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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107화목차

제107화 의념의 일격

쿠우우구궁—!

티타늄 그룹 최상층 장갑문이 강진혁의 검 끝에 반으로 쪼개져 무너져 내렸다.

수천 톤의 티타늄 합금과 고밀도 복합 장갑판이 종잇장처럼 찢기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쇳덩이가 비틀리며 터져 나오는 파열음은 곧바로 짓눌린 듯한 정적으로 변했다.

치이익…….

상층부 통로를 가득 채우고 있던 냉각 가스가 하얗게 피어올랐다.

그 연무 사이로 강진혁의 발걸음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가라앉았다.

기계적인 보조 장치—HUD의 깜빡임도, 실시간 타겟팅 레드닷도, 귓가를 긁어대던 시스템의 기계음도 없었다.

완벽한 무음(無音).

오직 자신의 심장박동과 혈관을 타고 흐르는 3만 MW의 묵직한 마기만이 단전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스으으…….

진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시야의 테두리가 검푸르게 물들며 [천마마안(天魔魔眼)]이 발동했다.

기계 렌즈가 아니라 육신의 안광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는 경지.

그의 눈에는 공간의 미세한 공기 진동과 벽체 너머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체 코어의 미약한 열원까지 선명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나왔군."

진혁의 입술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찰나, 통로 양측의 어둠 속에서 사방으로 흩어져 있던 은빛 잔상이 일제히 폭발했다.

슈우우우—!

스펙터 암살 부대.

티타늄 그룹이 숨겨둔 최정예이자, 광학 은형 회로를 장착해 완벽하게 모습을 지운 채 적의 사각을 노리는 살인기계들이었다.

그들은 레이더나 열감지 센서에도 잡히지 않는 특수 슈트를 입고 있었다.

과거의 진혁이었다면 프로토콜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탄착군을 계산해 냈어야 할 공격.

하지만 지금의 강진혁에게 그런 계산 따위는 필요 없었다.

퍼억!

진혁의 몸이 자취를 감추었다.

[마광신보 - 극(極)]!

빛의 궤적을 지우며 허공을 가르는 칠흑의 잔상.

그가 움직인 자리에 공기가 비명을 지르며 찢어졌다.

"……기, 기척을 어떻게?!"

은형 장갑을 두른 스펙터 요원 중 하나의 목소리가 공포에 질려 튀어나왔다.

보이지 않아야 할 자신이 눈앞에서 순식간에 좁혀오는 검격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연산이 아니라 본능, 아니—우주(宇宙)의 이치를 몸으로 체득한 무인의 직관이었다.

콰아아앙!

진혁의 손에 쥐인 개량형 천마검이 허공의 빈 곳을 향해 가로로 휘둘러졌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 같았지만, 그 검 끝에 실린 고주파 진동과 압축된 마기(魔氣)는 이미 물리적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챙강-!

"크아악—!"

스텔스 장갑의 광학 회로가 순식간에 교란되며 허공에 은빛 파문이 일었다.

동시에 요원 하나의 어깨부터 골반까지가 비스듬히 절단되며 피보라가 폭발했다.

보이지 않는 적을 베는 것이 아니라, 공간 자체를 도려내어 그 속에 숨어든 벌레를 끄집어낸 것이다.

툭, 툭, 툭.

절단된 육신이 바닥에 떨어지며 검붉은 피가 타일 바닥을 적셨다.

잔혹하고도 간결한 일격.

시스템의 유도선이 없으니 오히려 검의 궤적이 더욱 순수하고 날카로워졌다.

"사격해! 전원 사격!"

남은 스펙터 요원들이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일제히 플라즈마 블래스터와 고주파 탄환을 난사했다.

슈우우우웅- 팟, 팟, 팟, 팟!

사방에서 쏟아지는 탄막은 통로 전체를 죽음의 영역으로 만들었다.

벽면이 녹아내리고, 바닥이 파여 나가며 매캐한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하지만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의 몸 주변으로 칠흑의 기류가 회오리치듯 피어올랐다.

[천마무상체(天魔無相體)]!

나노머신의 자동 반응이 아니라, 마기와 육신의 세포가 완벽하게 동기화되어 만들어낸 순수한 마기 방벽.

챙기이익-!

플라즈마 탄환들이 진혁의 몸에 닿는 순간, 거대한 충격파는 흡수되거나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피부조차 스치지 못했다.

진혁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3만 MW의 마기가 전신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돼……! 코어 출력이 3만인데, 왜 시스템 경고가 뜨지 않지?!"

"저 괴물은 아예 제어 코드가 없잖아!"

요원들의 목소리에 절망이 묻어났다.

그들은 인공지능과 중앙 서버의 통제를 받으며 싸우는 병기들이었다.

그렇기에 '시스템 없이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폭주하는 무력'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공포스러운지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진혁이 차갑게 가라앉은 흑안으로 그들을 응시했다.

"시끄럽다."

우웅-!

개량형 천마검이 울부짖었다.

적의 에너지를 흡수할수록 검신에 새겨진 은빛 회로가 붉은빛을 띠며 더욱 거칠게 요동쳤다.

진혁은 발을 구르며 다시 한번 전장을 갈랐다.

콰아앙-!

한 번의 도약으로 통로의 중간을 가로지른 진혁의 검 끝에서 짙은 뇌전이 뿜어져 나왔다.

[뇌전마강 - 십자참(十字斬)]!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십자 형태로 얽히며 통로 전체를 꽉 채웠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절대적인 절단력.

"크윽……!"

스펙터 부대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급히 고출력 에너지 실드를 전개했으나, 그것은 진혁의 십자참 앞에서 두부처럼 무력하게 으깨졌다.

쿠구구궁!

십자 형태의 검기가 통로의 벽면과 천장을 관통하며 상층부 전체를 뒤흔들었다.

방어막과 함께 요원들의 슈트가 박살 나며 그들이 바닥에 뒹굴었다.

단 세 번의 움직임.

신서울 최정예 암살 부대인 스펙터 요원 전원이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행동 불능 상태가 되었다.

치이익…….

상층부 환기구에서 흘러나오는 연기와 화재 경보기의 붉은 경고등만이 깜빡거렸다.

진혁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천마검을 바닥에 늘어뜨린 채, 쓰러진 스펙터 대장 앞에 멈춰 섰다.

"큭…… 진혁……."

입가에 피를 흘리며 신음하던 대장이 눈을 부릅뜬 채 진혁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공포와 함께 이해할 수 없다는 의문이 가득했다.

"네놈은…… 대체 어떻게 시스템의 통제를 벗어난 거지? 천마 프로토콜의 마스터 코드가 셧다운되었는데, 어떻게 그 출력을 유지하는 거냐……!"

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대체 어떻게 유지하냐고?

그 질문 자체가 그들의 한계를 증명하고 있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계가 내린 틀 안에서만 움직이던 허상에 불과했다.

단전의 맥박을 느끼고, 심장의 고동을 기운(氣運)으로 바꾸는 법을 모르는 자들.

자본과 기술이 준 힘을 자신들의 진짜 힘이라 착각했던 불쌍한 인형들일 뿐이다.

"시끄럽다."

진혁이 낮게 내뱉으며 검을 들어 올렸다.

스걱.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었다.

대장의 목이 꺾이며 생체 코어의 잔여 에너지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진혁은 그 흩어지는 에너지를 놓치지 않았다.

[흡원천공(吸元天功) - 개량(改)]!

손바닥을 펼치자, 바닥에 쓰러진 스펙터 요원들의 슈트에 장착되어 있던 초미세 광학 은형 장치와 스텔스 파동 발생기에서 푸른빛의 잔여 에너지가 실타래처럼 빨려 들어왔다.

지이익-!

단전으로 유입된 에너지가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단순히 출력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적들이 사용하던 '은형(隱形)의 원리'—빛의 굴절과 파동의 왜곡에 대한 데이터였다.

그 기술적 구조가 진혁의 머릿속과 기혈의 흐름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뇌리에 짜릿한 감각이 스친다.

(……이런 식인가.)

기계적인 회로로 구현하던 은형 기술을, 자신의 마기와 기혈 운행 방식을 융합하면 육체 자체로 구현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노머신 회로와 마기를 동기화하여, 자신의 모습과 내공 파동을 완벽히 지워버리는 새로운 보법의 단초가 잡혔다.

치이이익…….

진혁의 몸을 감싸고 있던 칠흑의 마기가 순간적으로 투명하게 굴절되며 주변의 어둠과 완벽하게 동화되었다.

단 몇 초 동안의 시각적 왜곡.

하지만 이것은 완성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진혁은 흡수한 에너지를 완전히 정제한 뒤, 차가운 눈으로 통로의 끝을 응시했다.

그곳은 티타늄 그룹의 진짜 심장부, 그리고 이현도와 진무극이 남긴 최후의 비밀이 도사리고 있는 '아폴론의 왕좌'로 향하는 거대한 철문이 버티고 있었다.

척.

진혁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로 흩어진 스펙터 요원들의 잔해가 차가운 쇳소리를 내며 바닥에 뒹굴었다.

시스템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던진 사내가 마침내 신서울의 가장 깊은 어둠을 향해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쿠구궁-!

진혁의 발걸음이 무심하게 허공을 밟을 때마다, 상층부의 미세한 진동이 발바닥을 타고 전해져 왔다.

시스템의 안내선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단전에서 은은하게 고동치는 3만 MW의 마기는 주변의 대기 흐름과 벽체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적 소음을 고스란히 진혁의 오감에 각인시키고 있었다.

화아아악.

복도의 끝, 거대하게 솟아오른 원형의 보안 게이트가 저절로 열렸다.

비상사태를 감지한 티타늄 그룹의 방어 메커니즘이 침입자의 존재를 인식하고 자동 개폐를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환영의 인사나 경고음이 아니었다.

슈우우우—!

사방의 벽면에 매립되어 있던 고정형 포탑들이 일제히 포신을 돌렸다.

레이저 가이드와 플라즈마 캐넌, 그리고 대(對)초인용 고주파 발사기들이 진혁의 전신을 조준하며 붉은 적외선 도트를 난사했다.

"인간의 형태를 한 생체 반응 소멸 개시."

"방어선 돌파 시도자, 사살."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이미 중앙 메인 서버는 셧다운되었지만, 최상층 방어구역에 독립적으로 설치된 이머전시 서브 딥 AI들이 진혁을 제거하기 위해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었다.

파팟, 팟, 팟, 팟!

지정된 포탑에서 동시에 불을 뿜었다.

초고주파로 압축된 플라즈마 탄환들이 공간을 찢으며 진혁을 향해 빗발쳤다.

단 한 발만 맞아도 일반적인 3계급 초인의 육체는 원자 단위로 분해될 화력.

그러나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시끄럽다."

흑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진혁의 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 방금 전 흡수한 스펙터 부대의 스텔스 파동 발생 원리가 기혈의 운행과 맞물려 체내에서 회전했다.

지이이잉-

진혁의 형체가 순식간에 공기 중에서 옅어졌다.

완벽한 투명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빛과 마기를 동시에 굴절시켜 적의 타겟팅 센서와 인공지능의 시각 연산을 완전히 교란하는 기괴한 왜곡 현상이었다.

쾅-! 콰콰쾅!

진혁이 서 있던 자리에 플라즈마 탄환들이 작렬하며 바닥을 거대한 크레이터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곳에 진혁의 육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탄막이 지나간 잔상 속에서, 칠흑의 마기가 뱀의 혀처럼 뻗어나가며 가장 가까운 포탑의 코어를 휘감았다.

"에너지 역류 감지……? 이, 이건——!"

서브 AI의 비명 같은 경고음이 제어실 모니터에서 터져 나왔다.

진혁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온 [흡원천공(吸元天功)]의 마기가 포탑의 고출력 제너레이터를 그대로 물어뜯은 것이다.

지이익-! 콰작!

포탑 내부의 핵융합로가 강제로 압착되며 그 안에 담긴 에너지가 순식간에 진혁의 단전으로 빨려 들어왔다.

3만 MW였던 출력이 벼락처럼 치솟으며 31,200 MW, 31,500 MW로 요동쳤다.

"크윽……!"

몸 안에서 폭발하는 과도한 에너지를 진혁은 찡그린 표정 하나 없이 순수한 기혈의 순환으로 눌러 담았다.

시스템이 계산하고 제어해 주던 안전장치 따위는 처음부터 필요 없었다.

오직 자신의 의지와 심장의 고동만이 에너지를 통제하는 유일한 프로토콜이었다.

툭, 툭.

에너지를 빨아 먹힌 포탑들이 껍데기만 남은 채 고철 덩어리로 부서져 내렸다.

진혁은 차가운 시선으로 남은 포탑들을 응시했다.

그리고 개량형 천마검을 가볍게 치켜들었다.

우우웅—!

검신을 따라 흐르는 푸른 뇌전과 칠흑의 마기가 하나로 융합되며 기괴한 진동음을 토해냈다.

더 이상 기계의 연산식에 의존하지 않는, 순수한 무인의 의념이 담긴 참격.

[뇌전마강 - 개량(改)]!

콰아아아앙-

진혁이 허공을 향해 검을 내리긋자, 통로 전체가 거대한 암흑의 뇌우(雷雨)에 휩싸였다.

사방으로 뻗어 나간 검강이 벽면의 모든 포탑과 자동 방어 시스템을 원자 단위로 분쇄해 버렸다.

철근이 비틀리고 시멘트 가루가 폭풍처럼 휘날렸다.

단 한 번의 휘둘림으로 최상층 방어선 전체가 완전한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치이익…… 툭, 파직.

암흑 속에서 잔해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진혁은 흩날리는 먼지 속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앞에는 이제 티타늄 그룹의 진정한 심장부, 세상의 모든 부와 권력이 집결해 있던 최상층 마스터 돔으로 통하는 거대한 황금빛 철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 문 너머에서, 마침내 티타늄 그룹의 잔존 권력과 숨겨진 진실이 그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진혁의 입가에 옅고도 잔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천마검을 더 강하게 움켜쥐며, 망설임 없이 그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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