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1화 오리진의 태동
치익—!
티타늄 타워 최상층, 120층 ‘프로토콜 제로’ 챔버 내부에 들어찬 밀폐 가스가 묵직한 마찰음을 내뿜으며 터져 나왔다.
공기가 희박해지고 있었다.
단순히 기압이 낮아지는 자연적인 이치가 아니었다. 거대한 진공 챔버 중심부, 십중겹의 초경도 티타늄 방사능 차폐 벽을 뚫고 뿜어져 나오는 극상의 중력장이 주변 대기의 질량을 닥쳐오는 대로 집어삼키는 여파였다.
스스스스…!
챔버 중앙을 채우고 있던 투명 액체 배양조가 빠르게 수축하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은발을 정갈하게 넘긴 차가운 인상의 사내, 티타늄 그룹 회장 진무극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가슴 중앙에 박힌 직경 30센티미터 크기의 구형 기관.
티타늄 그룹이 인류의 전 역사와 자본을 쏟아부어 연성해 낸 최초의 완성품, ‘5세대 암흑물질 코어’가 칠흑 같은 보랏빛 광륜을 분출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혁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단순히 그 초고출력 생체 코어 따위가 아니었다.
‘……1,000년 전의 핏빛.’
진혁은 시야를 가리는 어떤 푸른빛 HUD도, AI 설화의 시스템 보이스도 떠올리지 않았다. 이미 그의 영혼과 육신은 시스템이 지정해 둔 한계 범주를 탈각한 지 오래였다.
[마신경(魔神境) - 진천(眞天)].
만물의 혈류와 에너지의 결, 나아가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미세한 파동까지 직관으로 꿰뚫어 보는 절대의 영안(靈眼)에 진무극의 내부가 선명히 비쳐 보였다.
진무극의 생체 코어 바로 뒤쪽.
심장의 맹점에 이식된 조그마한 흑붉은색 유기질 파편.
그것은 1,000년 전 마교의 전설이자 지존이었던 천마(天魔)의 유골에서 추출한 고대 심장의 미세 조직이었다.
“……차라리 죽는 편이 나았을 텐데, 진무극.”
진혁의 묵직한 음성이 진공을 가르고 챔버에 울려 퍼졌다.
그의 곁에서 겨우 숨을 연명하고 있던 진세린이 핏기 없는 입술을 경련했다. 진무극의 친딸이자, 아비의 손에 의해 생체 코어가 적출당해 죽어 가던 그녀는 진혁이 주입해 둔 미세한 [만법귀마(萬法歸魔)]의 내력 장막 덕분에 가까스로 생명의 줄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세린의 흐릿한 눈동자가 진공 배양조 중심을 향했다.
“아…… 아버지……”
배양조에 자리한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꽈드득, 꽈드르륵!
배양조를 채우고 있던 특수 생체 유지액이 진무극의 전신으로 빠르게 흡수되어 들어갔다. 아니, 정확히는 진무극의 피부 밑을 흐르는 검은 액상 나노머신과 고대 천마의 유기 세포가 융합하며 뿜어내는 마기가 대기 중의 모든 물질을 강탈하듯 집어삼키는 것이었다.
진무극의 표정에는 오만함과 광기가 짙게 얽혀 있었다.
“어리석은 실험체 07호. 아니, 이제는 강진혁이라 불러주어야 하나?”
진무극의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챔버 전체를 진동시키는 전자파와 압도적인 마기(魔氣)의 전음(傳音) 형태로 진혁의 뇌역에 직접 울려 꽂혔다.
“너는 내가 만든 틀 안에서 훌륭히 자라주었다. 천마 프로토콜의 데이터베이스를 무의식적으로 완벽히 소화하고, 시스템이 제공하는 연산 장치를 이용해 마공과 현대 기술의 접점을 찾아내었지.”
진무극의 몸을 덮고 있던 배양 실린더가 파편 하나 남기지 않고 분자 단위로 가루가 되어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콰아아아앙—!
공기조차 희미해야 할 챔버 내부에서 강렬한 폭풍이 휘몰아쳤다.
진무극의 은발이 칠흑 같은 마기에 젖어 들어가며 순식간에 검붉은색으로 물들었다. 그의 온몸을 따라 흐르는 은빛 회로선들이 검은 고대 마기와 결합하여 기괴한 문양으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장갑(裝甲)이었다.
단순한 티타늄 합금이나 플라즈마 강화 수트 따위가 아니었다.
살아있는 유기질 생체 나노머신이 1,000년 전 천마의 심장 세포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먹고 증식하여, 진무극의 전신을 덮어씌우는 형상이었다.
외피의 표면은 칠흑보다 깊은 어둠을 머금고 있었으며, 마디마다 5세대 암흑물질 코어의 보랏빛 맥동이 혈관처럼 불길하게 일렁였다.
티타늄 그룹 수석 연구진과 진무극이 수십 년간 획책해 온 인체 개조 공학의 정점.
고대 마공의 유산과 현대 최고 군사 기술이 비틀린 형태로 융합된 절대의 생체 수트.
[오리진(Origin)].
“이것이 바로 내가 완성한 참된 지존의 육체다.”
진무극이 공중에 둥둥 떠오른 채 두 팔을 벌렸다.
오리진 장갑이 그의 피부와 신경, 단전과 뼈 마디마디를 침범하며 하나로 동기화되어 갔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극심한 신체 재구성의 고통 따위는 진무극의 오만한 눈빛을 조금도 흔들지 못했다. 이미 그의 뇌 내에는 고통을 무효화하고 오직 무력의 효율만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특수 연산 프로토콜이 실시간으로 구동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무극의 어깨너머로 칠흑의 마기로 이루어진 여섯 개의 날개 형태 플라즈마 분사구가 돋아났다.
쿠구구구구—!
타워 전체가 비명을 질렀다.
120층 바닥을 이루고 있던 강화 아다만티움 판석이 진무극의 발밑에서부터 점차 흑색으로 부식되어 들어가더니, 이내 공기 중으로 증발하듯 파괴되었다.
단순한 마기의 방출이 아니었다.
암흑물질 코어의 초고밀도 중력장과 고대 마교의 절학인 흡원천공(吸元天功)의 원리가 나노머신의 동력 회로와 완전하게 접목되어 뿜어져 나오는 일종의 ‘마기 중력 붕괴’ 현상이었다.
닿는 모든 것을 부수고, 강탈하여, 진무극 자신의 동력으로 환원시킨다.
“고대의 천마는 위대했으나 불완전했다.”
진무극이 칠흑의 유기질 투구 너머로 진혁을 내려다보았다.
투구의 눈 부위에서 붉은빛 전술 센서와 마신의 안광이 동시에 번뜩였다.
“내력의 폭주와 혈마병을 극복하지 못하고 비운에 스러진 미개한 옛 무인에 불과했지. 그러나 과학은 그 한계를 극복했다! 암흑물질 코어가 내력의 무한한 동원력이 되고, 생체 나노 장갑 오리진이 마기의 혈관 폭주를 완벽히 억제한다!”
웅웅웅웅—!
진무극이 천천히 오른손을 쥐었다.
그 동작 하나에 챔버 내의 모든 대기가 수축하며 진혁의 전신을 향해 수만 톤의 수압에 맞먹는 압쇄력이 몰아쳤다.
“강진혁. 너는 이 육체를 완성하기 위한 가장 정교한 ‘촉매’였다. 네가 마신경에 도달하며 증명해 낸 신천마신공의 운기 궤적…… 그것이야말로 내가 이 오리진 수트에 입력할 마지막 완성 데이터였느니라!”
콰-드득!
진혁의 발밑 바닥이 폭삭 꺼져 들어갔다.
숨이 턱 막힐 정도의 무거운 중력 파동이 진혁의 어깨를 짓눌렀다.
만약 진혁이 여전히 시스템의 HUD 보조에 의존하거나, 3단계 [천마현신] 수준의 경지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 압도적인 중력 붕괴 장판에 전신의 뼈와 단전이 으스러져 즉사했을 터였다.
그러나.
스우우우…
진혁은 잔잔하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입가에서 뿜어져 나온 작은 기침 한 번에, 진무극이 전개한 마기 중력장이 수건을 찢듯 갈가리 갈라져 나갔다.
“……틀렸다, 진무극.”
진혁의 검은 눈동자가 차갑게 식어 내렸다.
그는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오리진 수트의 압력을 받아내면서도,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진혁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魔氣)는 어떤 장치나 기계의 보조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기를 진동시키는 묵직함에서 진무극의 기계 장갑을 아득히 압도하고 있었다.
“기계의 회로로 뚫어 놓은 기혈은 진짜 기혈이 아니다. 남의 심장에서 훔쳐 온 핏방울은 결코 네 자신의 의지가 될 수 없어.”
진혁의 단전 깊은 곳.
시스템의 그늘을 벗어던지고 스스로 무(武)의 본질을 깨달아 완성한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의 마기가 용트림을 틀었다.
진혁이 천천히 오른손을 올려 검자루를 잡았다.
그가 소유한 무기는 군용 특수 아다만티움으로 제련된 평범한 대검에 불과했으나, 진혁의 손가락이 자루에 닿는 순간 그 검신은 생명체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진혁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나노머신과 순수한 마기가 검신 전체에 융합되었다.
검강(劍剛)이 형성되는 원리.
그것은 현대 공학의 고주파 플라즈마 진동 기술과 고대 마공의 극의인 검기실체화(劍氣實體化)가 완벽하게 하나로 얽혀 빚어낸 무도(武道)의 참된 정형이었다.
검신 주위로 칠흑의 대기 진동이 일어났다.
빛조차 굴절시켜 집어삼키는 검은 잔향.
진무극의 오리진 장갑이 뿜어내는 보랏빛 마력과, 진혁의 검 끝에서 피어오르는 순수한 흑색의 마강(魔剛)이 공중에서 충돌했다.
쿠쿠쿠쿠쿵—!
두 존재가 만들어내는 경기(氣)의 여파만으로도 티타늄 타워 120층 전체의 벽면이 파도처럼 일렁이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시스템의 연산에 의존해 만든 껍데기 따위로 감히 천마(天魔)의 이름을 입에 담지 마라.”
진혁의 묵직한 일갈이 진무극의 정신 장막을 강타했다.
“네놈이 만든 것은 무도가 아니다. 그저 자본과 기계 덩어리를 기괴하게 뭉쳐 놓은 시체에 불과하지.”
진무극의 투구 너머 안광이 흉포하게 일그러졌다.
“닥쳐라!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내 출력이, 내 수트의 내구도가, 내 코어의 차원 에너지가 너라는 한 명의 무인을 아득히 상회한다!”
진무극이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오리진 장갑의 거대해진 전완부에서 칠흑의 대형 마광포(魔光砲)가 변형되어 노출되었다.
5세대 암흑물질 코어의 전 동력이 나노 회로를 타고 집약되는 순간이었다.
파지직! 파짓!
그 직후, 챔버 천장이 찢겨 나가며 신서울의 밤하늘이 들어났다.
상공 1,000미터 높이.
티타늄 타워의 최상층에서 분출되는 두 절대자의 압도적인 마기가 신서울 전체의 구름을 도넛 모양으로 뚫어 버리고 있었다.
하층 슬럼가에서 기업의 통제에 맞서 싸우던 저항군 ‘니르바나’의 전사들도,
티타늄 타워 110층 중계실에서 진무극의 비리를 신서울 전역에 방송하고 있던 윤아영도,
지상에서 구무림의 의지를 잇던 늙은 무인 독고운조차도 일시에 고개를 들었다.
신서울의 밤하늘이 반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한쪽은 거대 자본과 차가운 군사 기계 기술이 만들어 낸 기괴하고 오만한 보랏빛 어둠.
다른 한쪽은 온갖 역경과 굴레를 스스로 뚫고 올라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깊고 정갈한 칠흑의 흑염(黑焰).
진무극의 오리진 장갑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광포의 충전율이 100%를 돌파했다.
[WARNING: 프라임 오리진 코어 임계 출력 도달.]
[공간 왜곡도 98.2%… 붕괴 영역 형성.]
기계음이 진무극의 전술 헬멧 내부를 메웠으나, 진무극은 망설이지 않고 발사 궤적을 잡았다.
“죽어라, 강진혁! 네놈의 뼈와 육체를 바쳐 내 완벽함의 제물로 삼겠다!”
콰아앙—!
진공을 찢는 암흑물질 플라즈마포가 진혁을 향해 투사되었다.
그 직경만 십수 미터. 닿는 모든 분자 구조를 지워버리는 멸절의 궤적이었다.
하지만 그 파멸의 마광(魔光)을 정면으로 맞닥뜨린 강진혁의 시선은 태산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진혁은 천천히 오른발을 한 걸음 내딛었다.
보법은 마광신보(魔光神步).
그러나 기계 시스템이 계산해 주던 최적의 궤적이 아니었다.
공기의 흐름, 물리적 마찰력, 대기 중 나노입자의 밀도, 그리고 자신의 기혈에서 솟구치는 마기의 동기화를 오직 스스로의 감각만으로 연산해 낸 초광속의 한 걸음.
스윽—!
진혁의 신형이 암흑물질 포격의 중심부를 거짓말처럼 비껴 지나갔다.
“……?! 말도 안 되는!”
진무극의 투구 속 눈동자가 경악으로 크게 벌어졌다.
오리진 수트의 최첨단 전술 예측 AI조차 진혁의 이동 궤적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것은 시스템의 연산 범주를 뛰어넘어, 자연의 이치 그 자체가 되어 움직인 무도(武道)의 극의였기 때문이다.
어느새 진무극의 턱 밑까지 육박한 강진혁.
진혁의 칠흑 같은 검신이 낮게 뉘어졌다.
단전에서부터 터져 나온 순수한 마기가 검 끝에 집약되며, 전설 속 고대 마공조차 닿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절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제12식].
[만상귀일(萬象歸一)].
진혁의 나직한 음성이 진무극의 귀를 때렸다.
“이것이 무(武)다, 진무극.”
푸홧—!
검은 검강이 오리진 장갑의 흉부를 향해 가차 없이 들이꽂혔다.
그러나 그 순간.
티타늄 타워 최심부, 5세대 암흑물질 코어가 진혁의 검강에 반응하여 미친 듯이 오버클럭을 시작했다.
진무극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칠흑의 생체 장갑 오리진이 단순한 수트의 형태를 넘어 진무극의 전신 세포를 완전히 침식해 거대한 마신의 이형으로 팽창하기 시작한 것이다.
콰드드득!
“크아아아아아! 나는 죽지 않는다! 나는 이 디스토피아의 절대자이자 불멸의 천마다!”
진무극의 비명과 함께, 차원의 벽마저 비명을 지르는 듯한 기괴한 균열음이 타워 최상층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진무극이 쥐고 있던 5세대 코어의 차원 여파가 마침내 신서울 상공의 공간을 찢어발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진혁의 검 끝이 오리진의 심장을 관통하기 직전.
찢겨 나간 하늘 너머에서,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는 정체불명의 사념체들이 칠흑의 차원 균열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거대한 전쟁의 판도가, 이제 신서울이라는 작은 도시의 굴레조차 넘어설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