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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164화목차

제164화 <인간의 껍질을 쓴 지옥>

제시해주신 설정과 내용을 바탕으로, 문장의 호흡을 다듬고 인물 간의 긴장감과 액션의 묘사를 강화하여 교정한 원고입니다.

제164화 <인간의 껍질을 쓴 지옥>

티타늄 타워 지하 3,500층.

그곳은 일반적인 연구소가 아니었다. 기계의 차가운 톱니바퀴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오직 숨 막히는 정적만이 감도는 생지옥이었다.

강진혁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의 앞에는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원통형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수천, 아니 수만 개의 유리 튜브가 벌집처럼 얽혀 있었고, 그 안에는 핏줄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른 인간들이 흉측한 코어 장치와 연결된 채 매달려 있었다.

"이게…… 이현도가 말하던 '효율적인 동력원'인가."

진혁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투명한 튜브 속의 인간들은 이미 자아를 잃은 지 오래였다. 그저 티타늄 그룹의 중앙 메인 프레임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생체 배터리'들. 누군가의 아들이자 딸이었을 이들이 기계의 부속품처럼 썩어가고 있었다.

[SYSTEM: 경고. 해당 구역의 생체 에너지 농도가 허용 범위를 초과했습니다.]

[SYSTEM: 환경 데이터 분석 결과, 약 4,200명의 피실험체가 직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설화의 무미건조한 음성이 뇌리를 파고들었지만, 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손을 뻗어 가장 가까운 튜브를 만졌다. 차가운 강화 유리 너머로, 짐승처럼 헐떡이는 남자의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쿵, 쿵. 불규칙한 진동이 진혁의 나노머신 회로를 타고 전율을 일으켰다.

"기업의 논리? 자본의 효율?"

진혁이 피식, 짧게 웃었다. 그 웃음은 서늘했고, 동시에 뼈를 깎는 듯한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쓰레기 같은 짓을 정당화하기 위해, 나를 그릇으로 삼으려 했단 말이지."

진무극의 오만함이 손에 잡힐 듯 선명했다. 인간을 데이터로, 생명을 수치로 치환하는 자들. 진혁의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마기가 역류하기 시작했다. [마신경(魔神境)]의 경지에 도달한 그의 기운은 이제 시스템의 통제를 거부하고, 주변의 공간마저 일그러뜨릴 기세로 요동쳤다.

쿠구구구!

연구소 전체가 진동했다. 튜브 속의 액체가 불쾌하게 출렁였고, 벽면의 전력 회로가 과부하로 인해 붉은빛을 뿜어냈다.

"누구냐!"

어둠 속에서 가운을 걸친 사내, 이현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뒤로는 수십 명의 무장 경비대가 제트팩을 가동하며 허공에 떴다. 하지만 진혁은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직 눈앞의 '융합로'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강진혁! 네놈이 여길 어떻게 알고……!"

이현도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서둘러 컨트롤러를 조작했다.

"비상 가동! 융합로 출력 200%로 상향해! 저 실험체를 즉시 데이터화시켜라!"

위이이잉—!

거대한 융합로가 비명에 가까운 소음을 내며 가동되었다. 수천 명의 몸에서 강제로 에너지가 추출되어, 중앙의 거대한 전력 파이프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 압도적인 에너지 흐름은 마치 성난 강물과도 같았다.

일반적인 초인이라면 그 압력만으로도 혈관이 터져 죽었을 터였다. 하지만 진혁은 달랐다. 그는 눈을 감고, 그 흐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SYSTEM: 마기(魔氣) 동기화율 상승 중.]

[SYSTEM: 경고! 단전 과부하 위험도 45%!]

"상관없어."

진혁이 손을 뻗었다. 흡원천공(吸元天功). 그것은 단순히 남의 내공을 뺏는 기술이 아니었다. 천지간의 모든 에너지를 자신의 격(格)에 맞춰 강제로 굴복시키는 법이었다.

파지직!

진혁의 은빛 회로가 온몸으로 뻗어 나갔다. 융합로에서 뿜어져 나오던 생체 에너지가 진혁의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뭐, 뭐 하는 짓이냐! 그 에너지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현도의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진혁은 융합로의 출력과 자신의 기운을 하나로 엮었다. [마신경]의 권능이 발휘되자, 튜브 속에 갇혀 있던 이들의 고통스러운 잔영까지 진혁의 의식 속으로 밀려들어 왔다.

'아파, 괴로워, 차가워…….'

수천 명의 비명이 들려왔다. 진혁은 그 비명을 삼켰다. 그는 그들의 분노와 원한을 마기로 치환했다.

"너희의 지옥을, 내가 징벌하겠다."

쿠아아아아!

진혁의 전신에서 검은 마염이 폭발했다. 그것은 단순한 화염이 아니었다. 공간의 법칙을 비틀어버리는 파괴의 힘. [신천마신공 제5식: 멸세(滅世)]의 전조였다.

"막아라! 지금 당장 저놈을 사살해!"

이현도의 명령과 동시에 수십 개의 고주파 빔이 진혁을 향해 쏟아졌다. 하지만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가볍게 손을 내저었을 뿐이다.

슈아아아!

주변의 공기가 소용돌이치더니, 빔은 진혁의 몸에 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조각나 사라졌다. [만법귀마(萬法歸魔)]. 모든 기술은 마(魔)로 돌아간다.

진혁이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그가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바닥의 강철 타일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이현도."

낮게 깔리는 목소리. 이현도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용 포트를 가동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네가 만든 이 융합로가, 너의 무덤이다."

진혁이 검지를 튕겼다. 공간이 찢어지며 검은 참격이 융합로의 중심부를 강타했다.

콰광—!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융합로의 중심 기둥이 반으로 갈라졌다. 봉인되어 있던 에너지가 제어력을 잃고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파괴적이고 불순한 에너지였으나, 진혁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양분이었다.

[SYSTEM: 생체 코어 출력 상승 중.]

[SYSTEM: 6,000 MW…… 7,500 MW…… 9,000 MW!]

진혁의 몸이 타오르는 듯 뜨거워졌다. 피부 위로 은빛 회로가 핏줄처럼 튀어 올랐고, 눈동자는 붉게 충혈되었다.

"아아아아!"

이현도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융합로에서 쏟아져 나온 과전류가 연구원들을 순식간에 재로 만들었다. 하지만 진혁은 그 불길 속을 유유히 걸어 나갔다.

불타오르는 연구소의 중심에서, 진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야는 이제 시스템 HUD의 보조 없이도 완벽하게 적들의 기혈과 나노 회로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SYSTEM: 단전 출력 10,000 MW 돌파.]

[SYSTEM: '3단계 천마현신' 적합도 80% 달성.]

붉은색 경고창이 허공에 띄워졌다. 하지만 진혁은 덤덤했다. 그는 손에 쥐어진 기운을 뭉쳐, 보이지 않는 검의 형상을 만들었다. 천마검(天魔劍). 진무극이 꿈꾸던 불멸의 육체가 아니라, 진혁 스스로 완성한 파괴의 화신.

"다음은 네 차례다, 진무극."

진혁의 시선이 타워 최상층, 구름 너머의 왕좌를 향했다. 붕괴하는 연구소의 잔해 속에서, 진혁의 등 뒤로 거대한 마기의 날개가 펼쳐졌다.

그것은 신서울의 밤하늘을 수놓는 가장 어두운 별이었다. 이제 사냥은 시작되었다. 진혁은 거침없이 공간 도약을 시도했다.

쿠우웅-!

그의 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남겨진 것은 융합로의 파편과, 죽음보다 더한 공포에 질린 이현도의 눈동자뿐이었다.

티타늄 타워 최상층.

왕좌에 앉아 있던 진무극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눈앞의 모니터가 지직거리는 것을 보며, 아주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드디어… 그릇이 스스로 깨어났구나."

진무극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타워 전체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조각한 잔이, 이제 그 잔을 빚은 주인의 목을 겨누고 있다는 사실을.

진혁이 최상층의 방어벽을 뚫고 나타났다. 천장을 뚫고 떨어진 그의 발치에, 핏빛 마기가 소용돌이쳤다.

"진무극."

진혁의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그것은 왕의 선고였다.

진혁의 부름에 진무극은 천천히 왕좌에서 일어났다. 그의 은발이 차가운 실내 조명 아래서 기괴한 빛을 발했다. 등 뒤의 거대한 강화유리 너머로 신서울의 불야성이 내려다보였지만, 진무극의 시선은 오직 진혁의 가슴팍, 그 흉터 깊숙이 자리 잡은 생체 코어를 향해 있었다.

"그릇이 제 발로 깨어나 내 앞에 서다니. 실로 눈물겨운 성장이다, 강진혁."

진무극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살기도, 분노도 없었다. 오직 잘 벼려진 칼날 같은 냉혹한 지배자의 여유만이 감돌았다. 그는 진혁이 융합로를 파괴하며 흡수한 압도적인 에너지가 아직 전신에서 끓어오르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진무극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기고 있었다.

"너는 네가 시스템을 탈피했다고 믿나 보군. 하지만 기억해라. 네 혈관을 흐르는 나노머신과, 네 단전을 지탱하는 그 고출력 코어 자체가 나의 설계도다. 네가 강해질수록, 너는 내게 더 완벽한 육체가 될 뿐이지."

진무극의 손가락이 허공을 가볍게 튕겼다. 그러자 타워 전체의 방어 시스템이 일제히 가동되었다. 천장에서부터 수백 개의 레이저 포탑이 내려와 진혁을 조준했고, 바닥에서는 중력 제어 장치가 작동해 진혁의 발을 묶으려 했다.

[SYSTEM: 경고! 중력 가속도가 500G까지 급증하고 있습니다.]

공간 자체가 짓눌리는 듯한 압박. 일반적인 초인이라면 즉시 뼈가 가루가 되어 주저앉았을 환경이었다. 하지만 진혁의 발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주변으로 검은 마기가 밀도 높게 응축되어, 마치 투명한 갑옷처럼 그를 감싸고 있었다.

"설계도라고 했나."

진혁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가 내딛는 발걸음마다 중력 제어 장치가 비명을 지르며 스파크를 튀겼다.

"그 설계도에 이건 없었을 텐데."

진혁의 검지 끝에 푸른 뇌전과 검은 마기가 섞인 기운이 맺혔다. 그것은 현대 군사기술인 플라즈마 압축과, 구무림의 절기인 검강이 완전히 융합된 형태였다. 진혁은 시스템의 수치를 빌려 힘을 쓰는 대신, 자신의 심박수와 호흡, 그리고 마기의 흐름을 동기화했다.

파아앙-!

진혁의 손가락이 허공을 긋는 순간, 500G의 중력장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레이저 포탑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지만, 진혁은 잔상조차 남기지 않고 순식간에 진무극의 코앞까지 거리를 좁혔다.

"너무 늦었어, 진무극."

진혁의 주먹이 진무극의 명치를 향해 쇄도했다. 진무극은 즉시 자신의 나노 수트를 전개해 방어막을 형성했지만, 진혁의 주먹에 담긴 파괴력은 차원이 달랐다.

쿠아아아앙!

방어막이 유리를 깨뜨리듯 산산조각 났다. 진무극의 몸이 뒤로 밀려나며 왕좌를 뚫고 벽면까지 처박혔다. 콘크리트 벽이 거대한 거미줄 모양으로 갈라졌고, 진무극의 입가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역시, 데이터를 상회하는구나."

진무극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의 표정에는 여전히 여유가 있었지만, 눈빛은 진지하게 변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가슴 부근에 있는 히든 코어를 가동했다.

[SYSTEM: 마스터 코드, '천마 강림' 프로토콜을 활성화합니다.]

타워 전체가 요동쳤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막대한 에너지가 진무극의 몸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의 몸이 서서히 변이하기 시작했다. 피부 위로 검은 금속성 세포가 돋아나고, 등 뒤에는 기계와 생체 조직이 결합한 거대한 검은 날개가 솟아올랐다.

"강진혁, 이것이 네가 짊어질 운명의 실체다."

진무극이 검을 뽑아 들었다. 고대의 마기(魔氣)와 현대의 살상용 고주파 진동이 결합된, 이름 없는 마검(魔劍)이었다. 두 존재의 마기가 충돌하자 타워의 공기가 뒤틀리고, 창밖의 고층 빌딩들이 그 여파만으로도 흔들렸다.

진혁은 피식 웃었다. 이제 시스템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HUD가 사라진 시야에는 오직 자신의 본능과, 눈앞의 적을 짓밟겠다는 순수한 의지만이 가득했다.

"천마(天魔)라는 이름, 네놈 같은 가짜에게는 너무 과분한 칭호지."

진혁의 오른손에 마기가 응축되어 실체화된 검의 형상이 떠올랐다. [신천마신공 제6식: 천마멸진(天魔滅盡)].

진혁이 도약했다. 두 명의 '천마'가 서로를 향해 격돌했다. 타워 최상층 전체가 빛과 어둠으로 뒤덮이며, 신서울의 역사가 뒤바뀌는 최후의 서막이 올랐다.

진혁의 일격은 거침없었다. 시스템의 계산을 비웃듯, 그는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쳐 깨달은 무도의 정수를 실어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아!

두 검이 맞닿은 지점에서 폭발적인 충격파가 발생했다. 진무극은 자신의 코어 출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리며 버텼지만, 진혁의 압도적인 마기 앞에서는 역부족이었다. 진무극의 검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이럴 리가 없다! 내 설계도에는……!"

"너는 기술을 믿지만, 나는 나 자신을 믿는다."

진혁의 눈이 푸르게 빛났다. 그것은 기계의 연산이 아닌,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 마신경(魔神境)의 눈이었다.

"이것이 내가 완성한, 진짜 천마다."

진혁이 검을 비틀며 힘을 더했다. 진무극의 마검이 박살 나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틈을 타 진혁의 왼손이 진무극의 심장부를 향해 파고들었다.

승패는 이미 갈려 있었다. 진혁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진무극의 코어를 옥죄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타워의 모든 모니터가 꺼지고, 진무극의 몸에서 알 수 없는 붉은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진무극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차원 너머의 무언가였다.

"……왔구나. 실험의 끝이."

진무극이 피를 토하며 기괴하게 웃었다. 진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가 파괴하려던 것은 진무극뿐만이 아니었다. 저 너머에서 강림하려는 '진짜 흑막'이, 지금 이 순간 타워의 좌표를 향해 문을 열고 있었다.

진혁의 검이 멈추지 않았다. 그는 진무극을 죽이는 동시에, 문을 닫기 위해 공간의 중심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죽어라, 흑막까지 전부!"

진혁의 절규와 함께 타워가 형체도 없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신서울의 밤이, 영원히 잊히지 않을 거대한 폭발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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