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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168화목차

제168화 <공진 분석과 전술적 후퇴>

백무현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플라즈마 화염이 신서울의 폐허를 갈가리 찢어발겼다.

단순한 화력이 아니었다. 3,500층 심연의 공장에서 추출한, 차원의 찌꺼기를 정제한 고밀도 에너지. 그것이 백무현이라는 거대한 사이보그의 육체를 매개로 쉼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콰앙-!

강진혁의 발밑이 무너져 내렸다. 콘크리트 잔해는 가루가 되어 흩어졌고, 그는 본능적으로 마기를 발끝에 응축해 허공을 박차며 뒤로 물러났다.

[경고. 외부 출력값 75,000 MW 감지.]

[시스템 연산 효율 하락 중. 상대의 에너지 동기화율이 예상을 상회합니다.]

시야에 띄워진 HUD가 붉게 점멸했다. 백무현은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그 내부는 이미 기계적 논리와 심연의 뒤틀린 마기가 뒤섞인 괴물이었다.

"실험체 07호, 강진혁. 네놈의 데이터는 이미 진무극 회장님의 저장소에 모두 기록되었다."

백무현의 기계적인 음성이 주변의 금속성 잔해와 공명했다. 그의 등 뒤에서 솟아오른 6개의 유압식 암(Arm)이 일제히 진혁을 향해 포격을 가했다. 붉은 궤적을 그리며 쏟아지는 에너지 탄환은 하나하나가 소형 미사일과 맞먹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진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데이터에 기록되었다고?'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그렇다면 그 데이터가 쓸모없게 만들면 그만이다.'

진혁은 [만법귀마(萬法歸魔)]를 전개했다. 단순히 마기를 방출하는 것이 아니다. 주변에 흩어진 에너지의 파동, 백무현의 관절이 굽어질 때 발생하는 미세한 주파수, 그리고 그가 뿜어내는 에너지 장벽의 진동수를 실시간으로 분석했다.

세상의 색이 푸른색 데이터의 흐름으로 바뀌었다. 백무현이 방어막을 칠 때마다 그 주변의 공간 밀도가 0.03초 동안 미세하게 요동쳤다. 그것은 완벽해 보이는 방어 체계 속에 숨겨진, 기계 장치라면 피할 수 없는 '냉각 주기'의 틈이었다.

"찾았다."

진혁이 나즈막이 읊조렸다.

그는 정면 돌파 대신 예리하게 몸을 틀었다. 백무현의 포격이 진혁이 방금 서 있던 자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맹렬한 폭발음이 귓가를 때렸지만, 진혁은 이미 건물의 배관 통로 사이로 몸을 던진 뒤였다.

"도망치는 거냐?"

백무현이 거대한 보폭으로 진혁을 추격했다. 그가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지면이 움푹 꺼졌다.

진혁은 숨을 고르며 마기를 체내 회로로 빠르게 순환시켰다. 50만 MW의 출력을 유지하면서도 마기를 정제하는 작업은 극도의 집중력을 요구했다.

'심연의 에너지는 기계와 융합될수록 공진 주파수가 높아진다. 하지만 그만큼 열 배출에 취약하지.'

진혁의 눈에 희미한 자색 마기가 서렸다. 그는 단순히 도망치는 것이 아니었다. 백무현을 좁고 복잡한 배관망이 얽힌 폐기물 처리 구역으로 유인하고 있었다. 그곳은 에너지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공간이었다.

[전술 예측 완료. 3초 후 상대의 좌측 슬러스터에 과부하 발생.]

진혁은 멈춰 섰다. 그리고 몸을 돌렸다.

"데이터가 전부라고 했나?"

진혁의 손끝에서 검은 검강(劍剛)이 피어올랐다. 단순한 검강이 아니었다. 백무현이 방금 쏘아 올린 포격의 주파수를 역으로 이용한, 고주파 진동이 섞인 마검기였다.

백무현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가속하며 거대한 주먹을 내려찍었다.

콰아아앙!

충격파가 건물 전체를 흔들었다. 하지만 진혁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지금이다.'

백무현의 방어막이 0.03초의 틈을 보였다. 진혁은 그 틈 사이로 자신의 마기를 쐐기처럼 박아 넣었다. [천마멸진]의 초기 형태인 점(點) 타격이 백무현의 가슴팍, 생체 코어가 이식된 부근의 관절을 정확히 강타했다.

찌릿-!

백무현의 몸이 순간적으로 뻣뻣하게 굳었다. 공진 주파수가 충돌하며 일어난 전기적 쇼크였다.

"이, 이런...!"

백무현이 경악하며 뒷걸음질 쳤다. 기계적인 냉정함을 잃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진혁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배관 통로의 틈새로 미끄러지듯 사라졌다.

연기 자욱한 폐허 속에서 백무현의 분노 섞인 포효가 들려왔지만, 진혁은 이미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자신의 단전에 고여 있는 마기를 살폈다. [마신경]에 도달한 이후, 그의 힘은 더 이상 티타늄 그룹이 설계한 시스템의 테두리에 갇혀 있지 않았다.

'진무극, 네놈이 심어놓은 프로토콜이 나를 여기까지 키웠다면.'

진혁은 가슴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마기를 응시했다.

'이제 그 프로토콜을 찢어버리고, 네놈의 왕좌를 무너뜨릴 차례다.'

그때, 통신 장치를 통해 윤아영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혁 씨! 들려요? 타워 전체의 전력망을 분석했는데, 백무현의 배후에서 낯선 신호가 감지됐어요. 이건 티타늄 그룹의 것이 아니에요. 심연 너머에서 오는... 강제 연동 신호예요!]

진혁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강제 연동. 그것은 진무극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더 거대한 존재의 손길이었다.

"알겠다. 아영아, 지금 즉시 백무현의 센서망을 교란해. 그놈을 여기서 처리하고 심연의 본거지로 간다."

진혁은 다시 한번 기세를 끌어올렸다.

상황은 급박했다. 신서울의 밤하늘은 어느새 검게 물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둠보다 더 짙은 마기를 두른 강진혁은, 이미 사냥꾼의 눈으로 타워 최상층을 노려보고 있었다.

진무극이 기다리는 그곳으로.

모든 복수의 끝, 그리고 진정한 천마(天魔)가 강림할 무대를 향해.

진혁은 폐허의 그림자 속에서 다음 공격을 위한 기혈을 열기 시작했다. 오늘 밤, 신서울의 역사는 그에 의해 다시 쓰일 것이었다.

그것은 시스템의 데이터가 아닌, 강진혁이라는 한 인간이 스스로 증명해 낼 전설이었다.

백무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스파크가 폐기물 처리장의 썩은 공기를 갈랐다. 그는 단순한 기계 병기가 아니었다. 진무극의 지휘 아래, 수많은 실험체의 데이터를 갈아 넣어 만든 ‘정점’에 가까운 살인기였다. 하지만 지금 그 살인기의 흉부 장갑은 진혁이 남긴 쐐기 자국으로 인해 붉은 열기를 뿜으며 삐걱거리고 있었다.

[경고. 외부 출력값 82,000 MW. 과부하 위험.]

HUD에 뜬 수치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백무현의 내부 메커니즘이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억지로 출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진혁은 어둠 속에 몸을 밀착한 채, 심장 박동을 늦추며 기혈을 억눌렀다.

‘저놈, 제정신이 아니군.’

백무현은 데이터의 오류를 수정하는 대신, 오류 그 자체를 폭발시켜 상대를 말살하려 하고 있었다. 자폭에 가까운 공격 방식. 이것은 진무극이 실험체들에게 부여한 마지막 명령, 즉 ‘진혁을 저지할 수 없다면 함께 소멸하라’는 프로토콜의 발동이었다.

진혁은 눈을 감고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마기의 흐름을 제어했다. [마신경(魔神境)]에 도달한 지금, 그의 단전은 거대한 용광로와 같았다.

'데이터가 아니야. 무공은 흐름이다.'

그는 백무현이 뿜어내는 에너지의 파동을 느꼈다. 놈은 강하지만, 그 강함은 ‘정해진 경로’ 위에서만 존재했다. 진혁은 그 경로를 비틀어 버리기로 했다.

치이익-!

주변의 철제 파이프가 진혁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진혁이 살기를 방출하자, 마기가 깃든 파이프들이 자석에 끌리듯 진혁의 손 주변을 맴돌며 날카로운 파편으로 변했다.

“나와라, 강진혁!”

백무현의 목소리가 전장 전체를 찢어발겼다. 그가 다시 한번 플라즈마 화염을 내뿜으며 처리장의 벽면을 녹여버렸다.

바로 그 순간, 진혁이 어둠 속에서 튀어 올랐다.

“데이터의 노예가.”

진혁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백무현의 포격 궤적을 예측하지 않았다. 대신, 백무현의 기계 관절이 미세하게 뒤틀리는 0.01초의 정점을 노렸다.

그는 [천뢰마강(天雷魔剛)]을 손끝에 응축했다. 뇌전과 마기가 융합된 푸른 검기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콰아아앙-!

백무현의 오른쪽 어깨, 유압 암(Arm)이 연결된 부위가 폭발했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백무현은 비명 대신 금속성 마찰음을 내지르며 휘청거렸다.

“이, 건, 계산에…!”

“계산? 네놈이 하는 건 덧셈일 뿐이다.”

진혁의 발이 백무현의 가슴팍에 꽂혔다. 50만 MW의 마기가 백무현의 내부 회로를 타고 역류했다. 백무현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던 붉은 광선이 깜빡거리며 꺼지기 시작했다.

진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손을 뻗어 백무현의 목덜미, 제어 코어가 박힌 부위를 움켜쥐었다.

[상대 시스템 강제 해킹 시도.]

[경고. 상대의 코어에 심연의 이질적인 데이터 코드가 잠겨 있습니다.]

진혁의 미간이 좁혀졌다. 코어 내부에서 느껴지는 것은 기계적인 데이터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굶주린 짐승의 숨결 같은, 차원 너머의 저의(底意)였다.

‘이게 진무극이 숨겨둔 진짜 비수인가.’

백무현은 그저 거대한 껍데기일 뿐이었다. 진정한 목적은 이 껍데기가 파괴되는 순간 방출될 ‘심연의 표식’을 진혁에게 옮기는 것이었다.

진혁은 즉시 판단을 내렸다. 그는 흡수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에너지가 아니었다. 그는 백무현의 코어에 담긴 ‘연결 고리’ 그 자체를 강제로 끊어냈다.

[경고. 강제 단절 시 폭발 반경 500미터 내 전멸.]

“폭발?”

진혁은 입술을 깨물며 마기를 전신에 펼쳤다.

“내 안에서 터져봐라.”

그는 백무현의 코어를 통째로 뽑아내어 자신의 단전 앞, 마기의 장벽 속에 가두었다.

쿠구구궁!

백무현의 육체가 거대한 빛과 함께 소멸했다. 진혁은 그 중심에서 마기(魔氣)의 날개를 펼치며 버텼다.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 처리장은 고요해졌다. 진혁의 온몸은 피와 기름으로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은 그 어느 때보다 명료했다.

그의 손에는 이제 막 추출한 심연의 데이터 파편이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데이터 분석 완료.]

[차원 좌표 확인: 제0구역, ‘심연의 성채’.]

진혁은 그 파편을 단번에 으스러뜨렸다. 데이터가 아닌, 그 안에 담긴 의지마저 자신의 마공으로 치환해버린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티타늄 그룹의 추격자는 없었다.

진혁은 타워 최상층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백무현 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거대한 어둠의 형상이었다.

‘기다려라, 진무극.’

그는 지상으로 통하는 통로를 향해 내달렸다.

그의 발걸음마다 콘크리트 바닥이 쩍쩍 갈라졌다. 마신경(魔神境)의 힘이 전신을 휘감자, 주변의 기류 자체가 그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쳤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창조주를 자처하는 자를 끌어내리고, 자신을 실험체 07호라 부르던 오만한 족속들의 목을 쳐내는 것뿐이다.

그가 타워의 메인 엘리베이터 샤프트를 타고 순식간에 수백 층을 돌파하자, 멀리서 신서울의 밤하늘을 수놓던 인공 조명들이 일제히 꺼지기 시작했다.

정전.

신서울 전체가 강진혁이라는 거대한 재앙을 마주하기 위해 스스로 눈을 감는 듯했다.

진혁은 굳게 닫힌 최상층의 강화 도어를 마주했다.

그의 검은 눈동자 속에서 자색 마기가 뱀처럼 꿈틀거렸다.

“연극은 끝났다.”

그가 손을 들어 도어의 잠금장치를 향해 내리쳤다.

쾅-!

수백 톤의 강철 합금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날아갔다.

그 너머, 옥좌에 앉아 있던 진무극의 모습이 드러났다. 은발을 정갈하게 넘긴 중년의 사내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마치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처럼 찻잔을 내려놓았다.

“07호, 아니 강진혁. 여기까지 온 건 칭찬해 주지.”

진무극의 입가에 옅은 조소가 걸렸다.

“하지만 말이다. 그릇은 결국 그릇일 뿐.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너는 내가 만든 틀을 벗어날 수 없다.”

진무극의 등 뒤로, 층 전체를 가득 채우는 거대한 마력의 잔상들이 나타났다. 그것은 백무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천마(天魔)의 잔재가 응축된 군단이었다.

진혁은 옥좌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로 흩날리는 검은 망토가 마치 죽음의 그림자처럼 길게 늘어졌다.

“그릇을 깨뜨리는 법을 배웠지.”

진혁이 검을 뽑아 들었다.

“지금 보여주마.”

공간이 진동했다.

진무극의 표정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진혁의 기운이, 자신이 알던 ‘실험체 07호’의 수준을 완전히 넘어섰음을 직감한 것이다.

“죽여라.”

진무극의 명령과 함께, 수십 명의 그림자가 진혁을 향해 쇄도했다.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그들의 한복판으로 몸을 던졌다.

[신천마신공 제7식: 만상멸세(萬象滅世).]

그의 검이 허공을 긋는 순간, 옥좌로 향하는 모든 공간이 뒤틀리며 파멸적인 에너지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단순한 무공이 아니었다.

자신을 가둔 세상을 향한, 진정한 천마의 첫 번째 심판이었다.

옥좌 위의 진무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내의 눈 속에서 붉은빛이 강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진혁이 그토록 쫓던, 모든 흑막의 근원이었다.

심연의 눈이 드디어, 진혁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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