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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220화목차

제220화 수석 설계자의 종말

공기는 비릿했다. 고인 기름 냄새와 타버린 절연체, 그리고 흩뿌려진 혈액의 비릿한 잔향이 섞여 묘한 악취를 풍겼다.

강진혁의 앞, ‘천마 프로토콜’의 수석 설계자 이현도가 처참하게 꺾여 있었다. 놈의 몸은 이미 인간의 형상을 잃어가고 있었다. 척추를 따라 박혀 있던 수십 개의 데이터 케이블이 강제로 뽑혀 나갔고, 가슴팍의 생체 코어는 진혁이 시전한 흡원천공의 여파로 과부하를 일으켜 검게 그을린 상태였다.

"쿨럭……! 이, 이게…… 네놈이 도달한…… 경지인가……."

이현도의 입가로 푸른빛의 나노머신액이 섞인 피가 흘러내렸다. 놈의 눈동자는 여전히 HUD의 잔상을 쫓는지 쉴 새 없이 떨리고 있었다. 진혁은 말없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감정이 메마른 눈동자. 그곳에는 혐오도, 분노도 없었다. 오직 거대한 기계 장치를 해체하려는 기술자의 냉철함만이 서려 있을 뿐이었다.

"프로토콜의 오류는 결국 너였군."

진혁이 낮게 읊조렸다.

"실패작들을 모아 만든 데이터 찌꺼기. 그것이 내게 입힌 상처는 이제 끝이다."

진혁의 오른손이 놈의 관자놀이를 향해 뻗어 나갔다. 이현도가 마지막 발악을 하듯 가느다란 전류를 흘려보냈지만, 그것은 진혁의 피부에 닿기도 전에 마기로 치환되어 증발했다.

이제 진혁에게 시스템의 간섭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손끝이 이현도의 두개골을 파고들었다. 흡원천공이 발동했다. 놈의 뇌 회로에 저장된 마지막 기밀 데이터, 티타늄 그룹이 숨겨온 진무극의 최종 결전용 수트 ‘아틀라스(Atlas)’의 설계 도면이 진혁의 의식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경고: 외부 소스 데이터 유입. 데이터 오염 위험.]

뇌 내부에 흐릿하게 들려오는 시스템의 경고음. 하지만 진혁은 코웃음을 치며 의지의 힘으로 그것을 짓눌렀다.

'오염? 아니, 분석이다.'

진혁은 놈의 기억을 훑었다. 놈이 평생을 바쳐 만든 것이 결국 타인의 영혼을 담기 위한 가짜 그릇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비쳐 보였다. 진무극은 이현도를 믿지 않았다. 그저 효율적인 부품으로 썼을 뿐이다.

"……역시, 인간의 존엄을 버린 자의 최후는 비참하군."

진혁이 손을 떼자, 이현도의 몸이 순식간에 재가 되어 흩어졌다. 놈이 남긴 것은 오직 뇌 회로가 압축된 작은 데이터 칩 하나뿐이었다.

진혁은 그것을 집어 들었다. 칩을 통해 전송된 정보는 치명적이었다.

[데이터 로드 완료.]

[대상: 진무극 전용 전술 수트 ‘아틀라스’]

[주요 기능: 5차원 공간 위상 제어, 마기 흡수 필드, 차원 도약 엔진 탑재]

[결정적 약점: 흉부 동력원 '싱귤래리티 코어'의 동기화 쿨타임 0.03초.]

0.03초.

일반적인 무인에게는 찰나의 순간이지만, 진혁에게는 세상이 멈추는 것과 다름없는 시간이었다.

"찾았다."

진혁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그때였다. 연구동 전체가 거대한 진동과 함께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현도가 죽음과 동시에 플로팅 랩의 자폭 시퀀스를 활성화한 것이다. 천장에서 붉은 경고등이 점멸하며 기계적인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경고: 아카이브 0 구역 붕괴 시작. 120초 후 자폭.]

"마지막까지 발악하는군."

진혁은 미련 없이 뒤를 돌았다. 놈이 죽었으니 이제 진짜 사냥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연구동의 문을 박차고 나가자, 붕괴하는 복도 너머로 니르바나의 정찰대가 보였다. 그들은 진혁의 기세를 감지했는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 강진혁……! 방금 그 엄청난 마기 파동은……!"

송수연이 급히 달려오며 외쳤다.

"이현도는?"

"처리했다."

진혁의 짧은 대답에 송수연은 입을 다물었다. 주변의 벽이 뒤틀리고, 배관에서 고압의 증기가 터져 나왔다. 요새 전체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탈출해야 합니다! 지금 이 구역 전체가 붕괴되고 있어요!"

진혁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붕괴하는 천장 너머로, 신서울의 밤하늘이 보였다. 그 너머에 창조주들의 왕좌가 있다. 진무극이 기다리는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이 지옥을 벗어나야 했다.

"나가자."

진혁이 발을 구르자 바닥이 터져 나갔다. 마기를 깃들인 그의 신형이 마치 포탄처럼 붕괴하는 요새를 뚫고 솟구쳤다.

뒤를 돌아볼 필요는 없었다. 그가 떠난 자리에서 플로팅 랩은 거대한 화염구로 변하며 추락하고 있었다. 신서울 전체를 집어삼킬 듯한 폭발음이 귓가를 때렸다.

하지만 진혁의 눈은 이미 그 너머를 보고 있었다.

플로팅 랩의 붕괴와 함께 대기 중에 흩어지는 파편들 사이로, 기묘한 차원의 균열이 보였다. 그것은 이현도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개방한 ‘열쇠’였다.

'이현도, 이놈이 죽으면서까지 차원의 문을 열어두었나.'

그것은 함정일 수도, 혹은 진무극에게 다가가는 지름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혁은 주저하지 않았다.

"시스템의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가 법칙이 된 자에게 두려움은 없다."

진혁은 마기 날개를 펼쳤다. 등 뒤에서 검은 안개가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그를 공중으로 밀어 올렸다.

그가 차원의 균열 속으로 몸을 던지는 순간, 신서울의 밤하늘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구름 위에서, 수백 개의 붉은 눈동자가 진혁을 응시하고 있었다.

[실험체 07호, 탈주 확인.]

[창조주의 영역 침범.]

[제거 프로토콜 가동.]

하늘에서 쏟아지는 수만 줄기의 섬광. 그것은 현대의 무기가 아니었다. 우주를 관리하는 자들이 내리는 심판의 벼락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웃었다.

"제거?"

진혁이 허공에 검을 그었다. [신천마신공 제13식-멸천(滅天)].

그의 검 끝에서 뿜어져 나온 검강이 공간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쏟아지던 섬광이 검강에 닿는 순간, 마치 얼음처럼 녹아내려 진혁의 단전으로 흡수되었다.

[에너지 흡수 완료.]

[단전 출력: 120% 상승.]

진혁은 거침없이 차원의 틈새를 뚫고 나아갔다.

이제 시스템의 시대는 끝났다.

그리고, 인간의 형상을 한 신들의 잔치를 끝내러 갈 시간이 되었다.

"진무극, 기다려라."

진혁의 목소리가 차원의 벽을 넘어 창조주들의 왕좌에 닿았다.

무너지는 플로팅 랩의 화염 위로, 한 명의 사내가 악마의 날개를 펼치며 신들의 영역으로 발을 들이고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자, 우주를 뒤흔들 신화의 서막이었다.

그때였다.

차원의 너머에서, 태고의 울림과도 같은 기괴한 웃음소리가 진혁의 뇌리를 강타했다.

"겨우 이 정도인가, 실험체 07호."

공간이 뒤틀리며 진혁의 눈앞에 거대한 형체가 나타났다. 진무극의 모습과 닮았으나, 그 격이 다른 존재. 진정한 창조주의 강림이었다.

진혁의 눈빛이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말이 많군. 네놈의 왕좌부터 부수겠다."

진혁이 발을 딛자, 차원의 공간이 유리 조각처럼 부서져 내렸다. 본격적인 전쟁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진혁이 딛고 선 차원의 균열은 이미 붕괴한 플로팅 랩의 파편과 섞여 기괴한 소용돌이를 치고 있었다. 눈앞에 나타난 존재는 진무극의 껍데기를 쓰고 있었으나, 그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력은 물리적인 질량을 가진 파괴력 그 자체였다. 창조주의 강림. 그것은 차원의 법칙을 비트는 권능의 발현이었다.

"너는 우리가 만든 가장 완벽한 잔(杯)이어야 했다. 그러나 너는 그 잔을 깨부수고 스스로 술을 빚어 마시는 오만을 저질렀지."

상대, 자칭 ‘프라임’이라 불리는 창조주의 파편이 허공에 손을 젓자 주변의 공간이 사각형의 격자로 분할되었다. 진혁은 찰나의 순간, 발밑의 공간이 0.1밀리미터 단위로 절단되고 있음을 감지했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그 자리에서 육신이 분해되었을 공격. 하지만 진혁은 이미 그 차원의 틈새마저 마기로 치환해 둔 상태였다.

"잔? 아니, 나는 너희들이 버린 폐기물이다."

진혁이 발을 굴렀다.

쿠구구궁—!

차원의 틈새에서 솟아오른 것은 마기의 파도였다. 220화의 결전 끝에 얻어낸 진무극의 영혼 파편과 이현도의 설계 데이터를 양분 삼아, 진혁은 자신의 기혈을 완전히 재구성했다. 그는 더 이상 시스템의 연산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의 심장은 이제 나노머신이 아니라, 스스로 우주를 돌리는 항성(恒星)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흡원천공(吸元天功)의 진의는 단순히 타인의 힘을 뺏는 게 아니지."

진혁이 검을 뻗었다. 검 끝에서 뿜어져 나온 검강은 푸른 빛이 아닌, 우주의 공허를 집어삼키는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만법귀마(萬法歸魔), 그 모든 법칙을 내 아래로 귀속시킨다."

격자형으로 분할되었던 공간이 진혁의 검 끝에 닿는 순간, 비명과 같은 파열음을 내며 무너져 내렸다. 창조주의 파편이 짓고 있던 오만한 미소가 순식간에 경악으로 물들었다. 놈의 손에서 뻗어 나온 광선이 진혁의 마기 방벽에 닿자마자 힘없이 증발했다. 아니, 정확히는 진혁의 단전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경고: 관리자 권한 외의 에너지 유입.]

[시스템 로그 기록 불가.]

머릿속에서 환청처럼 들려오던 시스템의 경고음마저 이제는 조롱처럼 들렸다.

"내 단전은 이제 네놈들이 만든 그 어떤 데이터도 담지 않는다. 오직 내 무도(武道)만이 존재할 뿐."

진혁은 도약했다. 찰나의 순간, 그는 창조주의 파편 앞까지 거리를 좁혔다. 0.03초의 쿨타임도 필요 없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초근접전. 진혁의 주먹이 창조주의 흉부를 향해 꽂혔다.

"이건, 네놈들이 만든 '실험체 07호'의 복수다."

퍼어엉—!

단순한 타격이 아니었다. 마기를 응축해 물리적 파괴력을 극대화한 폭발. 창조주의 가슴팍이 쩍 하고 갈라지며 그 안에서 눈부신 백색 광휘가 쏟아져 나왔다. 그 빛은 창조주가 관리하던 우주의 데이터 코드들이었다. 진혁은 그 빛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데이터가 아니야. 이건…… 하나의 생태계 그 자체인가?'

그의 의식이 데이터의 바다로 침잠했다. 수천 개의 별이 태어나고, 수만 개의 문명이 멸망하는 정보의 홍수. 하지만 진혁은 자신의 마기를 쐐기처럼 박아 넣어 그 정보를 강제로 정지시켰다.

'질서(Order)는 파괴한다. 그리고 내 마도(魔道)를 주입한다.'

진혁이 손에 쥔 데이터 코드를 비틀어 꺾었다. 그러자 신화적인 위용을 자랑하던 창조주의 파편이 비명을 지르며 붕괴하기 시작했다. 놈의 존재 자체가 진혁의 마기에 침식당하고 있었다.

"불가능하다……! 어떻게 피조물이 창조주의 코드를 역으로 침식한다는 말인가!"

"피조물? 틀렸다."

진혁은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나는 너희가 만든 그릇을 깨고, 스스로 신이 된 자다."

창조주의 파편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하지만 승리의 희열은 짧았다. 그가 흩어지며 남긴 마지막 잔향이 차원 너머의 거대한 문을 강제로 개방했기 때문이다. 문 너머로 느껴지는 것은 압도적인 공포와, 태고의 적막.

그곳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창조주’들이 진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실험체 07호의 반란 감지.]

[행성 신서울(Neo-Seoul) 폐기 절차 개시.]

하늘 전체가 붉게 점멸했다. 신서울의 모든 마천루가 진동했고, 시민들의 비명소리가 도시를 메웠다. 창조주들은 진혁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신서울 전체를 우주에서 지워버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진혁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수천 킬로미터 상공에서 내려오는 거대한 궤도 폭격. 그것은 차원의 문을 열어젖히고 직접 쏟아지는 정화(Purification)의 빛이었다.

"하, 정화라고?"

진혁은 피 섞인 웃음을 흘렸다.

그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다. 이현도의 데이터 칩에서 얻은 ‘아틀라스’의 구조, 그리고 지금 막 창조주의 파편을 흡수하며 얻은 차원 도약의 권능.

진혁은 단전에 모인 모든 마기를 쥐어짜 냈다.

"진무극이 꿈꾸던 천마의 시대는 이제 없다. 내가 만드는 것은, 신들조차 거역할 수 없는 '나만의 마계(魔界)'다."

그는 발끝에 마기를 집중시켰다. 단순히 도약하는 것이 아니다. 공간 자체를 걷어차, 그 반동으로 차원의 벽을 뚫고 지나가는 무의 경지.

[신천마신공 제14식-천지개벽(天地開闢)]

진혁의 몸이 검은 혜성처럼 궤도 폭격을 향해 솟구쳤다. 궤도 폭격의 중심부, 가장 강력한 정화의 빛이 쏟아지는 그곳을 향해 그는 정면으로 돌진했다.

'내 무도는 여기서 끝난다. 그리고 내 신화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의 검이 빛의 중심을 찔렀다.

우주가 뒤집히는 듯한 굉음과 함께, 신서울 상공의 차원문이 거대한 파열음을 내며 중심부터 붕괴하기 시작했다. 창조주들이 쌓아 올린 질서의 탑이 진혁의 검 하나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었다.

운명에 저항하는 한 인간이, 신을 부정하는 순간이었다.

진혁의 검 끝에 맺힌 마기가 폭발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실험체가 아니었다.

우주의 법칙을 새로 쓰는, 유일무이한 '천마(天魔)'였다.

그날 밤, 신서울의 밤하늘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 핏빛 하늘 아래, 강진혁은 또다시 차원 너머의 진짜 왕좌를 향해 도약을 시작하고 있었다.

[진행 상황: 차원 경계 돌파율 45%]

[목표: 창조주의 본진, '에덴(Eden)'의 파괴.]

진혁의 눈에 비친 것은 더 이상 복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걷기로 결심한, 끝없는 마도(魔道)의 정점이었다.

다음 목적지는, 신들이 머무는 가장 높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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