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화 생체 융합로의 파괴
지하 3,500층의 공기는 타버린 합성 피혁과 고농축 마기가 뒤섞여 기괴한 악취를 풍겼다. 강진혁의 시야 속에서 붉게 점멸하던 위험 경고등이 [천마무상체]의 발현과 함께 차갑게 식어갔다.
"이게... 이게 무슨...!"
닥터 베인이 경악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의 전신에 이식된 4세대 생체 코어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의 공격을 가볍게 받아넘기던 강진혁의 나노머신 회로가, 이제는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그의 피부 위를 타고 흐르며 마기를 방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혁의 흑안(黑眼)이 베인을 응시했다. 은빛 회로가 흐르는 그의 손끝에서 검은 번개, 뇌전마강(雷電魔剛)이 일렁였다.
"실험은 끝났다, 베인."
진혁이 한 걸음을 내디뎠다. 바닥에 깔려 있던 강화 강철판이 그의 발밑에서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베인이 절규하며 수십 개의 미사일 포트를 개방했다. 좁은 통로를 가득 채운 고폭탄들이 진혁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콰광-!
폭발이 공장을 집어삼켰다. 파편이 비처럼 쏟아졌으나 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폭심지 속을 걸어 나왔다. [천마무상체]의 외피가 나노머신을 재배열하여 충격을 분산시켰다. 찢겨 나간 피부는 찰나의 순간에 재생되었고, 그 위로 흐르는 마기는 폭발의 열기마저 흡수해 단전으로 끌어들였다.
"불가능해! 데이터상으로는 이런 에너지 효율이 나올 리가 없단 말이다!"
베인의 비명은 거기까지였다. 진혁의 형체가 일그러졌다. 마광신보(魔光神步)의 극의. 눈앞에서 사라진 진혁이 순식간에 베인의 코앞에 나타났다.
서걱-
진혁의 손이 검으로 변형되어 베인의 명치를 관통했다. 동시에 흡원천공이 발동했다.
[SYSTEM: 적대 개체의 생체 코어 에너지를 강제 추출합니다.]
[경고: 코어 출력 8,500 MW 추출 시작.]
"으아아악!"
베인의 몸이 눈에 띄게 수축했다. 그가 평생 쌓아온 지식, 데이터, 그리고 티타늄 그룹이 부여한 권능이 진혁의 혈관을 타고 쏟아져 들어왔다. 베인의 눈동자가 하얗게 질리며 힘없이 늘어졌다. 진혁은 그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고개를 들어 공장 중앙, 거대하게 울렁이는 '생체 융합로'를 보았다.
그곳이 바로 티타늄 그룹이 신서울 하층민들의 코어를 갈아 넣어 마력을 증폭시키던 심장이었다.
"이것으로 끝이다."
진혁이 천마검을 거대하게 현신시켰다. 검신에 뇌전마강과 파괴된 융합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뒤섞였다. 공장 전체가 공명하듯 진동했다.
콰아아앙!
진혁의 검이 융합로의 중심핵을 가로질렀다. 푸른빛의 에너지 기둥이 천장을 뚫고 솟구쳤다. 융합로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비정상적인 에너지 폭주가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공장 내부의 모든 설비를 고철로 만들었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v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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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너지 수치: 85,000 MW (급증)
■ 마기 안정화율: 92.5%
■ 상태: [마신경(魔神境)] 진입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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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혁은 폭발하는 공장의 잔해를 밟고 지상으로 향하는 통로를 향해 질주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굉음이 지하 세계 전체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그의 신경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닥터 베인의 기억 칩을 흡수하며 보았던, 1,000년 전 천마의 흔적.
'그들은 단순히 나를 조종하려던 게 아니었다. 나라는 그릇을 통해 차원 너머의 무언가를 강림시키려 했던 거야.'
진혁의 눈에 서늘한 살기가 감돌았다. 시스템이, 그리고 티타늄 그룹이 설계한 거대한 음모는 이제 그의 발밑에서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그때였다. 통신기를 통해 송수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진혁! 들려? 지금 신서울 상공이 미쳤어! 티타늄 그룹 쪽에서 차원 개방 신호가 감지됐어. 그런데...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지고 있어. 단순한 병력이 아냐. 이건... 규격 외의 물체들이야!
진혁은 무너지는 공장의 벽을 뚫고 지상으로 솟구쳐 올랐다. 50층 높이의 폐건물 옥상에 착지한 그의 시선이 밤하늘로 향했다.
신서울의 상공, 거대한 먹구름이 소용돌이치며 차원의 틈새를 열고 있었다. 그 틈새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은 티타늄 그룹의 양산형 병기가 아니었다. 칠흑 같은 금속으로 도금된, 마치 고대 마신(魔神)의 형상을 닮은 거대 기갑들이었다.
- 아이언 윌이다. 글로벌 용병 기업의 에이스 함대가 신서울 상공을 봉쇄했어. 그들의 목표는... 너야, 진혁아!
진혁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좋군."
그의 손에서 검은 마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시스템의 제약을 비웃듯, 그의 단전에서는 50만 MW에 달하는 에너지가 요동치고 있었다.
"사냥감이 늘어난 건가, 아니면 쥐새끼들이 드디어 제 발로 무덤을 찾아온 건가."
하늘을 뒤덮은 아이언 윌의 함대가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신서울의 밤이 대낮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수천 발의 고주파 탄환이 진혁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진혁은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하늘을 향해 날개를 펼치듯 검을 치켜들었다. 신천마신공의 제1장, 그 압도적인 무력이 신서울의 밤하늘을 찢어발길 준비를 마쳤다.
이제부터 시작될 전쟁은 단순히 기업과의 복수극이 아니었다.
'차원 너머의 존재들인가.'
진혁의 흑안이 금빛으로 변하며 차원의 틈새를 꿰뚫어 보았다. 그곳에는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이쪽을 내려다보는 존재들이 있었다.
"너희들의 신(神)이라도, 내 발밑에 무릎을 꿇게 해줄 테니."
진혁이 지면을 박차고 하늘로 솟구쳤다. 공기를 찢는 굉음과 함께, 신서울의 밤하늘에 거대한 검흔(劍痕)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멸망의 서막인가, 아니면 진정한 천마(天魔)의 강림인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포화 속으로, 강진혁의 검이 파고들었다.
하늘을 가득 메운 아이언 윌의 드롭쉽 함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플라즈마 빔은 신서울의 마천루들을 엿가락처럼 휘게 만들었다. 쏟아지는 탄막은 그야말로 도시 하나를 통째로 증발시킬 기세였다. 하지만 강진혁은 그 폭풍의 중심에서 오히려 눈을 감았다.
[SYSTEM: 마기 동기화율 98.4%.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제1장, 마무상(魔無相) 전개.]
그의 몸 주변으로 형성된 검은 막이, 쏟아지는 플라즈마를 비웃듯 튕겨냈다. 나노머신이 찰나의 순간에 주파수를 맞춰 포탄의 에너지를 마기로 치환하고 있었다. 진혁이 검을 휘두르자, 허공에서 수천 개의 검기가 파생되어 쏟아지는 탄환을 하나하나 요격했다. 폭음이 연달아 터지며 하늘에 거대한 불꽃놀이가 수놓아졌다.
"이게... 이게 인간이 할 수 있는 계산인가?"
함대 사령선 안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이언 윌의 지휘관이 창백한 얼굴로 읊조렸다. 모니터 속 강진혁은 이미 생명체의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그는 파괴의 화신이자, 스스로가 거대한 전쟁 기계 그 자체였다.
진혁은 발을 굴렀다. 옥상 바닥이 폭발하며 그 반동으로 몸이 성층권까지 솟구쳤다.
"첫 번째 놈들."
진혁이 검을 대각선으로 내리그었다. [천마일검(天魔一劍)-참(斬)].
단 한 번의 휘두름. 공기 중의 분자 결합이 강제로 붕괴하며 거대한 진공의 칼날이 함대 선두에 선 드롭쉽을 덮쳤다. 육중한 강철 덩어리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반으로 갈라졌다. 내부에 적재되어 있던 중장갑 비행 기갑들이 도미노처럼 터져 나가며 불타는 유성이 되어 신서울 슬럼가로 추락했다.
"진혁! 오른쪽 3시 방향, 5세대 드롭쉽들이 포위망을 좁히고 있어! 저 녀석들, 일반 탄환이 아냐. 차원 진동탄을 장착했어!"
윤아영의 다급한 경고가 귓가를 울렸다. 차원 진동탄. 그것은 대상의 존재 자체를 차원의 틈새로 강제로 밀어 넣어 소멸시키는, 금지된 병기였다.
"상관없다."
진혁이 허공에서 몸을 뒤틀었다. 그의 등 뒤로 마기가 형상화되어 거대한 날개처럼 펼쳐졌다. [천마무상체]가 극의에 달하자, 진혁의 육체는 물리 법칙의 간섭을 받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그는 중력을 무시한 채 허공을 박차며 쏟아지는 진동탄 사이를 유영했다.
그의 움직임은 궤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진동탄이 진혁이 조금 전 머물던 자리를 타격하자, 공간 자체가 일그러지며 검은 구멍이 생겨났다. 그러나 진혁은 이미 수백 미터 떨어진 지휘 함선의 갑판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보호막을 켜! 놈을 막아!"
지휘관의 외침이 무색하게, 진혁이 발을 굴렀다. 발끝에서 방출된 마기가 함선의 장갑판을 타고 흐르며 내부의 모든 회로를 마비시켰다.
콰아아앙!
함선이 내부에서부터 붕괴했다. 진혁은 폭발하는 화염 속을 뚫고 지휘관의 멱살을 잡아 낚아챘다.
"누구의 명령이지?"
지휘관은 공포에 질려 덜덜 떨며 입을 열었다.
"티타늄... 티타늄 그룹이 아니야. 그들은 단지 중개자일 뿐이다. 차원 너머의 '심연의 주인'들이... 너라는 그릇을 수확하라고..."
"수확?"
진혁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가 손에 힘을 주자, 지휘관의 방어 수트가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내가 그릇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나는 그들이 만든 잔을 깨부수고, 그 안의 술을 직접 마신 존재다."
진혁은 지휘관을 바닥에 처박고는 그대로 함선의 메인 코어를 향해 손을 뻗었다. 흡원천공이 발동하자 함선 전체의 에너지가 진혁의 단전으로 빨려 들어갔다. 10만, 20만, 30만 MW... 수치가 미친 듯이 치솟았다.
[SYSTEM: 경고. 단전 임계점 도달. 마신경(魔神境)의 안정화가 필요합니다.]
"안정화 따위 필요 없다."
진혁은 시스템의 경고를 강제로 끄고는, 자신의 내공을 마구잡이로 휘저었다. 이제 시스템은 그의 보조 도구가 아니었다. 그가 시스템 그 자체였다. 그는 융합로에서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신천마신공의 새로운 초식을 즉석에서 구성해냈다.
[신천마신공 제2장: 만상흡진(萬象吸塵)]
진혁의 몸 주위로 거대한 소용돌이가 형성되었다. 하늘을 뒤덮고 있던 아이언 윌의 함대 전체가 그 소용돌이의 인력에 끌려가기 시작했다. 쇠붙이가 비틀리고, 비행 기갑들이 공중에서 서로 충돌하며 고철 더미로 변했다.
"이게... 이게 천마의 힘인가."
지상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송수연과 저항군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밤하늘을 수놓았던 수백 대의 함대가 순식간에 진혁의 발밑으로 뭉쳐졌다.
진혁이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 검 끝에 모인 에너지는 이제 태양의 그것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너희들의 신에게 전해라. 내가 머지않아 차원의 문을 열고 직접 찾아가겠다고."
콰아아아!
진혁의 검이 내리꽂혔다. 신서울의 밤하늘이 눈부신 백색 광명으로 뒤덮였다. 함대 전체가 단 일격에 소멸했다. 대기권을 뒤흔드는 충격파가 신서울 전역을 휩쓸고 지나갔다.
잠시 후, 정적이 찾아왔다.
하늘에는 더 이상 거대한 함대가 없었다. 오직 수만 개의 불타는 잔해만이 눈처럼 지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진혁은 그 불타는 잔해들 사이를 유유히 걸어 내려왔다.
그의 어깨 위로 은빛 회로가 꿈틀거리며 사라졌다. 이제 그에게 시스템의 잔재는 필요 없었다. 그는 스스로가 진리가 된 상태였다.
하지만 그 평온함도 잠시였다. 진혁의 시야 너머로, 방금 소멸시킨 함대보다 훨씬 더 거대한, 차원의 틈새가 다시 한번 열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기계가 아니었다.
꿈틀거리는, 혐오스러운 촉수와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뱉는 차원 너머의 존재들.
[SYSTEM: 긴급. 차원 방어선 붕괴. 고위급 외부 차원 개체 '심연의 포식자'가 강림을 시도합니다.]
진혁은 다시 한번 검을 고쳐 잡았다. 복수는 끝났지만,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신서울의 폐허 위에 서서, 자신을 향해 쏟아져 나오는 심연의 군단을 똑바로 응시했다. 차원 너머의 존재들이 인간을 수확하러 왔다면, 그는 그 존재들을 사냥하러 갈 생각이었다.
그의 흑안이 검은 어둠 속에서 푸른 빛을 발했다.
"나를 그릇이라 부른 대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지."
지평선 너머로 검은 그림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신서울의 운명이, 그리고 차원 전체의 운명이 강진혁이라는 단 하나의 존재를 중심으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제, 천마(天魔)의 진정한 전설이 시작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