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3화 감금된 후계자
타워의 거대한 기둥들이 비명과 함께 뒤틀렸다. 금속이 찢어지는 소리는 마치 거대한 맹수가 숨을 거두는 절규와도 같았다. 폭발하는 마기와 융합된 나노머신이 뿜어내는 열기로 인해, 진혁의 주변 공간은 아지랑이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그 중심에 진세린이 있었다.
그녀의 몸은 수십 개의 굵은 튜브와 에너지 케이블에 결박된 채였다. 등 뒤로 연결된 강철 고리는 그녀의 척추와 생체 코어를 강제로 동기화하고 있었고, 그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푸른 빛은 그녀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독극물이나 다름없었다.
"하아, 하아…… 강, 진혁……?"
그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진세린의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그저 차원 강림의 '문'으로서 억지로 끌려가던 의식의 잔해만이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진혁은 말없이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에 집중된 마기가 정교한 칼날처럼 변모했다.
슈우욱-
단 한 번의 휘두름. 진세린의 몸을 옭아매던 고강도 합금 튜브들이 종잇장처럼 잘려 나갔다. 진혁은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그녀의 몸을 품에 안았다. 등 뒤에서 쏟아지는 불꽃과 붕괴하는 천장, 그 모든 파괴의 중심에서 그는 오직 차가운 분노만을 품고 있었다.
"아직도 정신이 안 드나."
진혁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진세린은 그의 품에 안긴 채 거친 숨을 내뱉었다. 그녀의 뺨에는 튜브가 남긴 붉은 상처가 선명했다. 진세린은 떨리는 손을 들어 진혁의 가슴팍을 쥐었다.
"……바보 같은 짓을 했어. 이 타워 자체가 너를 죽이기 위한 거대한 관(棺)이야. 아버지는 이미 네가 마신경에 도달할 것을 계산하고 있었어."
진세린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눈을 떴다. 그녀의 눈에 담긴 것은 배신감이 아닌, 절망적인 진실이었다.
"나를 살려둔 이유…… 이제야 알겠어. 아버지는 나를 단순히 후계자로 키운 게 아니야. 네가 마신경을 완성하는 그 순간, 내 몸에 이식된 이 특수 코어를 매개체로 삼아 너와 나를 물리적으로 융합할 생각이었던 거야. 그게…… '최종 융합'의 본질이니까."
진혁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진무극. 그 오만한 창조주는 자신의 딸마저 부품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진혁이 마신경의 경지에 도달하여 최강의 육체를 완성하면, 그 육체에 진세린이라는 고출력 매개체를 덧씌워 완벽한 '신(神)'의 그릇을 만들겠다는 계산이었다.
"너를 위한 거였어. 네가 스스로를 완성하면, 내 생체 코어와 강제로 공명시켜 너를 완전히 통제할 생각이었던 거지. 내 몸 안에는 이미 아버지의 백도어 코드가 심겨 있어. 이게 작동하면…… 너도, 나도……."
진세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혁의 시야 오른쪽 상단에 붉은색 경고 메시지가 점멸했다.
[SYSTEM ALERT: 외부 동기화 시그널 감지.]
[Warning: 대상 '진세린'의 생체 코어에서 고위 마스터 코드 활성화.]
[Warning: 강제 융합 프로토콜이 12% 진행 중.]
진혁은 코웃음을 쳤다. 이제 와서 기계 따위의 코드가 자신을 구속할 수 있다고 믿는가.
"시스템."
그가 나직하게 뇌까렸다.
"해당 코드를 역추적해."
[경고: 해당 코드는 고대 마공과 연동된 특수 암호입니다. 분석에는 상당한 시간이…….]
"시간 따위는 없다."
진혁이 진세린의 등을 감싼 손에 마기를 주입했다. 그것은 단순히 치료를 위한 마기가 아니었다. 진세린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억제 장치의 회로를 자신의 마기로 뒤덮어, 외부 신호가 더 이상 침투하지 못하도록 '절연(絶緣)'하는 작업이었다.
"윽……!"
진세린이 비명을 삼키며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그녀의 생체 코어에서 뿜어져 나오던 강제 동기화의 빛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진혁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코드, 어디에 있지?"
"……무슨?"
"진무극이 너를 통해 심으려는 데이터. 그게 어디 있냐고 물었다."
진세린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진혁을 바라보다가, 이내 입술을 깨물며 자신의 손목에 박힌 작은 데이터 칩을 가리켰다.
"이게 마스터키야. 중앙 생체로로 향하는…… 아버지의 실험 데이터가 전부 담겨 있어. 하지만 진혁아, 거긴 가면 안 돼. 그곳은 인간의 곳이 아니야."
진혁은 진세린의 손목에서 칩을 가볍게 떼어냈다. 칩이 분리되는 순간, 타워 전체가 크게 진동했다. 진무극이 이탈을 감지한 것이다.
"인간의 곳이 아니라고 했나."
진혁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이미 분노를 넘어선, 차가운 살의가 서려 있었다.
"그럼 마(魔)의 곳으로 만들어주지."
그는 진세린을 자신의 등 뒤로 옮겼다. 그녀의 생체 코어가 안정되자, 진혁은 다시 한번 자신의 의지를 단전에 집중했다.
500,000 MW.
단순한 수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을 뒤흔들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이었다. 진혁의 발밑으로 검은 그림자가 소용돌이치며 뻗어 나갔다. 주변의 금속 파편들이 마기에 침식되어 먼지처럼 부서져 내렸다.
"데이터 칩에 모든 게 담겨 있다고 했지."
진혁이 칩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는 가볍게 으스러뜨렸다. 칩의 정보가 그의 신경계로 직접 전달되었다.
[데이터 분석 완료.]
[중앙 연구소 위치 파악: 지하 3,500층 하부.]
[경로 생성: 마신경(魔神境)의 의지를 바탕으로 공간 왜곡 활성화.]
데이터 속에 담긴 것은 단순한 좌표가 아니었다. 티타늄 그룹이 100년 동안 저질러 온 인체 실험의 기록, 그리고 그 끝에 숨겨진 '천마의 데이터'에 대한 진실이 담겨 있었다. 진무극은 단순히 진혁을 도구로 쓴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진혁이라는 용광로를 통해 천마를 재탄생시키고, 그 '천마'의 정수를 갈취하여 자신이 직접 신이 되려 했던 것이다.
"진무극."
진혁의 입술이 비틀렸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타워의 벽면을 뚫고 외부로 뻗어 나갔다. 신서울의 밤하늘이 그 위압감에 눌려 갈라지기 시작했다.
"네가 만든 지옥이 어떤 곳인지, 내가 직접 가서 확인해 주마."
진혁이 발을 내디뎠다. 그가 딛는 곳마다 공간이 일그러지며 검은 통로가 열렸다. 그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다. 차원과 차원을 연결하는, 오직 마신경에 도달한 자만이 가능한 '공간 도약'이었다.
진세린은 진혁의 등에 업힌 채, 눈앞에 펼쳐지는 비현실적인 광경을 보며 몸을 떨었다. 진혁의 등은 그 어느 때보다 넓고 단단했다. 그는 더 이상 시스템의 명령을 수행하는 실험체가 아니었다. 자신을 옭아매던 모든 운명을 찢어버리고, 이제는 그 운명의 주인인 창조주를 사냥하러 가는 포식자였다.
콰아앙-
타워의 지하 11층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진혁의 모습은 그 붕괴의 잔해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신서울의 심장부, 티타늄 그룹의 본사 타워가 공포에 질려 떨고 있었다. 이제 곧, 그들이 쌓아 올린 견고한 자본의 성벽이 무너질 시간이었다.
지하 3,500층.
그곳은 빛조차 허용되지 않는 절대적인 어둠의 공간이었다.
진혁이 공간을 찢고 나타난 그곳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기괴한 장치들이 즐비했다. 수천 개의 생체 코어가 거대한 관에 연결되어 있었고, 그 관들은 마치 혈관처럼 중앙의 거대한 융합로로 이어져 있었다.
"드디어 왔군, 07호."
어둠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로노스, 이현도였다. 그는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며 기계 팔을 휘저었다. 그의 뒤편으로 수천 개의 생체 코어가 일제히 불을 밝히며, 마치 살아있는 괴물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우리 티타늄 그룹의 위대함이다. 인간이라는 재료가 에너지가 되어, 새로운 신을 잉태하는 성소! 네가 마신경에 도달한 건 정말 행운이야. 덕분에 이 융합로는 완벽하게 가동될 테니까!"
진혁은 대답 대신 진세린을 안전한 곳에 내려놓았다. 그의 눈에 담긴 흑색 마기가 타오르는 불길처럼 일렁였다.
"신?"
진혁이 천천히 이현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가 발을 뗄 때마다 바닥의 강철판이 함몰되었다.
"신을 만드는 곳이라고 했나."
진혁의 손끝에서 뇌전이 휘몰아쳤다. 그것은 현대 기술의 플라즈마도, 고대 무공의 검기도 아니었다.
"그럼 내가 직접, 신을 죽이는 법을 알려주지."
[전투 모드 개시.]
[System Off: 모든 연산은 오직 강진혁 자신의 의지만을 따른다.]
그의 선언과 함께, 지하 3,500층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이제 복수는 끝났다. 이제는, 단죄의 시간이었다.
이현도는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며 조종간을 거칠게 밀어 넣었다.
"죽이는 법? 하하! 네가 아무리 마신경의 경지에 올랐어도, 이건 수천 개의 생체 코어가 직렬로 연결된 절대 동력원이다! 그 출력이 얼마인지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겠나?"
웅웅웅웅-!
수천 개의 생체 코어가 동시에 과부하 상태로 진입하며 뿜어내는 에너지는 지하 3,500층 전체를 진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융합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빛은 차갑고도 날카로웠다. 그것은 마치 수천 명의 비명이 응축된 에너지 파동과도 같았다.
하지만 진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오른손을 천천히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검은 마기가 그의 손바닥 주위로 소용돌이치며 칠흑 같은 구(球)를 형성했다.
"너희들이 말하는 신이란 고작 이 정도의 출력이었나."
진혁의 목소리는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만상귀일(萬象歸一) - 개방.]
콰아아앙!
진혁의 손바닥에서 뻗어 나간 마기가 융합로의 에너지 흐름을 강제로 낚아챘다. 순식간에 융합로를 돌던 푸른 에너지가 진혁의 손을 향해 역류하기 시작했다.
"뭐, 뭐지? 에너지 역류가 일어나고 있어! 시스템이, 시스템이 통제를 잃고 있다!"
이현도의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졌다. 모니터 위로 붉은 에러 메시지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이건 불가능해! 50만 MW를 넘어서는 에너지를 단신으로 감당한다고? 그건 인간의 육체가 아니야!"
"인간의 육체가 아니라면, 천마의 육체겠지."
진혁이 손을 꽉 쥐었다. 그 순간, 융합로 전체가 비명을 질렀다. 수천 명의 생체 코어가 동시에 비명을 지르는 듯한 고주파음이 연구소를 가득 채웠다. 강제로 흡수된 에너지는 진혁의 단전 속에서 정제되어, 더욱 파괴적인 형태의 마기로 변모했다. 진혁은 그 에너지를 손끝에 집중했다.
[신천마신공 제5식: 멸세(滅世).]
그가 허공을 가볍게 내리그었다. 공간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검은 균열이 이현도가 서 있는 제어실을 덮쳤다. 이현도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가 자랑하던 거대 융합로조차 진혁이 뿜어낸 멸세의 기운 앞에서는 찰나의 먼지에 불과했다.
쿠구구구궁-
연구소 전체가 붕괴했다. 거대한 강철 벽이 진혁의 마기에 밀려 종이처럼 구겨졌다. 융합로의 중심부까지 도달한 진혁은 손바닥을 융합로의 코어에 직접 박아 넣었다.
"이제, 끝내야지."
진혁의 의지가 코어 내부로 침투했다. 그곳에는 티타늄 그룹이 100년간 감춰온, 천마의 잔류 데이터가 흐르고 있었다. 진혁은 그 모든 데이터를 강제로 흡수했다.
[데이터 동기화 완료.]
[천마의 기억 칩 1/4 조각 확보.]
[신천마신공의 본질: '무(無)'의 운용법이 해방됩니다.]
진혁의 눈동자가 금빛으로 번뜩였다. 그것은 기계적인 푸른 빛이 아니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절대자의 눈빛이었다.
"진무극. 네가 원하던 천마가 여기 있다."
진혁이 고개를 돌려 폐허가 된 연구소 한구석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차원문을 통해 투영된 진무극의 홀로그램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어떻게…… 이 정도의 데이터를 감당하고도 자아를 유지하는 거지? 넌 그저 성공적인 실험체일 뿐이야!"
진무극의 외침에 진혁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성공적인 실험체는 네가 만든 틀 안에서 살아가겠지.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네가 감히 정의할 수 없는, 스스로 완성된 신이다."
콰직-
진혁이 손을 뻗어 진무극의 홀로그램을 산산조각 냈다. 홀로그램이 사라지자마자, 타워의 심층부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진무극이 직접 보낸 블랙 가드의 최정예 부대, '아포칼립스'가 진혁을 처단하기 위해 이동을 시작한 것이다.
진혁은 등 뒤에 남겨진 진세린을 돌아보았다.
"안전하게 머물러 있어라. 돌아와서, 네 아버지의 성을 잿더미로 만들 테니."
진세린은 떨리는 눈으로 진혁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제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시스템의 부속품이었던 남자가, 그 모든 시스템을 발밑에 두고 내려다보는 진정한 지배자가 되어 있었다.
진혁은 다시 한번 공간을 찢었다. 그의 발걸음 끝에 신서울의 운명이 달려 있었다.
다음 목적지는 티타늄 타워의 최상층. 진무극의 심장이 뛰고 있는, 그 가증스러운 왕좌였다.
타워가 흔들렸다. 신서울의 밤은 그 어느 때보다 깊고, 검었다. 마침내, 전설이 된 천마의 발걸음이 지상으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