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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124화목차

제124화 칠흑의 천마검

신서울의 밤은 짙었다. 하지만 그 어둠마저 집어삼킬 듯한 기운이 슬럼가 지하 공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공방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내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마기는 용암처럼 끓어올랐다.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출력은 이미 83,500 MW를 상회하고 있었다. 낡은 창고 안, 흩어진 고철 더미 사이로 천우진이 묵묵히 서 있었다.

그의 한쪽 사이보그 의수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정밀한 기계 부품들을 다루느라 극도의 집중을 발휘한 탓이리라.

“준비는 다 됐다, 진혁아.”

천우진이 작업대 위에 놓인 긴 형체를 덮고 있던 헝겊을 걷어냈다.

그것은 검이었다.

티타늄 그룹의 실험실에서 훔쳐낸 초전도체 티타늄 합금, 그리고 무너진 요새에서 회수한 전자기 진동 코어가 결합된 결정체. 단순한 강철의 차원을 넘어선, 현대 과학과 고대 마공의 접점이라 할 만한 물건이었다.

“이 검이라면 네 놈의 그 미친 듯한 마기 출력을 버틸 수 있을 거다. 아니, 오히려 놈을 먹고 더 강해지겠지.”

나는 손을 뻗어 검자루를 쥐었다.

손바닥이 닿는 순간, 차가운 금속의 질감이 뇌리를 찔렀다.

[SYSTEM ALERT: 전자기 진동 코어와 마기 회로의 동기화가 시작됩니다.]

[Warning: 사용자 마기 출력의 100% 수용 모드로 전환합니다.]

검신이 낮게 울렸다. 칠흑 같은 검은 빛이 검의 표면을 타고 흘렀다. 그 짙은 어둠 사이로, 내가 방금 전 흡수한 플라즈마 에너지의 잔재가 푸른 뇌전이 되어 꿈틀거렸다.

“이름은?”

내 물음에 천우진이 거친 웃음을 터뜨렸다.

“이름 따위가 뭐가 중요해. 그냥, 네가 휘두르는 순간 그게 곧 파멸이고 천마의 검이지.”

나는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공기가 비명을 지르며 찢겨나갔다. 이 정도인가. 기존의 천마검이 마치 장난감처럼 느껴질 정도의 무게감과 반응 속도였다. 검신에 담긴 나노 회로가 내 신경계와 완벽하게 결합되어, 마치 내 팔의 연장선처럼 느껴졌다.

“가야겠군.”

“어디로? 상층부인가?”

“그래. 놈들의 심장에 대못을 박아줄 시간이다.”

나는 공방의 문을 부수듯 열고 나갔다.

밖은 이미 아폴론의 심장이 가동되면서 붉은 경보등이 신서울 전역을 비추고 있었다. 슬럼가의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숨죽였고, 기업의 사설 부대들은 상층부 관문으로 집결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마광신보(極)를 전개했다.

발밑에서 칠흑의 잔상이 겹쳐졌다. 찰나의 순간, 수백 미터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SYSTEM INFO: 현재 사용자 출력 84,000 MW.]

[상태창 업데이트]

■ 사용자: 강진혁

■ 경지: 초월천마경 (심화)

■ 생체 코어 출력: 84,000 MW (플라즈마 동기화 완료)

■ 보유 마기: 마검기(魔劍氣) 완전 개방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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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층부 관문에 도달하자, 티타늄 그룹의 최정예 블랙 가드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내 등장을 확인하자마자 일제히 고주파 빔 라이플을 발사했다. 수천 발의 빛줄기가 나를 향해 쇄도했다.

“죽어라, 실험체 07호!”

나는 피하지 않았다. 검을 역수로 쥐고, 검신을 정면으로 세웠다.

“만법귀마(萬法歸魔).”

내 검에서 뿜어져 나온 칠흑의 기운이 구형의 방어막을 형성했다.

콰아아앙!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빛의 탄환들이 검에 닿는 순간 튕겨 나가거나, 혹은 내 마기에 먹혀 사라졌다. 적들이 경악하며 뒤로 물러났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검을 크게 휘둘렀다.

검신에서 뿜어져 나온 뇌전과 마기가 거대한 초승달 모양의 검강이 되어 관문을 쓸어버렸다. 블랙 가드들의 강화 슈트가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비명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저 타버린 고철과 살점만이 공중에 흩날릴 뿐이었다.

[SYSTEM ALERT: 적대 세력의 생체 코어 에너지를 강제 흡수합니다.]

[단전 출력: 84,500 MW... 85,000 MW...]

흡원천공이 자동으로 작동하며 흩어진 에너지들을 단전으로 끌어들였다.

관문을 통과하자, 저 멀리 아폴론의 요새가 위용을 드러냈다. 양자 암호화 중력 방벽이 붉게 빛나며 나를 막아서고 있었다. 저 안에는 300만 하층민의 생명을 담보로 쥔 자폭 스위치가 있다.

진무극의 잔당들은 저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검을 꽉 쥐었다. 검신의 칠흑빛이 더욱 강렬하게 맥동했다.

“자폭 프로토콜 카운트다운 1분 15초.”

시스템의 냉정한 음성이 귓가에 울렸다.

나는 망설임 없이 요새의 수직 벽면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마광신보를 극한으로 전개하자, 중력 방벽의 미세한 공진 주파수가 느껴졌다. 나는 검을 방벽의 빈틈에 꽂아 넣으며 마기를 주입했다.

쿠구구구!

요새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놈들에게 고한다. 너희들이 만든 이 요새, 너희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나는 칠흑의 천마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지금, 천마(天魔)가 강림한다.

요새의 벽면이 비명을 질렀다. 마기가 주입된 검신이 양자 암호화 방벽의 주파수와 공진을 일으키자, 요새 외벽의 나노 필드가 마치 유리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막아! 어떤 수를 써서라도 저놈의 진입을 막아라!”

내부에서 다급한 지휘관의 외침이 들려왔다. 방벽 내부에서 수십 개의 포신이 튀어나와 맹렬한 유탄과 플라즈마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찰나의 순간에 육편이 되었을 화력이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 모든 궤적이 정지 화면처럼 보였다.

[마안(魔眼) 활성화.]

[적 탄도 예측 궤적 산출 완료.]

단전에서 솟구친 85,000 MW의 에너지가 검을 타고 흘러 들어갔다. 나는 몸을 회전시키며 검을 가로로 휘둘렀다. 칠흑의 검강이 허공에 거대한 부채꼴을 그렸다. 그 궤적에 닿은 플라즈마탄들이 속절없이 분해되며 내 마기로 흡수되었다.

‘더 필요하다.’

단순히 방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요새의 심장부까지 뚫고 들어가려면 더 큰 출력이 필요했다. 나는 흡원천공의 운용 범위를 극단적으로 넓혔다.

콰아아앙!

방벽 전체가 나의 마기 파동에 휘말려 요동쳤다. 놈들이 설치해둔 방어망이 오히려 나의 에너지를 보충하는 연료통으로 전락했다.

[단전 출력: 87,200 MW.]

[천마무상체 동기화율: 98%.]

벽면을 박차고 도약했다. 수직으로 뻗은 요새의 외벽을 발판 삼아 십여 미터를 순식간에 솟구쳤다. 중력 제어 장치가 나를 억누르려 했지만, 천마의 의념은 그 어떤 중력보다 무거웠다. 나는 검 끝을 요새의 최상층 게이트에 겨누었다.

“첫 번째 제물이다.”

검을 내리찍었다.

콰앙!

요새의 상단 게이트가 굉음과 함께 뜯겨나갔다. 칠흑의 천마검이 게이트의 강철 프레임을 종잇장처럼 잘라내며 내부로 진입했다. 요새 안쪽은 기괴한 기계음으로 가득했다. 천장에는 수많은 케이블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붉은 자폭 카운트다운을 표시하고 있었다.

[카운트다운: 00분 58초.]

바닥에는 수십 명의 블랙 가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진무극이 남긴 최후의 자산들이자, 인간의 한계를 기계로 덧칠한 괴물들이었다.

“놈이다! 사살해!”

그들이 일제히 가슴의 코어를 개방했다. 붉은 마기와 전기가 뒤섞인 에너지가 좁은 복도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나는 비웃음을 흘리며 마광신보를 펼쳤다.

잔상이 열 개, 스무 개로 늘어났다. 그들은 자신이 쏘는 총구가 누구를 향하는지도 모른 채 허공에 탄환을 낭비했다. 나는 그들의 사이를 유령처럼 파고들었다. 검이 움직일 때마다 차가운 금속음과 함께 코어의 동력이 끊어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사각!

서걱!

단순한 절단이 아니었다. 검신에 깃든 뇌전이 코어의 회로를 타고 들어가 내부 시스템을 과부하시켰다. 놈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자신의 코어가 뿜어내는 열기에 타 죽어갔다.

[에너지 흡수 완료.]

[단전 출력: 91,000 MW.]

이제 곧 10만 MW에 도달한다.

복도 끝, 요새의 핵심 제어실인 ‘아폴론의 심장’ 문이 눈앞에 보였다. 그곳에는 300만 하층민의 생체 코어와 연결된 거대한 중력 펄스 발생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놈들은 내가 여기까지 오지 못할 것이라 장담했으리라.

나는 망설임 없이 문을 향해 걸어갔다. 내 걸음마다 바닥이 쩍쩍 갈라졌다.

“누구냐! 어떻게 여기까지…!”

제어실 안에서 당황한 연구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이미 기업의 붕괴를 예견한 듯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 시선은 오직 방 한가운데 떠 있는 붉은 구체, 자폭 프로토콜의 핵을 향해 있었다.

“강진혁…!”

구체 옆에서 누군가가 나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아직 죽지 않은 백무현의 잔당들이었다. 놈들의 눈에는 광기 어린 증오가 서려 있었다.

“이 자폭 장치가 멈추면, 너도 죽고 우리도 죽어! 그냥 다 같이 끝내자!”

그들은 제어실 전체를 폭파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나의 검은 이미 그들의 목을 지나쳐 있었다.

사아아.

그들의 몸이 십자 모양으로 분해되어 바닥에 고꾸라졌다. 나는 천천히 자폭 핵 앞으로 다가갔다.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검신을 타고 푸른 뇌전이 뱀처럼 요동쳤다.

[카운트다운: 00분 20초.]

“멈춰라.”

나는 나직하게 읊조렸다.

검을 들어 자폭 핵의 중심부, 가장 취약한 노드를 노렸다. 놈들이 이 장치를 설계할 때, 단 하나의 전제 조건을 망각한 것이 있다.

이것은 ‘기계’가 만든 것이라는 점이다.

기계는 논리를 따르고, 논리는 파동의 법칙을 따른다. 나는 마기의 흐름을 파동과 동기화시켰다. 칠흑의 천마검이 핵의 표면을 관통하는 순간, 엄청난 진동이 제어실을 뒤흔들었다.

“으아악!”

연구원들이 충격파에 튕겨 나갔다. 나는 눈을 감고 단전의 기운을 검 끝으로 모았다. 9만 MW를 넘어서는 출력이 핵의 에너지와 맞물려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흡원(吸元)!”

나는 놈들이 설정한 자폭 에너지의 흐름을 역방향으로 틀어버렸다.

폭발을 위한 에너지가 오히려 나를 향해 쏟아져 들어왔다.

[단전 출력 급상승!]

[95,000 MW... 98,000 MW... 100,000 MW 돌파!]

10만 MW.

마침내 넘지 못할 벽이라 여겨졌던 경계가 무너졌다. 내 몸 안에서 천지가 뒤집히는 듯한 쾌감이 몰려왔다. 마기가 혈관을 타고 넘쳐흘러 피부 밖으로 검은 아지랑이가 되어 피어올랐다.

자폭 핵의 붉은 빛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그것은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검에 먹혀 사라지고 있었다.

[카운트다운: 00분 03초.]

[00분 02초.]

[00분 01초.]

정적.

붉은 조명이 꺼지고, 요새 전체가 숨을 죽였다. 자폭 프로토콜은 완전히 해제되었다.

나는 검을 내렸다. 내 손에 쥐어진 검은 이제 검이라기보다는, 칠흑과 푸른 뇌전이 섞인 하나의 생명체처럼 보였다.

그때, 제어실의 거대한 통유리창 너머로 신서울의 풍경이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잠들지 않는 도시, 자본의 논리로 층층이 쌓여 인간의 존엄을 짓밟던 거대한 감옥. 그 심장부에서 나는 이제 홀로 서 있었다.

[SYSTEM ALERT: 모든 자폭 프로토콜이 종료되었습니다.]

[사용자 강진혁, 시스템의 최상위 권한을 탈취합니다.]

이제 시스템은 나를 '실험체'라 부르지 못한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통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검게 타버린 옷, 흉터가 가득한 얼굴, 하지만 칠흑 같은 흑안 속에서 일렁이는 푸른 뇌전.

그것은 1,000년 전 천마가 꿈꿨던, 그 어떤 기계의 노예도 되지 않는 완전한 무인의 모습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창밖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아폴론의 요새 너머, 상층부의 마지막 잔당들이 숨어 있는 마천루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진무극이 남긴 마지막 데이터베이스와, 신서울을 영구적으로 통제하려는 ‘신마(神魔) 알고리즘’이 존재한다.

나는 요새의 잔해를 딛고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수천 미터 아래의 슬럼가가 한눈에 들어왔다. 나를 기다리는 윤아영의 통신, 송수연의 외침이 뇌리를 스쳤다.

이제, 이 도시의 밤을 끝낼 시간이다.

나는 칠흑의 천마검을 굳게 쥐고, 가장 높고 화려한 곳을 향해 다시 한번 마광신보를 전개했다.

어둠 속에서 한 줄기 칠흑의 뇌전이 신서울의 하늘을 가로질렀다.

세상은 이제 나를 천마(天魔)라 부를 것이다.

[SYSTEM INFO: 최종 퀘스트 개시.]

[목표: 신서울 메인 서버 붕괴 및 신마 알고리즘 완전 삭제.]

나는 미소 지었다.

지금까지의 싸움은 그저 예고편에 불과했다. 진짜 복수는 지금부터다.

상층부 마천루의 꼭대기,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마지막 숙명을 향해 나는 칠흑의 검을 내리그었다.

그 순간, 신서울의 모든 전력이 일제히 깜빡거렸다.

나의 등장에, 도시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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