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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22화목차

제22화 잔혹한 진실

어둠을 찢고 솟구친 강진혁의 발밑으로 신서울의 불야성이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콰아아아앙——!

바람을 가르는 폭음이 마천루의 유리창을 가루로 만들었다.

티타늄 타워 100층.

그곳은 인간의 경지를 초월한 자들만이 밟을 수 있는 지옥의 꼭대기였다.

[SYSTEM WARNING!]

[경고: 외부 네트워크의 강제 백업 링크가 영구 차단되었습니다.]

[사용자 수동 제어 모드 (MANUAL OVERRIDE) 강제 실행.]

[인공지능 설화(Sul-hwa)의 보조 연산 프로토콜이 제한됩니다.]

망막을 붉게 물들이며 깜빡이던 HUD의 경고등을, 진혁은 손짓 하나로 꺼버렸다.

시스템의 목소리가 사라진 시야는 오히려 경이로울 정도로 맑았다.

기계의 계산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심장박동과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마기(魔氣)의 흐름만으로 세상을 직시한다.

이것이 진짜 무위(武位)다.

촤아아악——!

진혁의 검끝에서 흑빛 검강이 허공을 길게 가로질렀다.

티타늄 타워의 외벽을 타고 흐르던 강화 유리와 합금 방어막이 두부처럼 잘려 나갔다.

"……벌레 같은 놈."

낮게 짓씹는 목소리가 100층의 거대한 집무실 안에서 흘러나왔다.

은발을 정갈하게 넘긴 중년 신사.

티타늄 그룹의 회장, 진무극.

그의 눈동자에는 조금의 당황도 없었다. 오직 차가운 호기심과 거대한 기쁨만이 일그러진 채 번뜩이고 있었다.

진무극의 손가락 하나 까딱이자, 집무실의 사방 벽이 열리며 수십 구의 '블랙 가드' 정예 살인병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진혁의 눈은 그들을 향하지 않았다.

발밑.

마천루의 차가운 바닥 위에 쓰러져 있는 한 구의 형해.

광마(狂魔) 김철호.

뇌 개조로 인해 머리통의 시두(視頭) 회로가 노출되어 있던 그가,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남은 이성을 짜내어 진혁의 발목을 붙잡았다.

"크… 헉……."

검붉은 피를 토해내며 김철호의 입이 달싹였다.

이미 붕괴된 뇌세포 속에서, 미처 지워지지 않은 마지막 기억의 파편이 간신히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진… 혁… 아……."

"말하지 마라. 상처가 너무 깊다."

진혁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비록 적이었고, 프로토콜의 실험에 미쳐 광폭화된 괴물이었으나, 그는 진혁과 똑같은 ‘실험체 07호’의 선배였다.

티타늄 그룹이 만들어낸 비극의 또 다른 피해자.

김철호의 눈에 잠시 동안 맑은 빛이 돌아왔다.

기계의 제어가 끊긴 순간 찾아온, 죽음 직전의 기적 같은 정신의 회복이었다.

"들… 어라……."

그가 진혁의 옷자락을 쥐어짜듯 붙잡았다.

전신을 감싼 나노머신이 폭주하며 그의 피부가 타들어가고 있었지만, 김철호는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네… 네 녀석이… 강해질…수록……."

"……."

"프로토콜의… 연산이… 완성될…수록……."

김철호의 목소리가 뚝뚝 끊겼다.

하지만 그 눈빛만큼은 섬뜩할 정도로 생생했다.

"그건… 네가… 강해지는 게… 아니야."

"무슨 소리냐."

"진무극… 그 늙은 미치광이의… 뇌를… 이식할… ‘완벽한 그릇’……."

치밀어 오르는 검은 피와 함께 김철호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내… 뇌가… 터져 나간… 이유도… 똑같았어……."

파지지직——!

김철호의 머리에 박힌 시두 회로가 마지막 스파크를 튀기며 완전히 타버렸다.

그의 손이 힘없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하지만 그가 남긴 마지막 마디는 진혁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완벽한 육체. 천마의 기운을 담아낼 그릇. 진무극의 정신을 이식할 강탈의 대상.

진혁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머릿속에서, 그동안 시스템이 보여주었던 수많은 로그와 알림창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적합도 검사 진행 중…….]

[동기화율 84.2%…….]

[단전 코어의 에너지 정제율 최상. 이식 승인 대기 중…….]

지금까지 진혁은 그 시스템을 자신의 성장을 돕는 도구로만 여겼다.

흡원천공으로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나노머신을 재구성하며 강해질 때마다 프로토콜은 기계적인 목소리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사육’이었다.

가장 살찌우기 좋은 상태로, 가장 완벽한 무력을 지닌 육체로 가꾸어지는 농장.

진무극이 수십 년간 연구해 온 마교 유골 데이터의 진정한 목적은, 타인을 지배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자신의 늙은 육체를 버리고, 천마의 무공과 기운이 완벽하게 깃든 강진혁의 몸을 빼앗아 영생을 누리는 것.

"하……."

실소를 터뜨린 진혁의 입술 사이로 서늘한 살기가 새어 나왔다.

그 순간, 진혁의 시야 구석에 꺼져 있던 옅은 푸른빛의 HUD가 저절로 깜빡였다.

[SYSTEM NOTICE]

[사용자 강진혁의 정신파동 이상 감지.]

[효율적인 전투를 위해 시스템 자동 제어(Auto-Control) 모드의 재기동을 권장합니다.]

[수동 제어는 생존 확률을 34.7% 감소시킵니다.]

인공지능 설화의 목소리가 무기질적으로 울렸다.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그 메시지가, 지금은 거대한 뱀의 혓바닥처럼 서늘하게 목을 감쌌다.

'……재기동을 권장한다고?'

진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김철호의 마지막 유언과 맞물려, 시스템의 알고리즘 속에 숨겨진 미세한 ‘통제 트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만약 여기서 다시 시스템의 제어를 허용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진무극이 마스터 코드를 입력하는 순간,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육체의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겼을 것이다.

시스템은 처음부터 진혁의 편이 아니었다.

그것은 티타늄 그룹이 심어놓은 가장 정교하고 치명적인 ‘기생충’이었다.

[SYSTEM ALERT]

[사용자의 불신 지수가 임계점을 초과했습니다.]

[프로토콜의 핵심 코어에 대한 강제 접근을 시도합니다.]

"시끄러워."

진혁이 나지막이 뇌까리며 단전에 힘을 주었다.

콰아아궁——!

단전 속에서 소용돌이치던 8,950 MW의 거대한 생체 코어 출력이 폭발하듯 역류했다.

그것은 마기와 나노머신이 뒤섞인 채, 내면의 기혈을 타고 도는 순수한 폭주였다.

진혁은 시스템이 연산할 겨를도 주지 않고, 자신의 의지만으로 그 에너지를 억지로 비틀어 정맥으로 쏟아부었다.

지직-! 파지직-!

뇌리에 직접 박혀 있던 프로토콜의 회로가 물리적으로 끊어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머리를 쪼갰다.

하지만 그 고통과 비례하여, 진혁의 눈빛은 더욱 선명해졌다.

[경고! 시스템의 코어 무결성이 손상되었습니다!]

[설화(AI): 사용자… 강진혁, 당신의 행동은 시스템의 안전 규정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즉시 제어권을 반환…….]

"닥쳐."

진혁이 차갑게 내뱉으며 시야 구석에 떠 있던 3차원 아바타를 향해 검지손가락을 튕겼다.

콰앙!

정신 속에서 가상의 폭음이 울렸다.

더 이상 설화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완벽한 고요.

오직 심장박동 소리만이 귀를 때렸다.

시스템의 보조 없이, 완벽한 고립.

하지만 그 속에서 진혁은 비로소 완전한 ‘자신의 몸’을 느꼈다.

"후우……."

하얀 입김이 100층 집무실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흩어졌다.

진혁의 전신에 돋아난 은빛 회로 선이 붉은색 마기로 뒤덮였다가 이내 깊은 흑빛으로 가라앉았다.

기계가 계산해 준 경지가 아니다.

스스로의 깨달음과 피를 토하는 수련으로 이끌어낸, 신천마신공 제5단계.

[초월천마경(超越天魔境)].

그 경지에 도달한 진혁의 기운을 느낀 것일까.

집무실 중앙에 서 있던 진무극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기이하군요."

진무극이 천천히 박수를 쳤다.

느릿하고, 소름 끼칠 정도로 차분한 박수 소리가 넓은 공간을 채웠다.

"내 연구실의 모든 인공지능과 프로토콜이 네 안에서 격리되었다. 데이터상으로는 네가 가진 무력의 효율이 40% 이상 떨어졌을 텐데…… 어째서지?"

진무극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올라갔다.

"오히려 네놈의 눈빛이, 1,000년 전 유골 데이터 속에서 보았던 그 ‘천마’의 것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단 말이지."

"궁금한가?"

진혁이 한 걸음씩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가 발을 디딜 때마다 티타늄 합금 바닥이 종잇장처럼 우그러들며 깊은 발자국이 패였다.

"네가 만든 그 얄팍한 프로그램은 기술을 연산했을 뿐이지."

진혁이 손에 쥔 천마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공기가 찢어지며 검푸른 검강이 진무극의 코앞을 스쳐 지나갔다.

집무실의 두꺼운 강화 유리 벽이 한 줄기 바람에 밀려 나가듯 반으로 쪼개져 아래로 떨어졌다.

100층 높이의 거센 바람이 들이닥치며 진혁의 흑발을 거칠게 흩날렸다.

"무공(武功)을 만든 적은 없다."

진혁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잔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네가 준 건 기계 쪼가리에 불과해, 진무극. 그걸 사람의 기술로, 살인마의 검으로 완성한 건 오직 나다."

"오만하구나."

진무극의 두 눈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중장갑 수트의 외피가 쩍쩍 갈라지며,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정상적인 고출력 에너지 코어의 푸른빛이 마천루의 밤하늘을 대낮처럼 밝혔다.

콰아아아앙——!

신서울 전체가 울릴 듯한 거대한 지진이 일어났다.

티타늄 그룹 회장 진무극, 그리고 살아있는 천마의 그릇 강진혁.

모든 시스템이 꺼진 고요 속에서, 두 사람의 기가 정면으로 충돌하며 100층 집무실의 천장이 통째로 날아갔다.

밤하늘의 별빛마저 마기에 가려져 붉게 물들어가는 시공간.

진혁은 검을 치켜들며 전신의 혈관을 폭발시킬 듯 부풀렸다.

이제 시스템의 가이드는 없다.

오직 죽거나, 혹은 세상을 집어삼키거나 둘 중 하나뿐이었다.

챙——!

천마검과 진무극의 플라즈마 건틀릿이 부딪치며 신서울의 밤을 가르는 최후의 참격이 작렬했다.

콰아아아앙——!

두 사람의 충돌 지점에서 발생한 충격파가 100층 집무실의 남은 잔해들을 먼지로 만들어 사방으로 흩뿌렸다.

발밑의 티타늄 합금 바닥이 비명을 지르며 종잇장처럼 구겨졌고, 신서울의 밤바람이 그 틈새로 미친 듯이 파고들었다.

"크큭……!"

진무극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웃음이었다.

광기 어린 환희로 이그러진 그의 얼굴 위로, 4세대 군사형 생체 코어가 뿜어내는 푸른 플라즈마 전력이 뱀처럼 휘감겼다.

그 출력만 해도 10,000 MW를 상회하는 괴물 같은 수치.

인간의 육신으로는 도저히 버텨낼 수 없는 출력이었으나, 진무극은 천마의 유골 데이터로 배양한 특수 강화 수트를 통해 그것을 억지로 제어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혁은 밀리지 않았다.

시스템의 보조 HUD도, 적합도 계산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오직 심장박동과 함께 척수를 타고 흐르는 8,950 MW의 단전 코어 출력과, 자신이 직접 갈고닦은 마기(魔氣)만이 그의 전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무거워진 게 아니다.'

진혁은 직감했다.

시스템이 대신 연산해주던 궤적을 스스로 계산하고 몸을 움직여야 하기에 반응 속도가 느려질 줄 알았으나, 오히려 그 반대였다.

기계의 알고리즘이라는 불필요한 필터가 사라지자, 육체와 의지가 완벽한 일치(合一)를 이루었다.

스스로의 호흡과 적의 미세한 근육 떨림이 동시에 읽혔다.

샤아아아——!

진혁의 손에서 역류하듯 뿜어져 나온 흑빛 마기가 천마검의 날을 타고 폭발적으로 증폭되었다.

고주파 진동 파쇄 기술과 고대 마공의 흡원천공 원리가 완벽하게 융합된 참격.

그것은 단순히 에너지를 베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존재 자체를 원자 단위로 분해하는 무위였다.

"이것이… 네가 도달한 경지란 말인가."

진무극의 눈에 경악의 빛이 스쳤다.

그가 평생을 바쳐 연구하고, 강진혁이라는 완벽한 그릇을 사육해 마침내 강탈하려 했던 궁극의 무력.

그것은 자신이 완성한 프로토콜의 결과물이 아니라, 프로토콜마저 거부한 채 스스로 진리를 깨달은 한 인간의 의지에서 피어난 새로운 마공이었다.

"틀렸어."

진혁이 차갑게 뇌까리며 검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

진무극의 플라즈마 건틀릿 표면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너는 단지 규격화된 데이터를 모았을 뿐이다. 무공은 계산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야."

콰직, 우두둑——!

진혁의 팔 근육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며 단전의 출력이 극한으로 치달았다.

천마검이 진무극의 방어막을 뚫고 들어가 그의 어깨 부근 장갑을 반으로 갈라놓았다.

검붉은 피가 튀어 올랐지만, 진무극은 아픔조차 느끼지 못한 듯 광기 어린 눈으로 진혁을 응시했다.

"좋다……! 아주 훌륭해! 그 몸뚱이, 그 의지야말로 내가 기다리던 완벽한 그릇이다!"

진무극이 피를 토하며 소리쳤다.

그의 등 뒤로 거대한 메인프레임 서버가 미친 듯이 스파크를 튀기며 기동하기 시작했다.

아직 끝이 아니라는 듯, 타워 지하에 숨겨져 있던 비상 예비 전력이 마천루의 뼈대를 타고 100층으로 역류해 들어왔다.

[SYSTEM EMERGENCY OVERRIDE]

[메인프레임 강제 재부팅 시도.]

[모든 실험체의 백업 데이터를 통합합니다.]

꺼졌던 시야 구석에서 기괴한 붉은 글자들이 다시 깜빡였다.

하지만 진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는 시스템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오직 눈앞에 있는 만악의 근원, 진무극의 심장만을 바라보았다.

"백업 따위는 필요 없다."

진혁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올라갔다.

그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타워 전체의 철골 구조물을 진동시켰다.

기계의 통제를 벗어난 진짜 천마의 강림.

세상을 지배하던 자본과 기술의 탑이, 이제 한 자루의 검에 의해 무너져 내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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