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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149화목차

제149화 <도살장의 주역들>

공기는 썩은 기름과 타버린 살점의 비릿한 냄새로 가득했다.

강진혁은 아바돈(Abaddon)의 2층 하역장에 발을 들였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생산 시설이라기보다는 도살장에 가까웠다. 거대한 유리 수조들이 벽면을 따라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고, 그 안에는 핏줄이 튀어나온 인간들이 엉성한 기계 장치와 융합된 채 매달려 있었다.

그들은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티타늄 그룹이 실험체로 쓰다 버린 부산물, 혹은 길거리에서 납치된 하층민들이었다.

"이게 너희가 말하는 진보인가."

진혁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다. 수조 속의 피사체들이 진혁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유리벽을 긁어댔다. 뇌가 파괴되어 자아를 잃고, 오직 살인 병기로서의 본능만이 나노머신에 의해 강제 주입된 존재들이었다.

그때, 천장의 스피커에서 신경을 긁는 기계적인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때, 07호. 네가 마주했던 그 화려한 전장과는 차원이 다르지? 여긴 네가 탄생했던 자궁이자, 네가 돌아갈 무덤이야."

공장 상단 통제실. 모니터 너머로 닥터 베인의 일그러진 얼굴이 떠올랐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HEAVENLY DEMON PROTOCOL) v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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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고: 시설 전체에 ‘광혈마(狂血魔) 프로토콜’이 활성화되었습니다.

■ 위험도: 극도로 높음 (고농도 마기 오염 가스 살포 중)

■ 마기 농도: 88%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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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혁의 HUD에 붉은 경고등이 점멸했다. 공기 중으로 살포되는 가스는 인간의 폐를 녹이고, 내공을 폭주시키는 맹독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그 가스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독인가, 아니면 마기인가.'

그는 폐 안에서 끓어오르는 맹독을 단전으로 끌어들였다. 210,000 MW의 출력이 심장에서 박동하며, 혈관을 따라 흐르는 나노머신들이 즉각적으로 독소를 분해했다. 오히려 그 가스 속의 미세한 마기 성분이 진혁의 내공과 융합되며 출력을 증폭시켰다.

"독으로 나를 죽이려 하다니, 오만하군."

진혁이 발을 구르는 순간, 지면이 쩍 갈라졌다. 그 반동을 이용해 수조 한가운데로 쇄도한 진혁의 손이 유리창을 꿰뚫었다. 파편이 비산하는 사이, 수조 속의 생체 병기가 진혁의 목을 향해 거대한 갈퀴를 휘둘렀다.

쾅!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필요가 없었다.

[마기융합 (魔氣融合) - 반탄류(反彈流)]

생체 병기의 팔이 진혁의 어깨에 닿는 순간, 그 힘은 기묘한 궤적을 그리며 튕겨 나갔다. 진혁은 놈의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흡원천공(吸元天功)."

지잉, 하는 기계적인 마찰음과 함께 놈의 몸 안에 박혀 있던 생체 코어가 비명을 질렀다. 놈의 신체를 구성하던 나노머신들이 진혁의 손바닥을 통해 빨려 들어왔다. 단 3초. 강력한 살인 병기였던 놈은 순식간에 껍데기만 남은 빈 깡통으로 변해 바닥에 쓰러졌다.

"더 나와라."

진혁의 눈이 흑옥처럼 번뜩였다. 통제실의 닥터 베인이 당황하며 버튼을 연타했다.

"저, 저 새끼를 막아! 지금 당장 프로토타입들을 전부 방출해!"

치이익-!

공장 곳곳의 수조가 동시에 개방되었다.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100여 대에 달하는 '양산형 광혈마'들이었다. 놈들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눈에는 붉은 안광이 흐르고 팔다리는 고주파 진동 칼날로 변형된 상태였다.

"캬아아아악!"

놈들이 일제히 레이저 포화를 쏟아내며 진혁을 향해 돌진했다. 공장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레이저가 벽면을 녹이고, 고주파 칼날이 철골 구조물을 종이처럼 잘라냈다.

진혁은 쏟아지는 탄막 사이를 마치 춤을 추듯 파고들었다. 마광신보(魔光神步)의 궤적은 기계 연산으로 예측할 수 있는 범위를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그는 적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손을 뻗을 때마다 놈들의 코어를 파괴하거나 에너지를 탈취했다.

"데이터가 뻔하군."

놈들의 공격 패턴은 너무나도 정형화되어 있었다. 1,000년 전 천마의 마공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알고리즘이었지만, 그 본질은 결국 '연산'에 불과했다. 진혁은 그 연산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만상귀일(萬象歸一) - 개방]

진혁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회오리치며 주변의 광혈마들을 끌어당겼다. 놈들은 강제로 진혁의 마기장(魔氣場) 속으로 빨려 들어와 서로의 몸을 부딪치며 뒤엉켰다.

"죽어라."

진혁이 천마일검의 형상을 한 손날을 내리꽂았다.

콰아앙-!

거대한 폭발과 함께 마기가 공장 전체를 뒤덮었다. 100여 대의 광혈마들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공장 내부는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오직 진혁의 거친 숨소리와, 타버린 기계 부품이 튀는 소리만이 맴돌았다.

통제실의 닥터 베인은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말도 안 돼... 저건 프로토콜의 범주를 넘어섰어. 도대체 저게 무엇이란 말인가!"

진혁은 천천히 통제실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서린 살기는 이미 살인 병기의 수준을 넘어선, 신(神)의 영역에 닿아 있었다.

그때, 통제실의 거대한 중앙 화면이 지지직거리며 노이즈를 일으켰다. 화면 속에서 아까 보았던, 진혁과 똑같은 얼굴을 한 '원본'이 나타났다. 수조 밖으로 걸어 나온 그 사내는 진혁과 똑같은 은빛 회로가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07호."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진혁의 기억 속에 있는 누군가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아니, 진혁이라 불러야 하나? 고생 많았다. 내 그릇을 대신 채워주느라."

진혁의 발끝에서부터 강력한 마기가 솟구쳤다.

"그릇?"

진혁이 냉소했다. 그는 자신의 단전을 훑고 지나가는 210,000 MW의 출력을 확인했다.

"내가 그릇이라고 생각하나? 착각하지 마라. 나는 그저 너희가 만든 잔을 깨부수러 온 재앙일 뿐이다."

콰아아앙!

진혁의 발밑이 폭발하며 그가 순식간에 통제실 벽면을 뚫고 사내의 앞까지 도달했다.

그 순간, 아바돈 공장 전체가 거대한 진동과 함께 무너지기 시작했다. 수조들이 깨지고, 그 안의 실험체들이 쏟아져 나오며 공장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사내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손을 검게 물들였다.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는 진혁이 알던 마기보다 훨씬 더 차갑고, 고결했다.

"증명해 봐라. 네가 이 시대의 유일한 천마인지, 아니면 그저 운 좋은 실패작인지."

사내가 휘두른 주먹이 공기를 찢으며 진혁의 관자놀이를 노렸다. 진혁은 검을 뽑는 대신, 맨손으로 그 주먹을 맞받아쳤다.

두 마기가 충돌하는 순간, 아바돈의 모든 기계 장치가 단락을 일으키며 폭발했다. 공장의 붕괴 속에서, 두 명의 천마가 서로의 목을 향해 격돌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었다. 시스템이 정한 '그릇'의 운명을 거부하고, 스스로 전설이 되기 위한 가장 잔혹한 도살이었다.

진혁의 눈에 핏발이 섰다.

'이놈을 죽이고, 그 너머의 진실까지 모조리 씹어 먹어주마.'

그의 검 끝에 마기가 서렸다. 신서울의 밤을 밝힐 또 한 번의 폭풍이 시작되고 있었다.

두 마기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발생한 충격파는 아바돈의 철제 기둥들을 종잇장처럼 구겨뜨렸다. 콘크리트 천장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지만, 두 사람은 그 파편들 사이를 유영하며 멈추지 않는 난타전을 벌였다.

"꼴사납군. 데이터에 의존하는 주제에, 육체의 감각마저 시스템에 맡기고 있는 건가?"

사내, 즉 ‘프로토콜 0호’가 조소하며 진혁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찰나의 순간, 진혁은 나노머신의 재구성을 포기하고 오직 근육의 반동만으로 그 공격을 흘려보냈다. 뼈가 울리는 통증이 전신을 훑었으나, 진혁은 입가에 더 짙은 미소를 띠었다.

"데이터는 이미 네놈들 머릿속에 처박아 뒀다. 이제 남은 건, 누가 더 지독하게 살아남느냐의 문제지."

진혁의 손끝에서 흑색 마기가 불꽃처럼 타올랐다. [만상귀일(萬象歸一)]의 경지가 극에 달하자, 공장 내부에 흩어져 있던 폐기된 나노머신들과 폭주하는 마기들이 진혁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왔다. 그는 그것들을 즉석에서 압축해 검은 검강(劍剛)의 형태로 빚어냈다.

"이게 네놈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천마의 의지다."

콰앙!

진혁의 검이 0호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0호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놈은 자신의 팔을 기계적으로 변형시켜 진혁의 검을 맞물리게 한 뒤, 몸 안의 생체 코어를 강제로 과부하 상태로 만들었다.

"폭주하는 코어인가? 고전적인 수법이군."

진혁은 즉시 검을 회수하지 않았다. 오히려 검을 지렛대 삼아 0호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두 명의 천마가 초근접 거리에서 서로의 단전을 노리며 살기를 뿜어냈다. 210,000 MW의 출력이 한곳에 집중되며 공장 바닥이 원형으로 꺼져 내려갔다.

[SYSTEM INFO: 경고, 강제 과부하 발생.]

[내부 회로 융합률 98% 돌파.]

환청처럼 들려오는 시스템 경고음을 진혁은 가볍게 무시했다. 이미 시스템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한 그에게, 숫자는 그저 참고 자료일 뿐이었다. 그는 0호의 가슴팍에 박힌 5세대 생체 코어의 박동을 느꼈다.

'느려.'

진혁은 상대의 박동보다 반 박자 빠르게 자신의 단전을 뒤틀었다.

"흡원천공, 역류(逆流)."

보통의 흡원천공이 에너지를 뺏는 것이라면, 진혁의 역류는 자신의 마기를 상대의 코어 속으로 강제로 밀어 넣어 폭발시키는 파괴적인 심법이었다. 0호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경악으로 물들었다.

"미친... 네놈, 제정신인가? 내 코어까지 함께 폭발할 텐데!"

"같이 지옥으로 가자고 한 적 없다. 네놈의 그릇만 부수고, 진실만 챙겨가면 그만이니까."

쾅-!

0호의 가슴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5세대 생체 코어가 진혁의 마기를 견디지 못하고 균열을 일으켰다. 파편이 튀고 검은 피가 사방에 흩어졌다. 0호는 뒤로 튕겨 나가 공장 벽면을 뚫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진혁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도약했다. 0호가 날아간 곳, 그 너머에 숨겨진 '원본 데이터'를 찾기 위해.

공장은 이미 붕괴의 한계점을 넘어서고 있었다. 화염과 전기 스파크가 춤을 추는 가운데, 진혁은 파괴된 통제실 너머의 지하 비밀 통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은, 신서울의 그 어떤 마기보다도 오래되었고, 동시에 불길했다.

'거기 있나. 1,000년 전의 잔재가.'

진혁은 어둠 속으로 발을 디뎠다. 지하 깊은 곳, 이현도가 평생을 바쳐 지키려 했던 ‘금단의 영역’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곳에는 낡은 검 한 자루와, 수천 개의 붉은 눈을 가진 기괴한 기계 장치가 진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왔나, 그릇."

공명하는 목소리가 진혁의 고막이 아닌 뇌리에 직접 울렸다.

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손에 남은 마기를 쥐어짜며, 어둠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그릇 따위는 진작에 깨부쉈다. 이제부터는, 네놈들이 겪어보지 못한 파멸을 보여주지."

신서울 지하 4,000층, 마교의 기원이 잠들어 있는 심연(深淵)에서, 진짜 사냥이 시작되고 있었다. 진혁의 등 뒤로 거대한 마인의 그림자가 아른거리며, 북쪽 구구역을 향한 운명의 톱니바퀴가 거세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심연의 바닥이 갈라지며 정체불명의 보랏빛 오로라가 진혁을 집어삼키려 들었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 오로라를 향해 마검을 휘두르며 제 발로 심연의 중심부를 향해 뛰어들었다.

"기다려라. 그게 천마든, 시스템이든, 전부 짓밟아 주마."

진혁의 도약과 함께, 지하 공장 아바돈은 완전히 붕괴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남은 것은 심연을 향해 떨어지는 한 명의 지존뿐이었다.

공포는 진혁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를 기다리는 저 심연의 주인들이 맛보게 될 차례였다. 진혁은 눈을 감았다가 뜨며, 자신의 모든 감각을 '신천마신공'의 정점인 [공(空)]의 경지에 맞췄다.

더 이상 보조 장치는 없다. 오직 강진혁이라는 인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는 어둠을 가르고, 북쪽을 향해 뻗어 있는 거대한 차원의 통로를 향해 검을 내려쳤다.

콰아아앙!

차원의 벽이 갈라지며, 그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은 1,000년 전 천마의 비통한 통곡 소리였다. 진혁은 그 소리를 비웃으며, 어둠의 심장부를 향해 마지막 한 발을 내디뎠다.

이제, 진짜 천마가 누군지 증명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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