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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아래의 가마솥 · 1화목차

제1화 수석과 수석

"제37회 대학술제 최종 조를 발표하겠다."

학원장의 묵직한 목소리가 대강당의 높은 돔 천장에 부딪혀 웅웅 울렸다. 수백 명의 연금술 학부 생도들이 일제히 마침표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숨을 죽였다.

가장 뒤편 좌석에 앉아 있던 리아나는 검은색 마법 깃펜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손가락에 새겨진 옅은 시약 착색 흔적이 펜대에 살짝 문질러졌다. 이번 발표에서 누구와 조가 되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연금술 연구의 90퍼센트는 개인의 치밀한 계산과 정확한 계량으로 결정되는 법이었으니까.

하지만 강당 맨 앞줄, 칠흑 같은 가문의 문장이 자수된 망토를 반듯하게 늘어뜨린 남자의 어깨는 굳어 있었다. 카이엘 데 루체. 별빛 아카데미가 자랑하는 전통 연금술 명문가의 후계자이자, 모든 교수들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귀족 엘리트였다.

"마지막 조. 1조."

학원장이 두꺼운 양피지 서류를 천천히 넘겼다. 그의 안경테 끝에서 서늘한 마력이 번뜩였다.

"카이엘 데 루체. 그리고 리아나 프릴."

순간 대강당 내부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여기저기서 억눌린 헛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론과 전통을 신봉하며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고전 마도서만을 고집하는 귀족가의 수석. 그리고 저렴한 대량 생산 시약과 실용적인 배합법으로 아카데미의 기존 공식을 매번 깨부수는 평민 출신 장학생. 물과 기름 수준이 아니라, 불꽃과 마력 폭탄을 한 가마솥에 넣은 것이나 다름없는 조합이었다.

의자가 바닥을 긁는 날카로운 소리가 거의 동시에 대강당을 울렸다.

맨 앞줄에서 카이엘이 구김 하나 없는 정복 자락을 휘날리며 똑바로 일어섰다. 그리고 거의 같은 순간, 맨 뒷줄의 리아나 역시 턱을 곧게 세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이엘의 짙은 금안이 단상 위를 향했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완벽하게 다듬어진 귀족의 위엄이 그의 목소리에 묻어났다.

"학원장님, 재고를 요청합니다."

학원장이 눈썹 하나 찌푸리지 않고 그를 정면으로 내려다보았다.

"이유는 무엇인가, 카이엘 생도."

"연금술의 본질은 순도와 정통성에 있습니다. 기초 배합 원리를 무시하고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이와 합을 맞추는 것은 연구의 질을 떨어뜨릴 뿐입니다. 이는 학원 최고 연구 발표인 대학술제의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카이엘의 완벽한 격식체 문장에 강당 내부가 조용히 들썩였다. 거만한 태도였으나 그 논리가 너무나 당당하여 누구도 쉽게 반박하지 못했다.

하지만 강당 뒤편에서 서늘하고 낭랑한 목소리가 카이엘의 말을 깨고 들어왔다.

"저도요. 이 사람과는 연구 방향이 완전히 다릅니다."

리아나가 시선을 조금도 피하지 않은 채 카이엘의 등 뒤를 향해 또박또박 쏘아붙였다.

"고전 마도서에 적힌 고리타분한 공식만 집착하다가 시약 배합 시간을 두 배로 늘리는 분과 같이 일할 생각은 없거든요. 연구의 질이 아니라 배합의 효율을 생각해야죠. 전통이라는 명목으로 시간과 재료를 낭비하는 건 연금술이 아니라 그냥 체면 차리기에 불과합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카이엘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서늘하고 빈틈없는 눈동자가 리아나를 직시했다. 강당 전체에 팽팽한 마력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학원장은 단상 위에서 두 사람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양피지 서류를 툭 닫았다. 둔탁한 소리가 서늘하게 퍼졌다.

"주장은 잘 들었다."

학원장의 짧고 단호한 통보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 조 배정은 학부 교수회의의 엄격한 심사를 거친 결과이다. 각자의 단점을 보완하고 연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라는 취지이다. 따라서 조 변경은 불가능하게 처리하겠다."

카이엘이 입술을 굳게 닫았다. 턱선이 매섭게 경련했다.

"학원장님, 그러나 융합할 수 없는 두 마력 성질을 강제로 섞으면 그릇이 터지는 법입니다. 다시 한번 제고해 주십시오."

"조를 거부하면 대학술제 참가 자격 박탈, 졸업 유보이다."

학원장의 목소리에는 단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이 지침은 어떠한 특혜나 예외 없이 적용하겠다. 자격 박탈 시 이번 학기 모든 실기 점수는 몰수 처리되며, 다음 해 재입학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이상이다."

학원장은 말을 마치자마자 미련 없이 단상을 내려갔다.

대학술제 참가 자격 박탈과 졸업 유보.

그것은 아카데미 수석을 다투는 두 사람 모두에게 절벽이나 다름없는 통보였다. 가문의 명예를 짊어진 카이엘에게 졸업 유보는 수치이자 평생의 오점이었고, 장학금으로 겨우 연명하는 리아나에게 졸업 유보는 생계가 끊기는 비극이었다.

강당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리아나는 이빨로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선택지가 없었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 미친 조 배정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카이엘 역시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하얀 장갑 위로 핏줄이 불거졌다. 완벽해야 할 그의 아카데미 이력에 상처가 날 수는 없었다. 그가 이를 악물며 나지막하게 답했다.

"……알겠습니다."

리아나 역시 나직하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 배정은 그렇게 거부할 수 없는 현실로 확정되었다.

발표회가 끝나고 강당을 빠져나오는 생도들의 속닥거림이 복도 가득 퍼졌다.

"진짜 저 둘이 한 조라고?"

"첫날부터 폭발해서 실험실 날아가는 거 아니야?"

리아나는 다른 이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도서 가방을 매만지며 빠르게 복도를 지나치려 했다. 그러나 대강당 문을 나서자마자, 높은 아치형 창문에서 내려오는 붉은 노을빛 아래에 서 있는 남자가 길을 막아섰다.

카이엘 데 루체였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어 있다가, 리아나가 다가가자 곧게 허리를 펴며 똑바로 섰다. 구김 없는 옷매무새와 칼로 잰 듯한 자세는 언제나처럼 흐트러짐이 없었다.

"리아나 생도."

카이엘이 서늘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주변을 지나가던 생도들이 움칫하며 걸음을 늦췄다.

"말씀하십시오, 카이엘 생도."

리아나가 가방끈을 고쳐 잡으며 덤덤하게 응대했다.

카이엘은 시선을 조금 높인 채, 특유의 고압적이고 품격 있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학원장의 방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한 조가 되었으나, 연구의 주도권까지 나눌 생각은 없습니다.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당신의 방식은 가문의 전통 연금술과 충돌합니다. 따라서 조의 모든 배합 공식과 연구 계획은 제가 결정하겠습니다."

그는 턱을 살짝 들며 말을 덧붙였다.

"제가 이 조를 이끌겠습니다. 당신도 따르십시오."

그 완벽한 귀족적 선언에 리아나는 피식, 작게 실소를 터뜨렸다. 비꼼이 가득 담긴 경쾌한 웃음소리였다.

"아, 귀족은 이렇게 구하시는군요. 동등한 조원끼리 협의도 없이 통보부터 하시는 게 그 훌륭한 가문의 가르침인가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카이엘의 눈매가 날카롭게 좁아졌다.

리아나는 한 걸음 다가섰다. 그녀의 또렷하고 투명한 눈동자가 카이엘의 금안을 직시했다. 조금의 물러섬도 없는 팩트 폭격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착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 지난 학기 실기 배합 평가와 이론 종합 성적 최고점은 저였는데요."

"그건 단지 시약 반응 속도 부문에서 부가 점수가 취득되었기 때문……."

"성적은 저보다 낮잖아요? 수석이 누군데요."

리아나의 짧고 명확한 한마디가 복도 중앙에 비수처럼 꽂혔다.

"……!"

카이엘의 입이 턱 닫혔다.

'성적이 낮다'는 단어가 그의 완벽주의적 자존심에 크나큰 균열을 냈다. 머릿속에서는 반박할 수십 가지 논리와 이론적 당위성이 휘몰아쳤다. 지난 학기 평가 기준의 불합리함, 자신이 제출한 고전 배합법의 깊이, 가문의 특수 레시피가 가진 잠재력까지. 수십 개의 반박 문장이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사실, 오직 '최종 석차'라는 잔인한 숫자 앞에서는 그 어떤 위엄 있는 귀족적 어휘도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

카이엘은 입을 몇 번 벙긋거렸으나, 차마 어떤 말도 뱉어내지 못했다. 귀족다운 품격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귓가 끝에서부터 붉은 기운이 맹렬하게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이 공중을 헤매었다. 겉으로는 차갑고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귀끝은 이미 타오르듯 붉어져 있었다.

리아나는 그 붉어진 귀를 놓치지 않고 빤히 바라보며 작게 혀를 찼다.

"반박 못 하시겠죠? 그러니까 이끌겠니 뭐니 하는 소리는 접어두시죠. 연구는 정확한 데이터와 실력으로 진행할 테니까요."

리아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망설임 없이 카이엘의 옆을 지나쳤다. 살랑이는 그녀의 머리칼 끝이 카이엘의 소매 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스치는 은은한 약초 향과 함께, 카이엘은 제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카이엘은 허공을 향해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붉어진 귀를 손가락으로 살짝 감쌌다. 자신이 왜 도망치듯 부정하는 말을 뱉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였다. 차가운 위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뒤였다.

두 사람의 공동 연구는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별빛 아래의 가마솥에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뜨거운 불꽃이 지피워지고 있었다.

다음 회차 예고: 완벽하게 정리된 첫 연구실에 입실한 카이엘과 리아나는 연구 주제를 두고 정면으로 부딪친다. 자신의 계획서에 날카로운 지적을 던지는 리아나 앞에서 카이엘은 속으로 반박을 삭이며 시약 병만 만지작거리는데……!

작품명: 《별빛 아래의 가마솥》

현재 회차: 제1화

다음 회차 예고: 제2화 첫 실험실

연재 일정: 용용 시리즈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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