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7화 생체 합체 수호자 헤카톤케이르
치직-! 찌지직-!
티타늄 그룹 본사 지하 섹터 4.
칠흑 같은 어둠이 지배하는 거대한 제어실 안에서, 기괴한 스파크가 허공을 가르며 사방의 콘크리트 벽을 난도질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남자의 눈빛은 조금의 흔들림조차 없었다.
강진혁.
시스템의 보조 HUD도, 인공지능 설화의 냉정한 음성도 그의 시야를 채우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오직 순수한 물리적 현실과, 살기를 머금은 적들의 파동뿐이었다.
쿵-! 쿵-쿵-!
지하 제어실의 바닥이 통째로 울렸다.
방폭문이 찢겨 나간 대공동(大空洞)의 안쪽, 거대한 냉각수 증기 속에서 형태를 가늠하기조차 힘든 거대한 형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헤카톤케이르(Hecatoncheires).
과거 티타늄 그룹이 고대 마교의 유골 데이터와 1세대부터 4세대까지의 불법 생체 코어를 억지로 융합하여 만든 괴물. 그 이름에 걸맞게, 그것의 몸뚱이는 수십 개의 인간형 사지와 기계 의수, 그리고 흉측하게 노출된 생체 코어들이 불규칙하게 얽혀 있는 거대한 덩어리였다.
"끄어어어어……!"
괴물의 목구멍에서 터져 나온 것은 인간의 성대가 아니었다.
고압의 전류가 흐르는 플라즈마 방전음과 수십 명의 무림인들이 내지르던 원한 어린 비명이 뒤섞인, 귓가를 찢는 듯한 소음이었다.
슈우우우-!
헤카톤케이르의 몸통 전면에 박혀 있는 50개의 생체 코어가 동시에 푸른빛을 번뜩였다.
순간, 제어실 전체의 중력이 미세하게 뒤틀렸다.
—경고. 외부 에너지 밀도 급상승.
—기계 장치의 공진 주파수 변동.
물론 진혁의 머릿속에는 시스템의 경고음 따위는 울리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버려진 지 오래였다. 대신 그의 심장이 묵직하게 요동치며, 온몸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마기의 흐름이 적의 기동을 온몸으로 받아치고 있었다.
스윽.
진혁이 검을 쥐었다.
천우진이 손수 개량하여 건네준 '천마검(天魔劍)'.
적의 에너지를 베어낼수록 검신에 새겨진 은빛 회로가 붉은 마기로 물들어가는 이 기괴한 명검은, 지금 진혁의 손에서 완벽한 살육의 도구로 정비되어 있었다.
"흐음."
진혁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지독한 철 냄새와 타버린 오존의 악취가 코를 찔렀지만, 오히려 그 척박한 환경이 그의 감각을 한계까지 끌어올리고 있었다.
콰아아앙-!
먼저 움직인 것은 헤카톤케이르였다.
거대한 괴물의 몸통에 박힌 수십 개의 기계 의수가 일제히 뒤로 젖혀지더니, 사방으로 고주파 플라즈마 포탄과 암기(暗器) 형태의 나노 블레이드를 빗발치듯 쏘아 올렸다.
쉬익- 릭, 릭, 릭!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사방이 은빛 궤적으로 물들었다.
피할 곳이라곤 없어 보이는 전방위 폭격.
일반적인 초인이라면 순식간에 수십 조각으로 난도질당해 잿더미가 되었을 탄막이었다.
그러나 진혁의 눈동자가 암흑 속에서 묘한 핏빛으로 빛났다.
[천마마안(天魔魔眼)].
눈앞에 날아오는 수십 발의 플라즈마 포탄과 나노 블레이드의 궤적이 느려졌다.
아니, 세상이 느려진 것이 아니라 진혁의 뇌가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와 의념의 깊이가 그 모든 궤적을 완벽하게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다.
탁!
진혁의 발이 바닥을 가볍게 굴렀다.
그와 동시에 그의 잔상이 허공에 찢어졌다.
[마영신보 - 극(極)].
빛의 궤적조차 남기지 않는 극한의 은형 보법.
플라즈마 폭풍이 진혁이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를 강타하며 콘크리트 바닥을 순식간에 용암처럼 녹여버렸지만, 그 폭발의 중심에 진혁의 모습은 없었다.
"크르릉……?"
헤카톤케이르의 수십 개 눈동자가 일제히 사방을 훑었다.
타겟을 상실한 괴물이 혼란스러운 듯 거대한 상체를 비틀며 사방으로 고주파 진동파를 뿜어냈다.
지지직-! 찌르릉!
주변의 철제 구조물들이 순식간에 비명을 지르며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그 공진의 파동이 제어실 전체를 메울 때, 괴물의 거대한 등 뒤에서 한 줄기 칠흑 같은 그림자가 솟구쳤다.
진혁이었다.
"시작부터 요란하군."
중얼거림과 함께 진혁의 오른손에 쥐인 천마검이 붉은 광채를 뿜어냈다.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44,800 MW의 출력이 검신을 타고 폭발적으로 집중되었다.
쿠구구구구궁-!
"크아아아아!"
헤카톤케이르가 뒤늦게 위협을 감지하고 수십 개의 팔을 뒤로 뻗어 진혁을 후려치려 했다.
기계 의수마다 탑재된 고출력 버너가 화염을 내뿜으며 마운트의 출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진혁의 검은 그보다 훨씬 빨랐다.
[천마일검 - 개량(改)].
쾅-!
단 한 번의 휘두름.
화려한 수식어도, 불필요한 연산도 없었다.
오직 압축된 마기와 초고주파 진동, 그리고 순수한 의념의 힘만이 하나의 선으로 압축되어 괴물의 거대한 어깨를 직격했다.
파지직-! 쿠궁!
"끄아아아악-!"
50개의 생체 코어가 동시에 과부하를 일으키며 굉음을 토해냈다.
괴물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티타늄 합금 장갑이 종잇장처럼 바스러지고, 그 안에서 시뻘건 마기와 함께 뒤엉킨 신경 회로들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단 일격.
그것만으로도 헤카톤케이르의 거대한 몸체 한쪽이 완전히 주저앉았다.
쿵-!
괴물이 거대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티타늄 그룹이 만든 최종 생체 병기가 그 정도 타격에 무너질 리는 없었다.
"크아아아아…… 코어… 동기화…… 재가동……!"
괴물의 몸통 깊은 곳에 박혀 있던 50개의 생체 코어가 일제히 역회전하기 시작했다.
지이잉-!
코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서로 부딪치며 거대한 전자기적 폭풍우를 만들어냈다.
주변의 중력이 급격하게 왜곡되면서 진혁의 발이 바닥에서 살짝 떠오를 정도의 강력한 인력장이 발생했다.
—크윽.
사방에서 짓누르는 압박감.
기계 장치와 마기가 억지로 융합된 결과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정상적인 에너지 공진은 주변의 공간마저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었다.
"호오."
진혁은 공중에 떠오른 채 차가운 시선으로 괴물을 내려다보았다.
수십 개의 코어가 서로를 물고 물리며 만들어내는 불규칙한 에너지의 흐름.
일반적인 무공이나 기계적 분석으로는 도저히 패턴을 읽어낼 수 없는 난잡한 엉킴이었다.
하지만 진혁의 눈에는 그것이 보였다.
머릿속의 시스템이 없어도 상관없었다.
그는 지난 수많은 사투 속에서 자신의 감각을 극한까지 단련해왔다.
수십 개의 코어가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는 그 미세한 균열, 즉 '단 하나의 결함 노드'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결국엔 인간의 찌꺼기들을 억지로 꿰매 붙인 누더기일 뿐이다."
진혁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올라갔다.
전신경락을 타고 흐르는 마기가 더욱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44,800 MW의 출력이 45,000 MW, 그리고 그 이상으로 치솟으며 그의 몸 주변에 칠흑 같은 오라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우두둑-!
공기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진혁이 검을 거꾸로 잡은 채 공중에서 그대로 아래를 향해 내리꽂히듯 낙하했다.
목표는 헤카톤케이르의 가슴 정중앙.
50개의 코어가 가장 밀집되어 있어 가장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모여 있는 코어의 심장부였다.
"받아라."
슈아아아아-!
진혁의 검첨에서 뿜어져 나온 칠흑의 검강이 푸른 뇌전과 융합하여 거대한 창의 형상을 이뤘다.
그것은 현대 군사 기술의 원리와 고대 마교의 극의가 완전히 하나로 녹아든 형태였다.
[만법귀마 - 파동 반사].
콰아아앙-!
괴물이 마지막 발악으로 뿜어낸 전자기 폭풍이 진혁의 검강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제어실 전체의 조명이 완전히 나가며 암흑이 찾아왔고, 그 암흑 속에서 오직 시뻘건 마기와 푸른 뇌전만이 눈이 멀 정도로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쩌저적-! 콰창창창-!
"크아아아아아악……!"
헤카톤케이르의 거대한 몸통이 정중앙부터 두 쪽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괴물의 비명 소리가 제어실의 철문과 천장을 진동시키며 사방으로 흩어졌고, 50개의 생체 코어가 견디지 못하고 연쇄적으로 폭발을 일으켰다.
쾅! 콰콰쾅-!
연쇄 폭발의 화염이 지하 섹터 4를 집어삼키는 순간, 진혁의 잔상이 화염을 뚫고 괴물의 등 뒤로 유유히 빠져나왔다.
착지.
진혁이 검을 가볍게 털어내자, 검신에 묻어 있던 푸른 불꽃과 검붉은 피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의 뒤편에서는 헤카톤케이르의 거대한 잔해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며 거대한 화염의 바다로 변하고 있었다.
쿠구구구궁…….
제어실의 안쪽,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낸 진짜 메인 서버실의 거대한 방폭문이 진혁의 시야에 들어왔다.
방폭문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묵직하고 서늘한 고대 마기의 파동은, 지금까지 마주했던 그 어떤 적의 것보다도 순수하고 거대했다.
진혁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등 뒤로 신서울 최하층의 어둠이 조용히 닫히고 있었다.
치이익…….
무너진 헤카톤케이르의 잔해 위로 냉각수가 새어 나오며 자욱한 백색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지독한 수증기 사이로, 강진혁은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전방을 응시했다.
방폭문.
티타늄 그룹의 심장부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도록 철저히 격리되어 있던 최후의 보안 구역이었다.
슈우우- 쾅!
진혁이 손에 쥔 천마검의 검신을 가볍게 바닥에 툭 치자, 검강의 여파가 바닥의 강화 콘크리트를 종잇장처럼 갈라놓았다.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출력은 이미 45,000 MW를 상회하고 있었다.
제프로스와 헤카톤케이르의 파편 속에서 강제로 쥐어짜낸 에너지와 순수한 마기가 혈관 속을 타고 돌며 온몸의 세포를 일깨우고 있었다.
“나와라.”
진혁의 낮고 묵직한 음성이 제어실의 잔해를 울렸다.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 침묵이야말로 저 문 너머에 도사린 존재가 진정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끼익- 쿠구구구궁……!
두께만 해도 수 미터에 달하는 티타늄 방폭문이 스스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듯 천천히 좌우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는 그 틈새로, 일반적인 공기 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지독한 고대의 한기(寒氣)와 함께 핏빛으로 물든 안개가 흘러나왔다.
슥, 슥.
안개 속에서 들려오는 것은 발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수많은 미세한 나노머신과 생체 세포가 공명하며 마찰하는 듯한 기괴한 진동음이었다.
“……후회하게 될 거다.”
문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수십 명, 아니 수백 명의 목소리가 겹쳐서 울리는 듯한 끔찍한 중음(重音)의 화음.
그것은 이미 육체와 영혼이 구별되지 않은 채 데이터로 박제된 자들의 절규이자, 1,000년 전 천마의 의지가 남긴 마지막 잔재였다.
슈아아아-!
방폭문이 완전히 개방되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경악 그 자체였다.
거대한 돔 형태의 제어실 중앙, 수천 개의 푸른색 케이블과 생체 포트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거대한 유리 원통이 있었다.
그리고 그 원통의 정중앙에 매달려 있는 것은 인간의 형상을 한 거대한 붉은색 코어였다.
[프로토콜 00호 - 완전체].
과거 이현도와 진무극이 마교의 유골 데이터에서 추출해낸 모든 기술과 마공의 원본이, 이 거대한 생체 코어 안에서 숨을 쉬듯 맥동하고 있었다.
두근, 두근, 두구둥-!
코어가 뛸 때마다 제어실 전체의 중력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진혁의 미간이 좁혀졌다.
눈앞의 코어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동은 단순히 강하다는 수준을 넘어섰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를 직접 지배하고, 뇌리에 강제적인 명령을 주입하려는 끔찍한 정신적 압박이었다.
—접속을 허용한다. 너는 내 것이다.
—나의 그릇이여, 마침내 돌아왔구나.
머릿속에 직접 울려 퍼지는 목소리.
시스템의 보조가 끊긴 상태였기에, 그 목소리는 순수하게 진혁 자신의 정신력을 타격하고 있었다.
“하.”
진혁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틀어졌다.
두려움이나 압도감이 아니었다.
자신을 오직 ‘그릇’ 따위로 여기며 영생의 도구로 쓰려 했던 흉측한 잔재에 대한 극도의 혐오와 살기였다.
“네놈이 천마라고?”
진혁이 차갑게 조소했다.
그의 손에 쥐인 천마검의 붉은 광채가 더욱 짙어졌다.
“천마(天魔)란 누군가의 그릇 노릇이나 하던 샌님이 아니다.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하늘을 찢고 일어선 자를 뜻하는 법이지.”
쿠구구구구궁-!
진혁의 발밑에서 폭발적인 마기가 대지를 뒤흔들었다.
단전의 출력이 46,000 MW를 돌파하며 주변의 공기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네놈이 가진 데이터와 기교 따위는 필요 없다. 내가 오늘, 그 허울뿐인 잔해를 완전히 베어버리겠다.”
콰아아앙-!
진혁의 몸이 한 줄기의 칠흑 같은 번개가 되어 거대한 유리 원통을 향해 수직으로 쏘아 올렸다.
1,000년 전의 유골과 현대 메가 코퍼레이션의 기술이 융합된 최후의 의지, 그리고 시스템의 족쇄를 완전히 깨부수고 스스로 진리를 개척한 참된 무인의 격돌이 마침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