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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148화목차

제148화 강철의 폭풍, 해방의 서막

에이지스 게이트의 붕괴는 단순한 물리적 파괴가 아니었다. 그것은 신서울의 심장을 옥죄던 티타늄 그룹의 통제권이 영구적으로 상실되었음을 의미하는 거대한 신호탄이었다.

굉음과 함께 슬럼가의 하늘을 덮고 있던 붉은색 경계령이 꺼졌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구도심의 지평선 너머로, 기업의 압제에 신음하던 저항군 ‘니르바나’의 불빛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전원, 진격! 오늘이 아니면 영원히 노예다!”

송수연의 찢어질 듯한 외침이 무전기를 타고 슬럼가 전역으로 퍼졌다. 개조된 바이크와 폐기된 장갑차를 뜯어고쳐 만든 변칙적인 무장 차량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했다. 그 선두에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이미 신(神)의 영역에 발을 들인 사내, 강진혁이 있었다.

그는 달리지 않았다. 공중에 발을 내디딜 때마다 나노머신이 뿜어내는 마기가 대기를 압축했고, 그 반동으로 순식간에 수십 미터를 도약했다.

[SYSTEM INFO: 전투 보조 시스템 비활성화.]

[전술 모드 전환: ‘만상귀일(萬象歸一)’.]

시야 한구석에 떠 있던 차가운 푸른색 HUD는 이미 진혁의 의지에 의해 소멸한 지 오래였다. 이제 그에게 시스템의 계산 따위는 필요 없었다. 대신 20만 MW에 달하는 생체 코어의 폭발적인 출력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마기와 결합해, 세상 모든 움직임의 궤적을 직관적으로 읽어내고 있었다.

“타겟 확인.”

진혁의 눈앞에 티타늄 그룹의 최후 방어선인 ‘하부 군수 공장 지대’가 나타났다. 수백 대의 무인 자율주행 전차와 레이저 포탑이 일제히 총구를 돌려 진혁을 조준했다.

위이잉—!

수십 개의 레이저 조준선이 진혁의 전신을 붉게 물들였다. 하지만 그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오히려 마기를 끓어 올리며 정면으로 쇄도했다.

“저놈을 막아라! 코드 레드! 전 화력 집중!”

기업군 지휘관의 비명 섞인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공장 지대의 모든 포문이 불을 뿜었다. 하늘을 뒤덮는 플라즈마 탄환과 고주파 탄막. 일반적인 초인이라면 그 탄막 속에서 형체도 없이 분해되었을 것이다.

진혁은 그저 검을 뽑았다. 천마검이 허공을 가르자, 검끝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평범한 검강이 아니었다. 고밀도로 압축된 마기가 나노머신의 진동과 공명하며 주변의 공간 자체를 뒤틀어버리는 ‘천마일검(天魔一劍)’의 파편이었다.

“만법귀마(萬法歸魔).”

진혁의 나직한 읊조림과 함께 쏟아지던 모든 탄환이 허공에서 멈췄다. 아니, 멈춘 것이 아니라 진혁이 뿜어낸 마기의 흐름에 휘말려 궤도를 이탈했다.

콰아아앙!

탄환들이 자기들끼리 충돌하며 거대한 화염의 벽을 만들었다. 진혁은 그 불길 속을 유령처럼 통과했다. 그의 발끝이 지면을 박차자, 거대한 무인 전차 ‘티탄-G’의 상단 장갑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끄아악!”

전차 내부에서 쏟아져 나온 블랙 가드 대원들이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진혁의 손바닥이 그들의 단전을 향해 쇄도했다. 흡원천공이 발동됨과 동시에 그들의 몸속에 이식된 고성능 생체 코어의 에너지가 뱀처럼 진혁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출력 보정: 205,000 MW 돌파.]

넘쳐나는 에너지가 근육을 비틀고 뼈를 울렸다. 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지금 단순한 파괴를 넘어, 티타늄 그룹이 100년간 쌓아 올린 군사 기술의 정수를 자신의 마공으로 치환하고 있었다.

“송수연, 길을 열었다.”

진혁의 뒤를 따르던 니르바나의 전사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이 사흘 밤낮을 쏟아부어도 뚫지 못했던 방어선이 진혁이 지나간 자리마다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송수연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이크에서 내려 진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경외감과 함께 이 사내가 짊어진 거대한 고독이 비쳤다.

“진혁 씨…… 대체 어디까지 가려는 거야?”

진혁은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북쪽 지평선을 응시했다. 그곳은 심연이 시작되는 곳이자, 1,000년 전 천마의 흔적이 잠들어 있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끝을 봐야지.”

그가 다시 검을 휘둘렀다. 군수 공장의 중앙 제어실을 지키고 있던 거대 로봇 ‘아틀라스’가 반으로 갈라져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공장 지대의 전력이 차단되자 신서울의 거대한 마천루들이 일제히 깜빡거렸다. 도시의 지배자들이 누리던 불야성의 시대가 저물고 있었다.

진혁은 잿더미가 된 공장 지대를 뒤로하고, 다음 구역인 생체 병기 생산 시설 ‘아바돈’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진혁의 귓가에 환청처럼 낯선 목소리가 울렸다.

—‘그릇’이 제법 단단해졌구나.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시스템은 이미 파괴되었다. 하지만 놈들은 아직도 그를 쫓고 있었다. 마기가 소용돌이치며 주변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숨어있지 마라.”

진혁이 북쪽 하늘을 향해 차갑게 일갈했다.

“어차피 내가 너희를 찾아가서, 전부 찢어발길 테니까.”

그의 등 뒤로 거대한 마기의 날개가 펼쳐졌다. 그 모습은 신서울의 밤하늘을 수놓는 파괴의 화신 그 자체였다. 송수연과 저항군들은 그 광경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그것은 승리의 예감이 아니었다. 한 시대가 끝나고 신화가 강림하는 순간을 목격한 자들의 본능적인 두려움이었다.

진혁은 단 한 번의 도약으로 구름층을 뚫고 올라갔다. 그의 발아래 불타는 신서울이 개미집처럼 작게 보였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심연의 끝에 숨어 자신을 ‘그릇’이라 부르며 조종하려 했던 자들의 실체를 마주하는 것뿐이었다.

진혁의 주먹에 붉은 마기가 맺혔다. 그는 이제 도망치는 사냥감이 아니었다. 포식자가 되어 사냥꾼의 둥지를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의 등 뒤로 보이지 않는 거대한 붉은 눈들이 허공에 떠올랐다. 마치 진혁을 집어삼키려는 듯, 수천 개의 안광이 그를 조여왔다.

“나왔나.”

진혁은 빙긋 웃었다.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하늘을 가로질러 거대한 검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기다려라. 지금 그리로 간다.”

그가 도약한 곳은 ‘아바돈’. 그곳에서 진혁은 자신이 목격하게 될 끔찍한 진실이 훗날 자신을 어떤 운명으로 이끌지조차 모른 채 파괴의 화염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것은 단순히 기업을 무너뜨리는 복수가 아니었다. 천마(天魔)라는 이름의 전설이 현대의 기술과 고대의 마공을 융합하여 신(神)의 영역으로 격상되는 진화의 서사였다.

진혁이 ‘아바돈’의 철문을 발로 걷어차 부수는 순간, 그 안에서 들려온 것은 비명이 아닌 무언가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기괴한 기계음이었다. 그것은 진혁이 알고 있던 어떤 괴물보다도 더 거대하고 더 깊은 심연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Warning: 상위 개체 ‘아바돈’의 자아 각성.]

시스템의 경고는 없었다. 하지만 진혁의 본능이 경고했다. 이곳에 있는 것은 단순한 병기가 아니라고. 자신과 같은, 아니 자신을 넘어선 무언가의 ‘실패작’들이 잠들어 있는 무덤이라고. 진혁의 눈에 서슬 퍼런 살기가 서렸다.

“이제야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는군.”

그는 검을 고쳐 쥐었다.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는 수백 개의 붉은 눈들이 이제는 하나둘씩 진혁을 향해 조준을 시작하고 있었다.

진혁의 발치 아래로 흩뿌려진 파편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아바돈의 정문은 단순히 물리적인 철문이 아니었다. 티타늄 그룹이 수십 년간 슬럼가의 무고한 이들을 납치해 유전자와 기계 부품을 강제로 융합하던 ‘지옥의 입구’였다.

철문이 비틀리며 안쪽의 풍경이 드러났다. 그곳은 거대한 동굴처럼 깊고 어두웠다. 천장에는 수천 개의 유리 수조가 매달려 있었고, 그 안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들이 젤리 같은 액체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반은 기계이고 반은 살덩이인 비극적인 혼종들. 그들은 죽지 못한 채로 기업의 중앙 연산 장치인 ‘아바돈’에 영혼의 파편을 강제로 접속당하고 있었다.

“……쓰레기장인가.”

진혁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수조 속의 괴물들이 진혁의 마기를 감지한 듯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수천 개의 눈동자가 동시에 붉게 점멸했다.

위이이잉—!

공장 내부의 기계음이 고음으로 치솟았다. 수조들이 하나둘씩 박살 나며 기괴하게 개조된 생체 병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팔 대신 거대한 드릴이 달려 있거나, 척추 밖으로 튀어나온 케이블이 벽면에 박혀 전기 뱀처럼 꿈틀거리는 놈들.

[개체 식별: 티타늄 폐기물 402호.]

[위협 등급: 산술 불가.]

시스템의 경고음은 없었지만, 진혁의 뇌리에는 본능적인 데이터 분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저들의 골격 구조, 마기가 흐르는 불완전한 혈로, 그리고 기계 부품이 박힌 심장의 박동수까지.

“죽여라. 실험체 07호, 강진혁을 제거하고 자원을 회수하라.”

공장 내부의 스피커를 통해 이현도의 잔영이 남긴 듯한 기계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닥이 진동했다. 수십 마리의 병기들이 동시에 진혁을 향해 도약했다.

진혁은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는 그저 왼손을 가볍게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만상귀일(萬象歸一).”

공간 전체가 진혁의 의지에 따라 일그러졌다. 공장 내부의 모든 기계 부품, 전선, 그리고 병기들의 혈관에 흐르는 마기가 강제로 역류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병기들의 몸속에 박혀 있던 나노머신이 진혁의 마기에 침식되어 주인을 배신했다. 놈들의 근육이 팽창하고 뼈가 뒤틀렸다. 제어권을 잃은 병기들은 서로의 팔다리를 뜯어내고, 스스로의 몸에 박힌 무기를 뽑아 옆 동료의 가슴에 꽂아 넣었다.

아바돈 내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진혁은 그 피바람 속을 유유히 걸었다. 놈들이 달려들 때마다 진혁은 손가락 하나로 그들의 생체 코어를 파괴하거나, 흡원천공으로 놈들의 잔류 에너지를 강탈해 자신의 단전으로 갈무리했다.

[단전 출력: 210,000 MW 달성.]

에너지가 차오를수록 진혁의 정신은 더욱 맑아졌다. 이곳은 무덤이 아니었다. 진혁에게는 거대한 에너지 저장고이자, 자신이 완성해야 할 ‘신천마신공’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찾는 수련장이었다.

“이게 전부인가?”

진혁이 나지막이 읊조리며 공장 가장 깊은 곳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다른 병기들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원통형 수조가 우뚝 솟아 있었다. 그 수조 안에는 강진혁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사내가 눈을 감은 채 떠 있었다.

단,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그놈의 가슴팍에는 티타늄 그룹의 문장이 아닌, 1,000년 전 마교의 상징인 ‘천마(天魔)’의 문양이 검게 새겨져 있었다.

진혁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었다. 그는 직감했다. 놈은 단순한 복제체가 아니다. 이현도가 천마 프로토콜을 만들기 위해 생체 코어와 고대 마교의 유골 데이터를 가장 완벽하게 융합해 낸 ‘원본’에 가까운 그릇이었다.

“일어나라.”

진혁이 수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수조의 강화 유리가 쩍쩍 소리를 내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안에 있던 사내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순간, 아바돈 공장 전체의 전력이 붉은색에서 검은색으로 반전되었다. 공장 바닥에서부터 검은 안개가 치솟아 올라 진혁의 발목을 휘감았다.

“드디어…… 주인을 만나는군.”

수조 속의 사내가 눈을 떴다. 그 눈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끝없는 허무와 광기가 뒤섞인, 진정한 마(魔)의 눈빛이었다.

진혁은 그 사내를 보며 검을 고쳐 잡았다. 가슴 속에서 거대한 전율이 일었다. 이것은 싸움이 아니다.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 스스로가 만들어낸 또 다른 지옥을 정복하는 과정이었다.

“주인? 아니, 넌 내가 밟고 넘어설 계단일 뿐이다.”

진혁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아바돈의 천장을 뚫고 하늘 높이 솟구쳤다. 신서울 전체가 진혁의 마기에 눌려 비명을 질렀다.

이제, 진짜 천마가 누구인지 증명할 시간이 되었다. 복제된 어둠과 스스로 빛이 된 자의 격돌. 공장 전체가 굉음과 함께 붕괴하기 시작했다. 진혁은 찰나의 순간에 검을 휘둘렀다. 그것은 단순히 적을 베는 검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가르는 단절의 검이었다.

아바돈의 붉은 안개가 진혁의 검 끝에 닿는 순간, 수조 속의 사내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릇은 이미 깨졌다. 이제, 내용물을 확인할 시간이지.”

동시에 공장 전체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진혁은 그 폭발의 중심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마물을 향해 거침없이 발을 내디뎠다.

운명은 이미 예견된 파국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진혁은 그 파국마저 자신의 무공으로 재창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기다려라. 네놈의 기억부터 전부 뜯어내 줄 테니까.”

검과 검이 맞물리는 소리가 신서울의 밤하늘을 갈랐다. 그것은 새로운 마신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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