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화 <중력 공진 해머 대 마영신보>
신서울 최하층 심장부.
빛 한 점 들지 않는 그곳은 대지 자체가 거대한 철판과 고철 덩어리로 짓눌려 있었다.
지하 2,000층의 소성(燒城)을 지나 더 깊은 곳.
공기 중에는 타다 만 나노머신 잔해와 역겨운 오존 냄새가 엉겨 붙어 끈적한 안개를 이루고 있었다.
스윽-.
발소리조차 나지 않는 고요함.
강진혁의 걸음은 무음(無音) 그 자체였다.
시스템의 HUD.
시야를 자극하던 푸른빛의 창들은 이미 완전히 꺼진 지 오래였다. 인공지능 설화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시야가 휑한 기분이었으나, 지금의 진혁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더 완벽한 자유였다.
‘기계가 계산하지 않는다.’
오직 심장의 고동과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마기(魔氣).
그리고 북쪽 구구역 잿빛 협곡에서 만난 노인, 독고운이 남긴 고대 죽간의 가르침.
숫자와 연산식에 의존하던 과거의 굴레를 벗어던지자, 세상의 흐름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파지지직-!
그때, 어둠 속에서 거대한 중력파의 파동이 사방으로 뻗어 나왔다.
공기의 압력이 순식간에 수십 배로 치솟으며 진혁의 어깨를 짓눌렀다.
쿠구구궁!
바닥에 깔려 있던 강화 콘크리트 바닥이 사정없이 함몰되며 거미줄 같은 균열이 벌어졌다.
“크큭……!”
어둠 속에서 비틀린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은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기계와 생체 코어가 비정상적으로 융합된 괴물의 목소리.
거대 용병 기업 ‘아이언 윌’의 에이스이자, 전신에 4세대 생체 코어와 중력 제어 모듈을 이식한 괴수, 제프로스였다.
그의 손에는 지형 자체를 일그러뜨릴 수 있는 초대형 파쇄 병기, 일명 ‘중력 공진 해머’가 들려 있었다.
“거기 있었나, 강진혁.”
제프로스의 거대한 체구가 어둠을 찢고 튀어나왔다.
그가 휘두른 해머의 단면에서는 공간의 중력을 왜곡하는 푸른빛의 중력장(Gravity Field)이 맹렬하게 소용돌이쳤다.
콰아아앙!
해머가 내리찍힌 자리는 물리적인 타격이 아니었다.
중력 공진파가 주변의 공기와 빛까지 빨아들이며 일대의 공간을 통째로 짓이겨 버렸다.
만약 시스템의 연산력에 의존해 회피 경로를 계산하려 했다면, 이미 중력파의 인력에 붙잡혀 전신이 가루가 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진혁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슈우우-.
진혁의 눈동자가 깊고 칠흑 같은 흑안으로 물들었다.
천마마안(天魔魔眼).
심법의 극의로 개안한 통찰의 안광이 제프로스의 해머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중력파의 결합 구조와 주파수를 직관적으로 꿰뚫어 보았다.
‘중력의 공진 주파수.’
모든 파동에는 균열을 내는 약점이 존재한다.
현대의 공학은 그것을 복잡한 알고리즘으로 분석하려 들지만, 무인의 경지에 오른 진혁에게는 단지 ‘기류의 흐름’일 뿐이었다.
파아앗-!
진혁의 몸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졌다.
마영신보(魔影神步) - 극(極).
스펙터 부대의 광학 왜곡 기술과 칠흑의 마기를 융합하여 기척과 형체를 완벽히 지워버린 신형 보법.
진혁의 잔상이 공간에 남기도 전에, 그의 본신은 이미 제프로스의 정면 품 안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뭐……?!”
제프로스의 붉은 안광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중력 공진 해머의 가동 범위 안에서는 모든 움직임이 둔화되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중력파의 압력을 정면으로 받으면서도 오히려 그 파동의 결을 타고 미끄러지듯 파고들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독고운에게 전수받은 심법의 극의.
파동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파동의 흐름 그 자체를 내공으로 상쇄하고 지배하는 경지였다.
“느려.”
진혁의 입에서 차가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손에 쥔 개량형 천마검에 칠흑 같은 마기가 소용돌이치듯 감겼다.
콰아아아구궁!
진혁의 검신이 제프로스의 중력 공진 해머의 측면을 정확히 가격했다.
단순한 물리적 참격이 아니었다. 검끝에 실린 초고주파 마검강(高周波 魔劍剛)이 해머 내부의 중력 제어 코어와 공진 주파수를 정확히 일치시키며 분자 결합을 내부에서부터 붕괴시키기 시작했다.
끼이익- 쾅!
“크아아악?!”
제프로스의 입에서 비명 섞인 고함이 터져 나왔다.
자신이 휘두른 중력 공진 해머의 역류 파동이 오히려 자신의 팔을 타고 전신으로 밀려들었기 때문이었다.
4세대 생체 코어의 출력이 비명을 지르며 과부하 경고등을 번쩍였다.
[Warning! 코어 출력 불안정! 4세대 중력 모듈 과열!]
[에너지 순환계에 이물질(마기) 침투 확인!]
내부에 남아 있던 시스템의 잔재가 허겁지겁 경고를 띄웠지만, 이미 제프로스에게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크윽, 이 괴물 새끼……! 네놈의 코어 출력은 고작 3만 MW 대일 텐데! 어째서 내 중력장을 씹어 먹는 거냐!”
제프로스가 광기 어린 눈을 뜨며 반대쪽 주먹을 내질렀다.
주먹 전체에 초고압 플라즈마 압축 장치가 전개되며 주변의 온도가 순식간에 수천 도로 치솟았다.
콰아아앙!
사방의 공기가 팽창하며 폭발적인 열풍이 일어났다.
제프로스의 4세대 생체 코어에서 뿜어져 나온 고열의 플라즈마 에너지가 진혁의 전신을 태워버릴 기세로 덮쳐들었다.
하지만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혁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플라즈마의 열역학적 압축 구조…….’
제프로스가 내지른 플라즈마 주먹의 궤적을 보며, 진혁은 그 안에 담긴 에너지의 흐름을 남김없이 흡수하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몸 안의 단전이 뜨겁게 고동쳤다.
현재 단전 출력 31,200 MW.
제프로스의 코어 에너지를 조금만 더 흡수하면, 그동안 머릿속으로만 구상하던 새로운 융합 무공의 조각이 완전히 맞춰질 터였다.
‘좋다. 네놈의 그 불길을 내 것으로 만들어주마.’
진혁의 눈에 짙은 마광(魔光)이 번뜩였다.
심법의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열기가 온몸의 혈관을 타고 검신으로 집중되었다.
초월천마경의 경지가 진혁의 의식을 더욱더 명징하게 채워 나갔다.
중력 공진 해머와 플라즈마 폭풍이 몰아치는 사방의 어둠 속에서, 진혁은 천마검을 조용히 치켜들었다.
검신을 따라 흐르던 칠흑의 마기에 붉고 푸른 열기의 입자들이 거칠게 엉겨 붙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진혁의 검에서 세상의 모든 빛을 삼킬 듯한 거대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콰아아아구궁-!
지하 심장부의 거대한 철제 바닥이 두 쪽으로 갈라지며 폭풍 같은 압력이 사방으로 튄다.
제프로스는 자신의 플라즈마 주먹이 진혁의 검신 앞에 가로막힌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압도하던 마기가, 지금은 아예 자신의 공격 에너지를 통째로 집어삼키는 블랙홀처럼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미친 자식! 내 플라즈마 압축 코어를…… 역으로 빨아들이고 있다고?!”
“고맙다.”
진혁의 입가에 옅은 조소가 걸렸다.
그의 단전 부근에서 거칠게 요동치던 에너지가 순식간에 정제되며 척추를 타고 뇌전처럼 뻗어 나갔다.
31,200 MW.
제프로스의 4세대 생체 코어에서 흘러나온 고압의 열기와 플라즈마 입자유량이 흡원천공의 마기와 엉기며 단전의 출력을 순식간에 34,000 MW로 밀어 올렸다.
쿠구구구궁!
“크아아악! 몸이……! 내 코어가 비명을 지른다……!”
제프로스의 전신에 이식된 4세대 생체 코어의 잔해들이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파열음과 함께 튀어 올랐다. 피부 밑으로 박혀 있던 티타늄 케이블이 끊어지며 시뻘건 유압유와 검붉은 혈액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진혁은 그를 가엾게 여기지 않았다.
티타늄 그룹이 인간을 부품으로 쓰기 위해 만들어낸 수많은 괴물들 중 하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끝이다.”
슈우욱-.
마영신보 - 극(極).
형체도 남기지 않는 극한의 고속 보법이 제프로스의 시야를 완전히 지워버렸다.
제프로스가 당황하며 중력 공진 해머를 허공에 휘둘렀지만, 이미 진혁의 검은 그의 사각지대를 완벽하게 파고든 뒤였다.
파지직, 파지직-!
개량형 천마검의 검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초고주파 마검강이 제프로스의 목덜미를 감싼 4세대 방어막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겼다.
콰아아앙!
“커헉……!”
제프로스의 거대한 몸뚱이가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그의 목 부근에서 푸른 스파크가 튀며 덜렁거렸다. 생체 코어의 동력이 완전히 끊어지며 그의 눈동자에 서려 있던 붉은 안광이 힘없이 꺼져 갔다.
진혁은 쓰러진 제프로스의 가슴팍에 가볍게 검을 얹은 채,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아이언 윌의 에이스라 불리던가. 하지만 네놈의 그 힘 또한 남이 쥐어 준 목줄에 불과했지.”
“크…… 큭…… 진혁…… 네놈이…… 결국…….”
제프로스는 말을 잇지 못하고 그대로 절명했다.
진혁은 그의 가슴에 손을 얹어 남아 있는 마지막 코어의 잔류 에너지를 마저 흡수했다.
스으으읍-.
단전 출력이 완전히 안정되며 34,500 MW에서 멈춰 섰다.
몸 안을 채우는 마기는 이전보다 훨씬 무겁고 단단해져 있었다. 시스템의 도움 없이, 오직 자신의 육체와 의념만으로 이뤄낸 순수한 도약이었다.
‘좋다. 몸의 부하는 없다.’
진혁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제프로스가 지키고 서 있던 제어실의 철문 너머로, 신서울 최하층 심장부의 진짜 진실이 담긴 거대한 관제탑의 실루엣이 어둠 속에서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곳은 단순히 티타늄 그룹의 시설이 아니었다.
1,000년 전 고대 마교의 유골 데이터가 어떻게 현대의 메가 코퍼레이션 기술과 결합하게 되었는지, 그 근본적인 뿌리가 도사리고 있는 곳.
‘진무극과 이현도마저 꼭두각시로 부리던 진짜 주인…….’
진혁의 눈에 서린 칠흑 같은 마광이 더욱 깊어졌다.
그는 숨을 깊게 내쉬며, 마영신보를 전개해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렸다.
한편, 신서울 하층 슬럼가의 화물 터미널 거점.
반(反)기업 저항군 ‘니르바나’의 총수 송수연은 거대한 모니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진혁 님이…… 제프로스를 격파했어요!”
윤아영이 키보드를 광적으로 두드리며 소리쳤다. 그녀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비록 진혁이 시스템의 HUD와 인공지능 설화를 완전히 차단하고 나섰지만, 하층 네트워크의 주변 센서와 비상 회로를 통해 간헐적으로 그의 기동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송수연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단전 출력이 3만 4천을 넘었어……? 인간의 육체로 도저히 불가능한 수치야. 제프로스의 4세대 코어까지 흡수한 모양이네.”
“하지만 수연 언니, 저 앞은…… 진짜 위험해요.”
윤아영의 얼굴이 사정없이 파래졌다. 화면 속에서 진혁이 향하고 있는 최하층 심장부의 에너지 리포트가 기괴한 경고음을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긴…… 티타늄 그룹의 공식 문서에도 기록되지 않은 블랙 존이에요. 1,000년 전 마교의 유골이 발굴되었던 최초의 유적이자, 헤븐리 파운데이션의 본래 목적이 숨겨진 곳…….”
송수연은 무기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의 머리 위에 매달린 대형 도검의 표면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우리가 가만히 기다릴 순 없어. 진혁 혼자서 그 거대한 의지를 상대하게 둘 순 없다고.”
“하지만 언니! 지금 저 지역은 일반 나노머신이나 코어 장비는 접근하자마자 기판이 녹아내리는 곳이에요. 우리가 따라갔다가는 오히려 진혁 님의 발목만 잡을걸요?”
윤아영의 말이 맞았다.
지금 최하층 심장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의 압력은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어중간한 무인이나 저항군이 접근했다가는 그 압력에 눌려 뼈도 제대로 추리지 못하고 압사당할 터였다.
송수연은 이를 악물었다.
“……젠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하층 전역의 전력 회로를 안정시키는 것뿐인가.”
“네. 진혁 님이 마음껏 싸울 수 있도록, 저 뒤에서 백업 회로를 열어두는 것 외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분이…… 이겨 주셔야 해요.”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거대한 모니터로 향했다.
모니터 속, 어둠을 가르며 수직으로 질주하는 칠흑의 잔상.
강진혁은 이미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그릇’이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그 모든 운명을 부수고 나아가는 참된 천마였다.
같은 시각, 최하층 심장부의 최심부.
거대한 돔 형태의 제어실 중앙에는 천 년 전의 유골과 연결된 시뻘건 생체 코어 대형 원자로가 천천히 맥동하고 있었다.
쿵- 쿵- 쿵-
그 심장박동 소리는 기계의 소리가 아니었다.
진짜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의 심장처럼, 주변의 공간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스윽.
어둠 속에서,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거대한 의지를 드러내며 눈을 떴다.
—……드디어 도달했구나.
기계음도, 인간의 목소리도 아닌, 영혼의 파동 그 자체로 이루어진 목소리가 제어실 내부에 울려 퍼졌다.
—진무극이라는 멍청한 인형과 이현도라는 광인(狂人)은 실패했다. 하지만 너는 달랐지. 내 모든 데이터와 마교의 유골, 그리고 천마 프로토콜의 진정한 완성을 이룰 최고의 그릇…… 아니, 진정한 ‘지존(至尊)’.
제어실의 어둠이 걷히며 그 실루엣이 드러났다.
그것은 형체가 없는 검은 안개와 같았으나, 그 중심에는 천 년 전 봉인되었던 마교의 본래 수장의 형상이 어렴풋이 겹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의지의 앞에, 칠흑의 마기를 두른 강진혁이 조용히 걸어 들어왔다.
타박, 타박-.
진혁의 발소리가 제어실의 철판 바닥을 울렸다.
그는 눈앞에 도사린 거대한 의지를 향해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 두려움이나 경외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상대를 완전히 짓밟아 부수겠다는 살기만이 흑안에 서려 있었다.
“네가 진무극의 뒤에 숨어 있던 진짜 주인이란 거군.”
진혁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비틀렸다.
그는 손에 쥔 개량형 천마검을 가볍게 고쳐 잡았다. 검신을 따라 흐르는 마기가 이제는 주변의 공간을 진동시키며 거대한 폭풍을 예고하고 있었다.
“인형놀이는 끝났다. 네놈이 누구든, 내 앞을 가로막는다면…… 그 뼛조각까지 전부 갈아 마시며 끝장을 내주지.”
거대한 의지가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제어실 전체가 찢어질 듯한 진동에 휩싸였다.
—크하하하! 오만하구나, 진혁! 네가 상대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서 그런 소리를 하는가!
—쾅!
최심부의 원자로가 폭발적인 출력을 뿜어내며 신서울 최하층의 모든 불빛이 일제히 붉게 물들었다.
운명의 최종 결전이 마침내 그 막을 올리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