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8화 광학 은형 회로의 흡수
치익―!
스펙터 요원의 시신에서 흘러나온 고압의 전류와 신경 회로 즙이 차가운 철제 바닥 위로 흩어졌다.
시퍼렇게 빛나던 광학 은형 모듈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그 파편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미세한 스파크만을 튀기고 있었다.
강진혁은 그 주검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시스템의 안내 음성은 들리지 않는다.
[SYSTEM INFO] 같은 푸른빛의 HUD 창은 신서울 최상층 마스터 돔 네트워크가 셧다운됨과 동시에 완전히 소멸했다.
이제 그의 시야를 채우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눈동자와 감각뿐이었다.
두근, 두쿵.
심장의 박동이 거칠면서도 묵직하게 울렸다.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31,500 MW의 마기는 기계가 제어하는 수치가 아니라, 순수한 기혈의 순환을 통해 전신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진혁의 흑안이 희미하게 번뜩였다.
천마마안(天魔魔眼).
그의 시선 속에서 스펙터 요원의 가슴팍에 박혀 있던 은형 모듈의 미세한 반도체 칩과 파동 발신 회로가 낱낱이 분해되어 들어왔다.
‘빛의 파장을 굴절시키고, 열 감지 센서의 주파수를 교란하는 나노 입자 구조.’
현대 과학기술의 정점이라 불리는 광학 스텔스 기술.
일개 기업의 특수부대가 운용하는 장비 치고는 지나치게 정교한 그 기술의 원리가 진혁의 뇌리와 기혈의 흐름 속으로 파고들었다.
보통의 무인들이라면 평생을 파고들어도 이해하지 못할 현대 공학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달랐다.
그는 고대 마공의 흡원천공과 현대의 기계 공학을 뼈마디에 새겨 넣으며 성장해 온 괴물이었다.
“흡수한다.”
진혁의 손바닥에서 칠흑 같은 마기가 소용돌이처럼 피어올랐다.
스으으읍-!
공기가 역류하는 기괴한 파열음과 함께, 요원의 가슴에 박혀 있던 은형 모듈의 잔해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그 안에서 추출된 고순도의 나노 입자와 광학 변조 회로가 진혁의 손바닥을 타고 혈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콰아아앙!
몸 안으로 들어온 이종(異種)의 에너지는 거칠게 날뛰었다.
기계의 전자파와 마교의 음산한 마기가 충돌하며 진혁의 어깨와 팔목의 피부를 찢어놓았다.
핏방울이 튀었지만,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억지로 누르지 마라. 기(氣)로 덮어씌우는 게 아니다.’
독고운과의 사투에서 깨달았던 심법의 잔상이 스쳐 지나갔다.
에너지는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융화하는 것이다.
진혁은 단전의 출력을 조절하며,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고주파 은형 입자를 자신의 기혈 흐름과 완벽히 동기화시켰다.
후우우욱―.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진혁의 몸을 감싸고 있던 칠흑의 마기가 안개처럼 흩어지더니, 주변의 공간과 완벽하게 융화되기 시작했다.
형체는 남아 있으나 빛을 흡수하고 굴절시켜, 마치 투명한 유리에 비친 잔상처럼 그의 존재감이 세상에서 지워져 갔다.
주변의 철제 벽면의 무늬가 진혁의 어깨와 옷자락에 그대로 비쳐 보였다.
열 감지 센서와 시각적 포착을 동시에 무력화시키는 완벽한 은형(隱形).
진혁이 낮게 숨을 내쉬며 발을 내디뎠다.
사박.
발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단순히 소리를 죽이는 수준이 아니었다.
공기의 진동 자체를 기혈로 감싸 안아, 주변 환경과 완벽히 동화된 탓에 대기마저 진혁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이거 쓸만하군.”
진혁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그가 새로이 창조해 낸 보법이었다.
광학 은형의 원리와 마광신보의 극의를 융화시켜 탄생한 새로운 절기.
[마영신보 (魔影神步)]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고 빛과 공간 속으로 스며드는 천마의 보법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슈우우욱!
진혁이 마영신보를 전개하자마자, 그의 형체가 복도 안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공간이 미세하게 일그러지며 바람의 흐름조차 바뀌지 않는 완벽한 무음(無音)의 이동.
이 상태라면 마스터 돔 입구를 지키고 있는 티타늄 그룹의 최종 방어선이라도 아무런 경보 없이 돌파할 수 있었다.
다만, 진혁의 걸음은 멈추어 서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복도 끝, 거대한 황금빛 철문으로 막혀 있는 아폴론의 왕좌를 향하고 있었다.
거기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심상치 않았다.
진무극이 죽고, 이현도가 소멸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스터 돔 내부에서는 여전히 거대한 심장 소리와 같은 고출력의 에너지가 고동치고 있었다.
‘진짜 주인…….’
이현도가 죽기 직전 남겼던 유언이 머릿속을 스쳤다.
티타늄 그룹의 진짜 주인은 따로 있다.
진무극조차 그 거대한 시스템의 말단에 불과했다면, 그 끝에 도사리고 있는 존재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진혁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품 안의 개량형 천마검을 쥐었다.
검신을 감싸고 있는 고주파 진동 파쇄 회로가 미세하게 떨리며 살기를 뿜어냈다.
적들이 어떤 함정을 파놓았든 상관없다.
시스템이 없어도, HUD의 계산이 없어도, 진혁에게는 스스로 깨달은 무력과 단전의 31,500 MW가 있었다.
타박, 타박―.
아니, 소리조차 나지 않는 고요 속에서 진혁의 형체는 완전히 지워진 채 마스터 돔의 거대한 문을 향해 미끄러지듯 다가갔다.
철컥-!
그 순간이었다.
진혁이 마스터 돔의 반경 10미터 이내로 진입하자마자, 복도 전체를 밝히던 비상등이 일제히 붉은색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삐- 삐- 삐-!
[경고. 미등록 에너지 파동 감지.]
[오류. 광학 은형 스캔 우회 확인. 방어 프로토콜 B-7 작동.]
시스템의 HUD는 사라졌지만, 복도 벽면에 내장된 구형 방어 센서들이 진혁의 존재를 뒤늦게 포착한 것이다.
콰아아앙!
진혁의 머리 위에서 거대한 티타늄 합금 셔터가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과거라면 시스템의 경고를 받아 피했겠지만, 지금의 진혁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늦었다.”
사아아앗-!
진혁이 마영신보를 전개한 채 그대로 셔터를 향해 몸을 날렸다.
은형 상태에서 뿜어져 나온 칠흑의 마기와 초고주파 진동이 융합된 개량형 천마검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고주파 마검강(高周波 魔劍剛)]
쉬익!
소리도 나지 않는 참격이었다.
하지만 그 파괴력은 압도적이었다.
수십 센티미터 두께의 티타늄 합금 셔터가 진혁의 검끝에 닿자마자 분자 단위로 결합이 깨지며 두 쪽으로 스르륵 갈라져 내렸다.
쿵-! 쿵-!
잘려 나간 거대한 철판이 바닥으로 무너지며 엄청난 소음을 일으켰다.
하지만 진혁은 이미 그 파편 사이를 지나쳐, 마스터 돔의 내부로 완전히 발을 들인 뒤였다.
휘이익―.
어둡고 거대한 돔 내부.
사방이 모니터와 메인 서버의 잔해로 둘러싸인 그 중앙에, 푸른색 플라즈마 액체로 가득 찬 거대한 원통형 배양조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배양조의 중심에서, 인간의 형태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한 채 눈을 감고 있는 거대한 형체가 진혁을 맞이하고 있었다.
진혁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그의 천마마안이 배양조 안의 존재를 똑바로 직시했다.
진무극의 얼굴과 닮아 있으나, 그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흉측한 생체 코어 회로가 온몸에 박혀 있는 괴물.
배양조의 수면 위로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기계의 합성음 같기도 하고, 수백 명의 목소리가 겹쳐 들리는 듯한 기괴한 음성1이었다.
[……드디어 도달했구나, 실험체 07호. 아니, 새로운 천마의 그릇이여.]
진혁은 인상을 쓰며 천마검을 고쳐 잡았다.
시스템이 멈춘 세계 속에서, 진짜 최종 보스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쉬익, 촤아아악―!
배양조를 채우고 있던 푸른색 플라즈마 액체가 거품을 물며 끓어올랐다.
원통형 유리벽 안에서 꿈틀거리던 괴물의 형체가 서서히 눈을 떴다. 핏발이 선 홍색의 눈동자 두 개가 진혁을 향해 번뜩였다. 그것은 단순한 생명체의 시선이 아니었다. 수백만 명의 데이터와 방대한 자본, 그리고 수십 년간 신서울의 어둠을 지배해 온 거대한 의지가 압축된 살기였다.
[네놈이 여기까지 올라올 줄은 몰랐다. 진무극 그 늙은이는 자신의 오만에 취해 스스로 부서졌고, 이현도 역시 너라는 변수를 통제하지 못했지.]
괴물의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뇌리에 직접 박히는 듯한 기괴한 음성이 마스터 돔 내부를 진동시켰다.
배양조의 수면 위로 미세한 파문이 일더니, 거대한 기계 장치들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치이익-!
정신을 차려 보니 돔의 천장에 박혀 있던 수십 개의 예비 전력 케이블이 일제히 배양조 쪽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배양조 안의 괴물이 흡수하고 있는 전력 출력만 해도 어림잡아 50,000 MW를 상회했다.
‘저놈…… 진무극의 잔재인가, 아니면 그 이상인가.’
진혁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상대의 기력을 스캔했다.
시스템의 도움은 없었지만, 단련된 [천마마안]은 상대의 단전 부근에 박힌 거대한 생체 코어의 구조를 낱낱이 꿰뚫고 있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그 압박감만으로도 심장이 터져 죽을 터였다.
하지만 진혁은 코웃음을 치며 검을 고쳐 잡았다.
“말이 많군. 진무극의 개새끼든, 그 뒤에 숨은 잔당이든 결국 내 검에 베여 뒈질 찌꺼기일 뿐이다.”
[오오…… 기고만장하구나. 네가 쥔 그 검, 그리고 네 심장 속에 뛰고 있는 그 마기마저도 원래는 우리 테크놀로지가 하사한 축복임을 잊었느냐?]
“축복?”
진혁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비웃음이었다.
그는 천천히 마영신보를 풀고, 두 발을 바닥에 단단히 고정했다.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31,500 MW의 마기가 전신의 기혈을 타고 개량형 천마검으로 모여들었다.
“지옥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기어오를 때, 그게 축복으로 보였나 보지. 네놈들이 만든 그 썩어빠진 그릇에 갇혀 살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방자한 놈!]
콰아아앙!
괴물이 배양조의 유리벽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파앗-!
수십 톤에 달하는 강화 유리와 플라즈마 액체가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동시에 배양조 안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형체가 음속을 돌파하며 진혁을 향해 내달렸다.
바닥의 철제 타일이 그 압도적인 무게에 못 이겨 종잇장처럼 박살 났다.
슈우우욱!
‘빠르다……!’
단순한 기계의 출력이 아니었다.
괴물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은 마교의 고대 마기와 현대 군사 기술의 극치인 고주파 쇄신 장갑이 융화된 기괴한 에너지였다.
괴물의 주먹이 진혁의 얼굴을 향해 내지르자, 주변의 공기가 비명을 지르며 찌그러졌다.
하지만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보인다.’
천마마안이 상대의 공격 궤적과 코어의 출력 변화를 정확히 포착했다.
시스템의 연산 코드가 없어도 문제없었다.
수없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체득한 무인의 직관이 진혁의 몸을 움직였다.
파앗!
진혁의 몸이 마영신보의 극의로 허공에 옅은 잔상만을 남긴 채 비스듬히 미끄러졌고, 괴물의 거대한 주먹이 진혁의 어깨를 스치듯 지나치며 마스터 돔의 벽면을 완전히 박살 냈다.
쾅-!
“끄아아아……!”
괴물이 주먹을 빼내려 할 때, 진혁의 검광이 빛을 발했다.
[고주파 마검강(高周波 魔劍剛) - 개량(改)]
쉬익-!
소리 없는 참격이 괴물의 거대한 팔목을 정중앙으로 강타했다.
치이익! 펑!
마기와 융합된 고주파 진동이 괴물의 장갑과 근육 세포를 분자 단위로 찢어발겼다.
살점이 튀고 검은 피가 뿜어져 나왔지만, 괴물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오히려 거칠게 포효하며 반대쪽 손으로 진혁의 허리를 휘감으려 했다.
[크아아아! 죽어라, 실험체!]
“시끄럽다.”
진혁은 괴물의 공격을 맞받아치며 단전의 출력을 순간적으로 끌어올렸다.
삼만 오천, 사만 MW를 향해 치솟는 폭발적인 마기가 전신을 감쌌다.
괴물의 완력이 진혁의 갈비뼈를 조여왔지만, [천마무상체]의 마기 방벽이 그 충격을 완벽하게 흡수하며 버텨냈다.
후우우욱-!
진혁의 눈에 시퍼런 살기가 어린 광채가 돌았다.
기계가 내린 명령을 수행하던 껍데기에서 벗어나, 온전히 스스로의 의지로 신천마신공의 경지를 벼려낸 자만이 쓸 수 있는 일격.
“이게 내 무공이다. 네놈들의 그 저주받은 프로토콜과는 상관없는.”
파지직-! 콰지지직-!
천마검의 검신을 따라 푸른 뇌전과 칠흑의 마기가 소용돌이치며 융합했다.
단 하나의 접점에 모든 에너지를 집약하는 절기.
[천마일검(天魔一劍) - 개량(改)]
번쩍-!
마스터 돔 전체가 눈이 멀 정도로 시퍼런 참격의 섬광에 휩싸였다.
소리조차 삼켜버린 압도적인 진공 상태 속에서, 진혁의 검이 괴물의 거대한 가슴팍을 그대로 관통했다.
쿠구구구궁……!
괴물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뚝 멈췄다.
녀석의 가슴에 박힌 거대한 생체 코어가 진혁의 검끝에서 뿜어져 나온 고주파 마기에 의해 중앙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직-!
[이럴…… 수가. 내 코어의 출력이…… 통제 불능으로……!]
“네가 만든 시스템이 네 발목을 잡는 기분은 어떠냐.”
진혁이 냉혹하게 중얼거리며 검을 비틀어 뽑았다.
푸드득!
괴물의 가슴에서 검은 피와 함께 융합된 나노 회로의 잔해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괴물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녀석의 눈동자에 서려 있던 붉은빛이 순식간에 꺼져 갔고, 거대한 육체는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쿵-!
신서울 최상층 마스터 돔을 지키고 있던 최후의 괴물이 완전히 침묵하는 순간이었다.
치이익-!
배양조의 잔해와 천장에서 터져 나온 스파크가 튀는 가운데, 진혁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피 묻은 천마검을 바닥에 짚었다.
단전의 출력은 여전히 31,500 MW를 유지하고 있었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가볍고 개운했다.
시스템의 메인 서버는 완전히 파괴되었고, 티타늄 그룹을 배후에서 조종하던 마지막 거물마저 처단되었다.
신서울을 짓누르던 거대한 악의 사슬이 마침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진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돔의 부서진 천장 너머를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디스토피아의 밤하늘 위로, 여전히 차가운 달빛이 신서울의 마천루를 비추고 있었다.
비록 세상은 여전히 타락해 있고, 해결해야 할 잔당들이 남아 있을지 몰라도 상관없었다.
이제 그 누구도 그의 길을 막아설 수 없었다.
진혁이 피 묻은 검을 거두며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겼다.
참혹한 폐허가 된 마스터 돔을 뒤로한 채, 스스로 전설을 넘어선 새로운 천마(天魔)가 그 거대한 발걸음을 세상 밖으로 내딛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