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화 신공(神功)의 시험대
쿠구구구구——!
신서울 하층 슬럼가의 잿빛 하늘을 찢을 듯한 폭음이 대기를 진동시켰다. 지하 500층의 마교 유골 보존실에서부터 이어져 온 거대한 지진파는 이미 가라앉았지만, 잔류한 고압 플라즈마의 파동은 여전히 대기 중에 잔해처럼 떠돌고 있었다.
그 파동의 중심, 거대 보급기지의 철근이 뒤틀려 흉측하게 솟아오른 잔해 위에 한 도포 자락이 휘날렸다.
강진혁이었다.
휘리릭— 슈우우욱.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칠흑 같은 마기는 더 이상 시스템의 연산 보조나 HUD의 가이드라인에 의존하지 않았다. 오직 그의 심장 박동과 혈관을 타고 흐르는 순수한 기혈(氣血)의 순환만으로 통제되고 있었다. 시스템 셧다운 이후, 진혁의 감각은 오히려 더욱 예리해져 있었다. 바람의 흐름, 대기 중의 미세한 전류, 그리고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메카니컬한 적들의 살기까지. 모든 것이 머리로 계산되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인 짐승의 직관처럼 피부로 먼저 와닿았다.
"거기 숨어 있어 봤자 소용없다."
진혁의 낮고 서늘한 음성이 잿빛 안개 속으로 흩어졌다.
그 순간, 짓눌린 철판과 고철 더미가 사방으로 튀어 오르며 거대한 음속의 폭음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아앙!
대지가 종이장처럼 찢어지며 그 속에서 기괴한 형태의 거대 형상이 튀어나왔다. 용문신이 전신에 새겨진 거대한 체구, 일반적인 인간의 덩치를 아득히 초월한 3미터에 달하는 중장갑 파괴자.
제프로스였다.
"크하하하! 쥐새끼처럼 숨어 다니더니,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가, 진혁!"
글로벌 용병 기업 '아이언 윌'의 에이스이자, 4.5세대 생체 코어를 이식받은 전신 개조의 괴물. 그의 온몸에서는 시뻘건 플라즈마 열기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단전 코어 출력이 폭등하며 주변의 산소마저 타들어 가는 듯한 고열이 발생했다.
제프로스의 눈이 핏발을 세운 채 진혁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흉부 중앙에 박힌 거대한 코어는 8,500 MW를 상회하는 출력을 뿜어내며 주변의 중력장마저 미세하게 왜곡시키고 있었다.
지————잉!
"네놈이 아무리 발악을 해봐야, 기술의 격차는 메울 수 없다. 시스템이 꺼졌다고? 그건 네놈의 뇌가 타버리기 전에 내 손으로 직접 확인해 주마!"
제프로스의 거대한 주먹이 공기를 압축하며 번개처럼 쏘아져 나왔다. 단순한 육체적 타격이 아니었다. 주먹 주변에 둘러진 4.5세대 플라즈마 필드가 공간 자체를 태우며 진혁의 퇴로를 완전히 봉쇄했다. 마치 거대한 공성포가 영거리에서 발사된 것과 같은 파괴력.
하지만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툭.
그의 발끝이 지면을 가볍게 스쳤다.
슈우우우욱—!
잔상조차 남지 않았다. 아니, 잔상은 남았으나 그것은 시각적으로 인식되는 빛의 궤적이 아니었다. 진혁이 새로이 깨달은 [마영신보 - 극(極)]의 경지. 나노머신의 자동 연산 보조 없이, 오직 자신의 의념과 마기를 발끝의 혈도에 집중시켜 빛의 속도마저 아득히 추월하는 무형(無形)의 보법.
제프로스의 거대한 주먹이 짓누른 자리에 남은 것은 텅 빈 공기뿐이었다.
"……뭐지?!"
제프로스의 붉은 안광이 크게 흔들렸다. 시야에서 진혁이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단지 그의 등 뒤, 대기 중에 미세한 마기의 잔류 파동만이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눈이 느리다, 제프로스."
차가운 목소리가 제프로스의 귓가를 스쳤다. 이미 제프로스의 사각, 가장 방어하기 까다로운 척추의 중심부에 진혁의 형상이 유령처럼 나타나 있었다.
파앗!
진혁의 오른손에 쥐어진 개량형 천마검이 시커먼 마기와 푸른 뇌전을 휘감으며 섬광처럼 뻗어 나갔다. 검신을 따라 흐르는 [고주파 마검강]의 진동은 주변의 공간을 잘게 찢어발기며 고막을 찢는 듯한 파열음을 냈다.
끼이익— 콰아아앙!
"크아아아악!"
제프로스의 등 뒤에 장착된 4.5세대 플라즈마 방어막이 진혁의 검격에 부딪치며 불꽃을 튀겼다. 비록 최상급 방어막이 일격을 버텨내기는 했으나, 그 엄청난 충격파는 제프로스의 내장 전체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그의 입에서 시뻘건 피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이…… 이 자식이……!"
제프로스는 극심한 분노와 당혹감에 사로잡혀 미친 듯이 포효했다. 자신은 4.5세대 코어의 출력을 온전히 개방한 초인이다. 하층민 출신의 버려진 실험체 따위가 정면으로 상대할 수 없는 압도적인 자본과 기술의 집약체였다. 그런데 지금, 시스템의 보조조차 받지 않는 진혁의 움직임은 이전보다 몇 배나 더 위협적이고, 더더욱 예측 불가능했다.
과거에는 시스템이 계산해 준 궤적에 따라 움직였기에 기계적인 빈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진혁은 다름아닌 '무인(武人)' 그 자체였다. 계산이 아니라 본능, 굳어진 프로그램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의념이 그의 모든 동작을 지배하고 있었다.
콰지지직—!
제프로스는 온몸의 코어 출력을 최대 한계치까지 끌어올렸다. 그의 전신에 박힌 메탈 핏줄들이 과열로 인해 붉게 달아오르며 스팀을 뿜어냈다.
"착각하지 마라, 진혁! 네놈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기술의 총합은 이 코어의 출력을 넘을 수 없다!"
제프로스가 몸을 붕 떠오르듯 회전시키며 거대한 팔뚝을 휘둘렀다. 주변의 공기가 압축되며 폭발적인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단순한 육탄전을 넘어, 주변의 중력장과 전자기파를 강제로 교란시키는 제프로스 고유의 압박 기술이었다.
쿵— 쿠구구구구!
사방의 철근과 잔해가 중력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 압도적인 중력 공진의 파동이 진혁의 어깨를 짓눌렀다. 마치 수십 톤의 납덩이가 전신을 짓누르는 듯한 중압감. 만약 예전의 상태였다면 나노머신의 부하 제어 시스템이 경고음을 울리며 단전 출력이 급감했을 터였다.
그러나 진혁의 입가에는 오히려 옅은 조소가 떠올랐다.
"기술의 총합?"
진혁이 낮게 읊조렸다. 그의 눈동자에 서린 [천마마안]이 제프로스의 4.5세대 코어 내부를 꿰뚫어 보았다. 수천 개의 미세한 회로, 복잡하게 얽힌 에너지 전달선, 그리고 그 속에서 쉴 새 없이 맥동하는 플라즈마의 흐름. 기계가 계산해 주지 않아도, 진혁의 눈에는 그 모든 허점이 한 폭의 그림처럼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네놈은 단 한 번도 진정한 무공을 마주한 적이 없다. 자본으로 포장된 기계 쪼가리에 의존하는 샌님일 뿐이지."
쿵!
진혁의 두 발이 대지를 강하게 디뎠다. 30,000 MW의 단전 출력이 폭발적으로 회전하며, 그의 심장 부근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시커먼 마기가 제프로스의 중력장을 정면으로 밀어붙였다.
파아아아앗—!
압도적인 마기의 파동이 중력 공진의 흐름을 찢어발겼다. 독고운과의 사투 속에서 깨달은 심법의 극의. 기계의 연산이 아니라, 자신의 내력과 의지가 하나로 융합되어 공간의 이치마저 뒤흔드는 경지.
"어……?!"
제프로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자신의 4.5세대 코어가 뿜어내는 중력파가 한순간에 무력화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물리적인 출력을 상회하는 차원 다른 간섭이었다.
진혁의 몸이 다시 한번 빛의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슈우우우욱—!
"어디를 보느냐."
제프로스의 등 뒤, 이미 그의 방어가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진혁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피할 수 없다. 제프로스가 반사적으로 전신 장갑의 출력을 최대로 끌어올려 방어벽을 형성하려 했지만, 진혁의 검은 이미 그보다 한 발자국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촤아아악—!
[천마일검 - 개량(改)]
시커먼 마기와 푸른 뇌전, 그리고 고주파의 진동이 하나로 응축된 종국(終局)의 참격. 그것은 화려한 기교나 불필요한 연산 없이, 오직 적의 목숨을 거두기 위한 가장 단순하면서도 완벽한 궤적을 그리며 뻗어 나갔다.
퍼어어어엉—!
거대한 폭음과 함께 제프로스의 4.5세대 생체 코어가 장착된 흉부 중앙에서 눈이 멀 정도로 강렬한 섬광이 터져 나왔다. 방어막이 종잇장처럼 박살 나고, 메탈 핏줄이 터져 나가는 비명이 제프로스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진혁의 검 끝이 제프로스의 코어 중심부를 정확히 관통했다. 그리고 그 순간, 진혁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온 [흡원천공]의 소용돌이가 제프로스의 남은 생체 코어 에너지를 맹렬한 기세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스으으읍— 콰아아앙!
"크…… 크윽…… 내…… 코어가……!"
제프로스의 거대한 체구가 급격히 수축하며 사르르 힘을 잃어갔다. 8,500 MW에 달하는 강력한 플라즈마 에너지가 진혁의 단전으로 물처럼 유입되었다. 진혁의 단전 출력 수치가 순식간에 요동치며 상승하기 시작했다.
30,500 MW…… 31,000 MW……!
쿠구구구구——.
에너지를 흡수할 때마다 진혁의 전신을 감싼 마기는 더욱 짙고 무거워졌다. 마치 지옥의 심연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처럼, 그의 존재감 자체가 주변의 공기를 압도했다.
제프로스의 거대한 몸뚱이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바닥으로 쿵 소리 나며 쓰러졌다. 그의 붉은 안광이 깜빡이며 서서히 꺼져갔다.
승부는 끝났다.
진혁은 피 묻은 개량형 천마검을 가볍게 털어내며 차가운 눈빛으로 쓰러진 제프로스를 내려다보았다. 시스템의 보조 없이, 오직 자신의 육체와 의지만으로 4.5세대 초인을 완전히 제압한 것이다.
하지만 진혁의 시선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들어, 신서울의 가장 깊은 어둠 속, 아직도 은밀하게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또 다른 거대한 기운의 진원지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제프로스는 단지 시작점에 불과했다. 이현도가 남긴 유언, 그리고 티타늄 그룹의 진짜 주인이 숨어 있는 최하층의 심장부.
"나와라."
진혁의 입술이 낮게 움직였다. 그의 목소리는 신서울의 잿빛 안개를 뚫고 메아리치며, 마침내 모든 음모의 실체가 도사리고 있는 진짜 전장을 향해 울려 퍼졌다.
콰아아앙—!
진혁의 서늘한 일갈이 대기를 가르는 순간, 신서울 상층부와 하층 슬럼가를 연결하는 거대한 철제 관문 너머에서 기괴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지축을 흔드는 고주파음과 함께, 사방으로 뻗어 있던 메카니컬한 감시 카메라들의 붉은 불빛이 일제히 점멸했다.
시스템의 중앙 네트워크는 이미 영구 셧다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독자적으로 작동하는 또 다른 거대한 통제 회로가 존재하고 있었다.
"흐흐흐……."
기괴한 기계음 섞인 웃음소리가 허공의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그것은 이현도의 목소리도, 진무극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완전히 정제된 합성 음성, 그러나 그 이면에 깔린 살기는 인간의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는 잔혹한 온도를 품고 있었다.
[실험체 07호. 아니, 이제는 '강진혁'이라고 불러야 하겠군.]
거대 철제 관문의 상단에 장착된 수십 개의 방위 포신이 일제히 회전하며 진혁의 머리 위로 조준점을 맞췄다. 그러나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의 손에 쥔 개량형 천마검에서는 여전히 칠흑 같은 마기와 푸른 뇌전이 얽혀 번뜩이고 있었다.
[네놈이 여기까지 도달할 것이라는 데이터는 이미 수천 번 시뮬레이션되었다. 진무극과 이현도라는 그릇들은 단지 네놈의 각성을 가속하기 위한 소모품에 불과했지. 진정한 '천마 프로토콜'의 완성은 지금부터다.]
"소모품?"
진혁의 입가에 짙은 조소가 걸렸다. 그는 제프로스의 남은 잔류 에너지를 완전히 흡수하며 단전의 출력을 31,200 MW까지 끌어올렸다. 폭발적인 마기가 그의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가며 피부 표면에 은빛 회로 선을 더욱 선명하게 빛내었다.
"네놈들이 나를 만들었든, 혹은 지배하려 들었든 상관없다. 내 단전에 흐르는 힘은 기계의 코드가 아니라, 내 손으로 쟁취한 내 무공이다."
[오만하군. 기계의 제어 없이 오직 육체와 의지만으로 그 출력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네놈의 단전은 곧 한계에 도달해 스스로 자멸할 것이다!]
"시험해 볼 테냐?"
진혁의 흑안이 살기를 품고 빛났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적의 정체가 무엇이든, 신서울의 가장 깊은 어둠 속에 숨어 자신을 꼭두각시로 부리려 했던 배후의 진짜 주인이 누구든 간에, 그 목을 베어버리면 그만이었다.
슈우우우욱—!
진혁의 몸이 다시 한번 [마영신보 - 극(極)]을 발동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빛의 궤적조차 남지 않은 완전한 무형의 속도.
콰지지직—!
관문 상단에서 쏟아지던 수십 문의 플라즈마 포신이 진혁이 있던 자리를 강타하며 거대한 화염을 피워 올렸으나, 그곳에 남은 것은 텅 빈 잔해뿐이었다.
[어디지?! 감지 범위에서 벗어났다!]
관문을 제어하던 AI 시스템의 당황한 음성이 메아리쳤다. 이미 시스템의 보조 연산 능력을 상실한 저들로서는, 진혁의 순수한 의념과 마기로 은폐된 궤적을 쫓는 것이 불가능했다.
챙그랑—!
관문의 한가운데, 수십 톤짜리 티타늄 합금 장갑판이 종잇장처럼 반으로 갈라지며 속살을 드러냈다. 그 균열의 중심에 진혁이 서 있었다.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천마검을 쥔 채, 진혁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관문 너머의 어두운 심장부를 향해 서서히 발걸음을 내딛었다.
신서울의 진짜 주인을 향한 최후의 진격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