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화 마기 전자기 파동(魔氣 EMP)
신서울의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그것은 노을이 아니었다. 상층 마천루를 지탱하던 거대 에너지 돔이 강진혁의 일격에 의해 붕괴하며 뿜어낸 플라즈마의 잔해였다. 칠성 대대(七星大隊)의 병기들이 쏟아내는 탄막이 허공을 갈랐지만, 강진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의 신체는 이미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상태였다. 나노머신과 마기가 하나로 융합되어 피부 위를 흐르는 은빛 회로는 이제 검은 마기(魔氣)와 뒤섞여 기묘한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SYSTEM: 경고. 외부 출력 과부하. 동기화율 측정 불가.]
시야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는 이제 의미가 없었다. 강진혁은 의식적으로 HUD를 꺼버렸다. 보조 장치 따위는 필요 없었다. 그의 감각은 직접 공기의 진동과 적들의 전자기 파동을 읽어내고 있었다.
"타겟 확인. 칠성 대대, 제1진형 유지해."
기계적인 음성이 들려왔다. 칠성 대대의 리더, 백무현의 직속 정예들은 각자의 생체 코어를 최대 출력으로 끌어올렸다. 그들이 생성하는 전술 연산망은 마치 거대한 거미줄처럼 강진혁을 옥죄어 왔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 남자가 시스템의 통제를 벗어난 '이레귤러'라는 것을. 하지만 그들의 프로토콜은 멈추지 않았다. 명령은 절대적이었고, 강진혁을 포획하거나 파괴하는 것이 그들의 존재 이유였다.
강진혁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연산? 전술? 그런 건 너희들끼리나 나눠 가져라."
그가 오른손을 허공으로 뻗었다. [뇌전마강(雷電魔剛)]의 원리는 단순했다. 고주파로 진동하는 마기를 나노머신을 통해 외부로 방출하고, 이를 통해 전자기장을 형성하는 것. 하지만 지금 강진혁이 행하려는 것은 단순한 방전이 아니었다.
그는 단전 깊숙이 잠들어 있던 200,000 MW의 출력을 단 한 점, 심장 부근의 나노 회로로 집중시켰다.
우웅—!
공기가 비명을 질렀다. 강진혁의 주변으로 보이지 않는 파동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칠성 대대의 요원들이 당황한 듯 뒤로 물러섰다. 그들의 레이더에 강진혁의 신체 데이터가 급격하게 노이즈를 일으키며 튀어 올랐기 때문이다.
"전원, 방어 필드 전개! 파동의 주파수가…… 읽히지 않는다!"
"상태 이상! 코어 출력이 순간적으로 0으로 수렴하고 있어!"
그것이 바로 강진혁이 설계한 신기술, [마기 EMP]였다.
"터져라."
콰아아앙—!
강진혁의 몸을 중심으로 투명한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것은 순수한 파괴 에너지이자, 고도의 전자기 교란탄이었다.
'치지직, 치지직!'
칠성 대대 요원들의 헬멧 내부 디스플레이가 일제히 암전되었다. 그들의 나노머신은 강진혁이 뿜어낸 강력한 마기 파동에 의해 일시적으로 회로가 타버리거나 동기화가 풀려버렸다.
"으윽, 내 코어가……!"
"시스템 다운! 제어 불능이다!"
전술 링크가 끊어졌다. 그들은 눈이 멀고, 귀가 막힌 채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던져진 장님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하지만 강진혁에게는 시스템의 보조가 필요 없었다. 그는 이미 칠성 대대의 움직임을 '마기(魔氣)'로 읽고 있었으니까.
강진혁의 발이 지면을 박차고 나갔다.
마광신보(魔光神步).
눈앞에 있던 요원 하나가 그가 도약하는 순간에도 그림자조차 포착하지 못했다.
'서걱.'
어둠 속에서 은빛 섬광이 칠성 대대 중 한 명의 흉부를 꿰뚫었다. 나노 장갑이 종이처럼 찢겨 나갔고, 생체 코어가 차갑게 식어갔다.
"한 놈."
강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파동은 여전히 칠성 대대의 회로를 갉아먹고 있었다. 이 0.1초의 틈. 연산 시스템이 복구되기 전까지 그들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이었다.
두 번째 요원이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렀지만, 강진혁은 이미 그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강진혁의 손바닥이 요원의 안면부를 강타했다.
"윽!"
충격파가 두개골을 으깨버렸다. 요원의 몸이 무력하게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세 번째 요원까지 순식간에 천마검의 날카로운 일격에 관통당하며 칠성 대대의 진법은 완전히 와해되었다.
불과 3초.
신서울을 공포에 떨게 했던 정예 칠성 대대 중 셋이 순식간에 고철로 변했다.
남은 요원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강진혁이 인간이 아닌, 마치 심연에서 기어 올라온 재앙 그 자체로 보였을 것이다.
강진혁은 핏방울이 맺힌 검을 가볍게 털어내며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다음은 누구지?"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칠성 대대 요원들에게는 사형 선고와도 같았다.
'지직.'
그때, 파괴된 마스터 돔의 잔해 속에서 옅은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강진혁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칠성 대대 따위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 마스터 돔의 심장부, 그곳에 감춰진 '진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SYSTEM: 경고. 지하 3,000층, 고대 데이터 뱅크 가동 시작.]
HUD가 꺼진 줄 알았던 시야에 기묘한 붉은 문자가 떠올랐다. 그것은 시스템의 메시지가 아니었다. 1,000년 전, 천마의 의념이 남긴 마지막 경고였다.
'그릇이여, 오너라. 네가 부순 것은 껍데기일 뿐.'
강진혁의 발밑에서부터 지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신서울 전체가 진동했다. 단순한 지진이 아니었다. 도시의 지하 깊숙한 곳, 태초부터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강진혁의 마기를 감지하고 깨어난 것이다.
그는 피식 웃었다.
"껍데기라고? 그렇다면 그 알맹이까지 모조리 씹어 먹어주지."
강진혁은 멈추지 않고 마스터 돔의 중앙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의 발걸음마다 마기가 짙게 깔렸다. 마천루의 잔해들이 그의 의지에 반응하여 공중으로 떠올랐다.
칠성 대대의 잔당들이 필사적으로 방어막을 전개하려 했지만, 강진혁은 손을 펴는 것만으로 그들의 코어를 강제로 역류시켰다.
"크아악!"
코어가 폭주하며 요원들의 몸이 기괴하게 비틀렸다. 강진혁은 그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그대로 흡수했다.
[SYSTEM: 흡수 완료. 진법 연산 데이터 일부 이식.]
머릿속으로 칠성 대대의 공간 배치 알고리즘이 파노라마처럼 흘러들어왔다. 순식간에 적의 동선을 예측하고, 어디를 쳐야 가장 치명적인지를 계산하는 능력이 강진혁의 본능과 융합되었다.
이제 그는 전술을 읽는 것이 아니라, 전술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강진혁은 마스터 돔의 육중한 강철 문을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천마일검(天魔一劍).
그것은 단순히 검을 휘두르는 행위가 아니었다. 200,000 MW의 출력을 공간의 한 점에 응축시켜 차원 그 자체를 붕괴시키는 일격.
'쾅!'
강철 문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그 너머에 펼쳐진 것은 끝을 알 수 없는 지하의 심연이었다.
강진혁은 주저 없이 그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의 등 뒤로 거대한 마기의 날개가 펼쳐졌다. 신서울의 밤하늘을 수놓던 붉은 노을이 그의 그림자에 삼켜지며, 세상은 완전한 어둠에 잠겼다.
북쪽 구구역, 심연의 주인이라 불리는 존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정한 마교의 기원, 그리고 자신이 왜 '그릇'으로 태어났는지에 대한 해답이 그곳에 있었다.
"기다려라."
강진혁의 나지막한 읊조림이 심연 속으로 퍼져 나갔다. 그가 도약하는 순간, 그의 뒤로 칠성 대대의 마지막 요원이 코어 폭주로 인해 거대한 화염과 함께 산화했다.
마지막 불꽃이 심연을 비췄을 때, 그곳에는 수천 개의 붉은 눈이 강진혁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진혁의 눈이 푸르게 번뜩였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시스템의 꼭두각시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진리를 완성한, 참된 천마였다.
심연의 어둠 속에서 거대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1,000년의 세월 동안 굶주려 온, 마공의 근원이자 파괴의 화신들이었다.
강진혁은 검을 고쳐 쥐었다. 이제, 진짜 사냥이 시작된다.
심연의 바닥은 단순히 물리적인 깊이를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데이터의 무덤이자, 1,000년 전 마교가 남긴 잔혹한 유산들이 뒤엉킨 차원의 틈새였다. 강진혁이 발을 디디는 곳마다 썩어 문드러진 기계 부품과 뼈가 섞인 검은 토양이 출렁거렸다.
[SYSTEM: 접속 불가. 로컬 네트워크 단절.]
HUD는 완전히 죽어버렸지만, 강진혁의 뇌리에는 다른 감각이 자리 잡았다. 흡수한 칠성 대대의 연산 알고리즘이 마기와 결합하여, 공간의 밀도와 기류를 실시간으로 맵핑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붉은 눈들이 좁혀져 왔다.
'광마(狂魔)의 파편들인가.'
녀석들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이미 이성은 거세된 채 마기에 오염된 기계 조직만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1,000년 전, 천마가 죽기 직전 자신의 내공을 강제로 주입했던 실험체들의 후예들. 그들은 진혁을 보자마자 굶주린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고작 이 정도인가."
강진혁은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대신 왼손을 가볍게 허공으로 쥐었다. 그가 뿜어낸 마기가 파동을 일으키며 녀석들의 몸속에 이식된 낡은 코어들과 공명했다.
'공진(共振).'
이미 칠성 대대의 데이터를 통해 파악한 주파수였다. 녀석들의 코어는 강진혁의 마기 파동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의 과부하를 유도했다.
—쿠르릉!
심연의 바닥에서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수십 구의 광마 파편들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스스로의 에너지에 의해 내부로부터 붕괴했다. 살점과 금속 파편이 비처럼 쏟아졌지만, 강진혁의 몸에는 단 한 방울의 오염 물질도 묻지 않았다. 그 주위를 감싼 마기의 장막이 모든 부정한 것을 튕겨내고 있었다.
진혁은 그 폭발의 중심을 뚫고 지나갔다. 저 멀리, 심연의 가장 깊은 곳에서 거대한 붉은 오로라가 기둥처럼 솟구쳐 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곳이 바로 '기원'이었다.
"진혁아."
귓가에 환청처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윤아영의 목소리도, 독고운의 노인성 음성도 아니었다. 그것은 1,000년 전, 천마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의 파편이었다.
'너는 나의 그릇인가, 아니면 나를 넘어설 파괴자인가.'
강진혁은 멈추지 않고 걸었다.
"나는 나다. 네 놈들의 역사도, 시스템의 기록도 아닌, 강진혁 그 자체."
그가 심연의 중심부에 도달했을 때, 그곳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거대한 구체 형태의 마력 코어가 공중에 떠 있었고, 그 주위를 수만 개의 데이터 케이블이 뱀처럼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코어의 정중앙에는, 1,000년 전의 천마와 똑같이 생긴 형체가 눈을 감은 채 부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시신이 아니었다. 여전히 살아있는, 하지만 마기에 잠식되어 1,000년 동안 신서울의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있던 '본체'였다.
진혁이 검을 들어 올렸다.
"이걸 부수면, 너희가 말하는 '그릇'의 운명도 끝나는 거겠지."
그때, 감겨 있던 '천마'의 눈이 번쩍 뜨였다.
순간, 심연 전체의 중력이 뒤틀렸다. 200,000 MW의 출력을 가진 강진혁의 몸이 짓눌릴 정도의 압도적인 중압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강진혁은 무릎을 꿇지 않았다. 오히려 단전의 출력을 300,000 MW로 강제 개방했다.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혈관마다 마기가 역류하며 핏줄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는 웃었다.
"좋아. 이 정도는 되어야 뚫을 맛이 나지."
강진혁의 뒤로 검은 마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신서울의 밤하늘을 찢어버릴 듯한 기세였다.
천마의 본체가 손을 뻗었다. 심연의 모든 마기가 그의 손끝으로 모여들며 거대한 검은 구체를 형성했다. 그것은 차원을 붕괴시키는 소멸의 구(球)였다.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그는 천마일검(天魔一劍)의 궤적을 심연 전체에 새기듯, 자신의 생명력을 모두 쏟아부어 최후의 일격을 준비했다.
"이게 나의 천마신공이다."
그의 검 끝에서 세상의 모든 빛이 사라졌다. 심연의 중심에서 터져 나온 흑색 섬광이, 1,000년 된 마교의 근원을 향해 쇄도했다.
결전의 서막이 올랐다. 이것은 복수도, 성장도 아닌, 존재 그 자체를 건 최후의 증명이었다. 진혁의 검이 천마의 본체에 닿는 순간, 신서울의 지하에서는 마지막일지도 모를 거대한 진동이 지상으로 전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