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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160화목차

제160화 침투 신호

티타늄 타워의 그림자는 거대했다. 신서울의 모든 불빛이 그곳을 향해 모여들었지만, 정작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차가운 정적뿐이었다.

강진혁은 타워를 올려다보았다. 수만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이 강철의 요새는 이제 그에게 더 이상 거대한 장벽이 아니었다. 0계급의 탐욕이 응집된 비석이자, 자신이 부수어야 할 최종적인 묘비일 뿐이었다.

진혁의 시야 한구석에 떠 있던 희미한 푸른 잔상은 이제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시스템의 도움 없이, 그는 오직 자신의 감각과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마기만을 의지해 세상을 읽었다.

"상황은?"

진혁의 물음에 옆에 서 있던 윤아영이 탭을 빠르게 조작하며 대답했다. 그녀의 숏컷 분홍 머리가 좁은 골목의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흔들렸다.

"티타늄 그룹의 방어 프로토콜이 재편됐어. 진무극이 사라진 뒤로 타워의 보안 등급이 '블랙 아웃'으로 격상됐어. 외부 침입을 감지하는 즉시 층 전체를 진공 상태로 만들고 무인 포탑을 가동할 거야. 정면 돌파는 불가능해."

"정면 돌파할 생각은 없으니까."

진혁이 차갑게 답했다. 옆에 있던 천우진이 한쪽 안대를 고쳐 매며 묵직한 목소리로 거들었다.

"지하 폐철도망 쪽은 내가 확인했다. 티타늄 그룹이 건설 당시 폐기한 구역인데, 센서 감지도가 지상보다 훨씬 낮아. 하지만 그만큼 통로가 좁고 위험해."

"좁을수록 좋다."

진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좁은 공간은 적에게도 불리하지만, 그에게는 마기를 압축해 폭발시킬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송수연이 진혁의 어깨를 툭 쳤다. 그녀의 눈에는 결연함이 서려 있었다.

"진혁, 니르바나의 전 대원이 외곽에서 교란 작전을 시작할 거야. 타워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는 동안, 너는 단숨에 심장부로 들어가. 진세린이 갇혀 있는 곳은 타워 99층, 최상층 직전의 구역이야."

진세린.

그녀가 왜 지금 타워 내부에 갇혀 있는지, 그리고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았다. 하지만 진무극이 남긴 잔재들이 그녀를 인질로 삼아 무엇인가를 꾸미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HEAVENLY DEMON PROTOCOL) - 비활성 상태]

[경고: 외부 마기 간섭 계수 상승 중]

시스템은 더 이상 진혁에게 명령하지 않았다. 이제 그것은 그저 진혁이 스스로 구축한 '신천마신공'의 토대 위에 얹힌 희미한 배경음처럼 존재할 뿐이었다.

"준비됐나."

진혁이 몸을 일으켰다. 그의 전신에서 은빛 회로가 흐릿하게 점멸했다. 3단계 [천마현신]에 도달한 그의 신체는 이미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아득히 넘어선 상태였다. 나노머신은 이제 강제적인 명령을 따르는 기계 부품이 아니라, 그의 마기와 하나가 된 신체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철도망 진입로까지 3분."

천우진의 안내에 따라 일행은 신서울의 심장부를 향해 이동했다.

어둠 속을 달리는 그들의 발걸음은 소리 없이 정확했다. 신서울의 하층부는 기업의 압제 아래 숨죽이고 있었지만, 진혁의 행보는 그 정적을 깨뜨리는 거대한 뇌관과 같았다.

지하 폐철도망에 도달했을 때, 공기는 차갑고 습했다. 녹슨 철길 위로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다. 윤아영이 해킹 툴을 네트워크 단자에 연결하자, 일시적으로 벽면의 감지 장치들이 붉게 점멸하다가 꺼졌다.

"지금이야. 30초 안에 지나가야 해."

진혁이 먼저 철로 위로 뛰어들었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그림자처럼 부드러웠으나, 한 걸음마다 땅을 울리는 힘이 응축되어 있었다.

그 순간, 진혁의 등 뒤에서 강렬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티타늄 타워의 보안 시스템이 아니었다. 그것은 훨씬 더 원초적이고, 기괴한 '차원의 파동'이었다.

"……왔나."

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를 높였다.

그의 등 뒤로 거대한 검은 손들이 차원의 균열을 뚫고 쏟아져 나왔다. 심연의 주인들이 보낸 '그림자 추적자'들이었다. 그들은 타워의 보안을 넘어서, 진혁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다.

"아영, 철도망 입구 닫아."

"진혁아, 너 혼자선……!"

"상관없다."

진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검을 뽑았다. 검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뇌전이 지하 터널을 환하게 밝혔다. 그것은 단순한 전기가 아니었다. 마기와 나노머신의 진동수가 공명하여 만들어낸, 차원을 절단하는 '뇌전마강'이었다.

"지나가라."

진혁이 휘두른 검 끝에서 파동이 터져 나왔다.

쿠구구궁!

좁은 터널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쳤다. 달려들던 그림자 추적자들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뇌전의 폭풍 속에서 산산조각 났다. 그들의 데이터 코드가 공중에 흩어지자, 진혁은 흡원천공을 전개해 그 에너지를 단전으로 빨아들였다.

[경지: 마신경(魔神境) - 출력 50,000 MW 돌파]

[상태: 마기 동기화율 99.9% - 폭주 위험도 8.7%]

몸 안에서 들끓는 힘이 혈관을 찢고 나올 듯했다. 하지만 진혁은 그 고통을 즐기듯 입꼬리를 올렸다.

티타늄 타워의 심장부로 가는 길은 이제 피와 데이터로 뒤덮였다. 그는 자신의 발아래 쌓이는 그림자들의 잔해를 밟고, 거침없이 타워의 지하 방어선으로 파고들었다.

도착한 곳은 타워의 1층과 연결된 거대한 격벽 앞이었다. 그곳에는 티타늄 그룹의 정예 살인병기, '블랙 가드'의 잔당들이 진혁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실험체 07호. 아니, 강진혁."

백무현의 뒤를 이은 블랙 가드의 신임 지휘관이 기계적인 음성으로 말했다. 그의 전신은 최신형 5세대 강화 외골격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회장님께서 너를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셨다. 여기에서 네 육체는 해체되고, 네 영혼은 데이터의 감옥에 갇힐 것이다."

진혁은 피 묻은 검을 바닥에 끌며 천천히 다가갔다. 그의 눈동자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났다.

"진무극은 이미 죽었다."

"그의 의지는 시스템에 남아 우리를 지배한다."

"의지라고?"

진혁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건 그저 썩어빠진 계산식일 뿐이다."

그가 검을 치켜들자, 타워 전체의 전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하 방어선의 모든 조명이 붉게 변하며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침투의 신호는 이미 울렸다. 이제는 섬멸의 시간이었다.

진혁은 단전의 기를 폭발시켰다.

[신천마신공 제1초식: 파천(破天)]

공간이 일그러졌다. 블랙 가드들의 강화 외골격이 진혁의 마기 앞에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그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지면이 꺼지고, 타워의 철제 벽면이 비명을 질렀다.

"이게 내가 너희에게 주는 대답이다."

진혁의 검이 지휘관의 외골격 가슴팍을 뚫고 지나갔다.

콰아앙!

지하 방어선이 거대한 폭음과 함께 붕괴했다. 타워의 메인 서버가 진혁의 마기에 침식당하며 비정상적인 로그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Warning: 메인 타워 전 구역 락다운]

[Warning: 실험체 07호의 데이터 통제 불가]

[Warning: 심연의 반응 농도 위험 수치 도달]

윤아영의 다급한 목소리가 통신기를 통해 들려왔다.

"진혁! 타워 내부에…… 진무극의 백업 데이터가 심연과 연결돼 있어! 99층으로 올라가는 길이 전부 차원의 구멍으로 변하고 있다고!"

진혁은 위를 올려다보았다. 수백 층 위에서 쏟아지는 검은 안개와 붉은 데이터의 소용돌이가 보였다.

그것은 단순한 함정이 아니었다. 그가 오기를 기다려온, 차원 너머의 진짜 주인이 마련한 만찬이었다.

"상관없다."

진혁은 거침없이 붕괴하는 지하 구역을 박차고 올라갔다.

그의 눈앞에는 이제 티타늄 타워의 철제 계단이 아니라, 차원의 틈새를 가로지르는 절망의 길이 놓여 있었다.

강진혁, 그는 천마(天魔)의 이름을 걸고 그 모든 어둠을 도륙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타워의 꼭대기,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진실이 무엇이든,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였다.

자신의 무(武)를 부정하는 모든 것을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것.

진혁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타워의 10층 계단이 통째로 뜯겨 나갔다.

침투는 끝났다. 이제부터는 사냥이었다.

타워의 중심부로 파고들수록 공기는 극도로 희박해졌다. 단순한 산소 부족이 아니었다. 타워 내부를 채운 인공지능의 데이터 흐름이 진혁의 마기와 충돌하며 공간의 밀도를 왜곡시키고 있었다.

[Warning: 공간 밀도 불안정. 차원 압력 300% 상승.]

HUD 없이도 진혁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나노머신이 궤도를 이탈해 비명을 지르는 듯한 고주파음이 귓가를 때렸다. 하지만 진혁은 그 비명을 오히려 자신의 혈류에 동기화했다.

"마기는 압축될수록 강해진다."

그는 폐철도망에서 흡수한 차원 파동의 파편을 단전 깊숙한 곳에서 회전시켰다. [마신경]의 경지에 도달한 이후, 그의 단전은 이제 고작 50만 MW의 출력을 담는 그릇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원의 틈새를 머금은 블랙홀과 다름없었다.

10층에서 50층까지, 진혁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길을 막아서는 보안 로봇들과 강화 병사들은 그의 검 끝에 스치기만 해도 원자 단위로 분해되었다. 이미 죽어버린 진무극의 잔재들이 내뱉는 방어 프로토콜은 진혁의 눈에 완벽한 틈새를 드러내고 있었다.

"너무 느리다."

진혁이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60층 복도의 천장에서 쏟아져 나오던 자동 사격 포탑들이 단 일격에 찌그러졌다.

쿠구궁.

타워가 거대한 몸체를 떨며 공명했다. 70층 구역에 도달했을 때, 진혁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복도 끝,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진무극의 형상이 일렁이고 있었다. 생전의 오만했던 표정 그대로, 그는 진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강진혁. 결국 여기까지 왔군."

"이미 시체인 놈이 말이 많다."

"나는 시체가 아니다. 시스템에 이식된 나의 의지는 영원불멸하지. 네가 부순 것은 단지 차가운 철덩어리일 뿐이다. 너는 내가 설계한 '천마 프로토콜'의 최종 완성본. 결국 너 또한 나의 부품이 되어야 할 운명이다."

진무극의 홀로그램이 손가락을 튕기자, 복도의 바닥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중력이 반전되며 진혁의 몸이 허공으로 띄워졌다.

이것은 가상 현실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공간이었다. 데이터의 폭풍이 칼날이 되어 진혁의 전신을 긁어댔다. 나노마갑이 찢겨 나가고 피부 위로 붉은 혈흔이 비쳤지만, 진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착각하지 마라."

진혁이 공중에서 자세를 잡았다. 그의 발아래로 푸른 마기가 거대한 연꽃 모양으로 피어났다.

"네가 만든 건 '도구'일 뿐이다. 주인이 없는 도구는 제 주인을 베는 법이지."

그는 검을 거꾸로 쥐고 바닥을 향해 내리꽂았다.

[만상귀일(萬象歸一)]

복도 전체의 데이터 흐름이 진혁의 검으로 역류했다. 홀로그램으로 존재하던 진무극의 의지가 비명을 지르며 붕괴하기 시작했다. 진혁은 그 데이터의 파편들을 모조리 들이마셨다.

'흡원천공'의 진정한 오의는 기(氣)뿐만 아니라 정보와 의지까지 포식하는 것. 진무극이 심어놓은 타워의 제어권이 진혁의 손아귀로 넘어오는 순간이었다.

[Access Granted: 타워 메인 제어권 강제 인수]

[Warning: 시스템 부하 극대화. 심연의 주인들이 감지함.]

타워의 전 구역 조명이 흑색으로 점멸했다.

진혁은 피 묻은 검을 털어내며 다시 99층을 향해 도약했다. 이제 타워는 적이 아니라 진혁의 의지를 수행하는 무기가 되었다.

90층을 넘어서자, 지상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던 기괴한 악취가 진동했다. 차원의 틈새에서 흘러나오는 죽음의 기운이었다.

95층. 96층. 97층.

계단을 하나씩 밟고 올라갈 때마다 진혁의 등 뒤로는 칠흑 같은 마기가 날개처럼 펼쳐졌다. 그것은 천마의 현신이자, 시스템조차 정의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의 형상이었다.

99층의 격벽이 열렸다.

그곳에는 차원 너머의 존재들이 찢어놓은 거대한 공간의 균열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균열의 중심, 차가운 금속 의자에 진세린이 묶여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뇌신경으로 연결된 수천 개의 케이블을 통해 무언가로 변해가고 있었다.

진혁의 눈에 살기가 서렸다.

"천마의 그릇으로 쓰기엔 너무 아까운 짓을 벌였군."

균열 너머에서 거대한 촉수가 뻗어 나와 진혁을 가로막았다. 심연의 주인들. 놈들은 진세린을 매개체로 삼아 강림을 시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혁은 두렵지 않았다. 그는 검을 고쳐 잡으며, 차원의 벽을 뚫고 쏟아지는 어둠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기다려라. 너희들의 본체까지 낱낱이 씹어 삼켜주마."

진혁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타워의 최상층을 통째로 집어삼킬 듯이 요동쳤다.

이곳이 바로 1,000년 전 천마가 넘지 못했던 운명의 끝이자, 강진혁이 새롭게 써 내려갈 신화의 시작점이었다.

그가 한 걸음 내디디자, 공간 자체가 비명을 지르며 붕괴하기 시작했다.

모든 진실과 함께 심연의 주인이 진혁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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