 새어 나왔다. 조준경 너머로 보인 것은 이미 탄환이 지나간 빈 공간뿐이었다. 적의 회피 기동을 예상하고 유도 궤적까지 걸어두었던 레일건이었다. 인간의 반응 신경으로는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궤도였다.
하지만 강진혁은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SYSTEM INFO: 경고. 탄속 대비 동체 시력 과부하 위험 3.2%.]
[나노머신 동기화율 88.1%로 일시 상승.]
[시신경 및 반사 회로가 극한으로 가동됩니다.]
시야 구석에 떠오른 푸른색 HUD의 경고 문구를 진혁은 무심하게 짓밟았다. 시스템의 연산에만 의존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미 2단계 [마기융합]의 심화 단계에 접어든 그의 신체는, 시스템이 계산하기보다 한 박자 빠르게 대기의 흐름과 기류의 파동을 읽어내고 있었다.
두두두두구궁-!
"산개해라! 저 괴물을 포위-"
블랙 실드 대대장 드레이크가 다급하게 기동 명령을 내리며 고주파 플라즈마 소총을 치켜들었다. 최정예 특수부대다운 민첩한 움직임이었다. 그들은 단 0.5초 만에 진혁의 전방과 측면을 완벽한 화망으로 제압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이 마주한 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블랙 실드 대원들의 스텔스 수트가 은빛 광학 미채를 해제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파각-!
강진혁의 형체가 허공에서 두 번 꺾였다. [마광신보]의 극한. 단숨에 십여 미터를 좁혀 들어온 그의 오른손에 쥐인 [천마검(프로토타입)]이 흉포한 울음을 토해냈다. 검신을 휘감은 진청색의 마기와 고주파 다이아몬드 티타늄 합금이 만나 일으킨 공진음은 주변의 공기마저 진동시켰다.
"크윽……!"
가장 가까이에 있던 대원의 전신 장갑이 찢어지는 것은 음속의 폭음과 거의 동시였다.
텅스텐 합금으로 벼려진 방어복 따위는 강진혁의 검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축 마검기(魔劍氣) 앞에 두부처럼 무력하게 갈라졌다. 피가 튀기도 전에 고열의 마기에 의해 기화하며 검붉은 안개로 화했다.
[적의 생체 코어 에너지 흡수 시작.]
[Gen-2 코어 출력 320 MW 강탈 완료.]
[현재 생체 코어 출력: 5,680 MW.]
체내를 타고 흐르는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단전에 도사린 마기가 요동치며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심장 박동수가 분당 180회를 넘겼지만, [천마무상체(天魔無相體)]의 특성 덕분에 근육의 파열이나 세포의 괴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신체의 밀도가 더욱 단단하게 뭉쳐지며 폭발적인 출력을 받아내고 있었다.
"미친…… 이 자식, 공격의 에너지를 역으로 흡수하고 있어!"
측면에서 소총을 난사하던 대원이 경악성을 터뜨렸다. 그들이 쏘아 올린 플라즈마 탄환과 고주파 에너지 파동은 진혁의 주변에 전개된 [마기 실드]에 부딪히는 순간, 흡수되거나 튕겨 나가며 오히려 진혁의 출력을 높여주는 땔감이 될 뿐이었다.
공격하면 할수록 강해지는 괴물.
그것이 지금 티타늄 그룹이 마주한 강진혁의 진면목이었다.
푸쉭! 콰아앙!
"크아악!"
"방어막을 뚫린다! 장갑 출력을 올려라!"
블랙 실드의 대형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진혁의 검이 지나간 자리마다 스텔스 수트의 잔해와 피투성이가 된 육신이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자비는 없었다. 그들은 자신을 실험체로 부리며 지하 폐기장에 버렸던 티타늄 그룹의 사냥개들이었다. 과거의 자신이라면 눈물 한 방울 흘리며 비참하게 죽어갔을 슬럼가의 하층민.
하지만 지금의 강진혁은 천마의 기세를 이어받은 자였다.
"림-04, 지원 사격 요청! 저 괴물놈의 발을 묶어라!"
부대장 드레이크의 얼굴에 차가운 식은땀이 흘렀다. 그가 지휘하는 블랙 실드는 신서울 전체를 통틀어 손꼽히는 최정예 특수부대였다. S급 초인이나 반(反)기업 저항군의 네임드 리더들도 이들의 포화 앞에서는 몇 초를 버티지 못하고 고깃덩이가 되었다.
그러나 강진혁은 포화를 뚫고 들어오는 수준이 아니었다. 포화 그 자체를 유린하며 전진하고 있었다.
"시끄럽군."
강진혁의 입술이 낮게 호선을 그렸다.
그의 흑안이 섬뜩한 기명을 띠며 드레이크를 향해 곧바로 박혔다. 단 한 마디의 음성 파일조차 아까운 적이었다.
지익-! 콰광!
진혁의 검격이 허공을 갈라치자, 반경 오 미터 내의 대기가 완전히 압축되었다가 터져 나가는 충격파가 발생했다. [만법귀마(萬法歸魔)]의 연산 회로가 드레이크의 전술 방어막에 흐르는 에너지 주파수의 미세한 헛점을 단 0.01초 만에 간파해 냈다.
"제길……!"
드레이크는 직감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자신이 가진 최대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의 전신에 장착된 3세대 군용 개인 개조 방어막(Kinetic Shield) 제너레이터가 과부하 직전의 비명을 지르며 눈부신 백색의 구체형 역장을 펼쳐냈다. 전면의 모든 물리적 충격을 흡수하고 분산시키는 티타늄 그룹 최신예 방어 기술이었다.
콰아아아앙-!
강진혁의 천마검이 드레이크의 백색 방어막에 정통으로 박혔다.
지이이이익-!
두 가지 극단적인 에너지가 충돌하며 발생하는 고주파 소음이 주변의 유리창을 전부 바스러뜨렸다. 사방으로 튀는 스파크가 어둠을 대낮처럼 밝혔다. 방어막의 표면이 거미줄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크윽……! 내…… 내 4세대 방어막이 밀린다……?!"
드레이크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방어막의 출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의 단전에 내장된 생체 코어가 과열되어 경고음을 울렸다. 하지만 진혁의 검에서 흘러나오는 마기는 그보다 훨씬 압도적인 밀도로 방어막의 위상 주파수를 짓누르고 있었다.
[SYSTEM INFO: 적 방어막의 위상 동기화율 89% 하락.]
[고주파 공진 주파수 일치. 0.3초 후 방어막 붕괴 예상.]
"끝이다."
진혁의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드레이크의 귓속에 박혔다.
그와 동시에 단전에 집중되어 있던 5,600 MW의 출력이 단숨에 천마검의 검신으로 집중되었다.
파아아아앗-!
진청색의 검기가 백색의 방어막을 완전히 관통하며 중심부를 조각냈다.
콰아아아궁-!
"크아아악……!"
방어막이 깨어지며 발생한 역류 에너지와 마검기의 참격이 드레이크의 전신을 강타했다.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고강도 티타늄 외골격 수트가 종이 인형처럼 반으로 쪼개졌고, 그 안에서 튀어나온 피가 허공을 붉게 물들였다.
털썩.
블랙 실드 대대장 드레이크의 시체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 위로 무너져 내렸다.
그의 가슴팍에 장착되어 있던 3세대 시제품 생체 코어가 아직 완전히 식지 않은 채 미세한 전류를 흘리고 있었다.
슈욱-
강진혁은 숨을 고르지 않은 채 드레이크의 시체 위에 손을 올렸다.
[흡원천공].
시체의 잔류 에너지를 강탈하는 고대의 마공이 발동하자, 3세대 코어 속에 남아있던 방대한 양의 데이터와 에너지가 진혁의 혈관을 타고 역류해 들어왔다.
[SYSTEM INFO: 3세대 시제품 코어 에너지 흡수 완료.]
[추가 마력(내공) 환산: 25년치 누적.]
[현재 생체 코어 출력: 6,100 MW 돌파.]
[경지 안정화율: 마기융합 2단계 심화 -> 극대화 진입 중.]
몸 안에서 들끓던 마기가 한 차례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며 정제되었다.
단전의 크기가 확장되며 온몸의 신경 세포가 곤두섰다. 단순한 출력을 넘어선, 육체와 마공의 경계가 한층 더 단단하게 결속되는 느낌이었다.
"하……."
진혁이 낮게 숨을 내쉬며 피로 물든 천마검을 바닥에 내렸다.
그의 주변에는 블랙 실드 대원들의 잔해만이 뒹굴고 있었고, 더 이상 그를 가로막는 자는 없었다.
하지만 전투가 끝난 자리에 남은 것은 고요함이 아니었다.
지익, 지지직-.
쓰러진 드레이크의 잔해 속에서 완전히 파괴되지 않은 전술 단말기 하나가 희미한 통신 노이즈를 내뿜고 있었다. 그것은 외부 망과 차단된 티타늄 그룹 내부의 암호화된 기밀 통신 채널이었다.
[——실험체 07호의 전투 데이터 동기화 완료.]
[회장님의 지시가 하달되었습니다.]
[‘훌륭하군. 더 부딪혀라. 네가 강해질수록, 그릇은 더욱 완벽해질 테니.’]
단말기 너머에서 흘러나온 기괴한 음성 변조 목소리.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들려오는,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노인의 웃음소리.
크으으윽…….
강진혁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진무극. 티타늄 그룹의 회장. 그 노인은 처음부터 자신이 강해지는 것을 막으려 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강해지기를, 더 완벽한 ‘그릇’으로 거듭나기를 뒤에서 음흉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내 그릇이라고……?"
진혁의 입가에 찢어질 듯한 냉소가 걸렸다.
그는 부서진 단말기를 구둣발로 짓밟아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는 시선을 들어 신서울의 밤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른 거대한 티타늄 마천루를 응시했다. 회장실의 불빛이 마치 자신을 비웃듯 오만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슈우우우-!
다시 한번 [마광신보]가 발동했다.
더 이상 망설임은 없었다.
진혁의 형체가 남긴 것은 허공을 가르는 한 줄기 시뻘건 검광뿐이었다.
그는 진짜 지옥이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 티타늄 그룹의 심장부를 향해 비등하는 살기를 품고 날아올랐다.
콰아아앙!
신서울의 하층가와 상층부를 가르는 거대한 철제 바리케이드가 강진혁이 내뿜은 마검기에 의해 산산조각으로 박살 났다.
경계 구역을 수호하던 자동 방어 포탑들이 일제히 화력을 집중하려 했으나, 그보다 한 박자 빠르게 날아든 [만법귀마]의 파동이 기판의 메인 프레임을 교란했다.
지직, 지지직-!
오작동을 일으킨 포탑들이 아군을 향해 플라즈마탄을 난사하기 시작했고, 그 혼란을 틈타 진혁의 형체는 이미 상층부의 고속 엘리베이터 샤프트로 진입해 있었다.
[SYSTEM INFO: 경고. 상층 구역 진입 시 티타늄 그룹 본사 중앙 AI ‘아르케(Arche)’의 실시간 감시망에 노출됩니다.]
[마기 실드를 이용한 회로 차폐율 94% 유지 중.]
시야 구석에 붉은색 경고등이 번쩍였지만, 진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미 6,100 MW를 돌파한 생체 코어 출력과 2단계 극대화 단계에 접어든 마기는 그의 전신을 철갑보다 단단한 요새로 만들고 있었다.
샤프트의 수직 상승 케이블을 발판 삼아 [마광신보]를 연거푸 구사할 때마다, 그의 몸은 중력을 거스르는 탄환처럼 마천루의 거대한 골조를 타고 위로 치솟았다.
분초를 다투는 속도였다.
지하에서부터 자신을 지켜보며 ‘그릇’ 운운하던 진무극의 목소리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만든 창조주라 자처한다면, 그 오만한 착각을 완벽하게 부수어 주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이었다.
삐- 요란한 경보음과 함께 상층부 80층의 보안 게이트가 사방에서 열렸다.
"침입자 감지! 최정예 ‘블랙 가드’ 2개 소대는 즉시 사출 위치로 이동하라!"
"대상이 상층 샤프트로 진입했다! 중장갑 사이보그 부대는 전면을 봉쇄해라!"
티타늄 그룹 본사의 내부 보안망이 완전히 발작을 일으킨 듯 비상등이 붉은 광기를 뿜어냈다.
게이트의 양측 벽면에서 수십 명의 전신 개조 사이보그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층가의 허름한 사냥개들과는 격이 달랐다.
그들의 몸을 두른 외골격은 다이아몬드 나노 코팅이 입혀진 최신예 S급 군용 장갑이었고, 손에 쥐인 무기는 공간을 진동시키는 고주파 블레이드였다.
"살아서 잡아라! 회장님의 명령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 하나의 세포도 손상시키지 말고 회수해!"
대장급으로 보이는 사이보그가 거친 기계음을 내뱉으며 돌진해 왔다.
그의 신체 출력 역시 4,000 MW에 달하는 괴물 같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시끄럽군."
강진혁의 입에서 흘러나온 음성은 차가운 살기 그 자체였다.
콰아아앙-!
진혁이 발을 구르자마자, 그가 밟고 있던 강화 유리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바스러졌다.
[마광신보]가 한계까지 전개되면서 진혁의 모습은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잔상으로 분열했다.
사이보그 대장의 칼날이 허공을 갈랐다.
이미 진혁의 본체는 그의 사각을 완벽히 파고든 뒤였다.
"뭐……?"
푸쉭-!
소리 없는 섬광이 스쳐 지나갔다.
천마검의 프로토타입 검신이 사이보그 대장의 목덜미에 박힌 장갑 코어를 정확히 관통했다.
고주파 공진과 압축 마기가 결합한 일격은 S급 나노 장갑조차 두부처럼 갈라놓았다.
[Gen-3 사이보그 코어 에너지 흡수 완료.]
[현재 생체 코어 출력: 6,350 MW 돌파.]
멈추지 않는다.
적들이 강해질수록, 그들이 투입하는 병력이 거대해질수록, 진혁의 단전에 자리 잡은 마기는 더욱 흉포하게 요동치며 폭발적인 에너지를 갈구했다.
그것은 흡원천공의 저주이자, 동시에 천마가 걸어야 할 약탈의 숙명이었다.
"쏘라! 전부 갈아버려!"
사방에서 날아오는 레이저 포화와 탄막이 공간을 메웠다.
그러나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그는 검을 앞으로 겨눈 채 오히려 폭풍의 중심부로 몸을 던졌다.
[마기 실드]가 전방에 거대한 방벽을 펼치고, 날아오는 모든 화력을 흡수하여 단전의 연료로 치환했다.
강진혁이라는 이름의 인간형 병기는, 이제 티타늄 그룹 전체를 집어삼키는 재앙의 마신(魔神)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마천루의 최정상, 회장실의 거대한 통유리창 너머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는 은발의 신사가 있었다.
진무극.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파괴하고, 흡수하고, 스스로의 한계를 찢어발기며 올라오는 그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짐승의 궤적을 보며, 진무극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 바로 그거다. 더 발버둥 쳐라, 진혁아."
최후의 결전이 기다리는 꼭대기를 향해, 강진혁은 마기를 두른 검을 치켜들며 마침내 마지막 관문을 향해 도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