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5화 내부 분열의 시작
티타늄 타워의 공기는 차가웠다. 인공지능이 제어하던 최적의 온도와 습도는 이미 붕괴한 지 오래였다. 곳곳에서 터져 나온 냉각액과 전선이 타 들어가는 매캐한 연기가 마천루를 가득 채웠다.
강진혁은 타워 옥상 난간에 서 있었다. 그 아래로 보이는 신서울의 야경은 화려했지만, 이제는 썩어가는 시체처럼 느껴졌다.
"회장님은 죽었다."
진세린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녀의 눈앞에는 티타늄 그룹의 블랙 가드 중대장들이 일렬로 서 있었다. 그들의 생체 코어는 붉게 점멸하고 있었다. 회장의 죽음 이후, 시스템의 마스터 코드가 사라진 자리에 강제로 주입된 '충성 프로토콜'이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사령관 백무현은 처단되었다. 이제 너희가 섬겨야 할 대상은 없다."
진세린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녀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특수전 후사대의 푸른 슈트가 지지직거리는 노이즈를 내뿜었다. 그녀는 진무극의 딸이었으나, 이제는 그 오명을 씻어내기 위해 가장 앞장선 반역자가 되어 있었다.
"거짓이다. 회장님은... 불멸하신다."
블랙 가드 중대장의 기계적인 음성이 타워의 복도를 울렸다. 그들은 인간의 의지를 거세당한 채, 오직 명령 수행만을 위해 개조된 살인 병기들이었다.
"그렇다면 확인시켜 주지."
진세린이 신호를 보내자, 뒤따르던 후사대 정예병들이 일제히 고주파 펄스탄을 투척했다. 좁은 복도에 기괴한 잔향이 울려 퍼졌다.
쿠우웅-!
건물이 진동했다. 하지만 블랙 가드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생체 코어가 과출력되며 주변의 중력을 왜곡시켰다.
"죽여라. 배신자는... 데이터 삭제 대상이다."
블랙 가드들이 흉부의 개틀링 건을 전개했다. 총탄이 쏟아져 나오기 직전, 허공에서 검은 잔영이 흩어졌다.
강진혁이었다.
그는 순식간에 블랙 가드들의 중앙을 파고들었다. 그가 움직이는 궤적에는 시스템의 보조도, HUD의 예측선도 없었다. 오직 스스로 통찰한 기혈의 흐름과 육체의 반응만이 존재했다.
[만법귀마(萬法歸魔)]
진혁의 손바닥이 블랙 가드의 가슴 중앙, 코어 삽입부에 정확히 꽂혔다.
치익-!
기계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고주파음이 터졌다. 억지로 코어의 회로를 역류시키자, 블랙 가드의 내부에 흐르던 마기가 진혁의 손을 타고 빨려 들어왔다. 코어의 출력이 강제로 0으로 떨어지며 놈들의 육신이 텅 빈 껍데기처럼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세린, 나머지는 너희가 처리해라."
진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타워의 중앙 메인 서버실로 향했다.
진세린은 잠시 그의 뒷모습을 응시하다가, 이내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의 부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중층 방어 사령부를 제압한다. 티타늄 그룹의 모든 통제권을 회수해. 이제부터 우리는 기업의 개가 아니라, 이 도시의 새로운 질서를 세운다."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티타늄 그룹의 중추를 담당하던 시스템이 진혁에 의해 파괴되자, 기계 의존도가 높았던 수비병들은 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안쪽에서부터 시작된 분열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중앙 서버실로 들어선 진혁은 눈앞의 풍경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곳에는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진무극'의 홀로그램이 떠 있었다. 진혁이 타워의 중심부에 다가설 것을 예견하기라도 한 듯, 시스템의 마지막 잔재가 자동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 진혁아, 너는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홀로그램 속의 진무극은 생전의 오만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 네가 내 목을 쳤을 때, 나는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네가 내 데이터와 마공을 완벽하게 흡수했음을 의미하니까.
진혁은 묵묵히 검을 고쳐 잡았다. 마기는 그의 전신을 타고 흘러 은빛 회로를 검게 물들였다.
- 하지만 기억해라. 내가 만든 '천마 프로토콜'은 단순히 너를 강화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고대 마교가 남긴 가장 잔혹한 유산이 담겨 있지.
홀로그램이 붉게 변했다. 서버실 전체에 경고등이 점멸하며, 진혁의 시야 한구석에 시스템의 마지막 로그가 떴다.
[경고: 삭제되지 않은 제어 데이터가 존재합니다.]
[루트 코드: 혈마병(血魔病) 재개방]
진혁의 미간이 좁혀졌다.
"또 헛소리군."
진혁은 검을 휘둘러 홀로그램을 베어버렸다. 하지만 홀로그램이 사라진 자리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가스가 서버실을 가득 채웠다. 그것은 단순한 가스가 아니었다. 나노머신과 결합하여 인간의 혈관을 직접 공격하는, 고대 마공의 폭주를 재현한 인위적인 독성이었다.
쿠구구구-.
진혁의 단전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천마의 사념은 죽어서도 자신을 놓아주지 않으려 했다. 시스템의 보조가 사라진 지금, 온전히 자신의 의지만으로 이 폭주를 막아내야 했다.
'혈마병이라.'
과거, 고대 천마가 내력의 폭주로 인해 육신을 스스로 파괴해야 했던 그 비극의 원인. 진혁은 그 폭주의 원리가 현대의 나노머신이 생체 세포와 과도하게 동기화될 때 발생하는 '회로 융해' 현상과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무극은 죽으면서도 진혁의 육체를 자신의 실험 결과물로 묶어두려 했던 것이다.
[Warning: 마기 동기화율 120% 돌파]
[Warning: 심장 구역 회로 융해 시작]
시야에 나타난 붉은 경고창은 더 이상 시스템의 명령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혁 스스로가 자신의 상태를 읽어내는 통찰의 기록이었다.
진혁은 바닥에 주저앉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검을 바닥에 꽂고 결가부좌를 틀었다.
"네가 짜 놓은 설계도대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진혁은 자신의 단전을 내리쳤다.
쾅-!
충격과 함께 온몸의 혈관이 터져나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하지만 진혁은 눈을 감고, 체내를 순환하는 마기의 궤적을 강제로 비틀었다. 기계적인 회로를 따르던 마기를, 인위적으로 끊어내어 자신의 고유한 기혈로 재편성하는 과정.
그것은 자살 행위와도 같았다.
하지만 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시스템의 틀은 부서졌다. 이제부터 내 몸의 법칙은 내가 정한다.'
그의 등 뒤에서 기괴한 마신의 형상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1,000년 전의 천마도, 진무극이 꿈꾸던 괴물도 아니었다. 기계와 마공이 융합되어 탄생한, 새로운 시대의 마신이었다.
서버실의 벽면이 갈라지며 바깥의 풍경이 드러났다. 진세린이 이끄는 후사대가 타워의 핵심 구역을 하나둘씩 점거해 나가고 있었고, 그 너머 신서울의 하늘에서는 차원을 뚫고 나타난 거대한 함대들이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무극이 죽음으로 남긴 유산은, 단순히 진혁을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사라짐으로써 비로소 족쇄가 풀린 '진짜 괴물들'을 이 세계로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진혁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은빛 회로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준비는 끝났나."
그는 검을 뽑아 들었다.
타워 아래에서 비명과 폭발음이 들려왔다. 진세린의 부대와 회장의 충성파 간의 내전이 격화되고 있었다. 하지만 진혁의 시선은 그 너머, 차원의 틈새를 찢고 내려오는 거대한 강철의 형상들에 고정되어 있었다.
진무극은 실패했다.
하지만 그 실패의 결과물인 진혁은, 이제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신(神)의 영역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가 있었다.
"시작해라."
진혁이 타워의 강화유리를 산산조각 내며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의 등 뒤로 수천 개의 검기가 마치 날개처럼 펼쳐졌다. 시스템의 노예에서 벗어난 진정한 천마가, 신서울의 밤하늘을 불태우기 위해 날아올랐다.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더 이상 기업의 사병이 아니었다. 차원 너머에서 내려온, 인류의 멸망을 갈구하는 초월적인 재앙들이었다.
진혁의 검 끝이 허공을 갈랐다.
[신천마신공 제15식 - 절계(絶界)]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타워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차원의 틈새가 강제로 봉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틈새 너머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함성이 신서울 전체를 진동시켰다.
이제, 진정한 전쟁이 시작된다.
진혁은 허공에서 자세를 잡으며, 자신의 심장을 옥죄어오는 혈마병의 고통을 마기로 억누르며 웃었다.
"이곳이 내 무대다."
밤하늘을 가르는 검은 번개가 신서울을 뒤덮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차원 너머의 지배자들은, 처음으로 '인간'이라 불리는 존재에게서 죽음의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강진혁의 행보는 이제 신서울을 넘어, 우주의 새로운 질서를 다시 쓰는 서사가 될 터였다.
그의 뒤를 이어, 타워 옥상 위로 진세린이 올라왔다. 그녀의 눈에도, 진혁이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재앙들이 보였다.
"진혁! 저건... 도대체 뭐야?"
진혁은 대답 대신 검을 고쳐 쥐었다.
"우리가 청소해야 할 쓰레기들이다."
그의 검이 빛을 발했다. 밤은 깊었지만, 천마의 강림과 함께 신서울은 태양보다 더 밝은 불꽃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이제, 시스템의 지배는 끝났다.
진정한 신천마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다.
진세린의 호흡이 가빠졌다. 그녀의 강화 시각은 허공에 떠 있는 거대한 함대들의 에너지 파동을 수치화하고 있었다. 경악을 넘어선 수치. 그것은 현대의 어떤 군사 무기로도 감당할 수 없는, 행성 파괴급 출력의 집합체였다.
“진혁, 저건 신서울의 병기가 아니야. 저들의 기체 회로는 우리 기술과는 차원이 달라. 아니, 저건… 생물체인가?”
진세린의 의문은 정답이었다. 하늘을 뒤덮은 강철 함선들은 기계와 살점이 기괴하게 뒤섞인 ‘생체 병기’였다. 진무극이 설계한 실험체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우주의 심연에서 기생하는 포식자들. 진혁은 그것들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쓰레기라고 했지. 하지만 보통 쓰레기가 아니다.”
진혁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타워의 콘크리트를 가루로 만들었다. 시스템의 보조 HUD가 사라진 지금, 그는 감각의 극치로 적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저들의 엔진이 뿜어내는 열기, 차원의 틈새를 유지하는 고유 진동수, 그리고 그 안에 도사린 살의(殺意). 모든 것이 진혁의 뇌리에 선명하게 박혔다.
“세린. 타워의 방어 시스템을 네가 제어할 수 있나?”
“불가능해. 저들의 에너지 파동이 우리 메인 서버의 주파수를 완전히 교란하고 있어. 티타늄 그룹의 네트워크는 지금 괴멸 상태야.”
“그럼 됐다.”
진혁의 검 끝이 허공을 향했다.
“질서가 사라진 곳엔, 새로운 힘이 주인이 되는 법.”
진혁이 발을 구르는 순간, 타워의 옥상이 폭발하듯 붕괴했다. 그는 비상하는 독수리처럼 거대한 함대를 향해 쏘아 올렸다. 등 뒤에 펼쳐진 검기(劍氣)의 날개는 차원의 틈새를 찢어발기며 붉은 궤적을 그렸다.
함대에서 일제히 발사된 플라즈마 탄환들이 진혁의 앞길을 막아섰다. 과거라면 시스템의 전술 예측에 의존해 회피했겠지만, 지금의 진혁은 달랐다. 그는 쏟아지는 탄환 사이를 마치 춤을 추듯 파고들었다. 마기가 깃든 검이 탄환의 공진 주파수를 건드리자, 그것들이 도미노처럼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마신경(魔神境) - 현신]
진혁의 몸이 거대해지는 환영을 보았다. 수천 길에 달하는 검은 마신이 진혁과 겹쳐졌다. 그가 검을 휘두르자, 허공 자체가 일그러지며 함대 본진의 보호막을 찢어발겼다.
“이것이… 힘인가.”
진혁은 희열을 느꼈다. 혈마병의 고통으로 혈관이 검게 타들어가고 있었지만, 그 고통조차 마력을 증폭시키는 매개체로 치환했다. 고통은 마기를 낳고, 마기는 다시 신체를 재구축한다.
함선 하나가 진혁의 일격에 두 동강 나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 파편들이 신서울의 상층 구역으로 쏟아져 내렸다. 아래쪽에서 진세린의 후사대와 친위대 간의 유혈극이 벌어지던 사령부에 불길이 번졌다. 내전의 비명소리는 함대가 쏟아내는 압도적인 파괴음에 묻혀버렸다.
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추락하는 함선 틈새로 파고들어, 차원의 틈새를 지키고 있는 거대한 ‘문지기’와 마주했다.
그것은 기계도, 생물도 아니었다. 겹겹이 겹쳐진 차원의 단면 그 자체였다. 그 문지기가 진혁을 향해 기괴한 울림을 냈다.
- 피험체 07호, 프로토콜을 이탈했다. 삭제 대상 확인.
“삭제? 해볼 테면 해봐라.”
진혁의 검이 은빛 섬광을 내뿜었다. 진무극이 심어둔 혈마병의 독기가 혈관을 타고 온몸을 휘저었지만, 진혁은 그 독기마저 검에 실어 보냈다.
[천마일검(天魔一劍) - 역린(逆鱗)]
단 하나의 점. 세상의 모든 에너지를 응축한 그 일격이 문지기의 중심부를 관통했다. 고요했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 듯한 침묵 끝에, 문지기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산산조각 났다.
그 파편들이 빛이 되어 진혁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마기 동기화율 135% 달성]
[초월천마경(超越天魔境)의 경계 진입]
진혁의 눈에 비친 세상이 달라졌다. 단순히 물리적인 것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근간을 이루는 에너지의 흐름이 보였다. 차원을 잇는 선, 마나의 파동, 그리고 저 멀리서 진혁을 노려보는 ‘진정한 흑막’의 시선까지.
그는 타워 옥상으로 내려앉았다. 발아래는 이미 아비규환이었다. 진세린은 타워의 중층을 점거했지만, 하늘에서 쏟아지는 파편들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진혁! 저걸 봐!”
진세린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방금 진혁이 벤 문지기가 사라진 자리에 더 거대한 균열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 균열 속에서, 인간의 형상을 한 기괴한 존재들이 하나둘씩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진무극과 닮아 있었다. 아니, 그들은 진무극의 ‘원형’들이었다.
“티타늄 그룹의 회장이었던 진무극은 단지 실험체들의 감시자이자, 그들의 노예였던 것인가.”
진혁은 검을 지면에 꽂았다. 대지가 진동하며 타워 전체가 비틀거렸다.
“그렇다면, 이 세계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건 나 하나로 충분하다.”
진혁의 등 뒤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신서울 전체를 덮었다. 이제 싸움은 단순한 기업의 반란이 아니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마신과, 차원의 주인들 간의 성전(聖戰)이 시작된 것이다.
진혁은 고개를 들어 균열을 향해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잔혹하고도 오만했다.
“어서 와라. 내가 직접 너희들의 세계를 멸하러 갈 테니.”
그가 발을 구르자 타워의 꼭대기가 비산했다. 신서울의 밤은, 천마의 검광으로 인해 영원히 끝나지 않을 불꽃의 축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