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9화 진세린의 위기
차원의 균열 너머, 이계의 성채는 기괴한 마력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하지만 강진혁의 시선은 그곳에 머물지 않았다. 그의 감각은 신서울, 그 차가운 강철의 도시를 향해 뻗어 있었다.
심연의 포식자들을 도살하며 얻은 데이터는 명확했다. 티타늄 그룹이 이계의 존재들과 결탁해 신서울 전체를 거대한 ‘농장’으로 만들려 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중심에 선 진무극은, 자신의 야욕을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부품으로 친딸인 진세린조차 소모품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진혁의 신경망을 파고드는 긴급 호출.
[경고: 외부 네트워크 침입. 긴급 암호화 통신 수신.]
진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통신을 보낸 것은 진세린의 부관, 강하준이었다.
“강진혁 씨, 들립니까? 회장님이…… 회장님이 미쳤습니다. 후사대원들을 강제로 ‘마기 강화 실험’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세린 님은 반대하다가 지금 지하 0층, 최상위 격리구역에 구금되었습니다!”
통신 너머로 들려오는 것은 비명과 금속이 찢기는 소리였다. 진무극의 잔혹함은 이미 선을 넘었다. 그는 승기를 잃어가는 전황 속에서, 자신의 혈육마저 에너지를 위한 배터리로 전락시키려 하고 있었다.
진혁은 피가 묻은 검을 회수하며 차갑게 읊조렸다.
“진무극. 정말 끝까지 추악하군.”
심연의 사냥은 잠시 멈췄다. 이제는 그보다 더 시급한 ‘청소’를 할 시간이었다.
신서울, 티타늄 타워.
구름 위를 뚫고 솟은 마천루의 최상층은 얼음장 같은 정적에 잠겨 있었다.
진무극은 집무실 창가에 서서 내려다보이는 신서울의 야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의 등 뒤로는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1급 후사대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생체 코어 융합 장치에 묶여 있었다.
“회장님, 세린 님을…… 정말 이렇게 처리하실 겁니까?”
연구원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진무극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 아이는 내 걸작이었어야 했다. 하지만 감정에 휘둘려 진혁이라는 불량품에게 동정심을 품었지. 실패한 데이터는 삭제하는 게 효율적이다. 그 아이의 고출력 코어는, 차원의 문을 완전히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그때, 집무실의 강화 유리창이 기묘한 파동과 함께 진동하기 시작했다.
우웅-!
공간이 비틀렸다. 단순한 물리적 침입이 아니었다. 공간 자체를 강제로 찢고 들어오는 압도적인 마기.
“설마.”
진무극의 눈이 가늘어졌다.
콰아앙-!
수십 겹의 레이저 방어막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는 가운데, 검은 코트를 입은 사내가 그 중심에 서 있었다. 강진혁이었다. 그의 은빛 회로가 요동치며 주변의 공기를 마기로 눌러버렸다.
“진무극.”
진혁의 목소리는 낮고 서늘했다.
“네놈의 정원은 이제 끝이다.”
진무극은 비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집무실 주변으로 백무현의 잔당들을 개조한 살인병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5세대 생체 코어를 이식한 괴물들이었다.
“강진혁. 네가 여기까지 올 줄은 알았다. 하지만 이곳은 내 구역이다.”
진무극이 단추를 누르자, 타워 전체의 전력이 차단되더니 붉은 비상등이 점멸했다.
[시스템 가동: 억제장 전개.]
[사용자 강진혁의 마기 흐름을 강제 봉인합니다.]
타워 내부에 고주파가 흐르며 진혁의 단전을 노렸다. 시스템이 그의 마기를 억제하려 했다. 하지만 진혁은 그저 비릿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시스템? 이제 그딴 건 통하지 않아.”
진혁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시스템의 계산 범위를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HEAVENLY DEMON PROTOCOL) v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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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지: 5단계 [초월천마경 (超越天魔境)]
■ 생체 코어 출력: 98,000 MW (측정 불가)
■ 나노머신 동기화율: 100% (완전 동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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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ning] 억제장 가동 불가. 사용자 경지가 시스템 통제권을 상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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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진무극의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데이터로만 보던 강진혁의 ‘초월’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진혁이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가 발을 딛는 바닥마다 타일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것은 무공이 아니었다. 공간을 지배하는 의지였다.
“진세린은 어디 있지?”
“이미 실험실로 옮겨졌다. 늦었어, 진혁. 너의 그 잘난 무공으로도 죽어가는 저 아이의 코어를 되돌릴 수는 없을 거다.”
진무극이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진혁은 대답 대신 검을 휘둘렀다.
챙-!
그가 휘두른 검기(劍氣)가 집무실의 천장을 뚫고 지하 0층으로 향하는 통로를 만들어버렸다. 진무극의 병기들이 앞을 가로막았지만, 진혁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의 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병기들의 코어가 융합된 나노 장갑과 함께 산산조각 났다.
“비켜.”
단 한 마디. 그 압도적인 살기에 병기들이 멈칫했다. 진혁의 검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는 이미 물리적 실체를 가진 재앙이었다.
진혁은 무너진 통로 아래로 뛰어내렸다. 지하 0층, 진세린이 묶여 있는 격리실까지는 수많은 함정과 방어 병력이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진혁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정지된 데이터 덩어리로 보였다.
그는 검을 거두고, 대신 주먹에 마기를 응축했다.
[신천마신공 제2초식: 만상흡진(萬象吸盡)]
지하 격리실로 향하는 모든 벽면이 진혁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왔다. 수십 명의 경비 병력이 쏘아대는 탄환조차 그의 주변에서 궤도를 잃고 소멸했다.
“진세린.”
격리실 문 앞에 도달한 진혁이 손을 뻗자, 육중한 티타늄 문이 비명을 지르며 종이처럼 구겨졌다. 그 너머로, 코어 융합 장치에 결박된 진세린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가슴 부근의 코어에서는 붉은 빛이 위험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진무극은 진세린의 코어를 과부하시켜, 타워 전체의 에너지를 폭발시키려 하고 있었다.
“하아…… 강진혁?”
희미한 의식 속에서 진세린이 진혁을 발견했다. 그녀의 눈에 놀라움과 안도감이 스쳤다.
“오지 마…… 이건 함정이야. 아버지가…… 코어 폭주를 유도하고 있어…….”
진혁은 말없이 그녀의 결박을 단숨에 끊어냈다. 그가 닿는 순간, 결박을 고정하던 나노 회로들이 진혁의 마기에 침식되어 스스로 풀려났다.
“함정은 함정이지.”
진혁이 그녀를 부축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통로 끝에서 진무극이 수많은 강화 병기를 이끌고 나타났다. 그는 더 이상 신사가 아니었다. 전신을 군용 무기로 도배한, 괴물 그 자체였다.
“잘 왔다. 너를 여기서 죽이고, 저 아이의 코어와 함께 너의 데이터까지 완전히 회수해주지.”
진무극의 팔에서 거대한 플라즈마 캐논이 전개되었다.
진혁은 진세린을 안전한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다시 검을 뽑았다.
이번에는 그냥 검이 아니었다. 차원의 파편을 머금은, [신천마신공]의 본질이 담긴 검이었다.
“진무극. 너는 기술을 믿지만, 나는 나를 믿는다.”
진혁의 몸에서 폭풍 같은 마기가 터져 나왔다. 타워 전체가 흔들렸다. 진세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가 알던 진혁보다 훨씬 더 깊고, 훨씬 더 압도적인 힘.
“네가 만든 프로토콜의 끝을 보여주지.”
진혁의 검 끝이 진무극의 심장을 향해 직선으로 뻗었다.
쿠구구구-!
공간이 찢어지는 파열음과 함께, 신서울의 운명을 결정지을 마지막 사투가 시작되고 있었다.
[경고: 단전 출력 150,000 MW 돌파.]
[모든 안전 제어 장치 해제.]
진혁의 눈이 칠흑 같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이제, 시스템의 보조는 없다. 오직 그만이 가진 의지와 마공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죽어라.”
검이 닿기도 전에, 진무극의 주위에 있던 병기들이 압도적인 압력에 눌려 형체도 없이 붕괴했다.
진무극의 눈에 처음으로 공포가 서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진혁의 검은 이미 진무극의 코어를 조준하고 있었다.
과연 이 검은 진무극을 멈출 수 있을까, 아니면 더 큰 재앙의 서막이 될 것인가.
진혁의 검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멸세(滅世)의 빛이 타워 전체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진무극의 얼굴에 서려 있던 오만함이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했다. 그는 자신의 전신에 탑재된 모든 방어 시스템을 가동했다. 5세대 생체 코어가 비명을 지르며 뿜어내는 에너지 장벽, 아바돈 공장에서 탈취한 나노 필드, 그리고 고대 마공 데이터를 응용해 짜낸 마기 방어막까지.
“막아! 전부 다 막아내!”
진무극의 절규와 함께 타워의 중추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진혁의 검, [멸세(滅世)]는 그 모든 방어를 비웃듯 관통했다. 그것은 물리적인 베기가 아니었다. 존재의 근간에 새겨진 ‘오류’를 강제로 수정하는, 신(神)의 영역에 가까운 참격이었다.
치이이익—!
검끝이 진무극의 가슴팍, 생체 코어가 박힌 부위에 닿는 순간, 주변의 공간이 기이하게 뒤틀렸다. 억센 마기가 진무극의 코어 회로를 타고 역류했다.
“끄아아아악! 내, 내 회로가! 데이터가!”
진무극의 비명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기계 장갑들이 톱니바퀴처럼 흩어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토록 갈망하던 ‘완벽한 천마의 육체’는 진혁의 검 앞에서 그저 부서지기 쉬운 고철에 불과했다.
진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진무극의 멱살을 쥐어 올렸다. 바닥에 처박힌 진무극의 은발이 핏물에 젖어 엉망이 되었다.
“네놈은 끝까지 기술의 노예였지. 시스템이 계산할 수 있는 건 효율뿐이지만, 내가 깨달은 무도는 그 너머에 있다.”
“하, 하하…… 강진혁, 너도 결국은…… 나처럼 될 거다. 차원의 틈새를 봐라. 심연의 주인들이…… 너라는 그릇을 가만히 둘 것 같으냐?”
진무극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어가며 마지막 저주를 뱉어냈다. 하지만 진혁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진무극의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은 기운이 진혁의 팔을 타고 흡수되기 시작했다. [만상흡진]. 진혁은 진무극이 가진 모든 연산 데이터와 마기를 자신의 단전으로 끌어들였다.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다.”
콰직!
진혁이 손을 떼자, 진무극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인형처럼 바닥에 널브러졌다. 타워의 붉은 조명이 꺼지고, 시스템의 강제 통제권이 영구적으로 상실되었다. 타워 곳곳에서 들려오던 비명과 기계음이 잦아들었다.
“진혁 씨……?”
구석에서 진세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진혁은 피 묻은 검을 거두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진세린의 눈에는 아버지를 잃은 충격과, 눈앞에 선 존재에 대한 경외감이 뒤섞여 있었다.
진혁은 그녀를 묶고 있던 결박을 완전히 제거한 뒤, 코어의 출력을 강제 안정시켰다. 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부드러운 마기가 진세린의 파열된 혈관을 메우고, 과부하 된 코어를 냉각시켰다.
“일어날 수 있겠나?”
“……왜, 나를 살렸지? 당신의 적은 우리 아버지였고, 나 역시 그 계획의 일부였을 텐데.”
진세린의 물음에 진혁은 잠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신서울의 밤하늘, 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차원의 균열. 그 너머에서 거대한 눈동자들이 여전히 신서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무극은 죽었지만, 그가 열어젖힌 심연의 문은 여전히 닫히지 않았다.
“너는 기계의 부속품이 아니었으니까.”
진혁의 말은 간결했다. 그는 진세린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타워의 옥상으로 향했다. 발걸음마다 마기가 층층이 밟히며, 그를 허공으로 띄웠다.
옥상에 도착하자, 윤아영과 천우진, 송수연이 급히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타워를 뒤흔든 진혁의 압도적인 기세가 생생히 새겨져 있었다.
“진혁 씨, 방금 그 에너지 파동은……!”
윤아영이 홀로그램 단말기를 띄우려다 멈칫했다. 시스템의 모든 정보가 멈춰버렸기 때문이었다. 진혁이 타워의 중앙 제어실을 파괴하면서, 신서울을 지배하던 티타늄의 지배 구조가 완전히 붕괴한 것이다.
“끝났다.”
진혁이 하늘을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다. 저 너머의 존재들이 이제 직접 움직일 테니까.”
그의 검 끝이 가리킨 곳에는 차원의 틈새가 더욱 크게 벌어지고 있었다. 심연의 주인들은 진무극이라는 대리인이 사라지자, 이제 인내심을 버리고 본체 강림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순간, 신서울 전역의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단순한 노을이 아니었다. 이계의 마기가 대기권을 뚫고 내려오는 불길한 징조였다.
진혁은 검을 허공에 꽂았다. [신천마신공]의 마기가 신서울 전체를 감싸는 거대한 방어막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다들 들어라.”
진혁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신서울 모든 시민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오늘부로 티타늄의 지배는 끝났다. 이제부터는 나, 강진혁이 이 밤의 주인이다.”
그의 등 뒤로 거대한 천마의 형상이 맺혔다. 그것은 기술도, 데이터도 아닌, 진혁의 의념이 빚어낸 거대한 신(神)의 모습이었다.
이제 신서울은 기업의 독재에서 벗어났으나, 더 거대한 운명과 마주하게 되었다. 진혁의 눈이 차원의 균열을 향해 날카롭게 빛났다. 심연의 주인들이 오고 있었다. 하지만 진혁은 웃고 있었다. 이 싸움이야말로 자신이 완성할 ‘신천마신공’의 진짜 시험대였으니까.
“올 테면 와라. 천마(天魔)의 이름으로, 너희의 심연을 갈가리 찢어주마.”
진혁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어둠을 가르고, 신서울의 새로운 시대가 비로소 막을 올리고 있었다.
[SYSTEM INFO: 시스템 로그 완전 삭제.]
[경지 확정: 초월천마경 제5단계 도달.]
[운명 개변 시작.]
진혁은 검을 뽑아 들고 허공으로 도약했다. 차원의 벽 너머, 그곳에 숨어 있는 ‘심연의 주인’들을 향해.
이것은 복수극의 끝이자, 새로운 신화의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