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1화 지하 폐선로의 은밀한 침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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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화 지하 폐선로의 은밀한 침투
심연으로 향하는 도약은 끝났다. 이제는 다시 현실의 가장 깊은 곳, 모든 악의 근원인 티타늄 타워의 심장부로 파고들어야 할 차례였다.
신서울의 지표면은 화려한 네온사인과 기업의 선전 문구로 뒤덮여 있었지만, 그 아래 감춰진 지하 폐철도망은 마치 썩어가는 동물의 내장처럼 눅눅하고 어두웠다. 강진혁은 낮게 몸을 낮춘 채, 녹슨 철로 위를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그의 시야, 인공지능이 더 이상 간섭하지 않는 순수한 인간의 안구에는 현실의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재구성되고 있었다.
“진혁 씨, 들려요? 지금 티타늄 타워 방어 시스템의 레이어 3를 우회했어요. 45초 뒤에 보안 게이트가 0.3초간 열릴 거예요. 그 틈을 타야 해요.”
통신 너머 윤아영의 목소리는 다급하면서도 날카로웠다. 강진혁은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몸을 타고 흐르는 마기는 이제 단순한 에너지가 아니었다. 나노머신과 완벽히 융합된 혈액이 마기의 흐름을 타고 전신을 순환하며, 근육 하나하나를 초고속 반응 상태로 조율하고 있었다.
[경지: 마신경(魔神境)]
[현재 단전 출력: 505,200 MW]
시스템의 HUD는 사라졌지만, 강진혁의 뇌는 스스로가 거대한 연산 장치가 되어 있었다. 공기의 흐름, 미세한 진동, 방어 포탑의 서보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까지 전부 감각으로 들어왔다.
‘0.3초.’
일반인에게는 찰나에 불과하지만, 마신경의 경지에 도달한 그에게는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할 수 있을 만큼 긴 시간이었다.
슈우욱―!
강진혁의 몸이 허공에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마영신보(魔影神步)]의 극의. 보법은 단순히 발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밀도를 일시적으로 압축하여 그 사이를 도약하는 기술이었다. 고주파 감지 센서가 그가 지나간 자리를 스캔했으나, 이미 강진혁은 센서의 감지 사각지대인 ‘공간의 틈새’를 지나친 뒤였다.
철컥.
강철 문이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강진혁의 손이 뻗어 나갔다. 검을 뽑을 필요조차 없었다. 검지 끝에 맺힌 작은 마기 응집체가 레이저 보안 장치의 핵심 회로를 정밀하게 타격했다.
“억…!”
경비를 서던 사이보그 병사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의 생체 코어는 강진혁의 손끝에서 순식간에 흡수되어, 강진혁의 단전으로 빨려 들어갔다.
[에너지 흡수 완료: 12,000 MW]
“좋아, 진입 성공인가.”
강진혁은 나지막이 읊조리며 복도 끝을 바라보았다. 지하 11층으로 향하는 통로. 그곳에는 티타늄 그룹이 숨겨온 끔찍한 생체 실험의 기록들이 잠들어 있었다.
갑자기 복도 천장에서 붉은 경고등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윤아영의 통신이 다시 들려왔다.
“진혁 씨! 들켰어요! 진무극 그 영감탱이가 내부 보안망을 재설정했어요. 단순 우회는 이제 안 돼요!”
“알고 있었다.”
강진혁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은밀한 침투?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다. 놈들의 방어 체계를 정면에서 부수고, 그들이 쌓아 올린 신뢰의 탑을 밑바닥부터 붕괴시키는 것. 그것이 진정한 천마의 방식이었다.
드르르륵―!
천장과 벽면에서 무인 자율 사격 포탑들이 튀어나왔다. 0.001초 단위로 탄환을 쏟아내는 개틀링 건들이 강진혁의 전신을 조준했다. 현대 군사기술의 정수라 불리는, 초인조차 갈아버리는 죽음의 십자포화였다.
하지만 강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뒷짐을 진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고작 이 정도인가.”
그가 발을 구르자, 마기가 지면을 타고 파동처럼 퍼져 나갔다. [마기 방벽(魔氣防壁)]. 단순히 막는 것이 아니라, 쏟아지는 탄환의 운동 에너지를 마기로 휘감아 반대 방향으로 튕겨내는 기술이었다.
콰콰콰콰콰!
탄환들이 강진혁의 몸에 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궤적을 잃고 서로 충돌했다. 불꽃이 복도를 가득 메웠지만, 그 중심에 서 있는 강진혁의 옷자락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제 내 차례다.”
강진혁이 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의 손끝에서 뻗어 나온 검은 마기가 포탑의 전자 회로 내부로 침투했다. 놈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방어 수단인 전자 제어 시스템이 역으로 그들의 발목을 잡는 도구가 되었다.
끼이이잉―!
포탑들이 스스로 회전하며 자신들을 지키던 장갑벽을 향해 불을 뿜었다.
“자폭인가? 아니, 자충수지.”
벽이 무너져 내리고, 그 너머로 어둠에 잠긴 11층 실험동의 입구가 드러났다.
강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제 티타늄 그룹의 심장부로 발을 내디뎠다. 진세린이 갇혀 있을지도 모르는, 그리고 자신의 근원인 실험체 07호의 진실이 묻혀 있는 그곳으로.
그가 복도를 걷는 동안, 지하의 모든 전등이 마기의 영향으로 파르르 떨리며 꺼져갔다. 마치 어둠의 지배자가 강림하는 듯한 기괴한 풍경이었다.
“진혁 씨, 11층 내부 에너지 반응이 심상치 않아요. 방금 전까지랑은 차원이 다른 열원이 감지됩니다. 이건… 생체 코어가 아니에요.”
윤아영의 다급한 경고에 강진혁의 눈빛이 더욱 깊게 가라앉았다.
“심연의 파편인가.”
“네! 조심해요. 그 안에서 나오는 건 티타늄의 경비병 따위가 아니에요. 그건… 인간의 형상을 한 무언가예요!”
강진혁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를 높였다.
그의 검은 머리카락이 마기의 파동에 휘날렸다. 1,000년 전 천마의 의지와 현대의 나노머신, 그리고 스스로 개척한 마신경의 경지가 하나로 응축되어 그의 오른손에 모여들었다.
검을 뽑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지금 이 순간, 강진혁의 손 자체가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천마의 검이었으니까.
“나와라. 너희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줄 테니.”
실험동의 육중한 격벽이 서서히 갈라지며, 그 안에서 기괴한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마치 세상의 모든 비명을 섞어놓은 듯한 소리였다.
강진혁은 차갑게 웃었다.
그것은 공포가 아니었다.
먹잇감을 발견한 포식자의, 지독히도 고요한 희열이었다.
그가 한 발자국을 내디딜 때마다 지하 11층의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그것은 마신(魔神)의 발걸음이었고, 지배자의 행차였다.
티타늄 타워의 지하, 신서울의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마침내 진짜 천마의 검이 빛을 발하려 하고 있었다.
다음 실험동의 문이 완전히 열렸다. 그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검은 안개와 함께, 강진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오늘, 이 지옥을 끝내러 왔다.”
그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11층 전체가 거대한 마기의 폭풍에 휩싸였다.
안개는 단순한 기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차원의 경계가 붕괴하며 흘러나온 심연의 잔재이자, 생체 코어의 에너지를 억지로 비틀어 만들어낸 인공적인 악의였다. 안개가 닿는 곳마다 바닥의 강철 타일이 부식되고, 벽면에 설치된 전선들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타들어 갔다.
강진혁의 앞을 막아선 것은 인간의 형태를 흉내 낸 '검은 그림자'들이었다. 그들은 팔다리가 기괴하게 비틀려 있었고, 관절 대신 돋아난 것은 날카로운 티타늄 날붙이였다. 놈들에게는 자아도, 고통도 없었다. 오직 강진혁을 찢어 발기라는 명령만이 그들의 코어에 각인되어 있을 뿐.
[시스템: 개체 수 48. 위협 등급 '재난'. 주의하십시오.]
경고창은 이미 의미를 잃었다. 강진혁은 손을 가볍게 쥐었다 펴며 허공을 갈랐다.
“진무극. 결국 이런 괴물들까지 만들어낸 건가.”
그가 한 걸음 내딛자, 발밑에서부터 붉은 파동이 번져 나갔다. 마신경의 위압감이 공간을 짓눌렀다. 놈들은 마치 거대한 중력에 짓눌린 듯 일제히 멈칫했다. 강진혁의 마기는 공기 중의 산소를 태우고, 그 자리에 순수한 마력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다.
첫 번째 그림자가 번개 같은 속도로 쇄도했다. 놈의 팔이 검으로 변해 진혁의 목을 노렸다.
서걱.
강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아주 살짝 비스듬히 기울였을 뿐이다. 날붙이가 찰나의 간격으로 그의 뺨을 스쳤지만, 닿은 것은 피부가 아니라 찰나의 순간 생성된 마기 방벽이었다.
“느리다.”
진혁의 오른손이 그림자의 가슴팍을 관통했다.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놈의 내부 회로를 단숨에 휘저어버렸다. 놈의 등 뒤로 검은 혈흔이 튀었고, 곧이어 놈은 잿더미가 되어 바스러졌다.
흡원천공(吸元天功).
그림자의 몸 안에 축적되어 있던 심연의 에너지가 강진혁의 손바닥을 통해 역류했다.
‘불순물 투성이군.’
독성이 강한 에너지였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단전이 녹아내렸을 폭주하는 기운. 하지만 강진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마신경의 경지에 도달한 그에게 이 정도의 불순물은 그저 땔감에 불과했다. 그는 흡수한 에너지를 단전에서 가볍게 정제해, 곧바로 다음 기술을 위한 동력으로 전환했다.
슈아아아!
복도 전체에 뇌전의 기운이 감돌았다. 강진혁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청백색의 전류가 그림자들의 연결망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현대의 전자 제어 시스템과 고대의 뇌전 마공이 결합한, [천뢰마강(天雷魔剛)].
그림자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뇌전이 놈들의 골격 속 나노머신을 역으로 자극해, 스스로 몸을 해체하도록 유도했기 때문이다. 복도는 순식간에 고철과 검은 재의 무덤으로 변했다.
“진혁 씨! 더 깊숙한 곳에서 거대한 에너지 반응이 잡혀요. 이건… 진세린 대장님의 생체 신호가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불길한 무언가예요!”
윤아영의 다급한 외침이 귀를 때렸다. 강진혁은 대답 대신 앞을 가로막는 마지막 격벽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앙―!
천지가 진동했다. 50만 MW의 출력이 단 한 점에 집중되어 강철 격벽을 종잇장처럼 구겨버렸다. 뚫린 틈 사이로, 기괴한 보랏빛 조명이 가득한 중앙 제어실이 보였다.
그곳에는 공중에 매달린 채, 온몸에 수천 개의 케이블이 연결된 진세린이 있었다. 그녀의 눈은 감겨 있었고, 그녀의 등 뒤로는 거대한 구체(球體)가 맥동하고 있었다. 마치 심장처럼.
“세린…!”
강진혁의 눈빛이 흔들렸다. 진세린이 단순한 실험체로 쓰이는 것을 넘어, 심연의 주인들을 이 세계로 불러들이기 위한 ‘문(Gate)’으로 전락해 있었다.
[시스템: 대상의 에너지 동기화율 99%. 차원 강림 프로세스 88% 진행 중.]
진무극의 목소리가 제어실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드디어 왔군, 07호. 아니, 이제는 '천마'라고 불러야 하나?”
제어실 중앙의 대형 모니터가 켜지며 진무극의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그는 여전히 우아하고 차가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네가 시스템을 부수고, 나를 찾아오는 과정까지 모두 계산된 시나리오였다. 네가 강해질수록, 네가 마신경에 도달할수록, 차원의 문은 더 견고하게 열리지.”
“이게 네 목적이었나. 진세린을 제물로 바쳐서 차원의 문을 여는 것.”
“제물? 아니, 승화다. 이 썩어빠진 신서울을 갈아엎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 위한 필연적인 통과 의례지. 네가 마신경에 도달하면서 내뿜은 그 엄청난 마기가 차원의 벽을 찢어놓았다. 덕분에 이제 신들의 강림이 머지않았다.”
진무극은 광기 어린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강진혁, 너는 내가 만든 최고의 그릇이다. 이제 그 그릇을 깨뜨리고, 그 속에 담긴 마기를 제물로 바쳐라. 그러면 너는 인류를 구원할 신의 대리인이 될 것이다.”
강진혁은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비웃음이었다. 그는 천천히 진세린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걸음마다 바닥이 마기의 압력으로 움푹 들어갔다.
“진무극. 너는 여전히 착각하고 있군.”
“착각?”
“나는 네가 만든 그릇이 아니다. 너희들이 쌓아 올린 이 모든 시스템과, 심연의 주인들이라는 작자들이 내 무공을 규정할 수는 없어.”
강진혁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끝에 맺힌 마기가 순식간에 검의 형상을 갖췄다. 그것은 형태가 없는, 오직 의지로만 존재하는 검이었다.
“내가 도달한 경지는 너희가 감히 계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야.”
강진혁은 검을 휘둘렀다. 허공을 가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 속에서, 제어실을 감싸고 있던 보랏빛 차원 방어막이 마치 유리에 금이 가듯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신을 부르겠다고? 좋다. 그렇다면 그 신의 목을 쳐서, 너희가 말하는 질서가 얼마나 허망한지 직접 보여주지.”
강진혁의 몸이 다시 한번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이번에는 공간을 압축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는 아예 공간의 법칙을 비틀어, 진무극의 홀로그램이 서 있는 데이터 코어의 중심부로 도약했다.
“나의 무공은 하늘과 땅, 그리고 너희가 믿는 그 신들조차 굴복시킨다. 이것이 바로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이다!”
강진혁의 일격이 차원의 문을 지탱하고 있던 거대한 구체를 강타했다.
콰아아앙―!
지하 11층 전체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비명과도 같은 기계음이 울려 퍼졌고, 차원의 문을 통해 쏟아져 나오던 검은 안개들이 강진혁의 마기에 휘말려 순식간에 소멸하기 시작했다.
진무극의 홀로그램이 파르르 떨리며 일그러졌다. 그의 차가운 미소는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는 당혹감만이 가득했다.
“불가능해! 데이터에는 없는…! 이건 무공이 아니다!”
“무공이다. 나만의 진리이자, 너희를 파멸시킬 유일한 답이지.”
강진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붕괴하는 제어실 속에서 의식을 잃은 진세린을 품에 안았다. 그의 눈동자는 붉은 마기로 번뜩이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었다. 진무극의 오만을 짓밟고, 심연의 흑막들을 이 땅 위로 끌어내어 처단할 진짜 사투가.
그는 무너지는 천장을 발로 걷어차며, 지하 최심부를 향해 거침없이 도약했다. 신서울의 밤하늘 위로 마신(魔神)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도망칠 곳은 없다, 진무극. 내 검 끝이 너의 심장을 관통할 때까지.”
지하 11층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그 잔해 사이로 강진혁의 등 뒤에 거대한 마기의 날개가 펼쳐졌다. 신서울의 모든 기업들이 그 경이로운 광경을 지켜보며 숨을 죽였다.
천마의 강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