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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165화목차

제165화 프로토콜: 천마(天魔)

콰아아앙-!

티타늄 타워의 근간을 지탱하던 융합로가 비명을 질렀다. 수백 년간 신서울의 불야성을 밝혀온 생체 코어의 거대한 심장이 강진혁의 검 끝에 난도질당했다.

파편이 튀고, 고압 전류가 허공을 갈랐다. 그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것은 단순한 에너지가 아니었다. 수천 명의 실험체로부터 착취해온 생명력, 고대 마교의 마기, 그리고 티타늄 그룹이 수십 년간 쌓아 올린 가공할 데이터 조각들이 뒤섞인 거대한 소용돌이였다.

"꼴 좋군."

강진혁의 흑안이 서늘하게 빛났다. 그는 융합로의 중앙 제어 장치를 향해 천마검을 내리꽂았다.

[SYSTEM: 치명적인 시스템 오류 발생!]

[경고: 융합로 출력 안정성 0% 미만.]

[주의: 과부하된 에너지가 역류합니다. 즉시 대피하십시오.]

시스템의 경고음은 이미 강진혁의 안중에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반가운 듯 입꼬리를 비틀었다. 애초에 이 시스템은 자신을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족쇄일 뿐이다. 이제 족쇄가 부서지고, 그 안에 담겨 있던 진짜 힘이 해방되고 있었다.

“흡원천공(吸元天功).”

강진혁의 단전이 우주를 머금은 블랙홀처럼 팽창했다.

융합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간의 육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순도 높은 생체 에너지가 강진혁의 혈관을 타고 쇄도했다. 억겁의 세월 동안 봉인되어 있던 마기가 현대의 기계적 출력과 결합하며 강진혁의 신체를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타닥, 타다닥!

은빛 회로가 그의 목과 손목을 넘어 얼굴 전체로 번져 나갔다. 피부 위로 드러난 혈관이 검게 물들고, 근육은 마치 강철을 꼬아 만든 것처럼 뒤틀리며 재배치되었다.

[SYSTEM: 데이터 동기화 완료.]

[경고: 생체 코어 출력, 임계점 도달.]

[Warning: 8,000 MW... 9,000 MW...]

강진혁의 심장이 굉음을 내며 고동쳤다.

그의 몸 안에서는 지금 1,000년 전 마교의 지존이 완성하지 못했던 '천마의 육신'과, 현대 기술이 만들어낸 '최강의 병기'가 격렬한 충돌을 벌이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힘을 얻는 과정이 아니었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증명하는 연금술이었다.

[SYSTEM: 주의! 사용자 강진혁의 생체 코어 출력이...]

[10,000 MW를 돌파했습니다.]

콰광!

강진혁의 발밑으로 타워의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그가 뿜어내는 마기만으로도 주변의 공기가 비틀리고, 금속 구조물들이 비명을 지르며 찌그러졌다.

[3단계 '천마현신(天魔現身)' 적합도 80%.]

붉은 경고창이 허공에 떠올랐다. 적합도가 80%를 넘어서는 순간, 강진혁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단순한 시각 정보가 아니었다. 공간의 밀도, 분자 단위의 결합 구조, 그리고 티타늄 타워 전체에 깔린 네트워크의 흐름이 마치 손바닥을 보듯 선명하게 뇌리를 스쳤다.

"이게... 천마의 감각인가."

강진혁은 천천히 손을 쥐었다 폈다.

손가락 끝에서 튀는 불꽃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았다. 고주파 플라즈마를 다루는 기술이나, 나노머신을 재구성하는 연산은 더 이상 시스템의 보조가 필요 없었다. 자신의 의지가 곧 시스템이었고, 자신의 호흡이 곧 마공의 운기였다.

[경고: 융합로의 폭발이 30초 남았습니다.]

시스템의 메시지는 이제 조언이 아니라 비웃음처럼 들렸다. 강진혁은 타워 최상층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진무극이 있다. 자신을 그릇으로 삼아 불멸을 꿈꾸던 사내. 그 오만한 왕좌를 짓밟아줄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였다.

타워 지하 깊숙한 곳에서부터, 마치 지진이 일어난 듯한 거대한 진동이 전해져 왔다.

쿠구구구구-!

일반적인 붕괴의 진동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금속 덩어리가 지면을 짓누르며 올라오는 듯한, 불길하고 묵직한 압박감이었다.

[SYSTEM: 감지... 감지...!]

[경고: 블랙 가드 총사령관, '백무현'이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강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백무현. 티타늄 그룹의 블랙 가드를 이끄는 살인병기. 생체 조직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오직 살육과 명령 수행을 위해 개조된 전신 사이보그. 그가 나타났다는 것은 진무극이 이제 본격적으로 판을 뒤흔들겠다는 선언과 다름없었다.

“드디어 올 놈이 왔군.”

강진혁은 천마검을 고쳐 쥐었다. 검신을 따라 흐르던 뇌전이 붉은색에서 칠흑 같은 어둠으로 변했다.

이미 10,000 MW의 출력을 확보한 지금, 이전의 강진혁은 없었다. 융합로의 폭발은 자신을 옥죄던 마지막 쇠사슬을 끊어낼 땔감일 뿐이다.

쿠웅, 쿠웅.

복도 너머에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단순한 기계음이 아니었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지하 11층의 강화 콘크리트 바닥이 마치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그 압도적인 중량감. 공기 중에 흩날리는 살기(殺氣)가 강진혁의 마기와 뒤섞여 폭풍을 만들어냈다.

"실험체 07호."

갈라진 금속음이 복도를 울렸다.

"회장님의 명령이다. 네놈의 코어를 회수하고, 잔해는 폐기물 처리장에 던져 넣겠다."

어둠 속에서 거구의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쪽 눈은 붉은 광학 센서로 번쩍이고, 양팔에는 고주파 진동도가 장착된 블랙 가드 총사령관, 백무현. 그는 거대한 파괴의 화신처럼 서 있었다.

강진혁은 입꼬리를 올리며 천마검을 옆으로 늘어뜨렸다.

"명령이라."

강진혁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타오르는 마기가 응축되어 있었다.

"그 명령, 네놈의 고철 덩어리 같은 머릿속에 다시 새겨 넣어주지. 이제 주인은 바뀌었다."

백무현의 광학 센서가 붉게 점멸했다. 그의 가슴팍에 달린 고출력 코어가 과부하된 엔진처럼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S급 군사형 방어막이 그의 전신을 감싸며 푸른 빛을 발했다.

그것은 단순히 강한 적과의 싸움이 아니었다. 자신의 무도를 증명하고, 마침내 시스템의 꼭두각시를 넘어 완전한 천마(天魔)로 거듭나기 위한 통곡의 벽.

강진혁의 발밑에서 붉은 마기가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죽어라, 07호."

백무현이 지면을 박차고 도약했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거대한 진공의 궤적이 남았다. 10,000 MW의 출력을 가진 강진혁의 신형 마신경(魔神境)과, 티타늄 그룹의 정점 백무현이 충돌하기 직전의 순간.

타워가 비명을 질렀다.

지하 3,500층에서 시작된 폭발의 파동이 점점 더 거세게 타워 전체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강진혁은 검을 들어 올렸다.

더 이상의 연산은 없다. 오직 자신의 의지, 그리고 극한까지 끌어올린 단전의 폭발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천마(天魔)는, 명령 따위 듣지 않는다."

충돌의 0.1초 전.

강진혁의 흑안이 붉은 마광을 뿜어내며 어둠 속에서 타올랐다.

백무현의 고주파 진동도가 허공을 가르며 강진혁의 목을 노렸다. 단순한 참격이 아니었다. 공기 입자조차 분자 단위로 쪼개버리는 물리적 파괴력. 그것은 백무현이 수십 년간 쌓아온 살육 데이터의 집약체였다.

카앙-!

강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는 천마검을 가볍게 회전시켜 백무현의 칼날을 받아냈다. 검과 검이 부딪치는 순간, 뇌전과 마기가 뒤섞인 충격파가 지하 11층의 천장을 가루로 만들었다.

"데이터 분석 결과, 반응 속도 300% 상승. 불가능한 수치다."

백무현의 기계적인 음성이 섞인 경악이 이어졌다. 그의 광학 센서가 미친 듯이 점멸하며 강진혁의 동태를 파악하려 애썼다. 그러나 시스템은 강진혁의 움직임을 읽어내지 못했다. 이미 '마신경'에 도달한 강진혁의 육체는, 확률과 연산의 범주를 넘어선 '직관'으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석?"

강진혁이 코웃음 치며 검을 비틀었다.

"기계 따위가 감히 천마의 검로를 분석하려 드느냐."

강진혁의 손목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백무현의 고주파 진동도를 타고 역류했다. 백무현의 오른팔에 이식된 나노 회로가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불꽃을 튀겼다.

[Warning: 오른팔 출력 회로 과열. 나노머신 동기화율 하락.]

"끄으으윽!"

백무현이 뒷걸음질 치며 남은 왼팔의 진동도를 다시금 휘둘렀다. 이번에는 전방위적인 화망을 형성했다. 티타늄 그룹이 자랑하는 S급 군사 기술, '아포칼립스 궤적'이었다. 무수한 진동의 파장이 강진혁을 겹겹이 포위하며 퇴로를 차단했다.

하지만 강진혁은 오히려 그 포위망의 중심부로 파고들었다.

[신천마신공 제2식: 마염참(魔炎斬).]

단순한 베기가 아니었다. 10,000 MW의 출력이 실린 마기가 검신을 타고 뿜어져 나오며, 백무현이 설치한 진동 파장의 공진 주파수를 정면으로 타격했다.

파지직-!

공간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백무현의 방어막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강진혁의 검 끝이 백무현의 가슴팍, 바로 생체 코어가 위치한 핵심 부위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이, 이게 무슨...!"

백무현의 얼굴에 처음으로 인간적인 공포가 서렸다. 기계로 대체된 그의 뇌 회로가 강진혁의 마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강진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찔러 넣었다.

천마검이 백무현의 장갑을 뚫고, 그 안의 고밀도 합금 골격을 짓이기며 생체 코어 근처에 닿았다.

"네놈들의 기술은 모두 여기서 멈춘다."

강진혁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가 검을 통해 마기를 흘려보내자, 백무현의 가슴 안에서 웅웅거리던 생체 코어가 강제로 공명을 일으켰다.

"흡원(吸元)."

[SYSTEM: 경고! 적의 코어 에너지가 강제 흡수되고 있습니다!]

[주의: 사용자 강진혁의 생체 에너지 과부하 상태.]

강진혁은 개의치 않았다. 백무현의 코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강진혁의 단전으로 빨려 들어가며, 그의 내공을 더욱 공고하게 다졌다. 백무현은 자신의 몸이 말라가는 것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회장...님은... 반드시..."

"회장도 곧 그 뒤를 따를 것이다."

강진혁이 검을 뽑아내자, 백무현의 거대한 몸집이 힘없이 지하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쿠웅-!

그와 동시에 타워의 붕괴가 가속화되었다. 천장에서 떨어진 거대한 콘크리트 잔해가 백무현의 몸 위를 덮쳤다. 강진혁은 그 붕괴의 한가운데 서서, 흩어지는 마기를 갈무리하며 심호흡했다.

단전의 출력은 12,000 MW를 넘어섰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틈도 없었다. 지하 3,500층에서부터 올라오던 폭발의 파동이 드디어 11층의 방어벽을 뚫고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SYSTEM: 융합로 연쇄 폭발까지 5초.]

[경고: 탈출 경로가 모두 봉쇄되었습니다.]

강진혁은 붉게 타오르는 타워의 심장을 응시했다. 아래는 불지옥이고, 위는 적들의 본거지다. 하지만 강진혁의 입가에는 여전히 오만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봉쇄? 길은 만드는 것이다."

그는 천마검을 허공에 휘둘렀다.

단순히 베는 것이 아니었다. 공간의 결을 읽고, 그 틈새를 마기로 찢어내는 행위.

[신천마신공 제6식: 천마멸진(天魔滅盡).]

공간이 비명을 지르며 찢어졌다.

눈앞에 검은 차원의 틈새가 열렸다. 융합로가 폭발하며 뿜어낸 거대한 에너지가 그 틈새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강진혁은 망설임 없이 그 찢겨진 공간 속으로 몸을 던졌다.

타워가 굉음과 함께 지면 아래로 무너져 내리는 순간, 강진혁의 모습은 그곳에 없었다.

오직 차가운 정적만이 붕괴하는 타워의 잔해 사이로 스며들었다.

신서울의 밤하늘, 티타늄 타워가 있던 자리에는 거대한 구덩이만이 남았다.

구름 위를 떠다니던 상층 부유 도시의 사람들은 멀리서 벌어진 거대한 폭발을 보며 숨을 죽였다. 누군가는 테러라고 했고, 누군가는 기업 간의 전쟁이라 했다.

하지만 그 구덩이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폐허가 된 슬럼가 골목,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강진혁이었다.

옷은 곳곳이 찢겨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강렬했다. 손에는 여전히 천마검이 들려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텅 빈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SYSTEM: ...사용자 강진혁, 생존 확인.]

[경고: 프로토콜 연동 오류. 네트워크 접속 차단됨.]

시스템이 비명을 지르듯 끊겨 나갔다. 이제 강진혁의 상태창은 완전히 먹통이 되었다.

"이제야 조용하군."

강진혁은 중얼거리며 자신의 단전을 확인했다.

시스템의 보조는 사라졌지만, 그 대신 자신의 의지로 제어하는 12,000 MW의 출력이 혈관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이것은 시스템이 준 선물이 아니다. 오직 자신만이 일궈낸 진정한 무(武)였다.

그때, 강진혁의 귓가에 차가운 바람 소리와 함께 낯선 목소리가 울렸다.

"축하한다, 07호. 아니, 이제는 천마라고 불러야 하나?"

강진혁이 고개를 돌렸다.

폐허가 된 골목 끝, 가로등도 비치지 않는 어둠 속에서 은발을 정갈하게 넘긴 남자가 서 있었다.

진무극.

그는 평소처럼 완벽한 신사복 차림으로, 마치 살인 현장이 아닌 정원을 산책하는 듯한 여유로운 태도로 서 있었다.

"직접 행차하실 줄은 몰랐는데."

강진혁이 천마검을 고쳐 쥐었다.

"내 타워를 부수고, 내 수족을 끊어내고, 이제는 내 앞까지 찾아오다니. 네놈의 대담함 하나는 인정해주지."

진무극이 옅게 미소 지었다. 그의 눈동자는 기계처럼 차갑고도 광기 어린 빛을 머금고 있었다.

"그릇이 제 의지를 가졌을 때 어떻게 되는지, 너무나 보고 싶었거든."

진무극의 손등 위로, 강진혁의 몸에 있던 것과 똑같은 은빛 회로가 떠올랐다. 아니, 그것은 훨씬 더 복잡하고 고결해 보였다.

"나 역시 너와 똑같은 실험을 거쳤다. 다만, 나는 네놈처럼 실패하지 않았지."

진무극이 손을 들어 올리자, 신서울의 밤하늘 전체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었다. 하늘 전체를 덮은 거대한 위성 무기들이 강진혁을 향해 조준을 시작하고 있었다.

"자, 이제 보여다오. 시스템을 버린 네놈의 천마신공이, 신을 흉내 내는 나의 권능보다 우위에 있는지."

강진혁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마침내, 끝과 끝이 만나는 순간이었다.

"신을 흉내 내는 건 네놈이지, 진무극."

강진혁이 지면을 박찼다.

그의 몸이 마치 뇌전이 되어 진무극의 앞으로 쇄도했다.

"천마는, 신조차 죽이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두 존재의 충돌.

그날 밤, 신서울의 밤하늘은 태양보다 더 눈부신 마광(魔光)으로 찢겨 나갔다. 신천마신공과 티타늄 그룹의 정점이 맞붙는, 역사상 가장 잔혹한 사투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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