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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101화목차

제101화 연산의 한계

바람이 찢어졌다.

북쪽 경계 밖, 구구역(舊區域) 협곡의 밤공기는 메가 코퍼레이션의 정화 필터를 거치지 않아 거칠고 무거웠다.

스으으-!

강진혁의 양어깨를 감싸고 있던 칠흑빛 마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단전 코어 출력 30,000 MW. 헤븐리 파운데이션의 본사를 뒤흔들고, 메카 크로노스를 분쇄하며, 최종 복제체인 프로토콜 00호의 목을 베어냈던 절대적인 출력치였다.

비록 최성기 시절의 79,000 MW에 비하면 절반 이하로 떨어진 수치였으나, 지금의 진혁에게 그 숫자는 큰 의미가 없었다.

시스템의 보조 HUD가 완전히 셧다운된 지금, 그의 눈앞에 떠오르던 푸른빛의 반투명 상태창들은 모두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인공지능 ‘설화’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모든 것은 순수하게 자신의 감각과 육체, 그리고 혈관 속을 치열하게 흐르는 마기(魔氣)의 흐름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콰아아앙—!

진혁의 잔상이 머물던 자리가 터져 나갔다.

불과 0.1초 전까지 그가 서 있던 바위 대지가 통째로 미세한 입자로 부서져 내렸다. 적의 공격은 형태도 없었다. 소리보다 빠른 주파수의 파동검강(波動劍剛).

"……."

진혁은 가볍게 몸을 틀며 사선으로 물러섰다.

발밑의 보법, [마광신보 - 극(極)].

시스템의 자동 보정 연산이 없었기에, 이 짧은 회피 동작 하나에도 온전히 자신의 뇌와 신경계, 그리고 근육의 수축 이완 속도가 직접 개입해야 했다.

챙가방—!

진혁의 손에 쥐인 개량형 천마검이 비스듬히 세워지며 공기 중의 파동을 튕겨냈다. 검신을 타고 흐르는 칠흑의 마기와 고주파 진동이 충돌하며 날카로운 파열음을 냈다.

스파크가 튀는 시야 너머로, 낡은 도포를 뒤집어쓴 의문의 무인이 서 있었다.

그의 몸에는 메가 코퍼레이션이 자랑하는 그 어떤 생체 코어 이식 흔적도 없었다. 나노머신이 흐르는 은빛 회로 선도, 플라즈마를 뿜어내는 기계 장치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뼈와 살, 그리고 수십 년간 갈고닦은 순수한 내공의 기세만이 그의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반응이 조금 늦었군요.”

도포 무인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바람결에 흩어질 듯 낮았으나, 그 속에 담긴 내공의 무게는 대기를 짓누르기에 충분했다.

“시스템의 도움 없이 온전히 몸뚱이 하나로 움직이려니, 네놈의 뇌가 그 방대한 출력을 온전히 처리하지 못하고 있소이다. 그래 가지고야 어디 최상위 경지라 자처할 수 있겠나.”

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칠흑 같은 흑안을 가늘게 뜨며 상대의 기혈 흐름을 응시할 뿐이었다.

[천마마안(天魔魔眼)].

시각 시스템의 보조 없이, 순수한 정신의 통찰력으로 상대의 단전과 혈도를 꿰뚫어 보는 경지.

도포 무인의 내력은 거칠거나 요란하지 않았다. 마치 깊은 산속의 고요한 호수처럼 잔잔하면서도, 일단 파도가 일면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압도적인 밀도를 자랑했다. 현대의 고출력 생체 코어가 뿜어내는 폭발적인 에너지와는 결이 완전히 달랐다.

그것은 ‘무공(武功)’의 본질이었다.

‘……지적할 만하군.’

진혁은 속으로 낮게 중얼거렸다.

방금 전의 전투에서 진혁은 명백히 한계를 느꼈다.

상층부 외각 요새를 정복하고, 수많은 사이보그와 개조 무인들을 상대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완벽했다. 천마 프로토콜의 연산 능력이 실시간으로 적의 궤적을 예측하고, 최적의 회피 경로와 타격점을 머릿속에 시뮬레이션해 주었기 때문이다.

설령 시스템 셧다운 이후 자신의 의지로 그것을 대체하려 했다 하더라도, 수십 년간 머릿속에 박혀 있던 ‘계산식’의 습관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적의 공격이 날아오면,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서 파동의 주파수와 거리를 계산하려 든다.

‘적의 탄도 속도 마하 3.2. 충돌 예상 시간 0.04초. 마기 방벽 전개 각도 15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방금 전, 도포 무인이 불쑥 던진 변칙적인 파동 검강 앞에 진혁의 몸이 0.01초 동안 멈칫했다.

머릿속에서 계산되던 예측 연산의 데이터와, 실제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무인의 기세가 미세하게 어긋났기 때문이다.

기계적인 연산에 의존하는 습관이, 오히려 날것 그대로 움직이는 순수한 무학(武學)의 변칙성 앞에서 치명적인 ‘반응 지연’을 만들어낸 것이다.

콰직-!

진혁의 뺨을 스치고 지나간 바람이 뒤쪽의 바위산을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만약 반응이 0.005초만 더 늦었어도, 그의 목이 통째로 날아갔을 터였다.

‘연산의 한계.’

진혁은 차갑게 식어가는 이마의 땀을 느끼며 뇌리를 스치는 깨달음을 붙잡았다.

천마 프로토콜.

그것은 분명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마공 재현 프로그램이자, 주인을 단숨에 먼치킨의 반열로 끌어올려 주는 치트키였다.

그 시스템 덕분에 진혁은 티타늄 그룹의 비참한 실험체 07호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수만 MW의 출력을 견디며 신서울의 꼭대기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어땠는가.

그 시스템은 진혁을 ‘계산하는 기계’로 만들고 있었다.

적의 데이터를 스캔하고, 가장 효율적인 운기 경로를 도출하고, 확률적으로 가장 승률이 높은 기술을 골라잡는 방식. 그것은 완벽한 효율을 자랑했지만, 동시에 무인(武人)으로서 가져야 할 ‘직관’과 ‘깨달음’의 영역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무공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니었다.

1,000년 전의 천마가, 그리고 구무림의 고수들이 비록 기계장치 하나 없이 천하를 호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머릿속의 연산 장치 때문이 아니었다.

스스로의 육체와 영혼을 하나로 묶어, 우주와 기(氣)의 흐름을 몸소 체득하는 ‘심법(心法)’의 경지.

계산할 시간에 베고, 예측할 시간에 뚫는다.

“내 실수를 짚어주러 온 건가.”

진혁이 입술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 대신 묘한 흥분이 서려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한계, 그리고 그 한계를 부수고 나아갈 수 있다는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한 데서 오는 무인(武人)으로서의 피끓는 전율이었다.

도포 무인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수염을 쓸어내렸다.

“실수라기보다는… 안타까움이지. 네놈의 단전에는 천마(天魔)의 잔재가 가득한데, 그릇은 여전히 메가 코퍼레이션의 톱니바퀴처럼 삐그덕거리고 있단 말이야. 계산이 끝나야만 움직일 수 있는 인형(人形) 따위가, 감히 천마의 이름을 입에 담을 수 있을 줄 아나?”

차아앙!

도포 무인의 손끝에서 은은한 검광이 피어올랐다.

그것은 나노머신의 고주파 진동도, 플라즈마의 고압 방전도 아니었다. 오직 순수한 내공이 대기를 진동시키며 만들어낸, 고대 무림의 진정한 ‘검강(劍剛)’이었다.

“오냐. 네가 가진 그 거대한 출력이 진짜 네 힘인지, 아니면 시스템이 쥐어준 장난감에 불과한지… 내 직접 부수며 확인해 주마.”

슈우우우—!

도포 무인의 몸이 사라졌다.

이번에는 사방에서 기세가 압박해 왔다. 어느 한쪽의 궤적을 예측할 수도, 시스템의 HUD로 스캔할 수도 없는 완벽한 무형(無形)의 검세(劍勢).

진혁의 눈동자가 깊어졌다.

‘연산 따위는 집어치워라.’

그는 머릿속에 남아 있던 모든 잔여 코드와 시스템의 가상 시뮬레이션 창들을 강제로 지워버렸다.

스스로의 뇌 속에서 돌아가던 가상의 연산 장치를 손으로 짓뭉개듯 차단하자, 세상의 소리가 10배는 더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스치는 각도, 대기의 밀도, 상대가 발을 디딜 때 대지가 미세하게 함몰되는 소리.

그리고 자신의 심장이 폭발하듯 뛰어오르는 고동 소리까지.

“좋다.”

진혁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그의 단전에서 짓눌려 있던 30,000 MW의 마기가 폭발적으로 역류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계적인 제어 장치나 프로토콜의 보조 따위는 없었다.

오직 진혁 자신의 의지와 마기만이 그 거대한 에너지를 꽉 틀어쥐고 혈관 속으로 밀어 넣었다.

콰아아아아앙-!

칠흑의 마기가 기둥처럼 솟구치며 밤하늘의 구름을 양쪽으로 갈라놓았다.

시스템의 보조 없이, 오직 자신의 감각과 무공만으로 끌어올린 [초월천마경]의 진정한 진입.

개량형 천마검이 허공을 갈랐다.

아무런 예측도, 계산도 없었다. 하지만 그 검격에는 천마(天魔)라는 이름에 걸맞은, 온 세상의 이치를 단칼에 베어버릴 듯한 순수한 파괴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챙가아아아앙—!

구구역 협곡의 밤이 두 무인의 격돌에서 터져 나오는 광채로 눈이 멀 정도로 환하게 밝아졌다.

머릿속의 연산 장치를 끄고 마침내 마주한 한계.

그 끝에서, 진혁은 비로소 시스템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던진 자신만의 진짜 무도를 향해 첫발을 내딛고 있었다.

―파직! 쿠구구구궁!

사방의 대지가 무너져 내리는 가운데, 진혁의 검 끝에서 새로운 형태의 칠흑빛 검강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검과 검이 맞부딪칠 때마다 공간 자체가 비명처럼 일그러졌다.

쾅! 쿠구구궁!

기술의 정밀함을 겨루는 싸움이 아니었다. 순수한 기세와 의지의 충돌.

도포 무인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내력은 거칠고 투박했으나, 그 안에는 수십 년 동안 단 하나의 검도(劍道)만을 파고든 고고한 집념이 서려 있었다. 반면 진혁의 검에는 죽음의 문턱을 수없이 넘어오며 익힌 생사(生死)의 진리가 담겨 있었다.

챙강-! 챙가방!

"호오……?"

도포 무인의 눈빛에 미세한 파문이 일었다.

방금 전까지 머릿속의 잔여 연산 때문에 0.01초씩 삐그덕거리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시스템의 보조 없이, 오직 자신의 직관과 육체적 감각만으로 도포 무인의 변칙적인 검세를 온전히 받아내고 있는 것이다.

진혁의 흑안이 번뜩였다.

'이 감각이다.'

머릿속에서 숫자를 지우자, 세상의 흐름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였다.

적의 검이 어디로 향할지, 내공이 단전에서 어느 혈도를 타고 손끝으로 전달되는지. 기계의 센서가 아니라, 무인으로서의 본능이 그것을 완벽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스윽-

진혁의 몸이 유령처럼 미끄러졌다.

[마광신보 - 극(極)].

더 이상 프로토콜이 계산해 준 최적의 궤적이 아니었다. 진혁 자신의 발걸음이 곧 궤적이었고, 공기의 흐름이 곧 길이었다.

도포 무인의 허점을 파고든 천마검이 허공을 찢었다.

슈우우욱!

"제법이구나!"

도포 무인이 감탄사를 내뱉으며 검을 비틀어 막아섰다.

두 개의 검강이 정면으로 부딪치며 거대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협곡의 바닥이 사방팔방으로 갈라지고, 거대한 바위덩어리들이 두부처럼 부서져 공중으로 흩어졌다.

콰아아앙!

충격의 여파로 두 사람의 몸이 동시에 뒤로 밀려났다.

진혁은 가볍게 지면을 차며 착지했다.

거친 호흡을 몰아쉬면서도,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빛났다. 단전에서 요동치던 30,000 MW의 마기가 비로소 기계적인 부하 없이 온전히 자신의 장기와 근육, 핏줄 구석구석까지 매끄럽게 동기화되는 것이 느껴졌다.

도포 무인은 흩날리는 도포자락을 정리하며 진혁을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의 어깨에 걸쳐진 낡은 옷자락이 미세하게 헤어져 있었다. 진혁의 검강이 스쳐 지나간 흔적이었다.

"시스템의 장갑을 벗어던지니, 비로소 진짜 네 힘이 나오는군요."

도포 무인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입만 산 줄 알았더니, 그 재능만큼은 과연 천마의 그릇이라 불릴 만하다. 머릿속의 계산기를 부수자마자 검에 생기가 도는군."

진혁은 개량형 천마검을 가볍게 쥐며 차갑게 입꼬리를 올렸다.

"내 실력을 시험해 본 이유가 뭐지?"

"시험? 하하, 착각하지 마라. 나는 다만 잊혀진 무도의 길을 걷는 늙은이로서, 메가 코퍼레이션의 장난감에 불과했던 놈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 구경하고 싶었던 것뿐이다."

도포 무인이 피식 웃으며 허리춤에 차 있던 낡은 도검을 완전히 뽑아 들었다.

푸르스름한 내력이 검신을 타고 흘렀다. 그 기세는 아까보다 몇 배는 더 무겁고 날카로웠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방금 전의 공격은 겨우 몸풀기에 불과했으니까."

진혁은 대답 대신 검을 앞으로 겨누었다.

시스템의 보조 없이, 오직 자신의 의지와 마기만으로 최상위 경지에 도달한 이후 처음 맞이하는 진짜 고수와의 사투.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기계의 냉각 팬이 돌아가는 소리 대신, 자신의 뜨거운 피가 온몸을 순환하는 소리가 들렸다.

―콰아아앙!

두 사람의 잔상이 다시 한 번 밤의 협곡 속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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