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개조 무도인 천우진
하층가 4구역의 공기는 항상 탄 냄새와 폐유의 비린내로 절어 있었다.
구식 네온사인이 깜빡이는 골목의 끝, 폐기된 대형 화물 트레일러를 개조한 거대한 철제 가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출입구에는 ‘천(天) 테크놀로지’라는 낡은 간판이 삐뚤어지게 걸려 있었고, 그 밑으로 용접 불꽃이 튀는 파란 섬광이 맹렬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저기야. 천우진이라는 영감탱이가 처박혀 있는 곳."
윤아영이 낡은 후드 티셔츠의 모자를 깊게 눌러쓰며 입술을 깨물었다.
"정보는 확실해? 티타늄 그룹 특수공작대 팀장 출신이 이런 하층가 구석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강진혁의 흑안이 화물 트레일러를 응시했다.
그의 시야 한구석, [천마 프로토콜]의 은빛 HUD가 미세하게 떨리며 전방의 열 감지 스캔을 띄웠다. 트레일러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정상적인 고주파 에너지와 기계적 맥박 소리가 진혁의 귓가를 울렸다.
"퇴직금 대신 티타늄 그룹의 블랙 가드에게 한쪽 눈이랑 팔다리를 압수당했거든. 그 뒤로 이 바닥에서 숨어 지내면서 기업 놈들이 버린 파츠랑 군용 무기들을 밀조(密造)하면서 살고 있어. 성깔은 더럽지만, 티타늄이라면 치를 떨 정도로 증오하는 양반이야."
윤아영의 설명에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증오. 그라운드 제로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공유하는 가장 확실하고 단단한 유대감이었다.
쾅—!
진혁이 두꺼운 철제 문을 가볍게 밀어젖히자, 안에서 거친 소음과 함께 매캐한 연기가 확 밀려왔다.
"영업 끝났어, 꼬맹이야. 오늘은 밀조용 플라즈마 코어도 다 떨어졌으니까……."
거칠게 소리치던 목소리가 뚝 끊겼다.
정비소 안쪽, 거대한 기계 팔을 정비하던 사내가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기 때문이다.
천우진.
나이 마흔다섯. 한쪽 눈에는 붉은빛으로 회전하는 군용 타겟팅 안대가 박혀 있었고, 상체는 온통 사이보그 의수와 군데군데 뜯겨 나간 티타늄 피부 조직이 노출되어 있었다.
그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일어나는 순간, 정비소 안의 공기가 급격히 무거워졌다. A급에 준하는 생체 코어 출력이 사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전직 특수공작대 팀장이라는 타이틀은 허황된 것이 아니었다.
"이 냄새는……."
천우진의 붉은 안대가 진혁의 목과 손목을 스쳤다. 진혁의 피부 아래로 흐르는 은빛 회로 선, 그리고 단전 부근에서 억눌려 있는 거대한 마기의 파동을 감지한 것이다.
천우진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티타늄 그룹의 실험체 냄새군. 그것도 아주 위험한 녀석이야. 네 녀석, 단전에 뭘 처넣은 거냐? 그 지독한 기운은……."
"내 몸에 뭘 넣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겠지."
진혁이 천천히 걸어가 정비소 바닥에 철컥 소리가 나도록 무언가를 던졌다.
쿵.
그것은 조금 전에 격파한 블랙 가드 선발대의 기계 팔과 핵심 코어였다. 아직도 잔류 전류가 파지직 소리를 내며 스파크를 튀기고 있었다.
천우진의 눈이 커졌다.
블랙 가드의 3세대 전술 코어. 일반적인 하층가 갱스터들은 이름조차 구경하기 힘든 고가의 군용 물품이었다.
"이걸 어디서 났지?"
"네가 그렇게 그리워하던 티타늄 그룹의 개들이 하층가로 기어 내려왔길래, 몇 개 부수고 뜯어왔지."
진혁이 냉소하며 천우진의 코앞까지 다가섰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치며 미세한 기류가 일렁였다. 천우진은 진혁의 눈빛에서 일말의 흔들림도 보지 못했다. 그것은 공포나 탐욕이 아니라, 오직 차갑고 철저한 살의와 지배욕이었다.
"간덩이가 배밖으로 나왔군. 블랙 가드의 본대가 움직였다는 건 신서울 상층부의 이사회가 너 하나를 잡으려고 비상 사태를 선포했다는 뜻이야. 그런 놈을 내 발로 찾아와?"
천우진이 씁쓸하게 웃으며 의수로 자신의 턱을 쓸어내렸다.
"내가 너한테 뭘 도와주면 되겠나, 실험체 양반."
"검."
진혁이 낮게 읊조렸다.
"검?"
"지금 내 마기 출력을 버텨내지 못하고 있어. 내가 가진 나노머신과 이 고대 마공의 회로를 온전히 담아내면서, 티타늄 그룹의 최고급 티타늄 아머를 종이장처럼 찢어버릴 수 있는 무기. 그게 필요하다."
천우진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번뜩였다.
그는 무기 제작자였다. 평생을 군용 장비와 살상 병기를 다뤄온 광인이었다. 진혁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기의 파동, 그리고 그가 뿜어내는 출력이 일반적인 인간의 육체를 아득히 초월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차렸다.
"흐음…… 내 마기의 출력을 감당할 검이라. 하층가 구석탱이에서 굴러다니는 철싸라기로는 어림도 없지. 잘못하면 네가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검이 먼저 녹아내릴 거다."
"그래서 네게 온 거다. 천우진. 네가 티타늄 그룹 시절에 비밀리에 설계했던 미완성 합금 데이터가 있다고 들었는데."
천우진의 얼굴에 미묘한 긴장감이 스쳤다. 그것은 철저하게 은폐된 자신의 과거이자, 이 정비소 구석에 숨겨둔 유일한 자존심이었다.
"……정보원 하나는 기가 막히게 둬서 좋겠군. 그래, 그 합금은 내 전 재산이나 다름없다. 티타늄 그룹의 최고급 장갑도 뚫어버릴 수 있는 [초고주파 공진형 다이아몬드 티타늄 합금]. 하지만 그걸 제련하려면 엄청난 열원과 에너지가 필요해. 하층가 전력으로는 불가능하다고."
그때, 진혁의 등 뒤에서 윤아영이 씩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건 걱정 마, 영감탱이. 내가 4구역 수력 발전소의 메인 터빈을 오버클럭해서 우릴 향하는 전력을 전부 이 정비소로 우회시켜 놨으니까. 발전소 터빈이 타버리기 전까지는 신서울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강력한 고압 전류를 쓸 수 있을걸?"
천우진은 윤아영과 진혁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내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 미친 녀석들. 아주 작정하고 티타늄 그룹의 뒤통수를 갈기러 왔구만."
천우진이 의수를 들어 정비소 안쪽의 두꺼운 철판 벽을 탁탁 두드렸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HEAVENLY DEMON PROTOCOL) v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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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용자: 강진혁 (실험체 07호)
■ 경지: 2단계 [마기융합 (魔氣融合)] 심화
■ 생체 코어 출력: 4,200 MW (상승 중)
■ 특이사항: 전직 군사 무기 제작자 '천우진'과의 접촉 완료.
■ 알림: 고대 마공과 현대 제련 기술의 융합 조건 달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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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내 손으로 직접 만든 최악의 흉기를 네놈 손에 쥐여주지. 대신 조건이 있다."
"말해라."
"그 검으로 티타늄 그룹의 회장실 문짝을 날려버려. 그리고 그 늙은이의 목을 칠 때, 이 천우진이 만든 검이었다고 전해라."
천우진의 붉은 안대가 번뜩이며 차가운 살기를 뿜어냈다.
진혁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낮게 속삭였다.
"그렇게 해주마. 그 이상도 가능하지."
쾅-!
정비소의 거대한 화물 문이 닫히고, 발전소의 오버클럭된 전력이 정비소 안의 용접로와 제련기를 향해 폭발적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티타늄 그룹의 블랙 가드 본대가 하층가 4구역의 경계를 넘어 진혁의 위치를 특정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30분.
그 짧은 시간 동안, 마공과 현대 군사 과학이 결합된 통칭 [천마검(天魔劍)]의 제련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거대한 제련로의 입구가 붉게 달아오르며 주변의 공기를 순식간에 삼켰다.
"좋아, 시간낭비할 겨를이 없다. 꼬맹이, 전력 공급 페이스 유지해! 조금이라도 튀면 합금 비율이 망가져서 폭발하니까."
천우진의 외침과 동시에 정비소 천장에 매달린 배관들이 파르르 떨렸다. 윤아영이 수십 개의 모니터가 박힌 단말기를 두드리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알았어, 영감탱이! 4구역 메인 터빈 출력 120% 고정이야. 앞으로 15분 버티면 발전소 코어가 녹아내릴 테니까 그전에 끝내!"
지이익-! 콰광!
윤아영의 조작에 따라 정비소 지하에 매립된 고압 케이블에서 푸른빛의 플라즈마 전류가 튀어 올랐다. 천우진은 의수로 개조된 거대한 기계 집게를 잡고 제련로 안으로 섭씨 3천 도가 넘는 특수 티타늄 원괴를 밀어 넣었다.
그것은 티타늄 그룹이 군사 기밀로 숨겨두었던 최상급 합금이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쇳덩이 같았지만, 그 내부에는 충격을 받을수록 결속력이 강해지는 나노 결정 구조가 심어져 있었다.
"강진혁!"
천우진이 핏발 선 눈으로 진혁을 불렀다.
"네 단전에 처박힌 그 지독한 기운. 마기(魔氣)라고 했던가? 그 에너지를 이 제련로 안으로 집어넣어라. 그냥 쑤셔 넣는 게 아니야. 네 혈관 속을 도는 운기조식의 궤적 그대로, 쇳물과 동기화시켜야 한다!"
진혁은 망설임 없이 제련로의 투시창 앞으로 다가섰다.
스읍— 후우—
진혁이 눈을 감고 깊은 호흡을 내뱉자마자, 그의 심장 부근에서 웅장한 진동이 울렸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동기화 시작.]
[사용자 생체 코어 출력 4,500 MW 돌파.]
[경고: 마기 주입량 과부하 위험 - 융합 제어 루틴 가동.]
진혁의 손바닥에서 칠흑 같은 암무(暗霧)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었다. 수많은 적의 생체 코어와 나노머신을 흡수하며 정제된, 살벌할 정도로 날카로운 파괴의 에너지였다.
콰아아앙!
진혁이 손바닥을 제련로의 강화 유리창에 갖다 대는 순간, 제련로 내부에서 요동치던 쇳물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검붉은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크……! 이 미친 출력이냐……!"
천우진은 자신의 의수 관절이 과열로 인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도 모른 채 이를 악물었다. 진혁이 뿜어내는 마기는 단순한 물리적 에너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만물의 기혈을 뒤틀고 기계를 오염시키는 고대 마교의 절대적 의지 그 자체였다.
쇳물이 끓어오르다 못해 비명을 지르는 듯한 고주파가 정비소를 가득 채웠다.
[만법귀마(萬法歸魔)]의 연산식이 진혁의 시야를 빠르게 스쳤다. 천우진의 다이아몬드 티타늄 합금 구조와 자신의 마기 회로가 어떻게 맞물려야 가장 완벽한 공진을 일으킬 수 있는지, 시스템이 실시간으로 최적의 값을 도출해 냈다.
'이 모양새라면…….'
진혁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그는 단순히 검을 단단하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다. 검의 날과 몸체 전반에 나노머신 회로를 실시간으로 각인시켜, 자신이 휘둘릴 때마다 마기가 허공을 찢고 나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려 하고 있었다.
"영감, 더 강하게 달궈!"
"크하하! 죽기 아니면 살기지!"
천우진이 제련로의 출력을 극한까지 밀어붙였다.
파직, 파지직-! 정비소의 전등이 터져 나가며 사방이 어둠에 잠겼다. 오직 제련로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붉은 광기 어린 빛만이 세 사람의 얼굴을 비추었다.
잠시 후.
ㅡ쾅!
제련로의 상단 해치가 튕겨 나가며 거대한 폭음과 함께 압축된 열기가 사방으로 터져 나왔다.
천우진이 재빨리 기계 팔을 휘두르며 제련로 안의 형체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길고 날카로운 검신을 가진 한 자루의 검이었다.
겉보기에는 빛을 완전히 흡수하는 듯한 칠흑 같은 검은색이었지만, 검신을 따라 미세하게 흐르는 은빛 회로와 검붉은 기운이 마치 숨을 쉬듯 맥동하고 있었다.
[SYSTEM INFO: 신규 무기 데이터 생성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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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칭: [천마검 (天魔劍) - 프로토타입]
■ 등급: 특수 개조형 (고대 마공 융합)
■ 특성:
- 마기 전도율 98.7%
- 고주파 다이아몬드 티타늄 합금 (내구도 S급)
- 자가 나노머신 회복 및 마기 압축 기능 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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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 검을 진혁에게 내밀었다. 그의 의수에서 하얀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잡아봐라, 실험체 양반. 그 검이 네 손을 버텨낼 수 있을지, 아니면 네 손목을 잘라먹을지."
진혁은 천천히 손을 뻗어 [천마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치익-!
진혁의 손바닥에 흐르던 나노머신과 검신에 각인된 은빛 회로가 하나로 맞물리며 강렬한 스파크가 튀었다. 손에 쥐는 순간, 진혁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검을 통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감각이 엄습했다.
마치 검이 자신의 팔의 연장선이 된 듯한 완벽한 동기화.
쒬―!
진혁이 가볍게 허공을 내리긋자, 검광조차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잔상이 허공을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탁 트인 공간이 아니었음에도, 검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진공의 파열음이 정비소의 철제 벽에 깊은 생채기를 새겨넣었다.
"……이런 미친."
천우진은 자신이 만든 검의 위력을 보고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자신이 설계했지만, 인간의 육체와 마기가 이 정도로 완벽하게 결합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 윤아영이 단말기를 두드리며 급박하게 외쳤다.
"야, 진혁!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야. 티타늄 그룹 블랙 가드 본대야. 신마교 거점 파괴를 확인하고, 사령관 백무현의 친위대가 지금 당장 이 구역 골목으로 진입했어! 경호 프로토콜 활성화율이 90%를 넘었다고!"
진혁은 차갑게 가라앉은 흑안으로 천마검을 쥐고 있는 손을 가볍게 쥐었다 폈다.
단전에서 치솟는 출력은 이미 4,800 MW를 넘어 5,000 MW를 향해 치달아가고 있었다. 2단계 '마기융합'의 심화 단계.
진혁이 정비소의 찌그러진 철제 문을 향해 걸어가며 낮게 읊조렸다.
"기다리던 손님들이 군말 없이 찾아왔군."
"어이, 진혁."
천우진이 뒤에서 무뚝뚝하게 검을 튕겨 보이며 말했다.
"그 검으로 그 녀석들의 뼈와 살을 발라낼 때, 내 영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라. 살아 돌아오면, 그땐 더 완벽한 걸 만들어줄 테니까."
"말 안 해도 그럴 생각이다."
진혁이 문을 박차고 나갔다.
어두운 하층가의 골목 끝, 차가운 은빛 장갑을 두른 거대한 살인병기들의 행렬이 진혁의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 선두에는 티타늄 그룹의 철혈 사령관, 백무현의 끔찍할 정도로 기계적인 안광이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