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4화 진세린의 방송
강진혁의 파천검강(破天劍剛)이 프라임 챔버의 두꺼운 특수 강철 게이트를 종잇장처럼 찢어발겼다.
쿠구구구궁—!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쏟아져 나온 고압의 마기(魔氣)는 챔버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초저온 푸른 냉각수와 뒤섞여 기괴하고도 자욱한 묵빛 안개를 만들어냈다. 찢겨 나간 장갑판 사이로 튀어 오르는 전력 스파크가 진혁의 차가운 흑안을 번뜩이게 했다.
"진세린."
진혁이 나지막이 불렀다. 나노 회로의 자동 연산음도, 시스템 AI 설화의 건조한 보이스도 없는 완벽한 침묵 속에서 그의 목소리는 차갑게 울렸다.
그 부름에 진세린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무너진 파편 더미를 딛고 뒤따랐다. 그녀의 가슴팍, 군용 생체 코어를 스승의 뜻에 따라 스스로 도려낸 자리에서는 여전히 붉은 마기가 아지랑이처럼 맺혀 흘렀다. 전신 수트가 찢겨 나가고 피부를 따라 깔린 나노 회로가 과부하로 타들어가고 있었지만, 그녀는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지탱하며 진혁의 등 뒤에 바짝 섰다.
"알고 있어. 저 층을…… 방송 중계실로 연결하는 거야."
그녀는 티타늄 타워의 설계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아는 정통 후계자이자, 특수전 후사대의 대장이었다. 진무극이 이 거대한 120층짜리 티타늄 타워를 동력탑 삼아 신서울 전역을 어떻게 사육하고 가둬 두었는지, 그 썩어빠진 구조를 가장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자 역시 그녀였다.
티타늄 타워 110층, 메인 통신 중계실.
홀로그램 콘솔 앞에 앉은 윤아영의 손가락이 가상 키보드 위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었다. 숏컷의 분홍빛 머리카락 사이로 땀방울이 흘러내려 턱밑으로 떨어졌다.
—진혁 씨가 길을 뚫었어! 지금이야, 아영아!
귓가에 이식된 커뮤니케이터를 통해 진세린의 타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윤아영은 얇은 입술을 깨물며 신서울 전역의 홀로그램 광고판과 기업용 행정 통신 채널, 슬럼가 하층의 폐쇄 회로 네트워크까지 모조리 강제로 하이재킹하기 시작했다.
[SYSTEM WARNING: 최상위 관리자 권한 외부 접근 감지.]
[보안 프로토콜 7단계 작동. 양자 방화벽 전면 가동.]
[침입자 데이터 삭제 절차를 시작합니다.]
"웃기지 마. 그 방화벽, 너희가 나한테 주입했던 3세대 보안 알고리즘을 변형해서 내가 직접 개조한 거니까!"
윤아영의 눈동자에 붉은 실행 코드가 폭포수처럼 반사되어 흘렀다. 그녀는 화이트 섀도 시절부터 슬럼가 지하에서 갈고닦은 모든 해킹 기법과, 진혁이 제공했던 프로토콜의 마공 데이터 구조를 융합한 독자적 바이러스를 쏟아부었다.
티타늄 그룹이 자랑하던 철옹성 같은 양자 보안망이 비명을 지르며 좌우로 찢겨 나갔다. 중앙 서버의 마스터 코드가 무너지자, 신서울의 하늘을 채우던 거대한 마천루 벽면에 일제히 스파크가 튀었다.
치직, 치지직—!
순식간에 신서울의 모든 상층 마천루 벽면과 하층 슬럼가의 바닥에 투사되던 기업 광고가 꺼지고, 단 하나의 거대한 3D 홀로그램 영상이 띄워졌다.
최상층 120층, 진무극 회장의 밀실이자 최첨단 생체 연구소인 프라임 챔버 내부의 실체였다.
"이게…… 대체 이게 뭐야?"
햇빛조차 들지 않는 3계급 슬럼가의 하층민들이, 2계급의 정비 기술자들이, 그리고 상층부 거주구에서 특권을 누리던 1계급 귀족들이 일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
신서울 전체를 덮은 거대한 화면 속에는 수천, 수만 개의 영하 190도 양수 캡슐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각 캡슐 안에는 인간의 형상을 한 생체 실험체들이 상반신만 남겨진 채, 혹은 뇌만 추출되어 수백 개의 나노 튜브와 코어 동력선에 연결되어 기괴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군사 실험이 아니었다. 신서울의 모든 시민이 주기적으로 받아야만 했던 '생체 코어 정기 검진 및 수율 향상 시술'의 끔찍한 진실이었다.
—시민 여러분, 똑똑히 보십시오!
화면 한구석, 피를 흘리면서도 곧게 선 진세린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녀의 목소리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분노와 죄책감으로 벼려진 차가운 음성이 신서울의 불야성을 강타했다.
—여러분의 심장을 뛰게 하고 신체 능력을 높여 준다던 생체 코어는, 사실 우리가 폐기물이라 부르며 끌고 갔던 슬럼가 동료들의 뇌와 단전을 갈아 만든 재료입니다!
진세린은 허공을 향해 콘솔을 조작하며, 진무극 회장의 비밀 이사회 내부 육성 녹음 파일을 그대로 출력했다.
[—효율이 낮은 3계급 개체와 부적합 실험체는 코어의 촉매 재료로 전환한다. 그것이 자본과 기술로 유지되는 신서울의 절대 법칙이다. 감정 따위는 불필요해.]
진무극의 오만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신서울 전체에 앰프를 타고 울려 퍼졌다.
수백만 명이 거주하는 거대한 도시 국가에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 정적은 이내 폭발적인 분노로 번져 나갔다.
"저게…… 3년 전에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행방불명된 내 딸의 코어였다고?"
"개돼지처럼 굴려먹더니…… 우리 몸에 박아 넣은 게 사람을 죽여서 만든 부품이었단 말인가?!"
도시 곳곳에서 억눌렸던 분노가 들불처럼 터져 나왔다. 슬럼가 광장에 모여 있던 시위대는 쇠파이프와 개조된 농기구를 집어 들고 기업 경비병들을 향해 돌진했다. 3계급 노동자들은 자신의 몸속에 박힌 폐급 코어를 쥐어짜며 1계급의 강화 나노 병기들을 향해 육탄전으로 달려들었다. 티타늄 그룹이 강철과 자본으로 구축해 둔 신서울의 허구적인 질서가 단 몇 분 만에 완벽하게 붕괴하고 있었다.
120층 프라임 챔버.
진무극은 허공에 떠 있는 거대한 투명 홀로그램을 통해 신서울 전역에서 벌어지는 소요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정갈하게 넘어간 은발과 수려한 얼굴에는 그 어떤 당혹감이나 불안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그저 재미있는 노리개를 바라보듯,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릴 뿐이었다.
"어리석은 벌레들. 정보라는 조잡한 무기로 자본과 기술의 시스템을 흔들 수 있다고 믿나 보군."
진무극의 등 뒤에서, 직경 10미터에 달하는 5세대 프라임 천마 코어가 맹렬히 회전하며 웅웅거리는 중저음의 공진음을 내뿜었다.
[SYSTEM INFO: 프라임 코어 출력 120,000MW 도달.]
[차원 균열 안정화율 42%. 고대 마교 사념체 동기화 개시.]
진무극이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 동작 하나에 챔버의 두꺼운 도돔형 천장이 거대한 톱니바퀴 소리를 내며 좌우로 완전히 열렸다. 찢어진 신서울의 밤하늘 너머, 차원의 균열 틈새에서 수천 개의 기괴한 붉은 안구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타워를 내려다보았다. 1,000년 전 천마의 마공이 폭주할 때 발생했던 기체와 현대의 플라즈마 에너지 융합체였다.
"강진혁, 보아라. 진실이 퍼지면 시민들이 분노하여 나를 무너뜨릴 줄 알았더냐? 아니, 그 미개한 분노는 오히려 이 탑의 가장 훌륭한 촉매가 될 뿐이다."
진무극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스파크—!
그 순간, 신서울 전역의 시민들과 경비병들의 가슴속에 이식되어 있던 모든 생체 코어들이 일제히 역방향 과부하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아악! 가슴이, 가슴이 타들어 간다!"
"으아아악!"
거리에 있던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가슴을 쥐어틀며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다. 그들의 심장 부근에서 빠져나온 진홍빛 생명 에너지가 거대한 빛의 기둥이 되어 티타늄 타워 꼭대기로 거침없이 빨려 들어갔다.
"모든 생명은 결국 내 프라임 코어를 완성하기 위한 연료일 뿐이다. 세린, 너 역시 내 위업을 위한 제물로 바쳐지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진세린의 눈동자가 깊은 공포로 물들었다. 가슴의 코어 자리가 강제로 끌려 나오는 에너지 파동에 반응해 다시 터져 나가며 검붉은 마기가 역류했다.
"진세린, 물러서라."
진혁이 차갑게 말하며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그의 칠흑 같은 눈빛은 거친 바다처럼 고요했다. 신서울이 멸망하든, 밑바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든, 진혁의 시선은 오직 눈앞의 진무극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제어 권한 완전 박탈.]
[HUD 시각 인터페이스 및 전술 예측 연산 정지.]
[경고: 외부 마기 간섭에 의한 단전 폭주 위험도 48%.]
이미 진혁의 시야에서는 그를 보조하던 푸른빛의 HUD 창과 설화의 알림음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시스템의 제어권이 박탈되고 자동 최적화 기능이 전멸했으나, 그것은 역설적으로 강진혁이라는 인간이 시스템의 굴레와 타인이 설계한 틀에서 완벽히 벗어났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는 인공지능의 계산표 대신, 자신의 단전 깊숙한 곳에 응축된 순수한 마기와 굳건한 의지를 끌어올렸다.
"불을 붙였군. 이제 그 불길이 네놈의 시체를 태우는 잿더미가 될 것이다."
진혁의 발밑으로 칠흑 같은 검은 마기가 파도처럼 일렁이며 퍼져 나갔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제12식, 만상귀일(萬象歸一)."
진혁의 검이 유려한 궤적을 그리며 휘둘러졌다.
그것은 단순한 검격이나 무도적 동작이 아니었다. 시스템이 산출해 내는 물리적 운동에너지를 뛰어넘어, 신서울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명과 분노, 그리고 억눌린 생명력을 진혁 본인의 마기와 결합해 검 끝에 수렴시킨 절대의 한 점이었다.
진무극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경악으로 크게 들떴다.
컴퓨터의 데이터나 회로 법칙으로는 결코 계산할 수 없는 영역. 오직 스스로 무도를 통찰한 인간의 순수한 의지만으로 빚어낸 무위(無爲)의 극의였다.
"이건…… 내 연산 장치에 없던 수치다!"
진무극이 프라임 코어의 출력을 최대로 개방하며 3중의 나노 파티클 방어막을 전개했다.
쿠구구구구—!
두 절대자의 충돌이 120층 프라임 챔버 전체를 완전히 붕괴시켰다. 챔버를 떠받치던 초강도 특수 벽체가 가루가 되어 날아갔고, 차원의 틈새에서 쏟아져 나오는 심연의 마기와 진혁의 흑빛 검강이 사방으로 충돌하며 공간을 갈라버렸다.
진혁의 입가에서 진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의 검은 단 0.1미리도 밀리지 않았다.
진무극이 150,000MW라는 거대 병기의 에너지로 밀어붙일 때마다, 진혁은 오히려 그 파괴적인 충격파를 자신의 [만법귀마] 심법으로 흡수하여 자신의 단전 내공으로 변환시켰다.
"연료가 부족한가, 진무극?"
진혁의 차가운 미소가 진무극의 시야에 들이찼다.
"네가 만든 이 조잡한 시스템, 이제 내가 직접 끝내주지."
그의 검 끝에서 차원마저 베어버릴 듯한 흑자색 검강이 폭발적으로 솟구쳤다. 진무극의 프라임 코어가 비명을 지르며 외벽에 균열을 일으켰다.
세계관 절대 권력의 상징이었던 티타늄 타워가, 참된 천마의 강림 앞에서 서서히 기우듬하게 붕괴하기 시작했다.
"크윽……!"
진무극의 입에서 쇳소리 섞인 비통한 탄식이 터져 나왔다.
5세대 프라임 천마 코어의 출력이 150,000MW를 넘어 극한으로 치달으며 챔버 내부의 중력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사방으로 사정없이 튀는 붉은 플라즈마 방전이 강철 철골을 난도질했고, 하늘의 차원 틈새 너머에서 쏟아지는 붉은 안구들의 시선이 타워 전체를 압사시킬 듯 짓눌렀다.
하지만 강진혁의 눈빛에는 작은 흔들림조차 없었다.
시스템의 데이터 보조 없이, 오직 자신의 심장박동과 단전의 기순환만으로 유지되는 절대의 경지—마신경(魔神境) 진천(眞天). 그 초월적 경지에 도달한 진혁에게 진무극의 거대 코어가 뿜어내는 압력은 그저 지나가는 거친 바람에 불과했다.
"네놈의 코어는 태생부터 가짜다."
진혁의 목소리가 폭풍을 뚫고 진무극의 귓전을 강하게 파고들었다. 진무극은 잇새로 피를 뿜으며 이를 악물었다.
"가짜라니?! 이 코어야말로 고대 마교 지존의 유골 데이터와 신서울 수만 명의 생명력을 결합한 완벽한 불멸의 그릇이다! 내 손으로 창조한 실험체 주제에 감히……!"
"1,000년 전 천마의 사념을 훔쳐 오고, 타인의 심장을 도려내 연명하는 게 네가 말하는 불멸인가?"
진혁이 천천히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투두둑!
그의 발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강화 콘크리트 바닥이 붕괴하며 거미줄 같은 균열이 사방으로 수십 미터씩 뻗어 나갔다. 진혁이 발을 디딜 때마다 대지의 맥과 주변 수용 장치의 에너지가 역류했다. 만법귀마의 극의가 주변의 모든 플라즈마와 마기를 진혁의 단전으로 무섭게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건 초월이 아니라…… 지독하고 추악한 탐욕일 뿐이지."
"건방진 놈이!"
진무극이 광기에 차 양팔을 넓게 펼쳤다. 프라임 코어에서 뿜어져 나온 고압의 마기가 흉측한 형상의 거대 마수(魔獸)로 변모해 진혁을 당장이라도 집어삼킬 듯이 포효했다. 차원의 붉은 안구들이 일제히 빛을 발하며 저주 어린 정밀 파동을 쏟아냈다.
콰아아앙—!
프라임 챔버의 상부 구조물이 완전히 날아갔다. 신서울의 밤하늘을 가른 차원의 균열에서 쏟아진 폭풍우 같은 붉은 마기가 진혁의 머리 위로 융단폭격처럼 내리꽂혔다.
하지만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신천마신공 제11식, 천마무상체(天魔無相體).]
진혁의 피부 표면을 따라 흐르던 은빛 개조 회선 대신, 깊고 칠흑 같은 검붉은 마기가 물감처럼 내려앉았다. 차원의 폭풍이 그의 육체와 골격을 때릴 때마다, 진혁의 몸은 그 충격을 고스란히 흡수하여 자신의 근육과 뼈를 더욱 단단하게 다지는 무도적 양분으로 변환시켰다.
"어…… 어떻게 저런 초고압 에너지를 순수한 육체만으로 받아낸단 말이냐?!"
진무극의 얼굴에 마침내 완벽한 경악과 공포가 스쳤다.
그가 장착한 5세대 프라임 코어조차 차원의 마기를 직접 받아내면 바이패스 회로가 과부하로 타버리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신서울 시민들의 생체 에너지를 방패 삼아 우회적으로 충격을 완화하며 흡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강진혁은 그 폭주하는 차원의 멸절 에너지를 아무런 기계 장치 없이 자신의 내공으로 완벽하게 정제하고 있었다.
"너는 기술과 시스템에 지배당했지."
진혁이 나지막이 조롱했다.
"나는 기술을 도구로 지배한다. 그게 너와 나의 격차다, 진무극."
슈우우우—!
진혁의 검신에 모인 마기가 압축되고 다시 한번 최고조로 압축되어, 이윽고 눈이 멀 정도로 찬란하고 깊은 흑빛 검강으로 피어올랐다. 공간마저 비명을 지르며 찢어지는 고주파음이 붕괴하는 타워 상층부를 가득 채웠다.
진세린은 무너진 철골 잔해 속에서 그 광경을 넋을 잃은 채 바라보았다.
가슴의 코어가 도려내진 극심한 고통조차 잊은 채, 그녀는 깨달았다. 진무극이 이 거대한 타워와 수만 명의 목숨을 바쳐가며 도달하려 했던 '불멸과 천마'의 정점은, 이미 저 차갑고 압도적인 청년의 발아래에 완벽히 구축되어 있었다.
"아버지…… 당신은 처음부터 틀렸던 거야……."
진세린의 핏기 없는 입술 새에서 허탈한 읊조림이 새어 나왔다.
"죽어라, 진무극."
진혁의 몸이 허공에서 완벽히 사라졌다.
[마광신보(魔光神步)].
지연 시간도, 나노 연산 궤적도 남지 않는 초광속의 무도적 이동. 공간의 맥을 단숨에 밟아넘긴 진혁의 검강이 진무극의 흉통 정중앙을 향해 일직선으로 내리꽂혔다.
"크아아아악—!"
진무극이 프라임 코어의 출력을 200%로 강제 개방하며 전술 방어막을 전개했으나, 진혁의 흑빛 검강 앞에선 얇은 종잇장보다 무력했다.
쿠지직—!
천마의 기운과 고대 마교의 유전자가 집약되어 있던 프라임 코어의 수체 중심부에 명확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제어를 잃은 거대한 마기가 역류하며 진무극의 전신 회로와 생체 조직을 안에서부터 찢어발겼다.
"내…… 내 불멸이…… 이 완벽한 통제 시스템이……!"
"불멸은 없다. 타인의 피를 빤 너한테는 더욱더."
진혁이 검을 단전 깊숙이 밀어 넣었다.
콰아아아궁—!
단전의 코어가 산산조각 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진무극의 육체를 바깥으로 완벽히 붕괴시키기 시작했다. 티타늄 타워 120층 프라임 챔버 전체가 형체를 잃고 거대한 폭발과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신서울 상공의 차원 균열에서 쏟아지던 기괴한 붉은 안구들은 진혁이 뿜어낸 압도적인 신천마신공의 여파에 짓눌려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닫혀 버렸다.
폭풍이 걷히고, 적막한 고요가 찾아왔다.
타워의 꼭대기, 반쯤 무너져 내린 거대한 철골 프레임 위에 강진혁이 홀로 서 있었다.
그의 손끝에서 흘러내린 피가 타버린 바닥을 적셨지만, 그의 호흡은 가빠짐 없이 지극히 고요하고 안정되어 있었다.
진무극이 서 있던 자리는 형체조차 남지 않았다. 그가 불멸을 외치며 그토록 갈망하던 5세대 프라임 코어는 이미 한 줌의 검은 재로 변해 신서울의 차가운 밤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SYSTEM ERROR: 대상 '진무극'의 생체 신호 완전히 소실.]
[네트워크 메인 서버와의 연결이 차단되었습니다.]
머릿속에서 웅웅거리던 기계적인 시스템의 잔재 음성마저 완벽하게 침묵했다. 이제 진혁을 보조하거나 통제하려는 인공지능 설화는 없었다. 오직 스스로 통찰하고 개척한 무위의 감각만이 그의 전신을 따스하고도 강렬하게 감싸고 있었다.
"진혁 씨……!"
진세린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핏발 선 눈가에는 만감이 교차하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신서울을 수십 년간 수몰시키고 짓누르던 거대 악의 상징, 티타늄 그룹의 절대자가 마침내 완전히 소멸한 것이다.
도시를 뒤덮고 있던 거대 마천루의 홀로그램 광고판들이 일제히 꺼졌다. 짙은 암흑 속에 잠긴 신서울의 3계급 하층민들과 2계급 정비 기술자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무너져 내린 티타늄 타워의 꼭대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거대 기업의 통제와 사육이 무너진 자리. 진정한 자유가 찾아온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혼란이 도래할 것인가.
하지만 진혁은 그런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
그는 시선을 거두고, 무너진 타워 난간에 무심하게 기댄 채 먼동이 아득히 트기 시작하는 신서울의 잿빛 지평선을 응시했다.
그때였다.
치직, 치지직—
진혁의 시야 구석, 이미 꺼졌어야 할 시각 회로의 잔재 속에서 기괴하고 붉은 경고 문자열이 홀로 깜빡이기 시작했다.
[WARNING: 프로토콜 잔여 격리 데이터 감지.]
[지하 20층, 폐기된 최하층 격리 구역에서 비정상적인 신경 회로가 재부팅됩니다.]
진혁의 칠흑 같은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진무극이라는 겉면의 총수는 소멸했음에도 불구하고, 티타늄 그룹의 어두운 뿌리 속에 숨겨져 있던 또 하나의 살인병기가 깨어나고 있었다.
[대상 식별: 블랙 가드 총사령관, 백무현.]
[전신 생체 조직 이식률 99.8%. 메인 전투 통제 코어 '카이저(Kaiser)' 가동 개시.]
진혁의 입가에 옅고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검자루를 쥐는 그의 손가락에 다시금 묵직한 마기가 차올랐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 잔혹한 디스토피아의 밤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