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3화 붉은 마기의 파쇄
1.
공기는 타는 듯한 금속 냄새로 가득했다. 신서울 14구역의 폐허, 그 한복판에서 쏟아지는 살기는 마치 현실의 물리 법칙을 뒤틀어버리는 듯했다.
강진혁의 시야. 그곳에는 시스템의 붉은 경고등이 점멸하고 있었지만, 이제 그것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경고: 생체 코어 출력 한계 초과.]
[경고: 신체 내구성 수치 하락 중.]
[주의: 시스템 오류. 데이터 동기화가 불가능합니다.]
"지껄이지 마라."
진혁은 눈앞의 공간을 향해 읊조렸다. 시스템 보이스는 이제 그에게 명령하는 주인이 아니라, 고장 난 기계가 내뱉는 귀찮은 소음에 불과했다.
진혁의 앞, 광혈마가 흉측한 형상을 드러냈다. 놈의 팔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초고주파를 방출하는 나노 와이어가 얽히고설켜 톱날 같은 손톱을 형성하고 있었고, 그 사이로 붉은 마기가 핏물처럼 흘러나왔다.
"크아아아!"
광혈마가 지르는 기괴한 포효는 음파 병기 수준의 충격파를 동반했다. 폐허가 된 건물 잔해들이 진동을 이기지 못하고 2차 붕괴를 일으켰다. 놈의 발이 지면을 박차고 나갔다. 바닥의 콘크리트가 짓이겨졌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광혈마의 손톱이 진혁의 경동맥을 향해 쇄도했다.
'궤적 확인.'
진혁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의 망막 위로 투사되던 [천마 프로토콜]의 보조 HUD가 찢겨나간 자리에, 인간의 직관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광혈마의 움직임은 빨랐다. 현대 군사 기술이 집약된 기계적 가속력. 하지만 그 기계적 가속력에는 치명적인 빈틈이 있었다. 나노머신이 혈관을 타고 흐르며 근육을 재구성하는 그 찰나의 순간, 에너지가 0.0001초간 비는 공백.
'거기다.'
진혁이 몸을 틀었다. 비켜선 것이 아니다. 놈의 품 안으로 파고든 것이다.
카앙-!
진혁의 손에 든 검이 광혈마의 팔을 가로질렀다. 단순한 검술이 아니었다. [만법귀마(萬法歸魔)]의 원리를 응용한 일격. 놈의 나노 회로를 따라 흐르는 마기의 흐름을 역으로 타격하여, 강제로 에너지 과부하를 일으키는 기술이다.
"크억?!"
광혈마의 오른팔이 툭 소리를 내며 뒤틀렸다. 초고주파를 뿜어내던 손톱이 제멋대로 폭주하며 놈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데이터가 빈약하군."
진혁이 나지막이 뇌까렸다. 광혈마는 시스템이 부여한 강력한 파괴 병기였으나, 그 본질은 결국 '연산'에 의존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시스템이 계산해 주지 않으면, 스스로의 마기 하나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놈이 천마를 자처해?"
진혁의 검 끝에 칠흑 같은 마기가 응축되었다. 그것은 이현도나 진무극이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인공적인 마기가 아니었다. 수천 년 전, 전설 속 천마가 마공의 정점에서 뿜어냈던 그 순수한 파괴의 의지였다.
2.
광혈마는 미친 듯이 날뛰었다. 왼팔에 내장된 플라즈마 캐논이 충전음을 내며 진혁의 전면을 향해 화염을 쏟아냈다.
슈우우웅-!
주변의 폐자재들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하지만 진혁은 그 뜨거운 열기 속을 산책하듯 걸어 들어갔다.
[천마무상체(天魔無相體) 가동.]
진혁의 피부 표면에 은빛 회로가 뱀처럼 꿈틀거렸다. 나노머신이 피부 밀도를 비정상적으로 높여 플라즈마의 열기를 튕겨냈다. 그는 단 한 걸음도 멈추지 않았다. 진무극이 설계한 시스템의 족쇄는 이미 그에게 아무런 제약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 구속을 벗어던지기 위해 쏟아부었던 지난 세월의 고통이, 이제는 진혁의 내공을 더욱 단단하게 벼려놓았다.
"너는 기술의 결정체일 뿐이다. 나는 무(武)의 정점이고."
진혁의 검이 호를 그렸다. 검 끝에 맺힌 마기가 마치 살아있는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광혈마가 뒤로 물러나며 방어막을 전개했다. D급 코어를 3중으로 중첩한 고밀도 에너지 방벽. 웬만한 전차포로도 뚫을 수 없는 철벽이었다. 하지만 진혁의 검은 그 벽을 뚫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공진 주파수.'
진혁의 눈에 방벽의 에너지 파동이 보였다. 그것은 기계적인 계산이 아니었다. 마기를 흐름에 따라 운용하며, 방벽이 가진 고유한 진동수와 자신의 마기 파장을 일치시키는 경지.
[만법귀마(萬法歸魔) - 파(破)]
콰아아앙-!
방벽이 유리 조각처럼 박살 났다. 에너지가 충돌하며 발생한 폭풍이 폐허의 잔해들을 산산조각 냈다. 광혈마는 방벽이 깨지는 반동으로 비틀거렸다. 진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몸이 환영처럼 사라졌다.
[마영신보(魔影神步)]
놈의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진 진혁은, 이미 광혈마의 등 뒤에 서 있었다. 진혁의 검이 놈의 등골에 박힌 코어 슬롯을 겨냥했다.
"이게 네놈의 심장인가?"
"아, 안 돼! 멈춰!"
광혈마가 비명을 질렀다. 놈의 의식 속에서 시스템이 경고를 쏟아내고 있었다.
[위험! 제어 코어 파손 시 생체 조직 괴사.]
[경고! 강제 종료 절차를 시작합니다.]
"종료는 내가 정한다."
진혁의 검이 그대로 광혈마의 코어 슬롯을 꿰뚫었다. 찌르기(刺)가 아닌, 파쇄(破)였다. 코어에 닿는 순간, 진혁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놈의 내부 회로를 억지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것은 마기가 아니라, 진혁이 가진 '천마의 의지' 그 자체였다.
"크아아아악!"
광혈마의 몸이 붉은 마기에 휩싸이며 경련했다. 놈의 몸속에 있던 나노머신들이 통제력을 잃고 폭주했다. 진혁은 검을 뽑지 않았다. 오히려 그 검을 통로 삼아, 광혈마의 몸속을 흐르는 에너지 데이터를 전부 흡수하기 시작했다.
[흡원천공(吸元天功) 발동.]
"너의 모든 데이터와 마기를, 나의 새로운 양분으로 삼겠다."
광혈마의 몸이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졌다. 놈이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9,200 MW의 출력이 진혁의 혈관을 타고 단전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3.
몸 안에서 엄청난 열기가 끓어올랐다. 단전이 터질 듯 팽창했다.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이미 전신이 붕괴하고도 남았을 출력이다. 하지만 진혁은 달랐다. 그는 지금, 자신의 육체라는 그릇을 스스로 개조하고 있었다.
'더... 더 받아들여라.'
진혁은 시스템의 가이드라인 따위는 무시했다. 그는 자신의 기혈을 완전히 비틀어버렸다. 1,000년 전 천마의 마공 비급을 현대의 나노 회로 구조와 융합한, 자신만의 새로운 기혈 경로. 그곳으로 쏟아져 들어온 에너지가 폭주가 아닌, 정교한 순환을 시작했다.
[시스템 오류: 사용자 데이터 분석 불가.]
[경고: 기혈 흐름이 표준 모델을 400% 초과했습니다.]
"시끄럽다고 했다."
진혁이 단전의 마기를 한곳으로 집중했다. 새롭게 습득한 [혈마전송]의 기술이 몸 안에서 구체화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에너지를 저장하는 것을 넘어, 에너지를 고체화하여 마기 그 자체를 검강으로 승화시키는 기술이다.
광혈마의 껍데기가 숯처럼 변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진혁의 눈앞에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적막함. 하지만 그 적막 속에서 진혁은 자신의 몸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완성이다.'
3단계 '천마현신'. 시스템의 도움 없이, 순수한 자신의 내공과 마기만으로 육체를 완벽하게 제어하는 경지.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신서울 상층부를 바라보았다. 구름 위로 솟아오른 거대한 마천루. 그 끝에는 이 모든 비극의 근원인 진무극이 앉아 있을 것이다.
"기다려라."
진혁이 지면을 박찼다. 이번에는 단순한 도약이 아니었다. 발밑의 지면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마기가 날개처럼 진혁의 등 뒤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마치 지옥에서 갓 올라온 검은 천마의 형상이었다.
진혁은 신서울의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그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붉은 마기의 궤적이 길게 남았다.
[경고: 상층부 접근 중.]
[경고: 티타늄 그룹의 방어 병기가 감지되었습니다.]
시스템의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들려왔다. 하지만 진혁은 그 목소리를 무시하고, 자신의 왼손에 맺힌 검기를 더욱 강하게 다잡았다.
'이제부터는, 계산기가 아니라 검으로 말한다.'
저 멀리, 진무극이 앉아 있는 마스터 돔의 불빛이 보였다. 진혁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지옥을 보여줄 시간이었다. 진무극이 꿈꾸던 그 오만한 천마의 위상을, 진짜 천마가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줄 시간.
진혁이 마천루의 유리벽을 향해 가속했다. 그의 일격이 닿는 순간, 신서울의 역사가 바뀔 것이다. 천마 프로토콜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가두려 했던 모든 족쇄가, 오늘 이 밤, 진혁의 검 끝에서 산산조각 날 터였다.
돔의 방어막이 붉게 점멸하며 진혁을 요격하기 시작했다. 수백 개의 레이저 포탑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하지만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그는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천마일검(天魔一劍)의 서막이다."
검이 내려치는 순간, 밤하늘 자체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쏟아지는 레이저 포탑의 광선이 진혁의 전신을 관통할 듯 몰아쳤다. 일반적인 초인이라면 나노 방어막이 벌집처럼 뚫리고 육체가 분해되었을 화력이다. 그러나 진혁의 주위에는 이미 물리적인 차단막이 아닌, 마기 그 자체가 소용돌이치는 ‘마의 영역’이 펼쳐져 있었다.
[천마무상체(天魔無相體) - 극(極)]
공중에서 진혁의 피부 위로 짙은 흑색의 마기가 뱀처럼 감겨들었다. 레이저가 닿는 족히 1밀리미터 앞, 마기의 파장이 초고온의 열선을 굴절시키고 분산시켰다.
피잉-! 챙! 챙!
강철을 긁는 소리와 함께 레이저 광선들이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진혁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마천루의 외벽을 향해 돌진했다. 그의 시야에는 시스템 보조 인터페이스가 완전히 사라진 대신, 만물의 흐름을 꿰뚫는 마안(魔眼)의 통찰만이 남았다.
‘진무극. 네놈이 만든 이 타워의 설계부터가 잘못되었다.’
티타늄 타워의 외벽을 구성하는 특수 합금은 50,000 MW 이상의 고출력을 견디도록 설계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규격화된 에너지’를 전제로 한 설계일 뿐. 진혁의 마기는 기계가 이해할 수 있는 에너지의 규격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진혁은 검을 뒤로 젖혔다. 단전의 출력 9,200 MW. 광혈마로부터 흡수한 에너지가 혈관을 타고 흐르며 근육을 재구조화했다. 그가 검을 휘두르는 궤적은 기하학적인 계산값이 아니라, 오직 적의 목을 베기 위한 순수한 살의의 궤적이었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마천루의 100층 외벽이 뜯겨 나갔다. 강화 유리와 티타늄 합금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내부로 쏟아졌다. 경보음이 타워 전체를 뒤흔들었다.
"침입자 확인! 7계급 보안 등급 해제! 전 병력은 마스터 돔을 사수하라!"
내부 통로에서 쏟아져 나온 블랙 가드들이 일제히 화기를 겨눴다. 하지만 그들은 진혁의 속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진혁은 이미 인간의 반응 속도를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방해하지 마라."
진혁의 검이 한 번 춤을 출 때마다 블랙 가드들의 무기는 형체를 잃고 분해되었다. 그들이 이식한 나노머신 회로가 진혁의 마기에 침식되어 오작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놈들은 자기 손에 든 무기에 당하며 바닥을 굴렀다.
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 타워의 심장부인 마스터 돔이다.
마침내 도착한 돔의 입구. 거대한 강철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 너머에는 홀로 고고하게 앉아 있는 진무극이 있었다. 그는 진혁의 침입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은발을 쓸어 넘겼다.
"늦었구나, 07호."
진무극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맞이하는 것 같은 여유. 하지만 그 눈빛만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네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시스템은 너라는 변수를 완벽히 학습했다. 이제 너는 그저 내게 필요한 부품을 배달해 준 택배꾼에 불과해."
진무극이 손가락을 튕겼다. 순간, 진혁의 등 뒤에서 느껴지던 마기 방출이 뚝 끊겼다. 발밑에서부터 전해지는 감각이 차단되었다. 마치 진공 상태에 갇힌 것처럼, 몸속의 마기가 강제로 동결되는 기분이었다.
[프로토콜 강제 접속: 사용자 권한 박탈.]
[시스템에 의한 자아 데이터 백업이 시작됩니다.]
진혁의 눈앞에 다시금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검은색의, 압도적인 공포를 담은 메시지였다.
"네 무공도, 네 의지도 결국 내가 만든 이 시스템의 연산 결과물이다. 강진혁, 아니 07호. 이제 그 껍데기를 내게 넘겨라."
진무극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진혁의 것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이고 거대했다. 그것은 시스템의 모든 연산력을 집약한, 진정한 ‘천마의 모조품’이었다.
진혁은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온몸의 회로가 억지로 뜯겨 나가는 듯한 고통이 뇌를 찔렀다.
"하... 하하하."
진혁이 고개를 떨구었다가, 이내 비릿한 웃음을 터뜨렸다.
"데이터? 연산? 좋아. 그럼 네놈이 계산할 수 없는 걸 보여주지."
진혁은 억지로 멈춰버린 자신의 단전을 향해 의념을 집중했다. 시스템은 멈췄지만, 그가 100층까지 오며 깨달았던 ‘무의 본질’은 멈출 수 없었다. 그는 시스템이라는 족쇄를 찢어발기기 위해 자신의 심장을 찔렀다. 피가 솟구치자, 그 피가 마기와 섞이며 타워 내부를 붉게 물들였다.
"데이터가 아니라, 내 생명을 연료로 돌린다. 이래도 계산할 수 있겠나?"
진혁의 마기가 시스템의 강제 접속 코드를 집어삼키며 역류하기 시작했다. 돔 전체의 전력이 흔들렸다. 진무극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스쳤다.
"이게 무슨...!"
"이게 천마의 방식이다."
진혁이 검을 다시 치켜들었다. 이번에는 시스템도, 나노머신도 없는, 오직 뼈를 깎아 만든 날것의 검기.
돔을 감싸던 가상의 평화가 깨지고, 진짜 사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진혁의 검 끝이 진무극의 미간을 향해 멈추지 않고 쇄도했다.
시스템을 초월한 참된 마신과, 그것을 훔치려는 가짜 천마의 혈전이 마스터 돔을 피로 물들일 준비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