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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134화목차

제134화 가짜의 데이터를 삼키다

마스터 돔의 공기는 비릿한 금속성 오존 냄새와 마기(魔氣)의 끈적한 압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진무극의 눈동자가 기이하게 빛났다. 그의 안구 내부를 흐르는 데이터 스트림이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강진혁을 향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구속의 사슬을 뻗어냈다.

“네놈의 그 오만한 의지마저 데이터의 파편에 불과하다. 강진혁, 아니 실험체 07호. 네가 쌓아 올린 모든 무공은 내가 만든 ‘천마 프로토콜’이라는 그릇 안에서만 유효해.”

진무극의 목소리는 기계적인 합성음과 인간의 냉소가 뒤섞여 있었다.

[SYSTEM ALERT: 마스터 코드, 강제 동기화 시도.]

[경고: 사용자 ‘강진혁’의 신경망 및 생체 코어 접속 권한을 티타늄 그룹 중앙 서버로 이전합니다.]

시야가 푸른색 노이즈로 뒤덮였다. 뇌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엄습했다. 강진혁은 어금니를 깨물며 피 섞인 침을 뱉었다. 시스템은 그가 가진 모든 힘의 원천을 다시 회수하려 들고 있었다. 하지만 진혁은 웃었다.

“그릇이라.”

진혁의 검, 천마검이 검게 일렁였다.

“착각하지 마라, 진무극. 그릇은 네놈이 준비한 것일지 몰라도, 그 안에 담긴 건 네놈의 코드가 아니야.”

진혁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광혈마의 흉부를 짓밟았다. 광혈마의 몸체에서 뿜어져 나오던 붉은 마기가 진혁의 발바닥을 통해 역류하기 시작했다.

[흡원천공(吸元天功) 강제 가동!]

[대상: 광혈마(천마 프로토콜 실패작 03호)의 코어 에너지 및 제어 알고리즘 전량 흡수.]

“아아아악!”

광혈마가 몸을 뒤틀며 흉측한 형상으로 변해갔다. 그의 혈관을 흐르던 나노머신들이 진혁의 의지에 따라 강제로 뜯겨 나갔다. 이것은 단순한 에너지 흡수가 아니었다. 진혁은 광혈마의 뇌 속에 박혀 있던 시스템의 제어 알고리즘을 통째로 씹어 삼키고 있었다.

[경고: 데이터의 과부하. 마기 수치 급상승 중.]

[경고: 생체 코어 출력 9,200 MW 돌파.]

진혁의 전신에 은빛 회로가 핏줄처럼 튀어 올랐다. 고통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광혈마의 뇌에서 추출한 제어 알고리즘을 자신의 단전에 강제로 끼워 맞췄다.

마기가 폭주할 때마다 시스템이 걸어두었던 ‘안전 제동’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광혈마가 가졌던 ‘공격적 연산 구조’를 이식한 것이다.

“이게… 네가 만든 프로토콜의 진짜 모습인가.”

진혁의 눈에 비친 세상이 달라졌다.

벽을 타고 흐르는 전력의 주파수, 진무극의 수트가 뿜어내는 열기, 그리고 돔 천장에 설치된 방어용 레이저 터렛의 조준점까지. 모든 것이 숫자로 치환되어 뇌리에 박혔다.

“가짜 데이터는 여기서 끝이다.”

진혁이 천마검을 휘둘렀다. 허공을 가르는 궤적은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띠고 있었다. 검 끝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채찍처럼 휘어지며 천장을 향해 쇄도했다.

콰앙!

천장의 레이저 터렛들이 일제히 침묵했다. 진혁이 방금 흡수한 광혈마의 제어 알고리즘을 역이용해, 시스템 전체에 ‘피아 식별 오류’를 주입했기 때문이었다.

“뭐… 무슨 짓을 한 거냐!”

진무극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스쳤다. 그는 서둘러 명령어를 입력했으나, 시스템은 붉은색 경고등만을 띄울 뿐이었다.

[SYSTEM ERROR: 마스터 권한 충돌. 외부 침입자가 프로토콜의 최상위 계층을 점유했습니다.]

진혁은 천천히 진무극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발을 뗄 때마다 바닥의 강화 금속이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진무극. 너는 천마를 데이터로 정의하려 했지. 하지만 천마란, 시스템의 계산 범위를 벗어나 스스로 진리를 창조하는 자를 말하는 거다.”

진혁의 기세가 바뀌었다.

이전까지의 마기가 차가운 기계적 파동이었다면, 지금의 마기는 살아있는 맹수처럼 거칠고 뜨거웠다. 3단계 ‘천마현신’의 경지가 마침내 온전한 형태로 구현되고 있었다.

등 뒤로 검은 마기의 그림자가 거대한 날개 형상을 그리며 솟아올랐다. 그것은 실체가 없는 기운이었으나, 마스터 돔의 중력을 뒤흔들 만큼 강력한 압박감을 뿜어냈다.

“시스템의 도움 따윈 이제 필요 없다.”

진혁이 검을 거두고 손을 가볍게 쥐었다.

“오직 나의 의지만이, 이 무공을 완성할 뿐.”

진무극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자신의 수트 뒷면에서 거대한 플라즈마 캐논을 전개했다. 최고 등급의 군사 기술이 집약된 살상 병기였다.

“죽어라! 실험체!”

진무극이 방아쇠를 당겼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플라즈마 광선이 진혁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일반적인 초인이라면 흔적도 없이 증발했을 일격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았다. 광혈마를 통해 흡수한 데이터가 뇌 속에서 초고속으로 연산되었다. 플라즈마의 궤적, 에너지 밀도, 공진 주파수.

[분석 완료.]

[뇌전마강-멸(滅) 개방.]

진혁이 눈을 떴을 때, 그의 흑안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는 맨손으로 날아오는 플라즈마 광선을 정면으로 쳐냈다.

파앗-!

예상했던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플라즈마 광선이 진혁의 손바닥에 닿는 순간, 그 성질이 변했다. 뇌전마강의 힘이 플라즈마의 분자 결합을 강제로 비틀어버린 것이다.

“내게 쏜 힘이다. 그대로 돌려주지.”

진혁이 손을 비틀자, 자신의 에너지를 잃은 플라즈마 광선이 오히려 진무극을 향해 역류했다.

“으윽!”

진무극은 방어막을 전개했지만, 진혁의 마기가 섞인 에너지는 방어막의 주파수를 완벽하게 무력화했다. 진무극의 수트가 불꽃을 튀기며 뒤로 밀려났다.

마스터 돔의 바닥이 갈라졌다. 진혁의 발밑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돔 전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외부의 조력도, 시스템의 보조도 없는 순수한 무력의 대결이었다.

진혁은 진무극을 똑바로 응시했다.

“자, 이제 시작이다. 네가 만든 프로토콜이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 네 육신으로 똑똑히 기억해라.”

진혁이 다시 천마검을 잡았다.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신서울 상층부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먼 곳, 신서울의 심장부라 불리는 ‘아폴론 요새’에서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진혁의 마기가 도시의 주전력망과 공명하며, 상층부의 모든 전력을 차단하려는 신호가 감지되고 있었다.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가짜 천마의 데이터를 삼킨 진짜 천마가, 신서울의 밤하늘을 찢어발길 준비를 마쳤다.

진혁이 천천히 검을 들어 진무극의 미간을 겨눴다.

그의 검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殺氣)가 진무극의 시스템 보호막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다음은, 네 목이다.”

진혁의 그림자가 돔을 가득 채웠다. 도망칠 곳은 없었다. 오직 마멸(磨滅)뿐이었다.

그 순간, 돔 밖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폭음과 함께 신서울의 전력망이 암흑으로 침몰하기 시작했다.

[SYSTEM WARNING: 아폴론 요새, 전력 차단 임박.]

[경고: 도시 전체의 제어권이 ‘천마’의 의지로 재편됩니다.]

진무극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지는 그 찰나, 강진혁의 검이 뇌전과 함께 진무극을 향해 쇄도했다.

과연, 이 일격 끝에 남을 것은 무엇인가.

진혁의 검이 진무극의 수트 가슴팍을 파고들려던 바로 그 순간, 돔의 벽면이 거대한 폭발과 함께 무너져 내리며 의문의 비행체가 돔 내부로 난입했다.

그것은 티타늄 그룹의 최종 방어 병기가 아니었다.

북쪽 구구역에서 감지되었던, 그 정체불명의 거대한 외부 신호가 돔 내부의 데이터를 강제로 간섭하기 시작했다.

진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진무극이 죽기 직전, 무언가 거대한 재앙을 깨워버린 것인가.

“이제야… 진정한 지옥이 열리는군.”

진혁은 검을 거두지 않은 채, 돔 너머로 몰려오는 검은 그림자들을 응시했다. 진무극의 죽음보다 더한 위기가 신서울의 상공을 뒤덮고 있었다.

비행체가 돔을 부수고 진입한 순간, 마스터 돔의 조명은 명멸하다가 완전히 꺼졌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직 강진혁의 천마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잔영만이 기괴한 빛을 발했다.

“이건… 티타늄의 기술이 아니야.”

진혁의 미간이 좁혀졌다. 돔 천장을 뚫고 들어온 것은 금속성 기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와 기계가 기괴하게 뒤엉킨, 거대한 촉수 형태의 군집체였다. 신서울의 상층부를 지배하는 티타늄 그룹의 정제된 기술력과는 궤를 달리하는, 날것의 파괴적인 에너지였다.

진무극은 고통스럽게 신음하며 자신의 수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상 전력을 가동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와 경외가 뒤섞여 있었다.

“하하… 하하하! 결국, 봉인이 풀렸나! 이현도 그 미친놈이 숨겨둔 마지막 카드… ‘심연(Abyss)’이…!”

진무극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그가 죽음의 문턱에서 강제로 호출한 것은, 시스템의 통제를 벗어난 고대 마교의 잔재이자 신서울 지하 2,000층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재앙’의 파편이었다.

[SYSTEM ALERT: 미확인 개체 ‘심연’ 감지.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지 않는 에너지 파동입니다.]

[경고: 주변 공간의 물리 법칙이 왜곡됩니다.]

진혁의 HUD는 이미 진무극의 강제 접속으로 인해 깨진 상태였지만, 천마의 통찰은 그 이상의 것을 보고 있었다. 저 촉수 뭉치들이 공간 자체를 집어삼키며 진무극의 수트, 그리고 돔 바닥에 흩어진 데이터 코어들을 마치 허기진 짐승처럼 빨아들이고 있었다.

“내 데이터를… 내 연구를…!”

진무극이 저항하려 했지만, 촉수들은 그를 돕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진무극의 생체 코어와 결합된 모든 마공 데이터를 흡수하며, 순식간에 진무극의 육체를 껍데기로 만들어버렸다. 진무극의 몸이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지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진혁은 그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 진무극을 죽이는 것보다, 저 흉물스러운 ‘심연’이 신서울의 전력망을 완전히 장악하기 전에 끊어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가짜 천마의 찌꺼기를 먹고 덩치를 키우겠다고?”

진혁은 발을 구르며 마스터 돔의 잔해를 딛고 도약했다. 3단계 ‘천마현신’의 마기가 발끝에 응축되었다가 폭발했다.

쿠구구구-!

진혁의 몸이 한 줄기 흑색 섬광이 되어 촉수 군집의 중심부로 파고들었다. 검 끝에 실린 것은 단순한 마기가 아니었다. 그동안 흡수했던 티타늄의 군사 기술, 독고운에게 전수받은 심법, 그리고 방금 전 광혈마로부터 강탈한 제어 알고리즘이 완벽하게 융합된 ‘신천마신공’의 초식이었다.

[만법귀마(萬法歸魔): 파천(破天)]

검이 허공을 가르자, 촉수 군집이 비명을 질렀다. 물리적인 타격이 아니었다. 공간의 주파수를 마기로 교란해, 저 기괴한 생명체의 결합 구조를 강제로 찢어버리는 일격이었다.

‘심연’의 촉수들이 진혁의 검기를 막아보려 했지만, 진혁의 검은 그것들을 비웃듯 통과해 중심핵을 정확히 꿰뚫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게 해 주지.”

진혁의 눈동자가 푸른 불꽃처럼 타올랐다. 천마검이 중심핵 내부에서 폭발했다. 내부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마기가 촉수 군집을 분자 단위로 분해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강렬한 데이터 파동이 진혁의 뇌리를 강타했다.

[DATA STREAM: 마교의 시조, 천마의 기억 파편을 감지했습니다.]

[경고: 사용자의 정신 부하가 500%를 초과합니다. 뇌세포 괴사가 진행됩니다.]

진혁의 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저 파괴적인 데이터 흐름 속에서, 그는 1,000년 전 천마가 왜 마공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왜 기계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 스스로를 봉인했는지에 대한 단초를 보았다.

‘마공(魔功)은 기계를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시스템화된 세상에서, 인간의 자아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저항이었어.’

진혁의 검은 더욱 거세게 휘몰아쳤다. 심연의 파편들이 산산조각 나며 돔 내부로 흩어졌다. 진무극이 꿈꾸던 불멸의 천마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무너져가는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진리를 쟁취하려는 강진혁만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마스터 돔이 완전히 붕괴하기 시작했다. 진혁은 돔의 잔해를 딛고 공중으로 솟구쳤다. 아래로는 암흑에 잠긴 신서울의 야경이, 위로는 돔을 뚫고 쏟아져 들어오는 차가운 밤공기가 그를 맞이했다.

진혁은 무너지는 타워의 벽면을 발로 차며 더욱 높이 비상했다. 그가 하늘 위로 솟구칠수록, 도심 전체의 전력망이 그의 마기와 공명하며 일제히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했다.

[SYSTEM SHUTDOWN: 티타늄 그룹 중앙 서버 중단.]

[SYSTEM REBOOT: 관리자 권한 ‘강진혁’으로 재설정.]

신서울의 모든 스크린에 진혁의 뒷모습이 비쳤다. 타워를 박차고 나온 그가 칠흑 같은 마기를 두른 채, 밤하늘을 등지고 서 있었다.

티타늄 그룹의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천마가 강림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만족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신서울의 끝, 북쪽 구구역 너머의 검은 지평선을 향하고 있었다.

저곳에서, 심연의 본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진혁은 천마검을 검집에 꽂아 넣으며 낮게 읊조렸다.

“오늘부로 신서울의 주인은 바뀌었다. 그리고… 나를 시험하려는 그 모든 것들은, 전부 박살 내주마.”

진혁이 상층부 마천루를 가로질러 북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뒤를 따라 마기의 파동이 거대한 파도처럼 신서울을 휩쓸었다. 이제 진짜 전설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과연 북쪽 구구역에서 진혁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시스템을 완벽히 제압한 강진혁이 도달할 '무(無)'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의 눈빛이 북쪽을 향해 붉게 타올랐다.

(제13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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