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만법귀마(萬法歸魔)의 모태
차가운 스파크가 허공을 갈랐다.
스리이익-!
공기가 고열로 인해 일그러지며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바이퍼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플라즈마 채찍은 단순한 물리적 무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고전적인 채찍의 궤도를 가졌으되, 끝부분에 융합된 초고주파 에너지 진동자가 대기를 강제로 이온화시켜 사방의 물체를 절단하는 티타늄 그룹의 특수 전술 장비였다.
"뒤졌어, 실험체 새끼."
바이퍼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그의 눈알을 대신하는 붉은색 광학 렌즈가 강진혁의 움직임을 초당 수십 번씩 스캔하며 가장 효율적인 절단 궤적을 계산해 냈다.
파앗!
채찍이 비틀리며 강진혁의 목을 노리고 날아왔다. 피할 공간은 없었다. 퇴로 역시 바이퍼의 잔당들이 설치해 둔 소형 방어 드론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하지만 강진혁은 물러서지 않았다.
'느리다.'
그의 흑안 깊은 곳에서 푸른빛의 HUD가 흐릿하게 점멸했다.
[SYSTEM WARNING: 대상의 에너지 출력 4,200 MW.]
[플라즈마 파동 주파수 분석 완료.]
[상대 공격과의 위상 동기화율 계산 중... 78%... 91%... 완료.]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지만, 진혁은 시스템이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천마 프로토콜이 이식된 이후, 그의 심장 부근에서 요동치는 마기(魔氣)는 단순한 에너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적의 기운을 흡수하고 굴절시키며, 나아가 상대의 기술적 허점을 파고드는 만물의 역학(力學) 그 자체였다.
두두두두 둥-!
진혁의 심장이 거칠게 박동했다.
단전에서 치솟은 검붉은 마기가 혈관을 타고 손끝까지 밀려 올라왔다. 그의 손에 쥐인 철검은 이미 수차례의 전투로 인해 이가 나가고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마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낡은 검신 위로 역상위(逆相位)의 마기가 휘감기는 순간, 철검은 어떤 명검보다도 날카로운 살기를 뿜어냈다.
[만법귀마(萬法歸魔)]의 기초 궤적이 비틀렸다.
슈우우욱!
바이퍼의 플라즈마 채찍이 진혁의 코앞까지 도달한 그 순간, 진혁의 검이 일그러진 원을 그리며 채찍의 중심부를 후벼 팠다.
캉가강-!
기괴한 금속 마찰음이 터져 나왔다.
현대 군사 공학의 집약체인 플라즈마 파동과 천년 전 마교의 비기인 마기가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뭐……?!"
바이퍼의 붉은 광학 렌즈가 경악으로 크게 흔들렸다.
그의 무기는 고주파 진동을 통해 상대의 방어막을 공진(共振)시켜 무너뜨리는 원리였다. 방어막을 치거나 회피하는 것이 상식적인 대처였다. 그러나 진혁은 방어하는 대신, 상대의 파동 주파수와 정확히 반대되는 '역상위 마기'를 검신에 실어 채찍의 에너지 마디에 그대로 꽂아 넣었다.
에너지와 에너지가 충돌하며 상쇄되는 순간.
파스스스-!
플라즈마 채찍의 에너지가 중심부터 붕괴하기 시작했다. 마치 모래성처럼,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최첨단 전술 무기의 결속 구조가 진혁의 단 한 번의 검격으로 완전히 박살 난 것이다.
"크윽……!"
채찍을 쥐고 있던 바이퍼의 팔뚝에 엄청난 반동이 들이닥쳤다. 나노머신으로 강화된 인공 근육이 버티지 못하고 근섬유가 파열되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진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마광신보(魔光神步).
빛의 잔상을 남기며 그의 몸이 바이퍼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공기가 압축되며 터지는 폭음과 함께 진혁의 손바닥이 바이퍼의 가슴팍을 정면으로 가격했다.
쿠구구구궁-!
"컥……!"
바이퍼의 입에서 새카만 피와 함께 부서진 내장 조각이 쏟아져 나왔다.
진혁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바이퍼의 흉갑을 뚫고 들어가 그의 몸속에 심어져 있던 3세대 전투용 생체 코어를 직접 타격한 덕분이었다.
[대상 제압 완료.]
[생체 코어 에너지 잔여량 흡수 가능.]
"크… 크윽…… 이게…… 대체…… 무슨…… 괴물 같은……."
바이퍼는 두 눈을 부릅뜬 채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가슴팍에 박힌 진혁의 손가락 끝에서 푸르고 검은 흡원천공(吸元天功)의 기운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슈우우욱-!
바이퍼의 몸 안에 남아 있던 고출력 생체 코어의 에너지와 융합 나노머신의 데이터 코드가 진혁의 손바닥을 타고 역류해 들어왔다.
[지직…… 찌직…….]
[에너지 흡수율 100%.]
[생체 코어 출력 상승. 3,100 MW → 3,800 MW 돌파.]
[나노머신 동기화율 75.1% → 82.4%로 상승.]
온몸의 혈관이 터질 듯한 팽창감이 밀려왔다.
방금 전까지의 전투로 소모되었던 체력과 마기가 단숨에 회복되는 것을 넘어, 한계치를 아득히 뛰어넘는 에너지가 단전을 가득 채웠다.
스읍, 하아-.
진혁이 낮게 숨을 몰아쉬며 손을 거뒀다. 그의 목과 손목을 따라 흐르던 은빛 회로 선이 잠시 눈부신 푸른빛을 발하다가 이내 가라앉았다.
바닥에 처참하게 쓰러진 바이퍼는 이제 숨을 거의 쉬지 못하고 있었다. 가슴팍의 코어가 강제로 적출되다시피 한 그의 신체는 이미 회생 불가능한 상태였다.
진혁은 차가운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티타늄 그룹의 블랙 가드. 네놈들이 하층가로 내려온 진짜 목적이 뭐지?"
바이퍼의 입술이 경련하듯 떨렸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입으로 낄낄거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큭…… 크큭…… 늦었어……."
"……?"
"너…… 네가 아무리 발악해봐도 소용없어. 이미…… 회장님의 특명으로…… 블랙 가드의 본대가 움직였다."
바이퍼의 광학 렌즈가 마지막 전력을 짜내며 깜빡였다.
"네가 여기서 우리를 다 죽여도, 다음 타자는 네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괴물들일 거다. 블랙 가드의 사령관…… 백무현이 직접 움직였으니까…… 크학!"
피를 토해내며 바이퍼의 고개가 툭 꺾였다.
완전한 사망이었다.
진혁은 쓰러진 시체를 내려다본 채 잠시 침묵을 지켰다.
블랙 가드의 사령관, 백무현.
티타늄 그룹의 절대적 무력 집단이자, 인간의 형상을 한 살인병기.
기계적인 충성심과 S급 개조 시술로 무장한 그들이 하층가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은, 티타늄 그룹이 더 이상 자신을 단순한 '탈출한 실험체'로 보지 않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곧 전면전의 서막이었다.
'잘 됐군.'
진혁의 입가에 엷고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숨어 다녀야 할 이유는 없다. 티타늄 그룹이 자신을 잡기 위해 파견한다면, 오는 족족 흡원천공의 양분으로 삼아주면 그만이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가벼운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다가왔다.
"진혁 씨!"
윤아영이었다. 그녀는 손에 든 태블릿PC를 급하게 조작하며 진혁에게 달려왔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숏컷의 분홍빛 머리칼은 땀에 젖어 있었다.
"아영 씨, 상황은?"
진혁이 묻자, 아영이 태블릿의 화면을 진혁에게 내밀었다. 화면 속에는 하층가 전체의 네트워크 맵과 함께, 수많은 붉은색 경고 신호가 깜빡이고 있었다.
"방금 하층가 외곽 진입로 쪽 감시 카메라 네트워크가 해킹당했어요. 아니, 해킹이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박살 났어."
아영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티타늄 그룹의 군용 수송선 세 대가 하층가 4구역에 강하했어요. 그리고 그들이 내뿜는 코어 출력 데이터…… 이거 보통이 아니에요. 일반 특수부대 수준이 아니야."
"블랙 가드인가."
"네! 데이터베이스를 대조해 보니까 확실해요. 그 살인병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지금 이 수력 발전소 쪽으로 오는 궤적이 잡혔습니다. 진혁 씨, 우리 여기서 당장 떠나야 해요!"
아영의 다급한 외침에도 진혁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손에 쥐었던 부서진 철검을 바닥에 던져버리고, 대신 바이퍼가 차고 있던 고성능 나노 튜닝 검을 집어 들었다. 손잡이에 손을 올리자, 그의 단전에서 흘러나온 마기와 나노머신 회로가 자연스럽게 동기화되며 검신에 푸른 검강이 서렸다.
진혁은 고개를 들어 어두운 발전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 너머, 신서울의 화려한 상층 마천루가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가 하층가를 짓누르고 있었다.
"도망칠 곳은 없다, 아영 씨."
진혁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수많은 실험체로서 겪었던 고통과, 마침내 자신의 힘으로 그들을 부수겠다는 결의에서 비롯된 압도적인 살기였다.
"그들이 찾아온다면, 이곳에서 전부 짓밟아주면 된다."
[시스템 알림: 메인 퀘스트 갱신 [살인병기 집단의 내습]]
[목표: 블랙 가드의 선발대를 격멸하고 하층가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하라.]
진혁의 눈에 서린 흑안이 어둠 속에서 더욱 깊고 시퍼렇게 타올랐다.
윤아영은 진혁의 눈빛에서 풍겨 나오는 압도적인 기세에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단순한 허세가 아니었다. 방금 전 바이퍼를 상대로 보여준 압도적인 무력 해체와, 그 과정에서 뿜어져 나온 기이한 마기는 이미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그녀는 진혁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티타늄 그룹의 목을 베기 위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쳤어, 진짜. 상대는 사령관 백무현 휘하의 최정예 살인병기들이라고요. 온몸이 타이타늄 합금과 군용 나노머신으로 도배된 괴물들이야."
아영이 불안하게 입술을 깨물며 태블릿을 품에 안았다. 하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이미 고속으로 타이핑을 치며 지하 발전소 주변의 방어 시스템을 재설정하고 있었다.
"도망치지 않을 거라면, 최소한 판은 깔아줄게요. 이 수력 발전소의 메인 터빈 제어권을 강제로 오버클럭하겠습니다. 그 새끼들이 들이닥칠 때 발전소 전체를 일시적인 전자기 스톰 구역으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진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아영의 해킹 능력은 하층가에서 생존하기 위한 최고의 무기 중 하나였다. 기계와 인간이 융합된 현대의 초인들에게 전자기 충격은 치명적인 디버프가 될 수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십 분. 아니, 오 분도 안 남았어요. 저쪽 수송선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빨라요."
"좋다."
진혁은 검을 허리춤에 고쳐 메고, 발전소의 거대한 철문 쪽으로 걸어갔다.
어둡고 눅눅한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하지만 그 안에는 방금 흡수한 바이퍼의 생체 코어 에너지가 단전 속에서 뜨겁게 요동치며 온몸의 세포를 깨우고 있었다.
[SYSTEM INFO: 현재 체력 및 마기 컨디션 120%.]
[단전 내 압축 마기 안정화 진행 중.]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시스템의 음성은 이제 단순한 보조 장치를 넘어, 진혁의 육체와 완벽하게 동기화된 감각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쾅-!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발전소 외곽을 감싸고 있던 철제 외벽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박살 났다.
비산하는 철골 파편들 사이로, 살기와 차가운 기계음이 뒤섞인 무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이잉- 찰칵.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수십 개의 붉고 푸른 광학 센서들.
티타늄 그룹의 절대적 무력 집단, 블랙 가드의 선발대였다. 그들의 몸은 일반적인 인간의 형태를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전신이 무광 블랙의 군용 나노 장갑으로 뒤덮여 있었고, 팔다리에는 고출력 플라즈마 블레이드와 소형 유탄 발사기가 내장되어 있었다.
그 선두에 선 거대한 체구의 사이보그가 차가운 합성 음성으로 공간을 울렸다.
[표적 확인. 실험체 07호, 강진혁.]
[회장님의 명에 따라, 즉시 포획 및 부위 절단 처리에 착수한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다.
블랙 가드의 선발대가 일제히 지면을 박찼다. 초고속 나노머신의 출력이 개방되며 발생한 충격파가 발전소 바닥의 콘크리트를 사방으로 찢어발겼다.
인간의 동체시력으로는 궤적조차 잡을 수 없는 극초음속의 돌진.
하지만 진혁의 입가에 피식 하는 웃음이 걸렸다.
"목소리만 요란하군."
슈우우욱-!
진혁의 발밑에서 마광신보가 폭발했다.
빛의 잔상조차 남지 않는 비틀린 궤적을 그리며, 그는 정면으로 돌진해 오는 블랙 가드의 선발대 속으로 직접 몸을 던졌다.
마기(魔氣)와 최첨단 군사 나노머신이 충돌하는 소리가 지하 발전소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혈전의 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