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7화 강철의 벽
하늘이 무너지고 있었다.
신서울의 상징이자 티타늄 그룹의 심장부였던 거대 타워가 허리부터 꺾여 내려앉았다. 그 파편 사이로 쏟아지는 불꽃과 파열음 속에서, 강진혁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전신을 감싼 나노마갑의 출력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시스템, 현재 내구도 보고.”
[경고: 우측 흉부 나노 회로 42% 손상. 외부 동력원 간섭으로 인한 출력 저하 발생.]
차가운 기계음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진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그의 눈앞에 서 있는 거대한 고철 덩어리, 백무현만이 유일한 시야의 전부였으니까.
전신이 티타늄 합금으로 뒤덮인 백무현은 인간의 형태를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기계적인 유압 소음이 쇳소리를 내며 그의 관절에서 뿜어져 나왔다. 백무현의 양팔은 이미 대구경 레일건과 고주파 절단기로 변형되어, 검붉은 섬광을 흩뿌리고 있었다.
“실험체 07호. 아니, 강진혁.”
백무현의 목소리는 인공 합성된 음성 데이터처럼 기괴하게 울렸다.
“회장님의 명령이다. 네놈의 그릇을 회수하여 심연의 강림을 완수하겠다.”
콰앙!
백무현의 발이 바닥을 짓밟자, 콘크리트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폭발적인 가속도가 붙었다. 찰나의 순간, 진혁의 시야를 가로지르는 고주파 절단기의 잔상이 궤적을 그렸다.
피할 틈은 없었다. 진혁은 본능적으로 단전에 맺힌 마기를 끌어 올려 방어막을 형성했다.
[천뢰마강(天雷魔剛) - 방어 모드.]
지지직!
진혁의 팔 주위로 푸른 전류가 휘감기며 거대한 방어막을 세웠다. 그러나 백무현의 절단기가 방어막에 닿는 순간,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드르륵! 콰직!
“윽!”
진혁의 어깨를 스친 고주파의 진동은 나노마갑의 분자 구조를 강제로 분리했다. 불꽃이 튀며 은빛 회로가 밖으로 흉하게 튀어 나갔다. 체급 차이가 너무나도 명확했다. 백무현은 S급 생체 코어와 최첨단 티타늄 장갑을 두른 ‘병기’였다. 반면 진혁은 이제 막 시스템의 족쇄를 풀고 자신의 무공을 정립해 나가는 단계였다.
“데이터 분석 완료. 너의 마기는 현재 외부 에너지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인 과부하 상태다.”
백무현이 비웃듯 말했다. 그의 등 뒤에서 여러 개의 미사일 포드가 전개되며 진혁의 퇴로를 차단했다.
“시스템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벌레가 감히 천마를 자처하다니. 가소롭구나.”
백무현이 다시 한번 돌진했다. 이번에는 레일건의 포구가 불을 뿜었다. 텅스텐 탄환이 음속을 돌파하며 진혁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진혁은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감고 혈관 속을 흐르는 마기의 흐름을 강제로 역류시켰다.
‘분석해라. 시스템.’
[시스템 보조 데이터: 대상의 기계 관절 구동 주파수 14.5kHz. 장갑 밀도 12.0. 에너지 방어막 공진 주기 0.05초.]
진혁의 눈이 번뜩였다. 그가 바닥을 박차고 나갔다. 파편이 튀는 공간 속에서 진혁의 검지가 백무현의 흉부를 향해 쇄도했다.
“만법귀마(萬法歸魔)!”
마기가 손끝에 집중되어 검강(劍剛)이 아닌, 파동 형태의 마기로 변했다. 그것은 물리적인 파괴가 아닌, 상대의 에너지 회로를 교란하는 독(毒)이었다.
콰아아앙!
정면으로 충돌한 두 힘이 폭발하며 주변의 잔해를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 백무현의 방어막이 요동치며 붉은 경고등이 점멸했다. 하지만 백무현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가슴팍에 내장된 고출력 빔 캐논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데이터 오류. 예상 밖의 출력이다.”
백무현이 묵직한 주먹을 내리꽂았다.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근접전. 진혁은 쏟아지는 포탄과 절단기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회피하며, 백무현의 관절 마디마디에 마기를 침투시켰다.
‘지금이다!’
진혁의 손바닥이 백무현의 흉부 중앙, S급 코어가 박힌 곳에 닿았다. 마기가 뱀처럼 얽혀 들어가며 백무현의 내부 회로를 휘저었다.
“으아아악!”
백무현의 기계음이 비명으로 바뀌었다. 코어가 과부하를 일으키며 굉음을 냈다. 하지만 백무현 또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팔을 강제로 폭파시켜 진혁을 밀쳐내려 했다.
콰광!
진혁은 폭발의 여파를 정면으로 맞으며 타워 밖, 낭떠러지로 튕겨 나갔다.
“커헉!”
공중으로 내던져진 진혁은 자신의 나노마갑이 넝마처럼 찢겨나가는 것을 느꼈다. 50만 MW의 출력을 내뿜던 단전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진혁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백무현의 방어막이 무너지는 순간, 그의 기계 팔 틈새에 숨겨져 있던 ‘설계도 조각’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천마의 데이터, 그리고 차원의 좌표.’
진혁은 마기의 날개를 펼쳐 추락하는 몸을 멈췄다. 저 멀리, 무너지는 타워 너머로 붉은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차원의 벽이 찢어지고 있었다.
백무현은 타워 잔해 위에서 다시금 일어났다. 한쪽 팔이 날아간 상태였지만, 그의 살기는 더욱 짙어졌다.
“실험체 07호, 넌 여기서 죽는다. 그것이 너의 정해진 운명이다.”
진혁은 피 섞인 침을 뱉어내며 주먹을 쥐었다. 시스템의 HUD가 사라진 자리에, 이제는 오직 자신의 의지만이 남아 있었다.
“운명은 만드는 것이다. 네놈의 그 고철 덩어리마저 내 마공의 제물로 삼아주마.”
진혁이 다시 타워를 향해 도약했다. 붕괴하는 타워, 그 아수라장 속에서 진정한 천마를 향한 마지막 사투가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때, 하늘이 갈라지며 거대한 검은 손톱이 신서울의 지붕을 짓이겼다.
[경고: 차원 강림 진행률 88%. 심연의 주인들이 강림을 시작합니다.]
진혁의 눈에 비친 것은 백무현뿐만이 아니었다. 저 머리 위, 현실의 껍데기를 찢고 내려오는 ‘진짜 흑막’의 거대한 그림자.
진혁은 그 거대한 위압감을 마주하며, 자신의 단전 속 마기를 끝까지 압축했다.
오늘, 이 신서울에서 시스템의 창조주와 심연의 주인들을 모두 도륙하리라.
진혁의 손끝에서 검은 빛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검은 손톱이 신서울의 마천루를 장난감 부수듯 으스러뜨렸다. 콘크리트 가루와 강철 파편이 비처럼 쏟아지는 와중에도, 강진혁의 시선은 오직 백무현의 심장부에 꽂혀 있었다.
[Warning: 상위 차원 에너지 감지. 공간 밀도 급격한 불균형.]
시스템이 붕괴하며 남긴 마지막 경고가 잔상처럼 뇌리에 스쳤다. 진혁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제 시스템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었다. 오히려 그가 시스템의 그늘에서 벗어난 지금, 놈들이 계산하지 못한 변수가 되어 그들의 심장을 꿰뚫을 차례였다.
“백무현. 네놈도 결국 소모품일 뿐이다.”
진혁이 바닥을 박차고 솟구쳤다. 붕괴하는 타워의 잔해를 발판 삼아 공중에서 세 번의 도약을 거듭했다. 백무현은 경악한 듯 레일건을 연사했으나, 진혁의 움직임은 이미 물리적 궤적을 벗어나 있었다. 마기로 일렁이는 잔상이 허공에 겹쳐지며 탄환을 모두 빗나가게 만들었다.
“크아아악! 데이터 예측 불가! 이럴 리가 없다!”
백무현이 절규하며 양팔의 고주파 절단기를 교차시켰다. 맹렬한 진동이 대기를 갈랐다. 하지만 진혁은 그 틈으로 파고들었다.
‘관절 회전율 14.5kHz. 방어막 공진 주기 0.05초.’
이미 분석은 끝났다. 진혁의 손끝이 백무현의 우측 어깨 관절을 정타했다.
파앗!
마기가 파동이 되어 백무현의 내부 회로를 타고 흘러 들어갔다. [천뢰마강]의 잔재가 전류를 역류시켜 티타늄 장갑 안쪽의 신경망을 마비시켰다.
“공진 주파수가… 일치한다.”
진혁의 중얼거림과 함께 백무현의 팔이 맥없이 늘어졌다. 억지로 고정되어 있던 유압 실린더가 터져 나가며 끈적한 냉각수가 쏟아졌다. 백무현이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지만, 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제 마신경(魔神境)의 영역이었다. 육체는 단순한 고깃덩어리가 아니라, 마기를 담아내는 거대한 그릇이자 무기 그 자체였다.
“네가 말하는 ‘천마’는 고작 이 정도 수준인가?”
진혁이 백무현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쾅! 소리와 함께 백무현의 거구가 타워 벽면을 뚫고 밖으로 튕겨 나갔다.
추락하는 백무현의 등 뒤로 신서울의 밤하늘이 보였다. 그러나 그 하늘은 더 이상 밤이 아니었다. 차원의 벽이 찢어진 자리에서 쏟아지는 보라색 오염된 마력. 그 중심에서 거대한 손톱이 다시 한번 신서울의 빌딩 숲을 내려찍었다.
‘저게… 심연의 주인이 보내는 대리인인가.’
진혁은 추락하는 백무현을 쫓아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비바람처럼 쏟아지는 파편 사이를 뚫고, 그는 백무현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회장에게 전해라. 네놈들이 만든 그릇은 이미 깨졌다고.”
진혁이 백무현의 가슴에 박힌 S급 코어를 맨손으로 쥐어뜯었다. 치이익! 살 타는 냄새와 함께 고압 전류가 진혁의 팔을 타고 흘렀으나,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마신경의 마기가 코어의 에너지를 강제로 흡수하며 진혁의 혈관을 뜨겁게 달궜다.
[에너지 흡수 완료. 단전 출력 65,000 MW 돌파.]
백무현의 몸이 급격히 회색으로 변하며 기능을 멈췄다. 진혁은 무력해진 백무현의 잔해를 신서울 하층부로 던져버렸다. 쾅! 수백 미터 아래 슬럼가 어딘가로 처박히는 굉음이 들려왔다.
진혁은 허공에 멈춰 섰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차원의 균열을 응시했다. 거대한 손톱의 주인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그 압도적인 살기만으로도 신서울의 모든 생명체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때, 진혁의 귓가에 차갑고 오만한 목소리가 공명했다.
[실험체 07호. 아니, 불량품. 네놈의 자아는 이미 규격 외다.]
진무극의 목소리였다. 타워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통신 장치가 마지막 힘을 다해 진혁의 신경망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기억해라. 네가 얻은 그 힘조차, 내가 설계한 데이터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저 심연의 문이 닫히기 전, 너는 제물로서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데이터의 연장선?”
진혁은 허공에서 검을 형상화했다. 나노머신과 마기가 뒤섞여 만들어진 검은 빛의 검강. 그것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 자신의 의지와 고통, 그리고 수십 년간 짓밟혔던 기억을 응축한 결정체였다.
“나는 네가 만든 공식 따위는 따르지 않는다. 나는 나 스스로 길을 닦는 천마(天魔)다.”
진혁이 검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차원의 균열이 그를 향해 좁혀지고 있었다. 쏟아져 나오는 심연의 괴수들이 날개를 펼치며 신서울을 향해 덮쳐들었다.
그는 피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틈으로 파고들었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제6식 - 천마멸진(天魔滅盡).]
단전 속에서 6만 5천 MW의 에너지가 일시에 분출되었다. 그 빛은 태양보다 밝았고, 밤보다 어두웠다. 검은 검기가 차원의 균열을 가로지르며, 내려오던 거대한 손톱을 정면으로 타격했다.
콰아아앙!
세상이 하얗게 질렸다. 폭발의 중심에서 차원의 벽이 비명을 질렀다. 심연의 주인들조차 예상치 못한 반격이었으리라. 진혁은 그 폭풍 속을 뚫고, 차원의 균열 너머에 있는 ‘그들’의 본진을 향해 돌진했다.
“기다려라.”
진혁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사냥은 이제부터다.”
찢어진 차원의 벽 너머로, 검은 옷자락이 휘날리며 진혁의 형체가 사라졌다. 신서울의 상공에는 오직 흩어지는 마기의 잔향만이 남아, 멸망의 밤을 밝히고 있었다.
진혁이 발을 디딘 곳은 더 이상 신서울이 아니었다. 붉은 하늘과 뒤틀린 대지가 끝없이 펼쳐진, 심연의 성채였다. 그곳에는 놈들이 있었다. 자신을 실험체로 가두고, 운명을 설계했던 모든 흑막이.
진혁은 검을 고쳐 잡았다. 마신경의 마기가 그의 주위를 감싸며 거대한 마신(魔神)의 형상을 띄웠다.
“전부 멸한다.”
그의 한 마디에, 심연의 대지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것은 복수가 아니었다. 진정한 천마가 되는, 첫 번째 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