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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242화목차

제242화 오리진 프로토타입의 습격

쾅―!

마스터 돔의 특수 합금 게이트가 거대한 굉음과 함께 두 쪽으로 갈라져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검붉은 파천검강(破天劍罡)의 잔향이 뜯겨 나간 문단면에 맹렬한 불꽃을 튀기며 끈적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두께만 3미터에 달하는 전함급 복합 티타늄 방호벽이었으나, 마신경(魔神境)의 극의에 도달한 강진혁의 일격 앞에서는 한낱 종잇장이나 다름없었다.

찢어진 문 틈새로 서늘하고 메마른 공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온실 내부의 인공적인 산소 냄새와는 완전히 달랐다.

죽은 기계유와 포르말린, 그리고 부패한 피비린내가 뒤엉킨 지옥의 악취였다. 바닥에 깔린 은빛 배관들은 칠흑의 마기에 짓눌려 파지직거리는 누전 불꽃을 연신 토해 냈다.

“하아…… 흑…… 하아…….”

진혁의 등 뒤에서 턱 끝까지 차오른 가쁜 숨소리가 들려왔다.

진세린이었다.

스스로 심장 옆의 군용 생체 코어를 뜯어낸 그녀의 가슴팍에서는 여전히 연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안색은 시체처럼 창백했고, 입술은 핏기 하나 없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두 눈만은 형형하게 타오르며 진혁의 단단한 등을 응시하고 있었다.

진혁이 건네준 한 줄기 정순한 마기가 그녀의 파열된 기혈과 끊어진 혈관을 억지로 틀어막고 있지 않았다면, 진세린은 진작에 과다출혈과 신경 쇼크로 절명했을 터였다.

“진혁…… 괜찮은 거야……? 저 하늘……”

진세린이 잘게 떨리는 손가락으로 타워 외벽의 깨진 강화창 너머를 가리켰다.

진혁은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이미 그의 오감, 아니 피부를 스치는 기압의 뒤틀림과 대기 중에 흩뿌려진 전자기적 파동만으로도 바깥세상이 어떻게 무너져 내리고 있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신서울의 잿빛 밤하늘이 갈라져 있었다.

차원의 단면이 흉측하게 찢어지며 드러난 검은 공허.

그 너머에서 수만 개의 붉은 안구들이 신서울을, 그리고 이곳 티타늄 타워의 꼭대기를 굶주린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무극이 프라임 코어를 기동하면서 촉발한 시공간의 왜곡.

우주의 심연에 도사리던 재앙의 군단이 현실의 틈을 비집고 내려앉으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 아래, 아득한 80층.

쿵―!

하층부에서 울려 퍼졌던 거대한 진동의 여파가 마침내 타워 최상층의 골조를 타고 올라와 진혁의 발바닥을 흔들었다.

생체 코어를 500%까지 강제 과부하하며 산화한 천우진.

그 투박하고 우직했던 사내의 생명 반응이 완전히 소멸했음이, 공기 중에 흩어진 나노 입자의 파동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진혁의 흑안이 서릿발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천 선배…….’

슬픔은 없었다.

아니, 슬퍼할 시간 따위는 이 냉혹한 전장에 존재하지 않았다.

자본과 기술이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이 잔혹한 디스토피아에서 동료의 숭고한 죽음에 바칠 수 있는 유일한 애도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앞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를 남김없이 도륙하고, 마침내 그 죽음의 원흉인 진무극을 지옥 밑바닥으로 처박는 것.

찌이이잉―!

마스터 돔의 천장에 설치된 수십 개의 지향성 스피커에서 거친 노이즈가 터져 나왔다.

이어 돔 내부 전체를 뒤흔드는 진무극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계음으로 변조된 그 서늘한 음성에는 기괴한 희열과 광기가 짙게 배어 있었다.

[훌륭하구나, 07호. 정말이지 경이로워. 80층의 차단벽을 기어코 뚫어내고 내 목전까지 도달하다니. 천우진 그 쓸모없는 폐품 놈이 제 목숨을 던져가며 네놈의 길을 열어주었더군.]

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흑도(黑刀)의 자루를 고쳐 쥐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걸음이 내딛는 바닥마다 검은 마기가 물결치며 단단한 티타늄 바닥재를 검게 부식시켰다.

[하지만 말이다, 진혁아. 네놈이 나라는 완벽한 신(神)의 그릇이 되기 위해선, 마지막 검증을 거쳐야 한다. 네가 도달했다는 그 ‘마신경’이라는 것이 한낱 시스템 오작동이 빚어낸 착각에 불과한지, 아니면 진정으로 1,000년 전의 천마를 뛰어넘은 결실인지 말이다.]

치이이익―!

진무극의 조소가 끝남과 동시에, 돔 내부를 둘러싸고 있던 거대한 원통형 격벽 세 개가 좌우로 갈라졌다.

그 안에는 붉은색 배양액으로 가득 찬 초대형 강화유리 수조 세 개가 기괴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수조의 두께는 족히 1미터에 달했다.

내부에는 헤아릴 수 없이 복잡한 신경 접속 케이블과 생체 데이터 튜브가 온몸에 꽂힌 채 거대한 그림자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기억하느냐? 천마 프로토콜을 완성하기 위해 소모되었던 그 수많은 실패작들을. 네놈이 ‘07호’라는 것은, 네 앞서 여섯 개의 불완전한 육체가 존재했다는 뜻이지.]

쿠구구구궁!

수조 하단의 고압 밸브가 일제히 개방되었다.

수천 리터에 달하는 붉은 배양액이 배수구를 통해 거센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짙은 안개 속에서 마침내 끔찍한 형체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보아라. 티타늄 그룹이 자랑하는 최고 수준의 4세대 군용 생체 코어와, 고대 마교의 유골에서 추출한 원초의 유전자를 강제 융합한 나의 걸작들이다. 비록 이성이 타버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살육 기계에 불과하나…… 파괴력만큼은 온전한 마도(魔道)의 괴물들이지.]

콰앙―!

가장 왼쪽에 있던 수조의 강화유리가 안쪽에서 가해진 무지막지한 완력에 의해 산산조각 났다.

두꺼운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티타늄 바닥을 긁어댔다.

자욱한 기화 냉각 가스 속에서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걸어 나온 것은, 높이만 3미터를 훌쩍 넘는 거대한 이족보행의 육괴(肉塊)였다.

오리진 프로토타입 01호.

인간의 골격을 억지로 늘려놓은 듯한 기괴하고 거대한 신체였다.

전신을 뒤덮은 피부는 검푸른 생체 티타늄 장갑판으로 경화되어 있었고, 목덜미에는 4세대 밀리터리 코어가 불길한 붉은 맥동을 뿜어내며 요동치고 있었다.

더욱 끔찍한 것은 녀석의 양팔이었다.

팔꿈치부터 손가락 끝까지 유압식 실린더와 파일벙커, 그리고 초고주파 진동 칼날이 거친 인공 근육 조직과 뒤엉켜 결합되어 있었다.

그 흉측한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명백히 이성을 잃은 고대 마공의 살기였다.

크르르르르……!

가운데 수조의 문이 열리며 기어 나온 것은 02호였다.

01호와는 정반대로 비정상적으로 가늘고 길쭉한 사지를 지닌 기괴한 형태였다.

관절이 역방향으로 세 개나 꺾이는 다리, 카멜레온의 표피처럼 주변의 빛과 파장을 굴절시키는 광학 미체 나노 장갑.

양 손목에서는 고열의 플라즈마 블레이드가 치이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푸른 안개를 내뿜으며 전개되었다.

녀석의 호흡과 심장 박동은 완벽히 차단되어 있었으며, 오직 마영보(魔影步)의 기형적인 기혈 순환만이 전신 신경망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03호.

쿠웅―!

가장 육중한 금속음을 내며 바닥에 착지한 03호의 등 뒤에는 티타늄 그룹의 첨단 중화기 화력 플랫폼이 척추 신경과 직접 직결되어 있었다.

어깨 위로 솟아오른 8연장 마도 플라즈마 마이크로 미사일 포드.

흉부 중앙에는 나노 입자를 극도로 압축해 투사하는 고출력 레일캐논이 4세대 코어의 동력을 직결로 공급받으며 차갑게 회전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실패작이었다.

스스로 마기를 다스리지 못해 뇌수가 기계 회로의 과열에 타버린 비운의 실험체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며, 자비 없는 파괴 본능만을 남겨둔 채 개조된 최악의 사이버네틱 키메라 병기들이었다.

“크아아아아―!”

01호의 찢어진 구강 구조 속에서 금속성을 띤 포효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녀석의 목덜미에 박힌 생체 코어가 핏빛 섬광을 격렬하게 점멸했다.

위이이이잉―!

대기가 비명을 질렀다.

01호의 거구가 바닥을 박차는 순간, 음속을 단숨에 돌파하는 충격파가 돔 바닥을 거칠게 뒤흔들었다.

단 한 걸음.

그 거대한 덩치가 마광신보(魔光神步)의 기혈 운행을 모방하며 허공의 거리를 순식간에 지워버렸다.

파아앗!

찰나의 순간에 진혁의 정면으로 쇄도한 01호의 거대한 우권이 공간을 찢어발겼다.

내장된 유압식 실린더가 한계치까지 압축되었다가 일시에 팽창하며, 흑색 마기가 깃든 강철 파일벙커가 음속의 세 배가 넘는 속도로 쏘아져 나왔다.

천마파황권(天魔破凰拳)의 흉폭한 운기 방식과 현대 중공학의 유압 타격이 결합된 살인적인 일격이었다.

콰르르릉!

단순한 권풍의 여파만으로도 진혁의 등 뒤에 서 있던 진세린의 신형이 뒤로 밀려날 뻔한 가공할 위력.

그러나 진혁의 시야에는 과거처럼 푸른색 시스템 창도, 적의 타격 궤적을 연산해 주는 붉은 가이드라인도 떠오르지 않았다.

시스템 AI 설화와의 동기화를 스스로 끊어내고 마신경에 도달한 지금, 진혁에게 그런 기계적인 보조는 거추장스러운 잡음에 지나지 않았다.

진혁은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오직 스스로의 의지로 각성한 무인의 절대적인 직관.

피부의 모공을 미세하게 스치는 기류의 압력 변화.

01호의 체내에서 4세대 코어가 회전하며 방출하는 전자기적 파동의 미세한 맥동.

그리고 생체 근육 섬유가 수축하며 인공 혈액을 밀어내는 기계적 심장 박동의 메아리.

그 모든 물리적, 내공적 정보가 진혁의 뇌리에 정밀한 한 폭의 수묵화처럼 저절로 펼쳐졌다.

스윽.

진혁은 상체를 단 반 뼘만 기울였다.

파아앙―!

공기를 가르며 뻗어 나온 파일벙커의 뾰족한 끝단이 진혁의 뺨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치며 허공을 찔렀다.

초고주파로 격렬하게 진동하는 쇳덩이가 귓가를 스쳐 지나갔지만, 진혁의 검은 머리칼 한 올조차 상하지 않았다.

기계의 연산으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완벽한 무위(無爲)의 회피였다.

“크륵……?”

01호의 텅 빈 인공 망막에 기계적인 당혹감이 스친 바로 그 찰나.

진혁의 왼손이 부드럽게 01호의 우측 팔꿈치 관절을 짚었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천마무상체(天魔無相體).

콰아아앙!

01호의 유압 실린더에서 폭발하려던 수천 톤에 달하는 충격 에너지가 진혁의 손바닥을 통과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방향을 잃고 허공으로 흩어졌다.

상대의 물리적 타격과 마기의 충격을 그대로 흘려보내 무효화하는 무상체의 극의.

자신의 모든 출력을 쏟아부었던 01호의 거구가 허공을 헛치며 균형을 잃고 앞으로 쏠렸다.

그 치명적인 빈틈을 진혁이 놓칠 리 없었다.

진혁의 손에 쥐어진 흑도가 먹물 같은 궤적을 그리며 번개처럼 솟구쳐 올랐다.

서걱―!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밀한 절단.

파천검강의 날카로운 칼날이 01호의 팔꿈치 관절, 특수 합금과 생체 섬유가 결합된 가장 취약한 접합부를 정확하게 도려냈다.

피 한 방울 튀지 않는 매끄러운 궤적이었다.

무게만 수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쇳덩이 팔뚝이 바닥으로 쿵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렸다.

“키에에엑!”

그러나 고통을 느끼는 통각 회로가 완전히 거세된 01호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잘려 나간 단면에서 푸른 스파크와 냉각수를 분수처럼 뿜어내며, 녀석은 남은 왼손의 초고주파 진동 칼날을 휘둘러 진혁의 두개골을 부수려 들었다.

하지만 그 칼날이 진혁의 정수리에 닿기도 전.

진혁의 등 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빈 공간의 공기가 기괴하게 일렁였다.

쐐애애액!

광학 미체를 해제하며 허공에서 튀어나온 것은 02호였다.

소리도, 냄새도, 공기의 파동조차 완벽히 차단한 지독한 암습.

02호의 양 손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4,000도의 플라즈마 블레이드가 진혁의 목덜미와 척추를 교차하며 베어 들어왔다.

동시에 녀석의 흉부 배출구에서 뿜어져 나온 맹독성 신경 가스가 안개처럼 진혁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인간의 반사신경으로는 결코 반응할 수 없는 속도.

현대 군사기술의 은폐력과 고대 살막의 암살술이 결합된 가장 치명적인 협공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콰아아앙―!

진혁의 단전 깊은 곳에서 끓어오른 검은 마기가 폭풍처럼 사방으로 분출했다.

신천마신공, 마신위압(魔神威壓).

마신경의 절대적인 기세가 주변의 중력장을 왜곡시키며 원형으로 터져 나갔다.

공간 전체가 짓눌리는 듯한 굉음과 함께, 진혁의 목을 노리고 쇄도하던 02호의 플라즈마 블레이드가 허공에서 뚝 멈춰 섰다.

단순히 마기의 방어벽에 가로막힌 것이 아니었다.

진혁이 체외로 방출한 마기가 02호 주변의 대기 밀도를 수백 배로 압축시켜, 녀석의 전신을 보이지 않는 감옥 속에 그대로 못 박아버린 것이었다.

“치, 치익…… 콰직!”

02호의 인공 안구가 비정상적인 내압을 견디지 못하고 붉은빛을 점멸하며 터져 나갔다.

역방향으로 꺾여 있던 세 개의 다리 관절이 엄청난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우두둑 소리를 내며 뒤틀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원거리에서 기회를 엿보던 03호의 중화기 화력 플랫폼이 마침내 불을 뿜었다.

타타타타타타탕―!

8연장 미사일 포드에서 일제히 발사된 16발의 마이크로 미사일이 공중으로 치솟았다가, 진혁의 머리 위를 향해 급강하했다.

미사일 탄두에는 4세대 코어의 농축 플라즈마와 저주받은 마기가 융합된 고폭 살상탄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스치기만 해도 마스터 돔 전체의 절반을 날려버릴 수 있는 파괴적인 화력.

게다가 03호의 흉부 레일캐논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푸른빛의 입자 빔을 충전하기 시작했다.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16발의 미사일.

허공에 묶인 채 기계적인 발악을 거듭하는 02호.

팔 하나가 잘려 나간 채 여전히 몸을 던져오는 01호.

그리고 흉부에서 파멸적인 열선을 충전하는 03호의 레일캐논.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아니 군사용 슈퍼컴퓨터의 보조를 받는 S급 사이보그라 할지라도 연산 한계에 부딪혀 뇌 회로가 타버릴 절체절명의 포위망이었다.

그러나 진혁의 심장은 고요했다.

그의 호흡은 단전 깊은 곳까지 닿아 평온을 유지했고, 의식은 얼어붙은 빙판처럼 투명했다.

‘본다.’

시스템의 숫자로 보는 것이 아니다.

오직 무(武)의 눈으로.

저 흉측한 기계 괴물들의 혈관 속을 흐르는 마기의 거친 맥동.

그리고 기계 부품 사이를 흐르는 미세한 전류의 간극.

그것들은 겉보기에는 완벽하게 융합된 것처럼 보였으나, 마신경에 도달한 진혁의 눈에는 거대한 불협화음의 덩어리에 불과했다.

기계는 입력된 알고리즘에 의해 정해진 궤도만을 달린다.

마공은 시전자의 의지와 기혈의 흐름에 따라 천변만화한다.

진무극은 그 둘을 강제로 억눌러 꿰매어 놓았을 뿐, 근본적인 영혼의 조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렇기에 녀석들의 움직임에는 치명적인 간극이 존재했다.

나노 회로가 마기의 폭주를 억제하기 위해 0.001초 동안 연산을 멈추는 바로 그 틈새.

진혁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올라갔다.

“조잡하군.”

스팟!

진혁의 신형이 제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마광신보(魔光神步)의 극의.

공간의 결을 밟고 허공을 미끄러져 나가는 절대의 보법이었다.

콰콰콰콰쾅―!

진혁이 서 있던 자리에 16발의 마이크로 미사일이 일제히 내리꽂히며 거대한 화염 폭풍을 일으켰다.

초고열의 플라즈마와 부식성 마기가 뒤엉켜 검붉은 버섯구름을 만들며 돔의 천장을 녹여버렸다.

두꺼운 바닥 합금 플레이트가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진세린은 떨리는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며 거친 기침을 뱉어냈다.

그 무자비한 화망 속에서 살점을 지닌 인간이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치지지직―!

03호의 흉부 레일캐논이 마침내 완전 충전을 마치고 발사되려던 바로 그 찰나.

03호의 거대한 강철 어깨 위에, 한 줄기 그림자처럼 가볍게 내려앉은 인영이 있었다.

언제 그곳에 도달했는지조차 감지할 수 없었다.

화염 폭풍을 뚫고, 물리 법칙을 비웃듯 허공을 건너뛴 진혁이 03호의 정수리에 발을 얹고 서 있었다.

“……?!”

03호의 인공 안구가 기괴한 각도로 꺾이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경고음이 03호의 스피커를 찢을 듯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진혁은 감정이 메마른 차가운 눈으로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검붉은 마기가 실타래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마기는 단순히 상대를 부수기 위한 완력이 아니었다.

적의 체내 구조를 샅샅이 훑고, 그 맥을 짚어내는 감각의 촉수였다.

‘찾았다.’

03호의 척추에 박힌 4세대 생체 코어.

그리고 그 코어에서 뻗어 나와 전신으로 마기를 공급하는 세 갈래의 인공 기혈선.

기계와 마공이 충돌하며 미세하게 비명을 지르고 있는 접합부의 공진 주파수.

진혁은 흑도를 쥐지 않은 왼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 손바닥을 향해, 잘려 나간 팔을 펄럭이며 달려드는 01호와, 중력의 압박을 찢고 쇄도하는 02호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셋이 한 점으로 모여드는 순간.

진혁의 붉은 입술이 느리게 달싹였다.

“너희의 맥(脈)이 들린다.”

신천마신공, 만법귀마(萬法歸魔).

진혁의 손바닥 안쪽에서, 공간 전체의 빛을 빨아들이는 듯한 칠흑의 소용돌이가 태동하기 시작했다.

현대의 전자기력과 고대의 마기를 하나의 법칙으로 왜곡시켜 버리는 궁극의 흡공.

세 마리의 키메라가 내뿜는 모든 살기와 에너지 파동이, 진혁이 펼쳐낸 손바닥을 향해 거칠게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03호의 흉부 레일캐논에 응축되어 있던 거대한 플라즈마 에너지가 역류했다.

총구를 떠나기도 전에 강진혁의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간 입자 빔은, 진혁의 단전을 거치며 검붉은 마기로 정제되어 흩어졌다.

동시에 돌진하던 01호와 02호의 체내에 흐르던 4세대 코어의 동력선마저 진혁이 형성한 거대한 인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크아악……!”

“치, 치익…… 오류…… 코드……!”

키메라들의 입에서 기계음과 짐승의 단말마가 뒤섞인 절규가 터져 나왔다.

그들의 몸을 지탱하던 나노머신들이 통제력을 잃고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진혁이 전개한 만법귀마의 마기가 그들의 인공 기혈을 타고 침투해, 기계 회로와 생체 세포를 묶어두던 결합 코드를 산산이 파괴해 버린 탓이었다.

파지직! 콰아앙!

가장 먼저 03호의 거대한 화력 플랫폼이 내부에서부터 폭발했다.

등 뒤에 직결되어 있던 8연장 미사일 포드가 연쇄 유폭을 일으키며 쇳덩이 파편으로 흩어졌다.

진혁은 폭풍의 중심에서 유유히 몸을 띄워 공중으로 솟구쳤다.

허공에 머무는 찰나, 그의 흑도가 허공을 향해 세 번의 섬광을 그렸다.

신천마신공, 삼절파천(三絶破天).

첫 번째 검격이 01호의 목덜미에 박힌 4세대 생체 코어를 정확히 꿰뚫었다.

두 번째 검격이 02호의 뒤틀린 척추와 중추 신경 케이블을 두 동강 냈다.

그리고 세 번째 검격이 이미 반파된 03호의 심장부를 수직으로 갈라버렸다.

쿠콰콰콰쾅―!

세 구의 거대한 키메라 병기가 동시에 폭발하며 거대한 불기둥을 뿜어냈다.

티타늄 타워 최상층을 가득 채웠던 살인적인 살기와 기계음이 일순간에 거짓말처럼 멎어 들었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검은 재와 타버린 기계 파편들 사이로, 진혁이 깃털처럼 가볍게 바닥에 내려앉았다.

그의 흑도 끝에서는 검은 핏방울 대신, 푸르스름한 기계유 한 방울이 툭 떨어져 내렸다.

“하아…… 하…….”

진세린이 멍한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티타늄 그룹의 극비 연구 시설에서 수백 명의 연구원과 수조 원의 자본을 쏟아부어 탄생시킨 오리진 프로토타입.

그녀 자신조차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궁극의 생체 병기 세 구가, 진혁의 손에 불과 몇 합 만에 고철 덩어리로 전락해 버렸다.

그것은 단순한 강함이 아니었다.

기계의 법칙과 무공의 이치를 완벽히 꿰뚫어 보고, 그 모순을 찔러 무너뜨리는 절대자의 무위였다.

[……대단하구나. 정말로 대단해.]

정적이 찾아온 돔 안에, 다시금 진무극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 마리의 걸작이 파괴되었음에도,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 대신 감출 수 없는 희열이 깃들어 있었다.

[실패작들의 불협화음을 단숨에 간파하고, 그 접합부를 부숴버리다니. 07호, 네놈이야말로 내가 평생을 찾아 헤매던 유일무이한 ‘완벽한 잔’이다. 네놈의 그 육체, 그 감각, 그 경지야말로 진정한 천마의 부활에 어울린다.]

진혁은 불타는 기계 파편 너머, 마스터 돔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엘리베이터 게이트를 응시했다.

그곳 너머, 티타늄 타워의 진정한 정점인 120층 프라임 챔버가 있었다.

그곳에서 진무극이, 신서울을 제물로 바쳐 완성하려는 사악한 의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진혁이 흑도를 천천히 거두며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잔은 준비되었다, 진무극.”

그의 흑안 속에 차가운 살의가 번뜩였다.

“이제 그 잔에 네놈의 피를 가득 채워주마.”

진혁은 비틀거리는 진세린을 부축하지 않았다.

그녀가 스스로 걸어갈 수 있도록 마기를 한 줄기 더 불어넣어 줄 뿐이었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자에게 어설픈 동정은 모욕에 불과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세린 역시 이를 악물며 떨리는 다리로 땅을 딛고 일어섰다.

두 사람의 시선이 타워 최상층을 향하는 게이트를 향해 나란히 고정되었다.

신서울의 밤하늘이 완전히 찢겨 나가기 전, 이 기나긴 복수와 사투의 종지부를 찍기 위한 마지막 발걸음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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