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칠흑의 마검(魔劍) 제련
화아아아악-!
밀조 정비소의 공기 청정기를 풀가동했음에도 대기 중에는 미세한 금속 쇳가루와 타오르는 플라스마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작업대 위, 섭씨 3,000도를 가리키던 고열 레이저 용해로의 불꽃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챙강-!
천우진이 두꺼운 내열용 방호 장갑을 던져 버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의수 로봇 관절 부위에서 붉은빛의 과열 경고등이 틱틱 소리를 내며 깜빡거렸다.
"휴우…… 미친 새끼."
천우진은 한쪽 안대 너머로 작업대 중앙을 응시했다. 그의 입가에는 황당함과 경외감이 뒤섞인 쓴웃음이 걸려 있었다.
"내 인생에 에너제틱 다이아몬드 티타늄과 순수 고대 마교 유골의 탄소 결정을 융합해 무기를 만드는 날이 올 줄은 몰랐어. 강진혁, 네놈 심장 안에 있는 그 생체 코어, 정체가 대체 뭐야? 출력이 안정되는 속도가 괴물 수준이야."
그의 말처럼 작업대 위에 누워 있는 것은 단순한 '검'이 아니었다.
전체 길이는 약 4자(약 120cm). 칠흑처럼 어두운 도신은 빛을 반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변의 광원을 빨아들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도신의 표면에는 미세한 은빛 회로가 흐르고 있었는데, 그것은 강진혁의 목과 손목에 새겨진 개조 회로와 완벽하게 동기화되어 있었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HEAVENLY DEMON PROTOCOL) v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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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기 데이터 분석: [천마검 (天魔劍 - 프로토타입)]
■ 소재: 초고주파 공진형 다이아몬드 티타늄 + 마교 유골 탄소 입자
■ 마기 전도율: 98.7% (최상급)
■ 특수 능력:
- [마기 공진(魔氣共振)]: 검을 쥐는 자의 내공 출력을 15% 증폭.
- [자가 나노 회복]: 나노머신을 통한 도신 자동 재생 및 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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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용 HUD로 떠오른 상태창을 확인하며 강진혁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스으윽…….
그의 손바닥이 천마검의 손잡이에 닿는 순간,
웅장한 진동음과 함께 단전에서 치솟은 짙은 흑마기(黑魔氣)가 손바닥의 혈도를 타고 검신으로 폭발하듯 뻗어 나갔다.
콰아아앙-!
정비소 안의 공기가 한 차례 찌그러졌다.
"크윽……!"
천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눈앞의 소년이 뿜어내는 기운은 단순한 무인의 내공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계의 냉혹한 연산력과 천 년 전 마교의 살육 본능이 완벽하게 융합된, 문자 그대로 '파멸의 의지'였다.
"좋군."
강진혁의 낮고 무거운 음성이 정비소를 울렸다.
그의 흑안이 검붉은 광채를 발하며 천마검의 도신을 훑었다. 손에 쥐었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검은 마치 그의 신경계와 직접 연결된 또 하나의 의수나 다름없었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나노머신이 검의 미세한 금속 격자와 결합하며 완벽한 일체감을 형성했다.
[경고: 사용자 단전 부근 마기 동기화율 89.1% 돌파.]
[나노머신 회로와 천마검 간의 결속이 안정화됩니다.]
[2단계 '마기융합'의 심화 효율이 20% 상승합니다.]
설화의 무기질적인 시스템 보이스가 귓가를 스쳤지만, 진혁은 그것을 의식적으로 무시했다.
시스템은 보조 도구일 뿐이다. 지금 이 검을 쥐고 있는 것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오롯이 강진혁 자신의 의지였다.
"고맙다, 천우진."
진혁이 검을 가볍게 허공으로 휘둘렀다.
파식-!
바람이 찢어지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단지 검이 지나간 자리의 공간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허공에 잔상이 남았다. 물리적 저항을 완벽하게 소모시킨 초고주파 공진의 위력이었다.
천우진은 혀를 내두르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고마워할 거 없다. 내 손으로 직접 티타늄 놈들 목을 따지 못하는 한풀이라고 생각해라. 허나, 진혁아."
"말해라."
"지금 이 순간에도 티타늄 그룹 본사에서 가만히 있진 않을 거다. 네가 하층가 4구역에서 벌인 일, 그리고 신마교의 거점을 박살 낸 데이터는 이미 그 거대한 메인프레임에 전부 전송됐어. 특히 네가 흡수한 코어들의 출력이 비정상적으로 튀는 걸 보고받은 회장 진무극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이 가냐?"
천우진의 안대 안쪽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그 늙은이는 완벽한 '그릇'에 미쳐 있는 광인이야. 네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 녀석은 더 기뻐하며 네 목을 채갈 준비를 할 거다."
"알고 있다."
진혁은 천마검을 허리춤의 특수 홀스터에 고정하며 차갑게 말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찾아가는 중이다."
"하! 대단한 배짱이군. 하지만 이번에 오는 놈들은 저번에 네가 상대했던 찌꺼기들과는 결이 다를 거야. 블랙 가드 본대뿐만 아니라…… 어쩌면 그 년이 움직일 수도 있어."
"그 년?"
"진세린. 티타늄 그룹의 후계자이자, 특수전 후사대를 이끄는 미친 검귀지. 그녀가 착용한 3세대 전신 전투 수트의 출력은 네가 상대한 누구보다 높을 거야."
진혁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진세린. 티타늄 그룹의 정점에 선 자의 혈육이자, 언젠가 부서뜨려야 할 거대한 벽 중 하나.
하지만 진혁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마기가 역류하며 심장을 거칠게 두드렸다.
두근- 두근-!
강해졌다.
체계적으로, 그리고 압도적으로.
생체 코어 출력 4,800 MW를 넘긴 지금의 자신이라면, 그 어떤 철갑살인병기가 밀려와도 베어 넘길 수 있다.
바로 그때였다.
삐- 삐- 삐-!
구석의 낡은 철제 모니터에 불그스름한 경고등이 요란하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정비소 전체의 전력망이 미세하게 떨리며 조명이 흔들렸다.
"이거 뭐야?"
작업대 구석에서 정비 도구를 정리하던 윤아영이 급하게 자신의 단말기를 두드리며 뛰어왔다. 그녀의 분홍빛 숏컷 머리가 거칠게 흔들렸다.
화면 위로 신서울 하층가의 3차원 지도와 함께 수많은 적색 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진혁 씨! 위성 네트워크 패킷이 급격하게 요동치고 있어요! 하층가 4구역 외곽의 공중 터널 전역이 실시간으로 봉쇄당했습니다!"
"봉쇄?"
"네! 티타늄 그룹의 사병들이 아니에요. 이건…… 군용 전술 네트워크야! 열감지 스텔스 드론 수십 대가 이 주변 상공을 완전히 덮쳤어요. 그리고 그 아래로……."
윤아영의 얼굴이 사정없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손가락을 빠르게 놀려 화면의 한 지점을 확대했다.
고화질로 줌인된 화면 속에는, 거대한 장갑 수송 차량 수십 대가 하층가의 좁은 골목을 밀어버리며 진입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차량의 표면에는 티타늄 그룹의 상징인 은빛 로고와 함께, 피를 상징하는 붉은색 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TARGET IDENTIFIED: 티타늄 그룹 제4특수전술 부대 '블랙 실드']
[지휘관: 대장 드레이크]
[경고: 고출력 레일건 및 플라즈마 포격 장비 탑재 완료.]
천우진이 담배꽁초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짓씹듯 말했다.
"빌어먹을…… 드레이크 저 미친 불곰 새끼가 직접 움직였군. 블랙 가드 선발대 수준이 아니야. 이 구역 전체를 통째로 지도에서 지워버릴 작정이야."
정비소의 철제 벽면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이미 지상 위로는 중장갑 차량의 궤도 소리와 살인병기들의 철컥이는 장갑 마찰음이 귓가를 때리고 있었다.
위이이잉— 쾅!
정비소 바로 바깥 골목에서 섬광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강진혁!"
윤아영이 불안한 눈빛으로 진혁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진혁의 얼굴에는 흔들림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챙강-!
진혁이 허리춤에서 칠흑의 천마검을 완전히 뽑아 들었다.
검신을 따라 흐르는 은빛 회로가 어둠 속에서 푸른빛과 칠흑의 마기를 동시에 내뿜으며 강렬하게 요동쳤다.
"잘 됐군."
진혁이 정비소의 굳게 닫힌 철제 출입구를 바라보며 낮게 뇌었다.
"찾아다닐 필요도 없겠어. 스스로 내 칼의 날을 시험하러 기어들어 온 모양이니까."
콰아아앙-!
정비소의 거대한 정문이 폭발과 함께 안쪽으로 찌그러지며 박살 났다.
자욱한 매연과 먼지 속에서, 수십 정의 레일건 총구가 빛을 번뜩이며 진혁의 붉은 눈동자를 조준했다.
"목표물 시인. 하층가 반란 분자, 실험체 07호 강진혁 사살 작전을 개시한다."
찌르듯 차가운 기계음이 매연을 뚫고 울려 퍼졌다.
정비소의 부서진 문틈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인간의 형상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한 철갑의 거인들이었다.
티타늄 그룹 제4특수전술 부대, 일명 '블랙 실드'.
일반적인 생체 코어 이식자 따위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최정예 군사 개조체들이다. 그들이 장착한 4세대 전술 수트는 중기관총의 난사에도 끄떡없는 고밀도 나노 장갑과, 대전차 레일건을 가볍게 운반할 수 있는 출력 보정 장치를 탑재하고 있었다.
그 최선두에 선 거구의 사나이, 대장 드레이크가 거대한 플라즈마 캐넌을 어깨에 메며 씩 웃었다.
"하하하! 지독하게도 도망 다니던 쥐새끼가 겨우 요런 구멍가게에 숨어 있었나? 회장님께서 네놈 심장을 통째로 들고 오라시더군. 부위별로 곱게 썰어주마!"
드레이크의 입가에 잔인한 조소가 걸렸다.
그의 뒤로 전개된 이십여 명의 블랙 실드 대원들이 일제히 무기를 치켜들었다.
슈우우웅— 팟!
레일건의 축전 소리가 정비소의 공기를 잘게 찢었다.
방아쇠만 당겨지면 이 작은 정비소 전체가 플라즈마 불길과 고주파 탄환에 휩싸여 원자 단위로 분해될 터였다.
윤아영이 새된마저 삼키며 뒤로 물러났다.
천우진 역시 의수 관절을 바득바득 갈며 자신의 은닉용 중화기로 손을 뻗으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한 발 빠르게, 강진혁의 몸이 허공으로 쏘아 올려졌다.
콰아아앙-!
그가 서 있던 바닥이 폭발적인 반동으로 완전히 함몰되었다.
생체 코어 출력 4,800 MW의 전력이 단전에서 폭발하며 나노머신 회로를 전신으로 밀어 올렸다.
[SYSTEM INFO: 마광신보(魔光神步) 전개.]
[이동 속도 한계치 초과. 주변 공간 왜곡 발생.]
번쩍!
빛의 궤적이 일그러졌다.
진혁의 잔상이 정비소 안을 가득 채우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최선두에 있던 블랙 실드 대원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뭐……?!"
드레이크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기도 전이었다.
챙강-!
강진혁의 손에 들린 칠흑의 천마검이 우아하면서도 무자비한 궤적으로 휘둘러졌다.
마기와 초고주파 공진이 결합된 검강은 티타늄 그룹이 자랑하는 최첨단 4세대 전술 장갑조차 두부처럼 부드럽게 양단해 버렸다.
스걱-!
"크아아악—!"
비명조차 터질 새 없었다.
대원의 상체가 사선으로 깔끔하게 쪼개지며 튀어 오른 붉은 피와 기계 부품의 스파크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검을 휘두른 진혁의 눈동자는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칠흑 같은 흑마기가 안구를 집어삼킨 채, 사방의 적들을 차가운 살의로 훑고 있었다.
[적중 데이터 분석 완료.]
[흡원천공(吸元天功) 강제 연동.]
지이잉—!
단전의 코어가 미친 듯이 회전하며, 방금 베어낸 적의 생체 코어에서 잔류 에너지를 강탈하기 시작했다.
상대의 몸속에 흐르던 3세대 나노머신 회로가 진혁의 혈관을 타고 역류해 들어왔다. 온몸의 세포가 불타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지만, 진혁의 표정은 오히려 더욱 태연했다.
[현재 생체 코어 출력: 5,100 MW 돌파.]
[나노머신 동기화율: 87.5%.]
[2단계 '마기융합'의 심화 경지가 한계치를 갱신합니다.]
"이 자식……! 전원 사격해! 저 새끼를 원자도 남기지 말고 갈아버려!"
드레이크의 고함과 함께, 블랙 실드 대원들이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쿠구구구구— 쾅! 쾅! 쾅!
수십 정의 레일건과 플라즈마 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정비소의 벽면이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증발하며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쇳가루와 화약 연기가 뒤섞인 폭풍이 진혁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폭연 속에서 들려온 것은 신음이 아니었다.
촤르륵-!
[천마무상체(天魔無相體) 발동.]
[나노머신과 마기가 결합하여 표면 장갑을 형성합니다.]
플라즈마 포화의 중심, 폭풍의 눈 속에서 진혁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그의 전신을 감싼 칠흑의 마기 실드는 레일건의 초고속 탄환마저 튕겨내거나 궤도를 비틀어버리고 있었다. 옷자락은 조금 그슬렸을지언정, 그의 육체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크…… 괴물 같은 놈!"
드레이크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거대한 플라즈마 캐넌의 방아쇠를 직접 당겼다.
푸른색의 고출력 플라즈마 광선이 공간을 태우며 진혁의 심장을 향해 직격했다.
피할 수 없는 거리, 눈앞을 하얗게 채우는 치명적인 일격.
그 순간, 진혁의 입가에 짙은 냉소가 맺혔다.
"느리다."
쉬익-!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천마검을 거꾸로 쥐고 전신의 마기를 검신에 한데 짓이겼다.
[만법귀마(萬法歸魔)]의 연산식이 뇌리를 스치며 플라즈마 광선의 공진 주파수를 완벽하게 파악해 냈다.
파식!
칠흑의 검강이 플라즈마 광선의 중심축을 정확히 가격했다.
콰아아앙-!
에너지가 충돌하며 발생한 거대한 충격파가 주변의 장갑 차량들을 종잇장처럼 날려버렸다.
빛이 걷힌 자리, 진혁은 플라즈마 광선을 정중앙에서 두 쪽으로 가른 채 드레이크의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커헉……?!"
드레이크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가 레일건을 들어올려 반격하려 했지만, 이미 그의 목덜미에는 서늘한 검신이 닿아 있었다.
"티타늄 그룹의 개들이 할 수 있는 건 고작 이 정도인가."
진혁의 낮고 서늘한 음성이 드레이크의 고막을 때렸다.
"회장 진무극에게 전해라."
슥— 툭.
"다음 차례는 그 늙은이의 목숨이라고."
챙강-!
도신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 제4특수전술 부대장 드레이크의 거대한 철갑 목이 그대로 꺾이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화염이 춤추는 하층가의 밤하늘 아래, 칠흑의 마검을 쥔 강진혁의 시선이 마천루 꼭대기를 향해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