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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113화목차

제113화 용병왕의 패배

쿠우우구궁—!

신서울 최하층 심장부를 뒤흔들던 폭음이 가라앉기도 전이었다. 허공에 잔류하던 검붉은 마염이 사방으로 튀며 콘크리트 바닥을 순식간에 녹여내렸다.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발생한 열풍이 제프로스의 거대한 덩치를 사정없이 밀어냈다. 4.5세대 대기갑 수트의 장갑판은 이미 원형을 잃은 지 오래였다. 가슴 부근에 박혀 있던 중력 제어 모듈은 강진혁이 날린 일격의 여파로 찌그러진 채 쉴 새 없이 스파크를 튀기고 있었다.

“커헉……!”

제프로스의 입에서 검은 피가 왈칵 쏟아졌다. 그의 눈동자가 극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흔들렸다.

인간의 육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출력이었다.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는 단순한 에너지를 넘어 하나의 거대한 폭풍처럼 제프로스의 감각을 짓누르고 있었다.

강진혁의 서슬 퍼런 흑안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시스템의 HUD도, 인공지능의 보조 연산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눈앞의 적이 뿜어내는 기류와 심장 박동, 그리고 혈관 속을 흐르는 마기의 파동만으로 적의 모든 움직임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것은 기계가 부여한 힘이 아니었다. 순수한 무인의 의지와 통찰이 만들어낸 정점의 경지.

“이럴 리가…….”

제프로스가 부르짖듯 중얼거렸다. 그는 글로벌 용병 기업 ‘아이언 윌’의 에이스였다.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수억 달러짜리 개조 수트와 4.5세대 생체 코어로 무장한 채, 신서울의 상층부조차 두려워하는 괴물이었다.

그런 그가, 단 한 명의 무인에게 이토록 철저하게 유린당하고 있었다.

“네놈의 코어는 여기까지다.”

강진혁의 목소리는 차갑고 무감정했다. 그의 손끝에서 얽혀드는 [마염강기(魔炎剛氣)]가 파르스름한 뇌전과 함께 흉포하게 일렁였다.

지면이 쩍 갈라지며 강진혁의 신형이 다시 한번 허공으로 솟구쳤다.

[마영신보 - 극(極)].

광학 왜곡 회로와 마기가 융합된 보법은 눈으로 좇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잔상조차 남지 않는 초고속의 기동. 제프로스가 본능적으로 중력 제어 모듈을 과부하시키며 방어벽을 전개하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콰아아앙!

강진혁의 손바닥이 제프로스의 가슴팍에 박혀들었다. 단순한 타격이 아니었다. 초고주파 진동과 압축된 마기가 수트의 분자 결합을 내부에서부터 붕괴시키는 파괴적 일격이었다.

“크아아악—!”

제프로스의 비명이 최하층의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4.5세대 대기갑 수트가 유리 조각처럼 산산조각 나며 사방으로 튀었다. 수트 내부의 고압 플라즈마 배관이 터져 나오며 사방이 눈이 멀 정도로 밝은 섬광으로 물들었다.

쿵, 하고 거대한 체구가 바닥에 처박혔다. 제프로스는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었다. 전신의 뼈와 근육이 마기에 의해 완전히 짓눌려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눈을 치켜떴다. 자신의 코앞에 멈춰 선 강진혁의 군홧발이 보였다.

두려움.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원초적인 공포가 제프로스의 전신을 잠식했다.

“……죽여라.”

제프로스가 피투성이가 된 입술을 달싹이며 말했다. 용병으로 살아온 삶이었다. 패배는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는 자신이 거둬들인 목숨만큼이나 당당하게 자신의 목을 내놓으려 했다.

하지만 강진혁은 칼을 내리꽂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바닥이 제프로스의 가슴 중앙, 4.5세대 생체 코어가 박혀 있는 부위에 스르륵 내려앉았다.

“죽이기엔 아깝군.”

낮게 읊조린 강진혁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호선을 그었다. 그의 단전에서부터 거대한 흡입력이 피어올랐다.

[흡원천공 - 개량(改)].

과거 시스템의 보조 연산 장치에 의존해 마기를 제어하던 시절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제 강진혁의 육체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블랙홀이었다.

지이잉—!

제프로스의 가슴에 박혀 있던 4.5세대 생체 코어가 흉측한 소리를 내며 진동했다. 코어 내부에서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던 고출력 에너지와 중력 제어 알고리즘의 데이터 스트림이 강진혁의 손바닥을 통해 역류하기 시작했다.

“커…… 크윽! 내, 내 코어가……?!”

제프로스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자신의 생명줄이자 무력의 원천인 코어가 강탈당하는 고통은 영혼이 찢어지는 것과 같았다. 온몸의 피와 살이 빨려 나가는 듯한 극심한 허탈감 속에서, 그는 강진혁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새로운 질서로 재창조하는 마신(魔神)의 안광이었다.

콰지지직—!

강진혁의 단전 부근에서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었다. 제프로스의 4.5세대 코어에서 추출된 고순도의 에너지와 중력 제어 모듈의 데이터가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단전의 출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단전 출력 상승 중……]

[현재 출력: 34,500 MW]

[에너지 흡수율 안정화: 98.4%]

[신체 재구성 프로세스 독자 가동 중]

물론 이것은 시스템이 띄워주는 HUD가 아니었다. 강진혁의 의식이 직접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실시간으로 감각하고 통제하는 순수한 자가 연산의 결과였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마기가 더욱 짙고 단단해졌다. 나노머신들은 이제 외부의 명령이 아니라, 강진혁의 의념 그 자체에 반응하여 육체의 밀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리고 있었다.

꾸루루룩—!

강진혁의 몸 주변에서 공간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제프로스의 코어에 내장되어 있던 중력 제어 기술이 흡수되면서, 그의 움직임 주변에 미세한 중력장 왜곡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큭…… 괴물…… 놈…….”

제프로스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그의 가슴에 박혀 있던 4.5세대 생체 코어는 이미 에너지가 완전히 바닥나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강진혁은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투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근육이 한 차례 더 팽창했다가 가라앉았다.

[단전 출력: 38,200 MW.]

비약적인 상승이었다. 단순히 출력이 높아진 것만이 아니었다. 제프로스의 코어에 담겨 있던 중력 제어 알고리즘과 고열량 플라즈마 반응식을 흡수하면서, 강진혁의 무공은 또 한 번의 경지를 향해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다.

쿵— 쿵—

지하 최심부의 거대한 원자로가 불규칙하게 맥박치듯 울렸다. 제프로스를 제압하고 에너지를 흡수한 강진혁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제어실 안쪽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이현도와 진무극이 남겨둔 마지막 유산이자, 1,000년 전 마교의 유골 데이터가 봉인된 거대한 유리관이 놓여 있었다.

유리관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안개 같은 파동은 이미 물리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데이터의 잔재가 아니었다. 천 년 전 마교의 지존, 최초의 천마가 남겼던 '어떤 의지'의 파편이었다.

척, 하고 강진혁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손에 들린 개량형 천마검이 낮게 울부짖듯 진동했다. 검신에 새겨진 흑빛의 문양들이 제프로스의 에너지를 흡수하며 더욱 짙은 마기를 뿜어냈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겠다는 건가.”

강진혁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두려움은 없었다. 오직 심장을 뛰게 하는 뜨거운 혈기만이 그의 전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티타늄 그룹의 잔당들과 메가 코퍼레이션의 배후에 도사린 진짜 주인. 그리고 1,000년 전 마교의 비밀까지.

모든 것이 그 유리관 너머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콰아아앙—!

강진혁이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최심부의 바닥이 갈라지고, 검붉은 마기가 신서울의 지하를 뒤흔들며 거대한 폭풍처럼 피어올랐다.

유리관을 향해 다가갈수록, 공기 중에 떠도는 마기의 농도가 짙어졌다. 그것은 단순히 호흡을 곤란하게 만드는 물리적 압박이 아니었다. 머릿속을 파고들어 과거의 기억을 헤집고,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영적인 침식에 가까웠다.

‘흥, 잔머리를 굴리는가.’

강진혁은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시스템의 보조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인공지능이 제공하던 방화벽이나 정신 보호 알고리즘 따위는 없었지만,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더욱 단단해진 무인의 의념이었습니다.

스스로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38,200 MW의 마기가 온몸의 혈관을 거세게 역류하며 정신을 강하게 타격했다. 뇌리에 스치는 환영들—티타늄 그룹의 실험실에서 피를 흘리며 버려지던 기억, 이현도가 차가운 눈으로 데이터를 기록하던 모습, 그리고 진무극이 자신을 그릇으로 취급하며 비웃던 목소리들이 뒤섞여 덮쳐왔다.

하지만 강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 모든 고통과 분노는 이미 그의 내공을 단련하는 거친 연료에 불과했다.

지이익— 쾅!

강진혁의 부츠가 바닥을 박차자, 미세한 중력장 왜곡이 일어난 지면이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마영신보 - 극(極)]. 빛의 궤적조차 남기지 않는 초고속 이동에 공간이 일그러지며 검은 잔상이 꼬리를 물었다.

단숨에 거대한 유리관 앞에 도달한 강진혁이 그대로 개량형 천마검을 치켜들었다.

콰구구궁—!

검신에 깃든 마염강기와 푸른 뇌전, 그리고 방금 흡수한 제프로스의 4.5세대 중력 제어 에너지가 하나로 융합되었다. 단순한 참격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대 군사기술의 물리학적 극한과 고대 마공의 파괴적 진리, 그리고 무인의 의념이 완벽하게 결합된 형태였다.

[천마일검(天魔一劍) - 개량(改)].

쩍 갈라지는 공간 속에서 검강이 일직선으로 내리꽂혔다. 방어막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천 년 동안 닫혀 있던 마교의 유골 데이터 보존실, 그 중심에 세워진 초고강도 티타늄 유리관이 굉음과 함께 가루로 부서졌다.

파창아아앙—!

유리관이 깨어지며 안쪽에 봉인되어 있던 검은 안개가 사방으로 폭발하듯 튀어 올랐다. 그 안개는 이내 거대한 형체를 이루었다. 형체 없는 검은 아지랑이 속에서 수많은 붉은 눈동자들이 떠올랐고, 신서울 최하층의 공기를 뒤흔드는 기괴한 파동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네놈은…… 우리의 그릇……!]

귀를 찢는 듯한 음성이 머릿속을 강타했다. 그것은 특정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1,000년 전 마교의 유골과 티타늄 그룹이 수십 년간 축적해 온 실험 데이터, 그리고 신서울 최하층의 모든 자본과 생명 에너지가 결합하여 탄생한 거대 의지의 목소리였다.

이현도와 진무극조차 그 거대한 의지의 수족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릇?”

강진혁은 차갑게 비웃으며 검을 고쳐 잡았다. 그의 검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오히려 거대한 의지의 붉은 눈동자들을 압도하듯 짓누르고 있었다.

“착각하지 마라. 내가 쓰이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너희를 부수러 온 것이다.”

콰아아앙!

강진혁의 몸에서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온 마기가 검은 안개의 형체를 정면으로 가격했다. 공간이 비명처럼 울부짖었고, 신서울 최하층의 메인 전력망이 연쇄적으로 폭발하며 거대한 암흑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 암흑 속에서, 오직 강진혁의 흑안과 개량형 천마검의 붉은 광채만이 태양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진짜 결전의 막이 올랐다. 시스템도, 타인의 의지도 아닌, 오직 스스로 개척한 참된 천마의 힘으로 신서울의 어둠을 완전히 끝장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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