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전용 사이트예요. 댓글·로그인·좋아요는 준비 중이에요.
‹프로토콜: 천마 · 116화목차

제116화 지하 섹터 4 침투

쉬익-!

공기 정화 장치의 필터가 오래되어 낡은 쇳내를 뿜어내는 환기구.

그 좁고 어두운 철판 통로 속을, 강진혁의 몸은 그림자처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발소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물리적인 발소리 자체가 대기 중에 흩어지도록 마기를 발목의 혈관 구석구석까지 밀어 넣은 결과였다.

[SYSTEM INFO: 수동 내공 운기 중 (천마 프로토콜 네트워크 차단 상태)]

[현재 단전 코어 출력: 43,500 MW]

[마영신보 - 극(極) 동기화율: 96.4%]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인공지능이 계산해 낸 최적의 수치가 아니었다.

오직 자신의 호흡, 심장의 박동, 그리고 혈관을 타고 흐르는 묵직한 마기의 흐름뿐이었다.

'이현도 녀석이 남겨둔 마지막 쓰레기장인가.'

강진혁의 흑안이 어둠 속에서 푸르스름한 광채를 발하며 반짝였다.

그가 지금 향하고 있는 곳은 티타늄 그룹 본사의 가장 깊숙한 밑바닥, 지상에서는 지도를 찾아볼 수도 없는 폐쇄 구역.

공식 명칭 ‘지하 섹터 4’.

과거 티타늄 그룹이 고대 마교의 유골과 마공 데이터를 처음 입수하여, 인간을 상대로 무모한 생체 실험을 감행하다가 폐기한 잔해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지옥의 기지였다.

비비직-!

통로 벽면에 설치된 구형 감시 카메라의 렌즈가 파르르 떨리며 적외선 스캐너를 뿜어냈다.

만약 일반적인 인간이나, 심지어 3세대 이상의 고성능 나노머신을 장착한 특수공작원이라 할지라도 그 붉은 광선에 닿는 순간 즉시 전방의 경보음이 울리며 수백 기의 방어 로봇이 튀어나올 터였다.

하지만 강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슈우우-.

그의 어깨 주변에서 미세한 흑기(黑氣)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마기가 공기의 밀도를 왜곡하고, 카메라 렌즈의 열화상 센서가 감지하는 파장을 완벽하게 흡수해 버린 것이다.

스펙터 암살 부대의 광학 왜곡 기술과 흡원천공의 원리를 융합하여 만든 [마영신보 - 극(極)].

그 경지에 이른 자에게 인간의 과학 기술로 만든 감시망 따위는 눈이 먼 장님의 헛손질에 불과했다.

툭.

환기구의 끝, 철제 그릴을 가볍게 손가락 끝으로 튕기자, 요란한 소리 대신 기분 나쁠 정도의 정적 속에서 나사못들이 스르륵 풀려 떨어졌다.

강진혁은 소리 없이 아래로 몸을 낙하했다.

사방이 시멘트 벽돌로 마감된 거대한 지하 터널.

바닥에는 오래된 냉각수가 찰랑거리고 있었고, 천장에 매달린 비상등은 수명이 다한 것인지 붉은빛을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삐삐, 삐비빅-.

멀리서 자동 경비 로봇들의 순찰 소리가 들려왔다.

강진혁은 그저 차가운 시선으로 전방을 응시하며 품 안에서 손을 꺼냈다.

지하 섹터 4로 진입하기 직전, 하층 슬럼가의 기지에서 윤아영이 보내온 서브넷 해킹 주파수 코드가 그의 시각 신경을 타고 머릿속에 아로새겨져 있었다.

[윤아영의 서브넷 우회 프로토콜 수신 완료.]

[지하 섹터 4의 내부 방화벽 및 서브 네트워크 침투 시작.]

—진혁 오빠, 거긴 정말 조심해야 해. 데이터 기록을 보니까 거긴 단순한 연구소가 아니야. 마교의 잔해를 가지고 인간의 신경계를 강제로 개조하던 미치광이들의 무덤 같은 곳이야. 방어 시스템이 메인 서버와 연결되어 있지 않고 자체적인 아날로그 회로로 돌아가고 있어서 내 손으로 완전히 끄기가 힘들어.

윤아영의 목소리가 통신기를 통해 귓가를 스쳤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이곳의 방어 시설은 중앙 AI의 통제를 받지 않는, 철저하게 물리적이고 기계적인 살인 기계들로 채워져 있었다.

즉, 해킹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오직 무력으로 부수고 나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라는 뜻이었다.

"상관없어."

강진혁의 입술이 낮게 1자(字)로 굳어졌다.

어차피 처음부터 끝까지 피로 얼룩진 복수의 길이었다.

그가 티타늄 그룹의 심장부를 짓밟으며 올라온 이유는 단 하나, 이 디스토피아의 허울 좋은 가면을 완전히 찢어발기고 마침내 스스로의 진리를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끼익- 쿠구구구구…!

그때, 강진혁의 전방에 위치한 거대한 철문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열렸다.

그 안에서 흘러나온 것은 찌들 대로 찌든 살점 썩는 냄새와, 짙은 쇳내 섞인 인공 마기의 파동이었다.

"……."

두 눈을 가늘게 뜬 강진혁의 시야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거대한 연구실 내부.

사방의 유리관 속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흉측한 형상의 인체 개조 실험체들이 매달려 있었다.

그들의 가슴 부근에는 고대 마교의 문양이 새겨진 불완전한 생체 코어가 박혀 있었고, 코어의 과부하로 인해 피부가 터져나가며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키이익-!

철문 안쪽의 어둠 속에서 기괴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인간의 형태를 완전히 상실한 채, 수십 개의 강철 의수와 기괴한 기계 촉수를 주렁주렁 매달린 실패한 무림인의 잔해들이 번들거리는 눈동자로 강진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촤르륵, 촤르르륵!

사방의 벽면에 설치된 고주파 마공 포탑들이 일제히 푸른빛의 에너지 충전음을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고, 총구의 방향이 일제히 강진혁의 심장과 머리를 겨눴다.

하지만 강진혁은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입꼬리를 길게 말아 올리며 차갑고 잔혹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런 쓰레기들을 잔뜩 심어두고 숨어 있겠다는 거였나, 이현도."

이미 죽어버린 크로노스의 이름을 나지막이 뇌까린 강진혁의 손등 위로, 은빛 회로 선을 따라 끓어오르는 칠흑의 마기가 폭발하듯 뻗쳐 나갔다.

쿠구구구구궁-!

지하 섹터 4의 단단한 강화 콘크리트 바닥이 강진혁의 발자국 소리 한 번에 사방으로 금이 가며 쩍쩍 갈라졌다.

시스템의 보조도, 인공지능의 계산도 필요 없었다.

오직 자신의 의념과 뼈를 깎는 수련으로 완성된 순수한 마기만이 그의 전신을 감싸 안았다.

[단전 출력 상승: 44,000 MW 돌파.]

시뻘건 경고등이 지하 터널 전체를 피로 물들이는 그 순간, 강진혁의 몸이 한 줄기의 검은 벼락이 되어 거대한 연구실 안으로 쏘아져 들어갔다.

콰광-!

강진혁의 발이 디딘 자리가 폭발적인 반동과 함께 붕괴했다.

순간적으로 짓이겨진 콘크리트 가루가 사방으로 튀어 오르기도 전에, 그의 형체는 이미 시야의 잔상조차 남기지 않은 채 허공으로 사출되어 있었다.

[마영신보 - 극(極)]의 경지.

그것은 단순히 속도가 빠르다는 차원을 넘어섰다. 공간의 기류와 기압의 차이를 마기로 후벼 파서, 마치 물속을 유영하듯 허공을 미끄러지듯 돌파하는 무형(無形)의 보법이었다.

키이익-!

지하 섹터 4의 철제 벽면에 부착되어 있던 수십 문의 고주파 마공 포탑들이 일제히 화염을 뿜어냈다.

츠자자작-!

허공을 가른 고주파 에너지 탄환이 강진혁이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를 순식간에 종이 쪼가리처럼 찢어발겼다. 철판이 녹아내리며 매캐한 오존 냄새와 타버린 살점의 악취가 뒤섞여 폐를 찔렀다.

하지만 탄환이 명중한 곳에 남은 것은 잔상뿐이었다.

"……어디를 조준하는 거냐."

차가운 음성과 함께, 거대한 연구실의 천장 철제 빔 위에 강진혁의 발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의 흑안이 번뜩였다.

천마마안(天魔魔眼).

그 심법의 극의로 개안한 통찰의 안광은, 포탑들이 발사하는 에너지의 맥락과 그를 구동하는 아날로그 기판의 미세한 전류 흐름을 마치 투명한 유리를 들여다보듯 낱낱이 꿰뚫어 보고 있었다.

부웅-.

강진혁의 오른손 검지가 허공을 가볍게 그었다.

그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기계적인 레이저가 아니었다.

압축된 칠흑의 마기에 초고속 물리적 진동을 융합시킨 [고주파 마검강(高周波 魔劍剛)]의 파동이었다.

피식-!

소리조차 제대로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손가락을 휘두른 방향을 따라,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마공 포탑들의 회전축이 정확히 반쪽으로 스걱 잘려 나갔다.

지지직, 스파크를 튀기며 폭발하는 포탑의 잔해들이 바닥으로 와르르 쏟아졌다.

키아아아아악-!

포탑이 파괴되자마자, 연구실 구석의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던 불완전한 개조체들이 일제히 괴성을 지르며 튀어나왔다.

인간의 형태를 잃고 거대한 철판과 융합된 수십 거의 생체 실험체들.

그들의 흉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완전한 마기의 파동이 지하 섹터 4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철컥, 우두둑-!

기괴한 기계 의수와 철근을 뼈대 삼아 뒤틀린 팔다리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흉물들.

그것은 과거 티타늄 그룹이 인간을 가축처럼 부리며 마공을 주입하다 버려둔 끔찍한 부산물이자, 이 디스토피아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괴물들이었다.

"버려진 쓰레기들이 자아를 가졌다고 착각하는가."

강진혁의 입가에 짙은 냉소가 걸렸다.

그는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괴물 무리를 향해 정면으로 걸음을 내디디며, 단전 부근의 혈관을 거칠게 역류시켰다.

콰아아앙!

[단전 출력: 44,200 MW.]

폭등하는 마기가 그의 전신을 감싸 안은 [천마무상체]를 더욱 단단하게 경화시켰다.

가장 선두에서 달려오던 거대 개조체가 녹슨 톱날 같은 철제 의수를 강진혁의 어깨를 향해 무자비하게 내리꽂았다.

퍼엉-!

금속과 육신이 부딪치는 소리가 아니라, 마치 거대한 대포알이 터지는 듯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강진혁은 그 일격을 미동조차 하지 않고 맨몸으로 받아쳐 냈다.

개조체의 톱날 의수가 강진혁의 어깨에 닿는 순간, 역으로 그 충격파를 견디지 못하고 철판 부위가 바스러지며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크윽……?"

괴물의 입에서 인간의 것인지 짐승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탁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 순간, 강진혁의 검은 눈동자가 번뜩였다.

"내 에너지가 되거라."

흡원천공(吸元天功) - 개량(改).

강진혁의 손바닥이 괴물의 흉부에 박혀 있던 불완전한 생체 코어를 그대로 움켜쥐었다.

지-익, 지지직-!

기괴한 소리와 함께, 괴물의 몸 안에서 요동치던 검붉은 마기와 잔여 에너지가 강진혁의 손바닥을 타고 역류하기 시작했다.

괴물들의 몸이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진 미라처럼 쪼그라들었다.

그 안에서 정제되지 못한 채 끓어오르던 불순물과 독소들은 강진혁의 뼛속을 스치며 완전히 소독되었고, 오직 순수한 에너지의 입자들만이 그의 단전으로 흡수되어 코어 출력을 급격히 끌어올렸다.

[흡수 완료.]

[단전 코어 출력: 44,800 MW 돌파.]

두두두두두-!

주변에 있던 다른 개조체들이 공포에 질린 듯(비록 저급한 뇌 개조를 거쳤을지라도 본능적인 죽음의 공포는 남아 있었던 것인지) 뒤로 물러서려 발악했지만, 이미 늦었다.

강진혁의 손에 쥐여진 개량형 천마검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검은 잔상을 남겼다.

슈우우우- 팟!

한 줄기의 거대한 십자 참격이 연구실의 어둠을 가르며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뇌전마강 - 십자참(十字斬).]

콰광-! 콰바바방!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융합된 참격은 단순한 물리적 절단에 그치지 않았다.

참격이 스쳐 지나간 자리마다 연쇄적인 분자 결합 파괴가 일어나며, 달려들던 수십 거의 생체 개조체들과 사방의 철제 벽면이 동시에 먼지와 고철 덩어리로 화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순식간에 지옥 같은 혈전이 벌어졌던 공간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매캐한 훈증 속에서, 강진혁은 천천히 숨을 고르며 걸음을 옮겼다.

후우-.

하얗게 흩어지는 호흡 속에는 피비린내조차 섞이지 않았다.

그가 도달한 곳은 지하 섹터 4의 최안쪽, 삼중의 방폭문으로 가로막힌 거대한 제어실의 입구였다.

비비직, 지직-.

방폭문의 상단에 설치된 비상등이 붉은색 경고 빛을 격렬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그 철문 너머에서, 기괴할 정도로 거대하고 압도적인 생체 마기의 파동이 진혁의 피부를 스쳐 지나갔다.

잠시 발걸음을 멈춘 강진혁의 귀에, 윤아영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통신기를 통해 희미하게 울려 퍼졌다.

—진혁 오빠! 방금 그 구역 데이터베이스에서 비정상적인 로그를 포착했어……! 지하 섹터 4의 가장 안쪽에는 단순한 연구소가 아니야. 그 안에는…… 1천 년 전 마교의 유골과 현대 티타늄의 기술을 강제로 융합해서 만든, 인간이 상대할 수 없는 무언가가 깨어나고 있어……!

윤아영의 목소리에는 드물게도 팽팽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강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피식,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손에 쥔 개량형 천마검의 손잡이를 더욱 꽉 움켜쥘 뿐이었다.

깨어나면 그뿐이다.

그것이 마교의 잔해든, 티타늄 그룹이 숨겨둔 최후의 병기든 상관없었다.

자신의 앞에 가로막히는 모든 것을 부수고 위로 올라가는 것, 그것이 바로 그가 선택한 '천마'의 길이었으니까.

쾅-!

강진혁의 주먹이 삼중 방폭문의 중앙을 그대로 내리쳤다.

단전 출력 44,800 MW의 마기가 폭발하며, 두께만 수 미터에 달하는 강화 티타늄 문짝이 종이장처럼 속절없이 안쪽으로 박살 나며 날아갔다.

뿌드득, 쿠구구구구……!

파편이 비처럼 쏟아지는 그 먼지 자욱한 방폭문 너머의 어둠 속에서, 거대하고 붉은 수십 개의 안광이 일제히 빛을 내뿜으며 강진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키아아아아아-!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실패한 무림인들의 생체 코어 50개를 강제로 융합하여 만든 신서울 최하층의 진짜 괴물—[헤카톤케이르]였다.

다음 화 바로보기 ›
이 작품, 여기까지 어떠셨나요? ★ 별점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