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전리품과 시스템 업그레이드
지하 수력 발전소의 메인 터빈이 뿜어내는 저주파 진동이 두개골을 잘게 쪼개는 듯했다.
콰광-!
마지막 남은 블랙 가드 선발대의 전신 사이보그 파츠가 강진혁의 손에 의해 으스러지며 처참한 철제 파편으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싸움은 싱겁지 않았다. 하지만 압도적이었다.
진혁의 칠흑 같은 흑안에는 차가운 살기가 가라앉아 있었고, 그의 목과 손목을 따라 흐르던 은빛 회로 선은 살인적인 열기를 뿜어내며 붉은빛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하아.”
진혁의 입에서 배어나온 숨결은 한여름의 공기마저 얼어붙게 만들 만큼 차갑고 무거웠다.
그의 가슴팍, 단전 부근에 이식된 3세대 생체 코어가 미친 듯이 박동하며 온몸의 나노머신을 재구축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적들이 휘두르던 군용 플라즈마 블레이드와 고출력 전자기 나노 파편의 잔해들이 진혁의 손아귀 안에서 흉측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HEAVENLY DEMON PROTOCOL) v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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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지: 2단계 [마기융합 (魔氣融合)] 진행 중
■ 생체 코어 출력: 3,800 MW (Gen-3 튜닝형) -> 상한선 압축 중
■ 나노머신 동기화율: 82.4% -> 86.1% [UP]
■ 보유 마력(내공): 65년가량 [마검기(魔劍氣) 정밀도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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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적대 세력 '블랙 가드' 선발대 전원 섬멸 확인.
[알림] 고성능 전투 나노머신 및 군사형 코어 데이터 스캔 완료.
[시스템 업데이트를 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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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 구석에 떠오른 푸른빛의 HUD 창이 빠르게 점멸했다.
진혁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온몸의 근육 파이버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그의 얼굴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고통은 그저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더 강해졌다는 부산물에 불과했다.
“진혁 씨!”
그때, 발전소의 비상 통로를 타고 윤아영이 숨을 몰아쉬며 뛰어내려왔다. 숏컷의 분홍빛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이마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해킹 포트가 연결된 단말기가 들려 있었다.
아영은 바닥에 널브러진 티타늄 그룹의 정예 살인병기 잔해들을 훑어보고는 경악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거…… 진짜 미쳤네. 블랙 가드 선발대를 혼자서 다 쓸어버린 거야? 이 잔해들 봐, 장갑 밀도가 S급 특수 합금인데 완전히 종잇장처럼 찢어졌잖아.”
진혁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영을 바라보았다. 그의 흑안에 담긴 냉기는 조금 전보다 훨씬 깊어져 있었다.
“뒷처리는?”
“……말도 마. 하층가 네트워크 전체가 지금 발칵 뒤집혔어. 티타늄 그룹 중앙 본사에서 비상 경보가 떨어졌거든. 하층가 4구역 전체에 전면 통행금지령이 내려졌어. 블랙 가드 본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뜻이야.”
아영은 단말기를 툭툭 치며 긴장된 목소리로 이어갔다.
“하지만 걱정 마. 네가 파괴한 이 녀석들의 코어 데이터랑 잔해를 내가 완전히 분해해서 시그널을 교란해 뒀으니까. 당분간 우리 위치를 특정하진 못할 거야. 대신…… 시간이 별로 없다는 건 알아둬야 해.”
“시간은 애초부터 내 편이 아니었다.”
진혁이 낮게 읊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두둑-!
뼈가 맞춰지는 소리가 발전소 내의 공명음과 겹쳐 울렸다. 그 순간, 진혁의 단전 깊은 곳에서 거대한 파동이 일어났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v1.5 업그레이드 패치 적용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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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체 코어 출력 한계치 확장: 3,800 MW -> 5,300 MW (급증)
■ 신규 기술 해제: [나노마갑(Nano-Armor) lvl.3] 강화, [만법귀마(萬法歸魔)] 연산 속도 15% 향상.
■ 경고: 급격한 출력 상승으로 인한 혈관 미세 파열 감지. 마기(魔氣)의 순환 주기를 안정화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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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원천공(吸元天功)의 효율이 한계까지 올랐군.”
바이퍼를 비롯한 정예 요원들의 생체 코어와 고급 나노머신 회로를 통째로 흡수한 보상이었다. 단순히 에너지를 삼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천마 프로토콜이 그것을 분석해 진혁의 육체와 완벽하게 동기화시킨 것이다.
진혁의 손바닥 위에서 짙은 검붉은색의 마기가 소용돌이쳤다.
과거 티타늄 그룹의 지하 실험실에서 버려졌던 폐기물 시절의 출력과 비교하면, 지금 그의 몸은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인간 핵융합로이자 사신(死神) 그 자체였다.
“진혁 씨, 시스템 업그레이드 끝난 거야? 얼굴색이 아까보다 훨씬 더 살벌해졌는데.”
아영이 진혁의 상태를 살피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는 진혁의 곁에 다가갈 때마다 본능적인 공포를 느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기운이 아니었다. 기계와 마법, 그리고 철저한 살육의 법칙이 융합되어 태어난 괴물의 기운이었다.
“출력이 늘어났다. 그만큼 몸에 걸리는 부하도 커졌지만.”
진혁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쩍쩍 갈라지던 피부 표면의 은빛 회로가 나노머신의 자가 치유 능력으로 순식간에 아물었다.
“그나저나, 신마교 녀석들이 하층가에 숨겨둔 자금줄과 물자 창고 좌표는 확보했나?”
아영의 눈이 반짝였다.
“물론이지! 그 새끼들이 하층민들 등쳐먹고 밀수한 비자금과 군사 장비 데이터, 내가 다 털어왔어. 금액으로 치면 신서울 상층부 아파트 한 채 값은 족히 넘을걸? 게다가…… 네가 찾던 그 금속 재료들도 거기에 다 있어.”
“잘됐군.”
진혁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올라갔다.
티타늄 그룹의 하부 조직이었던 '천마회(신마교)'가 하층가에서 벌어들인 검은 돈과 불법 자재들은, 이제 진혁의 다음 단계를 위한 밑거름이 될 터였다.
잠시 후, 두 사람은 하층가 4구역의 은밀한 곳에 위치한 신마교의 지하 비밀 금고로 이동했다.
철제 셔터가 가로막고 있었지만, 진혁에게 그것은 문이 아니었다.
슈우우웅-!
진혁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압축 마기 검강이 셔터를 종이짝처럼 가로질렀다.
쾅-!
거대한 철문이 안으로 무너져 내리며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엄청난 양의 크레딧 칩과 군사 장비, 그리고 특수 합금 원자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번쩍이는 불빛 아래에서 금속의 냉기가 훅 끼쳐왔다.
“와…… 대박. 진짜 엄청나네.”
아영이 입을 떡 벌리고 금고 안을 바라보았다.
신마교가 하층민들을 착취해 모아둔 막대한 자금과, 티타늄 그룹 연구소에서 흘러나온 최고급 나노머신 원료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진혁은 그중에서 눈에 띄는 상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 안에는 고주파 플라즈마 코어와 반응성 티타늄-카바이드 합금이 담겨 있었다. 현재 그의 신체 구조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고, 기존의 검을 완벽한 '마검(魔劍)'으로 개조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재료들이었다.
“아영.”
“응? 왜?”
“이 자금의 절반은 하층가 슬럼가 주민들 계좌로 분산 송금해라.”
“……뭐? 뭐라고? 이걸 다? 아니, 진혁 씨! 이거 우리가 나중에 상층부로 진격할 때 쓸 군자금 아니야? 이걸 왜 하층민들한테 풀어?”
아영이 경악하며 진혁을 말렸다. 그녀의 입장에서 이 막대한 자금은 복수를 위한 절대적인 연료였다.
하지만 진혁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티타늄 그룹이 이 도시를 지배하는 방식을 기억해라. 그들은 자본과 기술로 사람들을 묶어두고 통제한다. 하지만 공포와 자본만으로는 사람의 의지를 완전히 꺾을 수 없지.”
진혁은 차갑게 미소 지었다.
“하층민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자선이 아니다. 티타늄 그룹의 눈을 돌리고, 이 어두운 바닥 전체를 나의 세력권으로 만들기 위한 판돈이다. 블랙 가드 본대가 내려온다면, 하층가 전체가 아군의 시야와 귀가 되어야 한다.”
“…….”
아영은 잠시 말을 잃었다. 진혁의 말은 냉혹했지만, 그 속에는 철저한 계산과 지독한 전략이 담겨 있었다. 단순한 복수귀인 줄 알았으나, 그는 이미 도시 전체를 상대로 한 전쟁을 설계하고 있었다.
“알았어. 분산 송금 프로토콜은 내가 알아서 세팅할게. 하층민들 계좌에 갑자기 돈이 꽂히면 티타늄 감시망에 경고등이 뜨겠지만, 그 정도 혼란은 오히려 우리한테 유리하겠지.”
아영이 단말기를 두드리며 씩 웃었다.
“그래서, 이 남은 재료들이랑 자금 일부는 어떻게 할 거야? 이걸로 네 무기라도 새로 짜내게?”
진혁은 바닥에 놓인 티타늄-카바이드 합금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현재 그가 들고 다니는 검은 바이퍼의 잔해에서 대충 뜯어낸 임시 무기에 불과했다. 3,800 MW를 넘어 5,300 MW를 향해 치솟는 그의 생체 코어 출력과 마기를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그 검마저도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더 완벽한 무기가 필요하다.’
단순한 기계 장치나 공장에서 찍어낸 양산형 군사 무기가 아니라, 고대 마공의 기혈 운행과 현대 군사 공학의 원리가 완벽하게 결합된 ‘진정한 병기’가.
“금속과 나노 재료는 챙겨라. 그리고 네 단말기에 접속해 있는 정보망을 총동원해라.”
진혁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층가와 중층가의 경계, 혹은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자를 찾아야 한다.”
“누구를?”
“전(前) 티타늄 그룹 특수공작대 팀장이자, 지금은 밀려나 은거하고 있는 무기 제작자.”
아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잠깐…… 그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야? 설마, 천우진을 말하는 거야? 그 미친 영감탱이, 몇 년 전에 티타늄 그룹을 배신하고 하층가 밑바닥으로 숨어들었다는 그 사이보그 무기장이 말이야?”
“그래.”
진혁의 머릿속에는 천마 프로토콜이 수집한 방대한 데이터 조각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티타늄 그룹의 내부 기밀 문서 속에서, 유일하게 현대 군사 기술과 고대 무기의 물리적 한계를 동시에 연구하다가 축출된 인물. 기계의 냉혹함과 무도의 철학을 동시에 이해하고 있는 자.
“그를 찾아간다.”
진혁은 새로 획득한 전리품과 재료들을 품에 갈무리하며 발전소의 어두운 출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배후에서 조여오는 티타늄 그룹의 살인병기 집단, 블랙 가드의 사령관 백무현이 하층가의 암흑을 뚫고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진혁의 발걸음은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다.
[SYSTEM INFO: 경지 안정화 88% 도달.]
[다음 목적지 설정: 전직 특수공작대 팀장 및 무기 제작자 '천우진'의 정비소.]
어둠에 물든 신서울의 하층가, 그 밤의 공기 속에서 새로운 혈전의 전조가 짙게 피어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