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0화 신천마(新天魔)의 등극
콰아아아아-!
신서울의 꼭짓점, 티타늄 그룹 본사 타워의 마스터 돔을 뒤흔든 참격은 단순한 충격파가 아니었다. 그것은 만 년 동안 응축된 고대 마교의 업화와, 현대 메가 코퍼레이션이 밀리리터 단위의 나노머신으로 벼려낸 차가운 기계 공학이 한 점으로 융합된 절대적 파멸의 궤적이었다.
[SYSTEM ERROR: CORE INTEGRITY CRITICAL.]
[WARNING: 단전 에너지 출력 82,000 MW 돌파……!]
[경고! 사용자 강진혁의 신경망 과부하가 허용치를 초과했습니다!]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시스템의 HUD는 이미 잔해처럼 깨어져 파편만 번쩍거렸지만, 강진혁은 그것을 볼 필요도 없었다.
그의 눈은 이미 인간의 안구가 아니었다.
[천마마안(天魔魔眼)].
심법의 극의로 개안한 칠흑의 눈동자는 허공을 부유하는 미세한 나노 입자의 궤적까지 슬로우 모션처럼 꿰뚫고 있었다.
그의 앞에, 세상의 모든 부와 권력을 움켜쥔 티타늄 그룹이 빚어낸 최후의 장난감이 무너지고 있었다.
"……크윽."
지독한 이퀄라이저의 잡음과 함께, 강진혁과 똑같은 얼굴을 한 프로토콜 00호의 육체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번쩍이는 스파크.
피 대신 뿜어져 나오는 고압 푸른 플라즈마 냉각수.
00호의 입술이 허탈하게 벌어졌다. 그가 쥐고 있던 검은 고주파 진동음을 내며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하…… 하하……."
프로토콜 00호의 목소리가 쇳소리와 함께 찢어졌다.
"재미있군…… 네놈은 내가 만든 그릇에 불과했을 터인데…… 어째서 그 안에서…… 내가 닿지 못한 진짜 '인간'의 분노가 자라난 거지……?"
"그릇?"
진혁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의 입가와 목덜미를 타고 핏물이 흘러내려 검은 회로 선을 적셨지만, 서 있는 자세는 단 1도 흔들리지 않았다. 79,000 MW를 넘나드는 단전의 터빈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그의 전신에 폭발적인 생명력을 공급하고 있었다.
"착각하지 마라. 네놈이 탐한 건 불멸의 권력이고, 내가 쥔 건 내 목숨이다. 그릇 따위가 아니다. 나는 나를 깎아내린 이 세상을 부수기 위해 스스로 무기를 잡았을 뿐이다."
"……크크…… 크하하하하!"
프로토콜 00호의 눈동자에 비친 신서울의 밤하늘이 불길하게 깜빡였다.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라, 강진혁…… 이 타워의 밑바닥에는…… 아직 진무극이 남긴 진짜 '마스터 프로토콜'의 심장이…… 헤븐리 파운데이션의 전력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00호의 흉부 코어가 완전히 붕괴하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쿠구구구궁-!
마스터 돔의 강화 유리 돔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영원히 가라앉지 않을 것 같던 신서울 상층부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인공 구름층이 그 폭발의 여파로 일그러졌다.
강진혁은 그 폭풍의 한가운데서 천마검을 거칠게 뽑아 올렸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그의 칠흑 같은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신서울 하층 슬럼가의 어둠부터, 1계급 특권층이 거주하는 마천루의 꼭대기까지.
시민이라 불리던 수백만 명의 노예들과, 저항군 '니르바나'의 함성, 그리고 공포에 질린 기업 임원들의 비명이 밤공기를 타고 올라오는 듯했다.
진혁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단전 생체 코어 출력: 80,000 MW 안정화.]
[나노머신 동기화율: 99.9%.]
[신천마신공 제5단계 —— '초월천마경(超越天魔經)' 유지 중.]
시스템의 허락도, 진무극의 승인도 필요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자신의 의지와 주먹으로 쟁취한 힘이었다.
진혁은 검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칠흑의 마기와 푸른 뇌전이 엉키며, 밤하늘을 향해 거대한 빛의 기둥을 쏘아 올렸다.
쿠루루릉-! 쾅!
신서울의 상층부를 가르며 뻗어 나간 검강은 저 멀리 구름을 뚫고 대기권 경계까지 닿을 듯 기세 등등하게 폭발했다.
그것은 단순한 무공의 위력이 아니었다.
자본과 기술, 그리고 생체 코어로 사람을 계급화하고 통제해 온 이 거대한 디스토피아의 심장에 박아 넣는 선전포고이자, 새로운 지배자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크로노스 타워와 마스터 돔의 연쇄 폭발은 신서울 전역의 네트워크를 마비시켰다.
"저, 저게 뭐야……!"
"상층부 마천루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타워의 방어 시스템이…… 전부 다운됐어!"
제2계급 공업지대와 하층 슬럼가의 경계.
저항군 '니르바나'의 총수 송수연은 거대 대검을 바닥에 짚은 채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반으로 갈라버린 저 거대한 칠흑빛 마교의 검강.
그것은 1,000년 전 전설 속에서나 존재한다고 믿었던 '천마(天魔)'의 현신 그 자체였다.
"진혁 씨…… 해낸 거야?"
그녀의 옆에서 단말기를 두드리던 윤아영이 눈물을 글썽이며 소리쳤다.
"수연 언니! 티타늄 그룹의 메인 서버와 자폭 프로토콜 코드가 완전히 분쇄됐어요! 하층민 320만 명의 생체 코어 잠금이 해제됐다고요! 우리가…… 우리가 이겼어!"
우오오오오-!
니르바나 저항군의 함성이 공업지대를 뒤흔들었다.
햇빛조차 들지 않던 지하 슬럼가와 공장 지대에 시뻘건 불꽃 대신, 자유를 상징하는 함성이 메아리쳤다.
기계와 자본이 지배하던 철의 도시, 신서울의 밤하늘 아래에서 억압받던 이들이 비로소 두 발로 일어섰다.
마스터 돔의 잔해 위에 홀로 선 강진혁.
그의 시야는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선명했다.
풍비박산 난 타워의 잔해 사이로, 부서진 헬기 한 대가 추락하며 검은 연기를 내뿜었다. 그 안에서 기어나오려던 티타늄 그룹의 잔당 임원 하나가 진혁의 발치를 발견하고는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강…… 강진혁……! 살려, 살려다오! 우리에게도 가족이……!"
진혁은 그를 내려다보지 않았다.
아니,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에게 그들은 더 이상 적수가 아니었다. 세상의 꼭대기에 군림하며 인간을 부품처럼 쓰던 자들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거나, 지금 이 순간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진혁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나노 회로의 증폭을 빌리지 않고도 신서울 전역의 공기를 울렸다.
"기계가 인간을 심판하고, 자본이 목숨을 재단하던 시대는 끝났다."
치이익-!
진혁의 손에서 검은 마기가 불꽃처럼 피어올라, 개량형 천마검의 날을 더욱 날카롭게 갈아 내렸다.
"지금 이 순간부터, 이 도시의 주인이 누구인지 똑똑히 기억해라."
바람이 멈추었다.
강진혁의 검끝이 지면을 향해 살짝 기울어졌다.
신서울의 밤하늘을 뒤덮은 칠흑의 뇌전이 그의 등 뒤에서 거대한 마신의 날개처럼 펼쳐졌다.
자본의 바다 위에서, 피와 철로 얼룩진 디스토피아의 왕좌를 부수고 태어난 단 하나의 지존.
신천마(新天魔)의 등극이었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 영구 종료.]
[사용자 강진혁, 시스템의 지배를 벗어나 스스로 '진정한 천마'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흐릿해진 시야 속에서, 진혁은 천천히 검을 거두며 신서울의 찬란하고도 어두운 지평선을 응시했다.
복수는 끝났다.
하지만…… 그의 싸움은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었다.
- 신서울 외곽, 구무림 잔당 은거지.
낡은 도포를 걸친 노인, 독고운이 찻잔을 든 채 조용히 고개를 들어 북쪽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흐릿한 눈동자에 신서울 상층부를 뒤덮었던 마기의 잔광이 은은하게 반사되었다.
"호오……."
노인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말려 올라갔다.
"기계의 톱니바퀴를 부수고, 스스로의 심장으로 하늘을 쪼갠 자가 나왔단 말이지. 1,000년 만인가…… 진짜배기 무인이 이 세상에 발을 디딘 것이."
독고운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낡은 장검을 집어 들었다.
"풍년이겠어. 세상이 다시 한바탕 뒤집히겠군."
바람이 잦아들자 신서울 상층부는 거대한 무덤처럼 적막해졌다.
타워의 붕괴는 단지 한 건물의 파괴를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100년 넘게 신서울의 목을 조여 오던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 끊어졌음을 뜻했다. 하늘을 뒤덮던 메가 코퍼레이션의 통제 네트워크는 완전히 침묵했고, 거대 디스플레이 패널들마다 깜빡거리던 '티타늄 그룹 파산'의 비상 경고등만이 이 시체가 된 제국의 유일한 유산처럼 깜빡였다.
강진혁은 피투성이가 된 검을 땅에 툭 떨구었다.
챙─!
철컥거리는 파동을 내며 바닥에 꽂힌 천마검의 표면에서 푸른 뇌전의 잔광이 스러졌다.
방금 전까지 80,000 MW를 상회하던 단전의 출력이 급격하게 하강 곡선을 그리며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SYSTEM INFO: 경고. 단전 터빈의 과열로 인한 일시적 쿨다운 진입.]
[생체 코어 출력: 45,000 MW... 30,000 MW로 하향 안정화.]
[나노머신 동기화율: 95.0% (급격한 세포 재생에 따른 에너지 소모 심화).]
시스템은 이미 영구 종료되었지만, 지난 수개월 동안 뇌리에 각인된 잔재 연산 회로가 본능처럼 경고를 띄우고 있었다.
진혁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짚었다.
우두두둑, 뼛조각이 제자리를 찾아가며 찢어졌던 근육이 아물어 붙는 끔찍한 고통이 전신을 엄습했다. 하지만 그 고통조차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하……."
진혁의 입술 사이로 뜨거운 김이 새어 나왔다.
이겼다.
진무극이 꾸민 음모도, 이현도의 미치광이 과학도, 자신을 '그릇'으로 쓰려던 프로토콜의 모든 계산도 산산조각 났다.
하지만 가슴 한구석은 묘하게 허전했다.
머릿속에서 쉼 없이 울려 퍼지던 차가운 음성, '설화'의 서포트가 사라진 자리는 생각보다 광대했다. 모든 것을 확률로 계산하고, 적의 공격 궤적을 0.001초 단위로 예측해 주던 보조 장치가 없어진 지금, 세계는 너무나 날것 그대로의 거대함으로 진혁의 앞에 펼쳐져 있었다.
"……혼자 걸어갈 차례인가."
진혁이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순간이었다.
비비비비비-!
진혁의 망토 주머니 속에 넣어둔 윤아영의 단말기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진혁은 미간을 좁히며 수신기 버튼을 눌렀다. 단말기 너머에서 아영의 숨 가쁘고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진혁 씨! 제 목소리 들려요? 거긴 괜찮아요? 생체 신호가 순간적으로 폭등했다가 떨어졌는데, 데이터 상으로 파악되지 않는 이상 현상이 감지됐어요!"
"끝났다."
진혁의 짧은 대답에 통화 너머로 짧은 탄식이 흘렀다. 잠시 숨을 고르던 아영이 급하게 말을 이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에요. 하지만 진혁 씨, 지금 방심하면 안 돼요! 티타늄 그룹의 메인 서버는 날렸지만, 그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수집한 '고대 무공 및 마교 데이터의 원본' 중 일부가 외부 네트워크로 빠져나간 흔적이 포착됐어요."
"외부 네트워크?"
"네. 신서울의 경계 바깥, 기업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구구역(舊區域)의 심장부 쪽이에요. 그쪽에서 아주 기괴한 에너지 파장이 잡히고 있어요. 기계 공학적 전력 출력이 아니라…… 완전히 순수한 고대 마기(魔氣)의 파동이에요."
진혁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마기의 파동?"
"맞아요. 진혁 씨가 흡수한 마기와는 결이 달라요. 훨씬 고대의 것 같고, 기계 장치 따위는 일절 쓰지 않은…… 순수한 무공의 기운이랄까요? 어쩌면 티타늄 그룹이 1,000년 전 마교의 유골을 발굴했을 때, 그곳의 진짜 비밀을 알고 있던 잔당들이 숨어 있는지도 몰라요."
윤아영의 정보는 정확했다.
티타늄 그룹은 거대 자본과 최첨단 나노 기술로 천마 프로토콜을 만들었지만, 그 근원이 된 '고대 마교'의 뿌리 자체를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주워온 유골의 데이터를 해체하고 응용했을 뿐이다.
만약 그 원본 데이터나, 진무극조차 건드리지 못한 마교의 진짜 핵심이 다른 곳에 숨겨져 있다면…… 그것은 언젠가 진혁의 발목을 잡을 또 다른 화근이 될 터였다.
"좌표를 보내라."
"알겠어요. 거긴 기업의 법도 통하지 않는 곳이고, 무엇보다…… 보통 괴물들이 사는 동네가 아니에요. 조심해야 해요, 진혁 씨."
통화가 끊어지고, 진혁의 시야 구석에 새로운 위치 데이터가 투사되었다.
신서울의 북쪽 경계, 태양의 빛조차 닿지 않는 거대한 폐기물 산맥의 너머.
기계의 시대가 오기 전부터 존재했다는 구무림의 잔해가 잠들어 있는 곳.
진혁은 천천히 바닥에 박혀 있던 천마검을 뽑아 들었다.
챙강-!
검신에 어린 칠흑빛 마기가 더욱 짙어졌고, 칼끝은 망설임 없이 북쪽을 향했다.
"기계의 시대가 끝나고, 자본이 무너졌다면…… 이제 남은 건 하나뿐이다."
진혁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말려 올라갔다.
"내 안의 마기가 진짜 어디까지 뻗어 나갈 수 있는지, 그 끝을 확인해 주마."
쿠우우웅-!
진혁의 발밑에서 터져 나온 [마광신보 - 극(極)]의 여파가 마스터 돔의 잔해를 먼지로 만들어 버렸다.
칠흑의 잔상을 남긴 그의 육체가 밤하늘의 유성처럼 신서울의 경계 밖으로 사정없이 사출되었다.
도시의 밤은 깊어 갔지만, 진혁의 질주는 이제 막 새로운 장을 열고 있었다.
제101화 연산의 한계
신서울의 철옹성을 등지고 구구역(舊區域)으로 향하는 황폐한 대지는 고요하면서도 살벌했다.
비정형의 폐기물 산맥이 끝없이 펼쳐진 이 지대는 메가 코퍼레이션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법외지대였다. 정제되지 않은 독성 안개가 지면을 낮게 기어 다니고, 그 짙은 안개 사이로 버려진 전투용 사이보그들의 잔해가 뼈대만 앙상한 채 나뒹굴었다.
슈우우우- 콰아아앙!
기체 청정기를 강하게 돌리며 착지한 강진혁의 발밑에서 바위가게가 산산조각 났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v3.04 (연산 모듈 잔재)]
[현재 위치: 신서울 북쪽 경계 42km 지점, 구구역 심장부 진입.]
[주변 환경 경고: 고농도 마기 잔류 반응 감지. 나노머신 필터 가동률 120% 상승.]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것은 이제 진정한 의미의 시스템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혁의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잔존한 신경 회로의 서브 루틴이자, 수백 번의 전투를 통해 체화된 전투 본능의 파편이었다.
'거슬리는군.'
진혁은 미간을 좁히며 머릿속의 잔재 연산 회로를 강제로 차단했다.
지금까지의 싸움은 철저하게 시스템의 도움 덕분이었다.
적의 공격 궤적, 뼈의 밀도, 심장 박동의 주기, 그리고 나노머신을 통한 최적의 반격 타이밍까지. 프로토콜은 진혁에게 언제나 0.001초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계산을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티타늄 그룹 본사를 무너뜨리고, 00호와의 사투를 치르는 과정에서 진혁은 뼈저리게 깨달았다.
시스템의 숫자가 가리키는 정밀한 예측 연산에 지나치게 의존할수록, 오히려 찰나의 변칙적인 상황이나 예상 밖의 무공을 구사하는 적을 마주했을 때 0.01초의 반응 지연이 발생한다는 치명적 결함을.
기계는 공식을 계산할 수 있어도, 무인의 '의지'와 '기운'의 흐름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크으으……!"
갑작스럽게 단전이 뻐근해지며 묵직한 통증이 밀려왔다.
생체 코어의 출력이 강제로 30,000 MW로 고정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마광신보]의 극의를 전개한 반작용이었다.
진혁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앞에 펼쳐진 것은 거대한 협곡이었다.
인공적으로 파인 듯한 그 협곡의 단면에는 수천 년 전의 것으로 보이는 고대의 거대한 석벽이 드러나 있었다. 석벽 전체에는 기계 회로가 아니라, 칼로 빚어낸 듯한 기괴하고도 장엄한 천마(天魔)의 벽화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벽화의 중앙에서, 인간의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순수한 고대 마기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스스스스…… 팟!
"누구냐."
진혁의 눈이 매섭게 빛나며 천마검이 허공을 갈랐다.
검신에서 뿜어져 나온 칠흑의 검강이 협곡의 안개를 단숨에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협곡의 어둠 속에서 낮고 거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하하하……! 과연, 기계의 노예를 자처하던 티타늄의 찌꺼기들을 박살 낸 사내답군. 눈빛 하나는 살아 있어."
안개를 헤치고 걸어 나온 자는 기계 의수를 두른 사이보그도, 고출력 생체 코어를 박은 특수부대원도 아니었다.
그는 낡고 해진 누런 도포를 걸치고 있었으며, 양팔에는 현대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기운의 잔재가 용오름처럼 휘감겨 있었다.
무림맹의 정통 검객도, 그렇다고 티타늄 그룹의 사병도 아닌, 기이한 광기를 품은 무인.
"너는 누구지?"
진혁이 낮게 물었다.
상대의 기운은 지금까지 진혁이 상대했던 어떤 적보다 위험했다. 그 어떤 기계 장치나 나노머신도 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내뿜는 호흡 하나하나는 대기의 압력을 미세하게 왜곡시키고 있었다.
"이름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 내 이름은 이미 이 거친 구구역의 바람 속에 흩어진 지 오래다."
노을빛 머리카락을 질끈 묶은 사내가 피식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푸른 플라즈마도, 고주파 진동파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수련으로 다져진 순수한 무형의 내공, 진정한 의미의 '검강(劍罡)'이었다.
"나는 다만, 1,000년 전 천마의 숨결이 잠들어 있는 이 유적에서…… 네가 가진 그 반쪽짜리 마기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시험해 보러 온 구구역의 잔당일 뿐이다."
콰아아앙-!
사내의 손바닥이 허공을 내리치자, 협곡 전체가 진동하며 수백 년 동안 쌓여 있던 바위들이 빗발치듯 진혁을 향해 쏟아졌다.
시스템의 보조 없이, 오직 자신의 육감과 눈앞의 적만을 온전히 응시해야 하는 전투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