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화 용병 함대의 전멸
아크 솔리스 요새의 상공은 이미 지옥도였다.
티타늄 그룹이 고용한 최정예 용병 기업, '아이언 윌'의 함대가 신서울의 밤하늘을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수십 대의 드롭쉽이 뿜어내는 서치라이트가 빗줄기를 가르며 지상을 훑었고, 그 사이를 거대한 타이탄 수트들이 유령처럼 배회했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실험체 07호', 강진혁의 제거였다.
"목표물 확인. 300미터 전방, 지면에서 20미터 부상(浮上) 중. 사격 개시!"
용병 대장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함대 전체가 불을 뿜었다. 쏟아지는 플라즈마 탄환과 고주파 레이저 포화가 강진혁이 서 있던 자리를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대기가 타들어 가는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하지만.
"명중했다! 타깃은… 타깃은 어디 있지?"
연기 속에서 나타난 것은 흩어지는 잔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찰나의 순간에 공간을 도약한 포식자의 눈빛이었다.
진혁은 공중에 떠 있었다. 발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그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중력을 거스르며 그를 지탱하고 있었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나노머신은 이제 물리적인 기계 부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기와 결합하여 강진혁이라는 존재의 일부가 된, 살아있는 뇌전(雷電) 그 자체였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제어권 상실.]
[경고: 외부 데이터 접속 시도 차단됨.]
[사용자 강진혁, 시스템의 지원 없이 독자적인 마기 운용 중.]
시야 한구석에 붉은색으로 점멸하는 경고창 따위는 이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진혁의 흑안이 서늘한 청색 뇌광을 머금으며 함대를 훑었다.
"이런 고철 덩어리들이 내 앞길을 막겠다고?"
진혁이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에 휘감긴 것은 단순히 내공이 아니었다. 주변의 공간을 강제로 압축하여 얻어낸, 폭발 직전의 고밀도 에너지. [천뢰마강(天雷魔剛)]의 형상이 검의 형태로 맺혔다.
"죽어라."
검이 허공을 갈랐다.
단순한 참격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간 그 자체를 찢어발기는 멸절(滅絶)의 일격이었다.
콰아아앙-!
요새 상공을 뒤덮었던 푸른 뇌기 폭풍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마치 세상의 끝을 알리는 듯한 거대한 굉음과 함께, 아이언 윌의 함대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공중 분해되었다.
드롭쉽의 장갑판은 종잇장처럼 구겨졌고, 20여 대의 타이탄 수트는 내부의 코어가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하늘에서 피어오르는 거대한 불꽃은 마치 밤하늘에 피어난 지옥의 꽃과 같았다.
"끄아아악!"
"데이터가… 데이터가 파괴되고 있어! 이건 무공이 아니다! 이건 재앙이다!"
용병들의 비명이 무전망을 타고 흘러나왔지만, 진혁은 냉혹했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만상흡진(萬象吸盡)]
진혁이 다시 한번 손을 움켜쥐었다. 대기 중에 흩어지는 용병들의 기갑 파편, 아직 꺼지지 않은 코어의 잔류 에너지, 그리고 그들이 내뿜는 공포의 감정 데이터까지. 그 모든 것이 진혁의 단전으로 빨려 들어갔다.
단전 내부에 쌓인 출력 수치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현재 단전 출력: 120,000 MW 돌파]
[마기 동기화율: 99.9%]
한계였다. 인간의 육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용량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피부 위로 은빛 회로 선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진혁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아직 멀었다."
그는 추락하는 타이탄 수트의 잔해 위를 밟고 다시 한번 도약했다. 발밑의 공간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진혁의 몸이 요새의 메인 서버를 향해 화살처럼 꽂혀 들어갔다.
요새의 방어막이 그를 막아서려 했지만, 진혁이 휘두른 검강에 닿는 순간 비눗방울처럼 터져 나갔다. 물리 법칙조차 그에게는 무력했다. 그가 걷는 길은 곧 파멸이었고, 그가 닿는 곳은 곧 잿더미가 되었다.
한편, 요새 지하 제어실.
상황을 지켜보던 티타늄 그룹의 수석 연구원 이현도는 얼굴을 하얗게 질린 채 모니터를 두드리고 있었다.
"말도 안 돼… 프로토콜이 종료되었는데, 왜 저런 출력이 나오는 거지? 저건 인간이 아니다. 시스템이 정의할 수 없는 미지(Unknown)의 변수야!"
이현도의 떨리는 손끝이 메인 서버의 자폭 코드를 입력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제어실의 육중한 강철 문이 비틀리며 뜯겨 나갔다.
쾅-!
먼지 구름 속에서 걸어 나온 강진혁의 눈이 제어실의 중앙 서버를 향했다. 그의 전신에서는 여전히 푸른 뇌전이 뱀처럼 감돌고 있었다.
"티타늄 그룹의 심장인가."
진혁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가 들고 있는 검, [멸세]의 칼날이 바닥을 긁으며 불꽃을 튀겼다.
"거짓말을 그만두고, 네놈들의 진짜 주인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말해라."
이현도는 뒷걸음질 치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진혁을 올려다보았다.
"너… 너는 결국 우리를 파멸시키고 말 거야. 차원 너머의 존재들이 너를 가만히 둘 것 같나? 너는 그들의 먹잇감이자, 그들의 그릇일 뿐이야!"
진혁의 검 끝이 이현도의 미간을 겨누었다.
"그릇? 웃기는 소리."
진혁은 검을 내리꽂지 않았다. 대신, 손을 뻗어 이현도의 머리 위에 얹었다. 흡원천공이 발동하자 이현도의 비명이 제어실을 가득 메웠다. 그의 뇌 속에 저장된 수많은 데이터와 기억이 진혁의 의식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티타늄 그룹이 숨겨온 천마의 진실.
차원 너머에서 이 세계를 지켜보는 '심연의 주인'들.
그리고, 자신이 왜 '실험체 07호'로 태어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저주스러운 과거까지.
진혁의 눈빛이 더욱 깊고 차가워졌다.
"그들이 나를 노린다면, 내가 먼저 그들의 문을 찢고 들어가겠다."
진혁이 손을 떼자 이현도는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메인 서버는 이미 붕괴 직전의 경고음을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진혁은 그곳에 머물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제어실의 창밖, 신서울의 밤하늘 너머에 있는 어두운 차원의 틈새를 향하고 있었다.
[SYSTEM: 서버 연결 단절.]
[SYSTEM: 모든 기능 정지.]
HUD가 사라진 시야는 오히려 더 맑았다. 진혁은 이제 시스템의 명령을 기다리는 실험체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길을 개척하는, 유일무이한 '천마(天魔)'였다.
그때였다.
지하 2,000층 심연에서부터 올라오는 진동이 요새를 뒤흔들었다. 단순히 기계적인 진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원을 넘어온 기괴하고 거대한 의지의 울림이었다.
"드디어… 본체가 움직이는군."
진혁은 검을 고쳐 잡았다.
티타늄 그룹의 파멸은 시작에 불과했다. 진짜 사냥은 이제부터였다.
그는 창문을 박살 내고 요새 밖의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의 뒤로 아크 솔리스 요새가 굉음을 내며 폭발하기 시작했다. 푸른 뇌전이 칠흑 같은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신서울의 신화가, 그 거대한 서막을 올리고 있었다.
요새의 잔해들이 불타는 빗줄기 사이로 쏟아져 내렸다. 폭발의 충격파는 신서울의 하층 구역을 뒤흔들었고, 슬럼가의 거주민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쇳덩이 비를 보며 공포에 질려 대피했다. 진혁은 그 불길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의 몸은 마기가 뿜어내는 열기로 인해 주변의 빗방울을 모두 증발시키고 있었다.
진혁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요새의 잔해만이 아니었다. 아크 솔리스가 붕괴하며 드러난 거대한 차원의 균열, 그곳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짙은 보랏빛 안개가 대기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가스가 아니었다. 이 세계의 물리 법칙을 침식하고, 나노머신의 논리 회로를 강제로 재배열하려는 '외부 차원'의 침식 에너지였다.
[경고: 고밀도 차원 침식 에너지 감지.]
[오류: 나노머신 동기화율 강제 저하 시도.]
시스템의 족쇄가 사라진 지금도, 진혁의 뇌리에는 여전히 과거의 잔영이 경고를 보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제어 메시지가 아니었다. 진혁이 스스로 구축한 ‘직관’이었다.
"침식이라… 감히 내 몸에 손을 대려 하는 건가."
진혁이 낮게 읊조리며 검을 비껴 쥐었다. 그 순간, 균열 너머에서 거대한 촉수들이 삐져나왔다. 금속과 살점이 기괴하게 뒤섞인 형태. 티타늄 그룹이 그토록 갈구하던 ‘초월적 생명체’의 실체였다. 그들은 신서울을 사육장으로 삼고, 진혁이라는 그릇을 정성껏 길러낸 뒤 도살하려 했던 진정한 주인들이었다.
콰득, 콰드득.
균열에서 쏟아져 나온 촉수들이 지면을 강타했다. 지반이 꺼지고 콘크리트가 비명을 질렀다. 수백 개의 촉수가 진혁을 향해 쇄도했다. 물리적인 타격과 동시에, 진혁의 정신을 직접 공략하는 사이킥 파동이 뇌를 찔러왔다.
- 피조물 주제에, 어디서 감히 주인에게 칼날을 겨누는가.
머릿속을 울리는 기괴한 공명. 그것은 언어가 아닌 데이터 파편의 전달이었다. 진혁은 헛웃음을 흘렸다.
"주인? 내 단전 안에서 뛰는 마기를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진혁의 발밑에서 푸른 뇌전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그는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전진했다.
[뇌전마강(雷電魔剛) - 개변(改變)]
검을 휘두르는 궤적이 달라졌다. 단순히 베는 것이 아니었다. 공간의 밀도를 순식간에 역전시켜, 쇄도하던 촉수들의 분자 결합을 강제로 붕괴시키는 기술. 진혁이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그를 덮치던 촉수들이 마치 유리 조각처럼 파스스 부서져 내렸다.
검강은 멈추지 않고 차원의 균열 자체를 겨냥했다.
"이 문 너머에 있는 게 누구든, 내가 그곳으로 직접 가겠다."
진혁의 등 뒤로 마기가 형상을 갖추었다. 1,000년 전 천마가 완성하고자 했던 마공의 궁극. 시스템이 수치로 정의할 수 없었던 존재의 의지, ‘천마현신(天魔現身)’이 푸른 뇌전과 뒤섞여 거대한 마신(魔神)의 형상을 빚어냈다.
단순한 환영이 아니었다. 진혁의 마기가 실체화된, 그 자체로 하나의 군대와 다름없는 압도적인 기세였다.
- 이럴 리가 없다. 마기(魔氣)의 순도가 데이터의 범주를 벗어났다. 너는 분명 프로토콜에 의해 통제되어야 할 개체일 터인데!
균열 너머의 존재가 당혹감을 드러내며 멈칫거렸다. 진혁의 기세가 자신들이 설계한 ‘그릇’의 한계를 수천 배는 상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너희들이 나를 그릇으로 만들었다면, 나는 그릇을 깨고 나와 너희들의 세계를 집어삼키는 재앙이 될 것이다."
진혁이 마신을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대기 중의 모든 에너지가 그의 검 끝으로 집중되었다. 아크 솔리스에서 흡수한 플라즈마 에너지, 심연의 포식자들에게서 강탈한 차원 데이터, 그리고 1,000년 전부터 이어져 온 천마의 원념까지.
그 모든 것이 하나로 융합되어, 검 끝에서 일점(一點)의 빛으로 응축되었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 제5초식, 멸세(滅世)]
푸른 빛이 신서울의 밤하늘을 일직선으로 관통했다.
그 빛은 차원의 균열을 뚫고, 그 너머에 존재하는 ‘심연의 주인’들의 안마당을 강타했다. 굉음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 속에서, 균열은 비명과 함께 반대 방향으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우지끈!
차원의 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균열 너머에서 들려오던 기괴한 공명음이 공포에 질린 비명으로 변했다. 진혁은 멈추지 않고 그 구멍 속으로 몸을 던졌다.
"도망칠 곳은 없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진혁의 뒷모습을 보며, 붕괴하는 요새의 잔해 위에 홀로 남겨진 윤아영은 숨을 죽였다. 그녀의 HUD는 이미 진혁의 위치를 추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인간의 영역을 넘어, 신화의 영역으로 발을 들이고 있었다.
균열이 닫히기 직전, 진혁의 차가운 목소리가 신서울의 밤하늘에 짧게 메아리쳤다.
"기다려라. 너희들의 세계가 내 마기로 물드는 날이 머지않았으니."
빛이 사라지고, 신서울의 밤하늘은 다시 차가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비는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았다. 진혁이 휘두른 일격의 여파로, 하늘 곳곳에는 보이지 않는 차원의 흉터가 남아 있었다.
신서울의 지배자들은 이제야 깨달았다. 자신들이 길러낸 것은 복수를 갈망하는 짐승이 아니라, 세상을 끝내고 새로이 빚어낼 파괴의 신이었다는 것을.
균열 너머, 검은 그림자들의 군단이 진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진혁이 들어온 것을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야 비로소 시작된 ‘사냥’에 전율하고 있었다.
진혁은 차갑게 검을 털어내며 정면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기괴한 빛을 내뿜는 거대한 성채가 차원의 틈새마다 층층이 쌓여 있었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진혁의 발걸음이 첫 번째 성채의 성문을 향해 옮겨졌다. 시스템이 없어도 상관없었다. 그에게는 이제 세상을 멸하고 다시 세울 수 있는, 자신만의 ‘천마(天魔)’라는 진리가 깃들어 있었으니까.
어둠 속에서 수많은 붉은 눈이 진혁을 향해 일제히 떠올랐다. 심연의 주인들이 정면으로 그를 마주하고 있었다. 진혁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다시 한번 검을 고쳐 쥐었다.
이곳은 신서울의 끝이 아닌, 새로운 천마의 시대가 열리는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