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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105화목차

제105화 티타늄 암살대 '스펙터'

콰아아앙-!

북쪽 구구역의 잿빛 협곡을 뒤흔들던 거대한 폭풍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독고운과의 격돌이 남긴 여파는 대지의 지형마저 바꾸어 놓았다. 단단한 화강암 바닥은 거미줄처럼 갈라져 있었고, 공기 중에는 아직도 흩어지지 않은 흑마기(黑魔氣)의 파편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후우-

길게 내쉬는 숨결 속에서 미열이 묻어났다.

강진혁의 눈동자는 여전히 칠흑처럼 깊었다. 3만 MW로 하향 안정화된 단전 코어는 기계적인 냉각 팬의 소리 대신, 오직 인간의 심장 박동과 동기화된 묵직한 고동을 울리고 있었다.

퉁, 퉁, 퉁.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는 더 이상 인공지능의 보조 연산 장치에 의존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진혁 자신의 의지, 즉 심법(心法)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

‘과연, 구무림의 노고수.’

진혁은 시선에 스치는 협곡의 잔해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독고운은 단순한 무력의 강함을 넘어, 무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다. 기계와 코어, 나노머신이라는 현대의 인위적 산물에 의존해 오던 천마 프로토콜의 잔재를 완전히 깨부수고, 진정한 '육신과 의지의 합일'을 깨닫게 만든 계기였다.

그 순간이었다.

슈우우웅-!

주변의 대기가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맑고 청명하던 구구역의 하늘 위로, 갑작스럽게 기괴한 전자기적 노이즈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찌르르륵-!

시야의 구석, 물리적 안광(眼光) 너머로 미세한 파동이 감지되었다.

시스템의 HUD는 영구 차단되어 비활성화 상태였지만, 진혁이 개안한 [천마마안(天魔魔眼)]은 그것보다 훨씬 날카롭게 공간의 이질감을 포착해 냈다.

"……걸렸군."

진혁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말려 올라갔다.

그것은 일반적인 인간의 시각으로는 절대 볼 수 없는 파동이었다. 빛의 굴절률을 비정상적으로 왜곡하여 주변 환경과 완벽히 동화되는 광학 스텔스 회로. 그리고 마기를 흡수하거나 감쇄시키기 위해 특수 제작된 차단장치의 기운.

티타늄 그룹이었다.

그들은 진혁이 북쪽 협곡에서 독고운과 대치하고 있을 때부터 이미 주위를 포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삐비비빅-!

귀를 찢는 듯한 고주파음과 함께 협곡의 사방에서 그림자들이 튀어나왔다.

파앗! 파바박!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동작. 소음조차 일절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기동성이었다.

그들의 전신을 감싼 전투 슈트는 무광의 검은색 특수 합금으로 제작되어 있었고, 손에 쥔 무기는 초고주파 진동 칼날과 플라즈마 블레이드가 융합된 암살용 병기였다.

티타늄 그룹 본사 직속의 최정예 암살 특수부대.

이른바 [스펙터 (Spectre)]였다.

"목표물 포착. 제어 코드 '프로토콜 00호'의 소멸 반응 확인."

"대상자의 단전 출력 3만 MW. 예상보다 안정화 상태가 높음."

"사살이 아니다. 생포 혹은 회수 지시. 잔존 데이터 코드를 추출하라."

스펙터 대원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기계음처럼 건조했다. 그들은 감정이라곤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살인 병기 그 자체였다.

슈우우우욱!

가장 먼저 움직인 대원이 공간을 가르며 진혁의 사각지대로 파고들었다.

음속을 돌파하는 고주파 진동 칼날이 진혁의 목을 향해 무자비하게 벼려져 있었다. 일반적인 초인이라면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목이 잘려 나갈 정도의 속도였다.

하지만 강진혁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두 둥-

진혁의 심장이 묵직하게 뛰었다.

[천마마안]으로 포착한 적의 움직임은 슬로모션처럼 느리게 눈에 박혔다. 적의 근육 수축, 슈트의 에너지 출력 분사구, 그리고 칼날이 공기를 가를 때 발생하는 미세한 압력의 변화까지 모두 통째로 읽히고 있었다.

스윽.

진혁의 오른손이 허리춤에 걸쳐진 개량형 천마검의 손잡이를 가볍게 쥐었다.

카아아앙!

공간을 뒤흔드는 금속성의 폭음이 터져 나왔다.

스펙터 대원의 칼날이 진혁의 목을 베기 직전, 진혁이 가볍게 들어 올린 천마검의 검신과 정면으로 부딪힌 것이다.

"크윽……?!"

습격해 온 스펙터 대원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자신의 칼날은 초고주파 진동으로 모든 물리적 방어막을 찢어발기는 특수 병기였다. 하지만 진혁의 검에 닿은 순간, 칼날 끝에서 전해져 오던 진동이 완전히 상쇄되어 버렸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르르륵-!

진혁의 검신을 타고 흐르던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스펙터 대원의 슈트 회로를 타고 역류하기 시작했다.

"이, 이럴 수가……! 마기가 감쇄 필드를 무시한다?!"

"감쇄?"

진혁이 낮게 읊조리며 차가운 흑안을 번뜩였다.

"네놈들이 다루는 그딴 저급한 기술력 따위가, 내 안에서 단련된 무공의 경지를 어떻게 거스르겠나."

화악-!

진혁의 단전이 한 차례 요동쳤다.

3만 MW의 출력이 손끝으로 집중되며 폭발적인 마기가 검신을 타고 해방되었다.

푸르르릉-! 쾅!

"크아아악!"

비명마저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스펙터 대원의 엑소스트 슈트가 내부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마기와 뇌전이 융합된 충격파가 그의 전신을 관통하며 슈트의 모든 회로를 박살 냈고, 대원은 그대로 피를 토하며 나자빠졌다.

하지만 스펙터 부대는 단 한 명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슈우우우욱-! 슈각! 슈가각!

사방에서 동시에 날아드는 수십 개의 플라즈마 광선과 고주파 참격.

은형 스텔스 회로를 완전히 전개한 스펙터 대원들이 사방의 암석 뒤와 허공을 은밀하게 오가며 진혁을 향해 일제히 세례를 퍼부었다.

번쩍! 번버벅-!

협곡 전체가 눈이 멀 정도로 강렬한 플라즈마 폭발로 뒤덮였다.

수십 발의 고위력 에너지가 한곳에 집중되며 거대한 화염구와 충격파가 진혁의 위치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대지가 통째로 움푹 파이며 엄청난 분진과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원거리에서 전황을 모니터링하던 스펙터 부대의 지휘관이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목표물 피격 확인. 고열 플라즈마 및 마기 감쇄탄 전탄 작용 완료."

"대상의 생체 코어 출력 저하 관측……."

지휘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분진 속에서, 무언가 거대한 기운이 단숨에 사방의 폭발을 짓누르며 솟구쳤다.

쿠구구구구구궁-!

"……뭐지?"

지휘관의 음성에 미세한 떨림이 묻어났다.

흙먼지가 폭풍에 쓸려나가듯 양옆으로 갈라지고 그 속에서 드러난 것은, 옷자락 하나 스치지 않은 채 멀쩡히 서 있는 강진혁의 모습이었다.

그의 전신을 감싸고 있는 것은 기계적인 나노 장갑이 아니었다.

오직 살갗 위로 흐르는 칠흑 같은 마기가 유기적으로 뭉쳐져 만들어낸 완벽한 방벽.

[천마무상체(天魔無相體)]

그것은 물리적 충격을 흡수하고 분산시키는 것을 넘어, 주변의 모든 에너지를 자신의 단전으로 포섭하는 궁극의 신체 강화 비법이었다.

"끝났나?"

진혁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낮고 묵직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천마마안]으로 스펙터 대원들이 숨어 있는 공간의 미세한 기류 변화를 고스란히 짚어내고 있었다.

은형 스텔스? 광학 왜곡?

기계의 눈으로 세상을 보던 시절에는 완벽한 투명함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의 진혁에게 그것은 어둠 속에서 반딧불이가 빛나는 것만큼이나 선명한 표식에 불과했다.

"잡았다."

슈아아아앙-!

진혁의 몸이 한 줄기 칠흑의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마광신보 - 극(極)]

빛의 궤적조차 따라잡지 못하는 속도.

진혁의 잔상이 협곡의 공기를 가르며 스펙터 대원들의 포위망 한가운데로 파고들었다.

"이, 이 자식……! 어디로 사라진 거야!"

당황한 스펙터 대원 하나가 허공을 향해 플라즈마 건을 난사하려던 찰나, 그의 등 뒤로 서늘한 살기가 내리꽂혔다.

툭.

차갑고 거친 손바닥이 그의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크윽……!"

대원이 고개를 돌리려 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진혁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온 강력한 흡입력이 대원의 엑소스트 슈트 코어와 체내의 생체 에너지를 강제로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푸우우우욱-!

[흡원천공 - 개량(改)]

과거 시스템의 보조 연산 없이, 진혁은 온전히 자신의 의지와 심법만으로 적의 에너지를 강탈해 정제했다.

"끄아아아아악……!"

대원의 슈트가 찌그러지며 안에서부터 에너지가 고갈되어 갔다.

슈트의 출력이 0으로 떨어지며 대원이 힘없이 쓰러지는 순간, 진혁은 그를 지렛대 삼아 공중으로 도약했다.

두두두둥!

사방에서 날아오는 스펙터 대원들의 참격을 진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개량형 천마검으로 쳐냈다.

챙강! 챙가방-!

적들의 무기가 부서지고, 칼날이 튕겨 나갔다.

진혁은 검을 거꾸로 잡은 채, 협곡의 중앙 상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단전 속에 잠들어 있던 3만 MW의 마기를 심장의 박동에 맞춰 단숨에 끌어올렸다.

쿠구구구구구궁-!

진혁의 머리 위로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거대한 소용돌이를 그리며 뭉쳐졌다.

하늘마저 두 쪽으로 쪼갤 듯한 압도적인 기운이 협곡 전체를 짓눌렀다.

스펙터 대원들의 슈트 경고음이 일제히 귀를 찢을 듯 울려 퍼졌다.

[경고! 경고! 대상의 에너지 출력이 예측 범위를 초과했습니다!]

[마기 농도 극대화! 방어막 유지 불가!]

[회피하라! 당장 회피……!]

"늦었다."

진혁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허공에 멈춰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검을 정면으로 내리꽂았다.

[천마일검 - 개량(改)]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칠흑의 검강과 푸른 뇌전, 그리고 초고주파 진동이 하나로 융합된 거대한 참격이 협곡의 대지를 직격했다.

지면이 폭발하며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성되었고, 스펙터 부대의 은형 결계는 단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나며 공중으로 흩어졌다.

지휘관을 포함한 수십 명의 스펙터 대원들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충격파에 휘말려 바닥에 고꾸라졌다.

고요해진 협곡.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그 중앙에서, 진혁은 천천히 검을 거두며 숨을 골랐다.

후우-.

단전의 출력은 여전히 3만 MW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기계의 지배를 벗어난 진정한 무인의 경지.

진혁은 쓰러진 스펙터 부대의 잔해를 넘어, 신서울의 거대한 마천루가 희미하게 보이는 남쪽을 향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티타늄 그룹의 진짜 주인.

그 깊은 어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진혁의 발걸음이 다시 한번 속도를 높였다.

구구역의 잿빛 협곡을 뒤로한 채, 강진혁은 신서울의 거대한 철갑 장벽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과거였다면 스펙터 부대의 기습을 상대할 때마다 머릿속 HUD 창이 깜빡이며 최적의 전투 경로와 확률을 계산해 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시야는 완전히 맑았다. 오직 [천마마안]이 전해 주는 세상의 미세한 파동과 대기의 흐름만이 진혁의 감각을 채우고 있었다.

‘확실히 가볍군.’

몸속을 흐르는 3만 MW의 마기는 더 이상 인공적인 제어 프로그램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심장의 박동 하나, 호흡의 깊이 하나에 따라 자유자재로 팽창하고 응축되었다. 그것은 기계가 부여한 힘이 아니라, 온전히 수련과 사투를 통해 자신의 것으로 만든 진정한 무위(武爲)였다.

슈우우우욱-.

차가운 북풍이 협곡의 잔해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진혁의 옷자락이 나부끼는 순간, 그의 발밑에서 미세한 진동이 울렸다.

치익- 툭.

방금 전까지 스펙터 부대가 사용했던 전술 통신망의 잔해가 열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져 부서졌다. 그 파편 속에서 희미한 데이터의 잔해빛이 깜빡였다.

[경고: 목표물 '강진혁' 제거 실패.]

[예비 프로토콜 가동. 상층부 '아폴론' 세력과의 연계망 차단 확인.]

[지시자: 제…….]

데이터의 마지막 글자는 완벽하게 깨져 있었다.

진혁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제……?"

제프로스? 아니, 그 용병왕은 이미 찌꺼기조차 남지 않았다. 그렇다면 티타늄 그룹의 잔당이거나, 혹은 이현도가 숨겨두었던 또 다른 대리인의 코드일 터였다.

티타늄 그룹의 본사 타워가 무너지고 회장 진무극이 소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남긴 거대한 자본과 생체 네트워크의 뿌리는 생각보다 훨씬 깊고 질겼다. 하층민의 생체 코어를 볼모로 삼았던 헤븐리 파운데이션이나, 이번에 투입된 스펙터 암살대처럼 그들은 여전히 신서울의 어둠 속에서 아귀처럼 숨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밑바닥부터 싹 다 긁어내야겠군."

진혁의 입꼬리가 비틀어지며 싸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가 검을 고쳐 잡으며 남쪽을 향해 발을 내딛으려던 그때였다.

삐비비빅-!

기계적인 소음이 아니라, 진혁의 단전 속에서 자글거리며 요동치는 마기의 파동이 먼저 반응했다.

웅장한 마천루들이 구름을 뚫고 솟아 있는 신서울의 외곽, 제2계급 공업지대와 구구역의 경계선에 위치한 거대한 철문 ‘천상관문(天上關門)’의 상공에서 비상 경보등이 붉은 빛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콰구구궁-!

지축을 울리는 엄청난 진동과 함께, 신서울 상층부의 방어 시스템이 전면적으로 가동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경비 부대의 출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도시 전체의 전력이 한곳으로 집중될 때 발생하는 거대한 에너지의 폭발음이었다.

‘이 기운은……?’

진혁의 [천마마안]이 번뜩이며 아득히 멀리 떨어진 천상관문의 상공을 꿰뚫었다.

거기에는 단 한 명의 인간이 만들어내고 있다고는 믿을 수 없는, 거대하고도 기괴한 마기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티타늄 그룹의 잔당들이 모여 있는 그곳에서, 진혁이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무언가'가 수면 위로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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