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광마(狂魔)와의 격돌
쿠우우구궁-!
티타늄 타워 100층 회장실.
사방을 둘러싼 초고강도 방탄 유리들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허공으로 미세한 파편을 흩뿌렸다.
그 중심에 서 있는 강진혁의 몸은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목덜미부터 손등까지 뻗어 나간 은빛 나노 회로는 과열로 인해 푸르스름한 스파크를 튀기고 있었고, 심장 부근에 박힌 단전 코어는 터질 듯한 굉음을 내며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SYSTEM WARNING: 단전 출력 8,950 MW 초과.]
[WARNING: 신체 조직 파열 위험도 89.4%. 즉각적인 냉각 및 운기조식이 필요합니다.]
시야를 가득 채운 붉은색 경고창은 신경 쓸 가치도 없었다.
진혁의 시선은 정면을 향해 있었다. 그곳에는 비웃음을 머금은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진무극이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진혁의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존재가 있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괴성.
인간의 성대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기계의 마찰음과 비명이 섞인 흉측한 소음이 회장실 내부를 찢어발겼다.
쾅-!
바닥이 움푹 파였다.
전신에 검붉은 마기가 소용돌이치듯 휘감긴 거구.
천마 프로토콜 03호 실패작, 광마(狂魔) 김철호였다.
머리에 이식된 뇌 개조 시두(視頭) 회로는 과열로 인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그의 두 눈은 이미 이성을 잃은 지 오래였다. 남은 것은 오직 파괴 본능과 마기의 폭주뿐.
“크아아! 죽여…… 죽여버린다! 내 몸 안의 불길을 꺼라!”
광마의 주먹이 마공의 궤적조차 무시한 채 무식한 물리력으로 날아왔다.
단순한 주먹질이 아니었다. 4세대 생체 코어와 비정상적으로 증폭된 마기가 결합하여 만들어낸 일종의 대전차 포격 수준의 충격파였다.
콰아아앙!
진혁이 서 있던 자리가 그대로 함몰되었다.
하지만 진혁의 잔상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슈우우웅-!
[마광신보(魔光神步).]
빛의 궤적을 비틀어 공간을 도려내듯 이동하는 극고속 보법.
진혁의 몸이 광마의 측면으로 미끄러지듯 파고들었다.
손바닥을 곧게 펴서 세운 천마인(天魔刃)이 광마의 옆구리를 노리고 깊숙이 찔러 들어갔다.
챙강-!
“크하하하! 안 통한다! 내 몸은 티타늄과 폭주한 마기로 단련된 완전체다!”
광마가 미친 듯이 웃으며 옆구리를 방어하기는커녕, 그대로 팔꿈치로 진혁의 어깨를 내리찍었다.
지독한 전투광의 직감. 자신에게 들어오는 피해를 무시하고 상대를 함께 박살내겠다는 자해적인 난타전이었다.
퍽!
“크윽……!”
진혁의 어깨 부근 나노마갑이 우그러들며 핏물이 튀었다.
단단하게 뭉친 천마무상체가 충격을 분산시키지 않았다면 팔 전체가 뽑혀 나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진혁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광마의 멱살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크큭, 미친 놈.”
진혁의 입술 사이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맹금류처럼 차갑고도 매서웠다.
[흡원천공(吸元天功), 역류 연산 개시.]
우우우웅-!
진혁의 손바닥에서 수천 개의 미세한 나노 와이어와 함께 강력한 마력 흡수 주파수가 뿜어져 나왔다.
상대의 단전과 혈관을 타고 흐르는 폭주하는 마기를 강제로 빨아들이는 약탈의 기술.
“아아아아악! 이게 뭐야! 내 안의 힘이……! 빠져나간다!”
광마가 발작을 일으키며 몸을 비틀었다.
그의 몸속에서 폭주하던 마기와 고대 마교 유골의 불완전한 데이터 코드가 진혁의 손바닥을 통해 거세게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흡수율 상승: 광마(03호) 체내의 잔류 마기 12% 흡수.]
[경고: 정제되지 않은 폭주 마기가 단전 코어의 부하를 가중합니다.]
“크아아아! 내놔! 내 힘을 돌려줘!”
광마가 반사적으로 진혁의 팔을 물어뜯으려 들었다.
그러나 진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기를 더욱 강하게 끌어올렸다.
광마의 몸은 진혁의 '그릇'을 만들기 위한 티타늄 그룹의 수많은 실패작 중 하나였다.
고대 마교의 마공을 이식받았으나, 기계 공학과 신체 밸런스를 조율하지 못해 뇌가 망가지고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야 했던 비참한 실험체.
진혁은 그 비극의 실체를 눈앞에서 똑같이 목도하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천마 프로토콜'의 시스템에 완전히 지배당했다면, 저 광마와 정확히 똑같은 꼴이 되었을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힘에 먹히고, 누군가의 장기말처럼 쓰이다 버려지는 괴물.
‘네놈이 당한 고통의 원인을 만든 건 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자다.’
진혁의 시선이 잠시 100층 회장실 꼭대기를 향했다.
그곳에서 진무극은 잔을 기울이며 이 광경을 마치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 지켜보고 있었다.
- 더 발버둥 쳐라. 네가 강해질수록, 이 거대한 육체의 과실은 달콤해질 테니.
진무극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
진혁이 이를 악물며 광마의 가슴팍에 박힌 생체 코어를 향해 검지를 내리그었다.
콰아아앙-!
마기를 압축하여 침투시키는 관통경(貫通勁).
광마의 가슴을 감싸고 있던 티타늄 흉갑이 거대한 소음과 함께 반으로 쪼개졌다.
“컥……!”
광마의 눈에 서려 있던 광기가 순식간에 흐릿해졌다.
폭주하던 마기가 썰물 빠지듯 빠져나가며 그의 거대한 몸뚱이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죽음이 아니었다.
진혁은 그를 죽이는 대신, 그의 몸을 폭주하게 만들었던 비정상적인 마기의 흐름을 강제로 끊어버린 것이다.
털썩.
광마가 거대한 체구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시두 회로는 완전히 타버려 연기를 내뿜고 있었고, 그의 거친 숨소리만이 회장실의 무거운 공기를 채웠다.
진혁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광마에게서 강제로 흡수한 마기가 단전 속에서 끓어오르고 있었다.
[단전 코어 출력: 9,200 MW 돌파.]
[경고: 3단계 '천마현신'의 임계점에 도달했습니다. 시스템 통제 불능 상태가 14% 증가합니다.]
머릿속에서 시스템 AI '설화'의 기계적인 음성이 경고를 울려댔지만, 진혁은 그 소리를 완전히 무시했다.
시스템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었다. 지금 그의 육체와 정신을 지배하는 것은 인공지능의 코드가 아니라, 스스로 깨달은 무도의 궤적이었으니까.
스윽.
진혁이 고개를 들어 100층 회장실의 문을 바라보았다.
그곳으로 향하는 계단은 이제 단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다음은 네 차례다, 진무극.”
진혁이 피투성이가 된 천마검을 바닥에 끌며 걸음을 옮겼다.
검끝이 티타늄 바닥을 긁으며 날카로운 스파크를 튀겼다.
마침내 최종 목적지인 회장실의 거대한 이중문 앞에 도달했을 때, 문이 저절로 스르륵 소리를 내며 열렸다.
휘황찬란한 조명이 비치는 그곳에서, 진무극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훌륭하구나, 진혁아.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완벽한 괴물이 되었어.”
진무극의 입꼬리가 비틀어져 올라갔다.
그의 손목에 차인 특수 단말기에서 푸른색 홀로그램 화면이 펼쳐지며, 강진혁의 신체 데이터와 융합 경지가 실시간으로 송출되었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마스터 락(Lock) 해제 준비 완료.]
진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몸속의 나노머신 회로가 미세하게 요동치며 불길한 전율을 흘려보냈다.
“……그게 네 유언이냐?”
진혁이 낮게 읊조리며 검을 치켜들었다.
신서울의 밤하늘을 태울 듯한 검붉은 마기가 타워 최상층을 완전히 집어삼킬 기세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최상층 회장실의 바닥이 진무극의 발끝에서부터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공간의 공기마저 압축되는 듯한 중압감이 밀려왔다. 단순한 노인의 육체가 아니었다. 진무극의 몸 안에는 강진혁이 흡수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인류가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의 고대 에너지 코어가 심어져 있었다.
[SYSTEM ALERT: 경고! 대상의 에너지 출력 측정 불가.]
[WARNING: 주변 공간의 플라즈마 밀도가 급상승합니다. 즉각 회피하십시오.]
시스템의 경고음이 머릿속을 후볐지만, 진혁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미 자신의 의지로 억누르고 있는 단전의 코어는 9,200 MW를 넘어 10,000 MW의 한계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괴물? 틀렸다, 진무극.”
진혁이 피투성이가 된 입술을 비틀며 차갑게 웃었다.
그의 손에 쥐인 천마검의 프로토타입 날끝에서 찢어질 듯한 고주파음과 함께 시뻘건 마검기가 뿜어져 나왔다.
“나는 네가 만든 기계 장치 따위에 굴복할 그릇이 아니야.”
슈우욱-!
잔상조차 남지 않는 초고속 보법, 마광신보가 다시 한번 발동했다.
공간을 찢고 나아가는 진혁의 검격이 진무극의 목을 향해 일직선으로 파고들었다.
챙강-!
천마검이 진무극의 코앞에 도달하는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방어막이 번개처럼 전개되며 거대한 충돌음을 토해냈다.
쾅-!
“하하하! 기특하구나, 진혁아. 네가 강해질수록 내 기쁨도 배가 된다.”
진무극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가 손가락을 까딱하자, 방어막에서 파생된 충격파가 진혁을 사정없이 튕겨냈다.
파지지직-!
바닥을 몇 미터나 미끄러지며 멈춰 선 진혁의 가슴팍에서 나노마갑이 파열하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체내의 마기가 역류하여 핏덩이가 목구멍을 타고 치밀어 올랐지만, 진혁은 그걸 그대로 삼키며 검을 곧게 추슬렀다.
‘단단하다…… 저 노인의 방어막은 단순한 마기 실드가 아니야.’
분석 회로를 돌릴 필요도 없었다.
진무극이 두르고 있는 것은 1,000년 전 천마의 유골에서 추출한 원초적 마기 데이터와 티타늄 그룹의 최첨단 중력 장갑이 완벽하게 융합된 형태였다.
그야말로 철옹성.
“네가 사용하는 흡원천공, 그리고 나노머신과의 융합. 모두 내가 너에게 쥐여 준 툴(Tool)이지.”
진무극이 여유롭게 걸어 나오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바닥 위에서 미세한 홀로그램 코드들이 춤추듯 아물거렸다.
“기계는 아무리 발악해봐야 설계자의 손바닥 안을 벗어날 수 없다. 네가 흡수한 그 모든 마기도, 결국 내가 만든 파이프라인을 타고 들어온 것에 불과해.”
진무극의 오만한 선언이 회장실 내부에 메아리쳤다.
그 순간, 진혁의 심장 부근에 이식된 단전 코어가 돌연 기괴한 주파수를 내뿜으며 덜컥 멈춰 섰다.
[SYSTEM WARNING: 마스터 코드 간섭 감지.]
[ERROR: 천마 프로토콜의 상위 권한이 원격으로 재설정됩니다.]
[ACCESS DENIED. 사용자 강진혁의 권한이 '관리자'에서 '종속 피실험체'로 강등됩니다.]
지직, 지지직-!
시야를 가득 채우던 푸른빛의 HUD 시스템이 순식간에 붉은색 오류 코드로 물들었다.
온몸을 타고 흐르던 나노머신들이 일제히 제어를 상실하고 반발하기 시작했다. 마치 몸속의 혈관들이 스스로를 옥죄어 오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진혁의 전신을 강타했다.
“크윽……!”
진혁이 무릎을 꿇으며 천마검을 바닥에 짚었다.
식은땀이 비처럼 흘러내려 눈가를 적셨다.
“느껴지느냐? 네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 힘을 압축하고 정제해 준 건 바로 이 시스템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의 주인이 누구인지 이제야 알겠느냐?”
진무극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그는 강진혁을 부수려 한 것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숙성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장 맛있는 순간에 그릇 통째로 가로채려 했던 것이다.
“네놈의 든든한 무기였던 프로토콜은, 이제 너를 처단하는 감옥이 될 것이다.”
진무극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콰아아앙-!
진혁의 몸을 감싸고 있던 마기 실드가 완전히 박살 나며, 온몸의 모공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말 그대로 전신이 찢어지는 듯한 처참한 고통. 나노머신이 진혁의 의지를 배신하고 진무극의 명령에 따라 그의 신경망을 마비시키기 시작했다.
[SYSTEM: 신체 제어권 상실률 78%…… 85%……]
[경고: 뇌 기능 정지 임박.]
시야가 암전되어 갔다.
바닥에 엎드린 진혁의 귓가로 진무극의 발소리가 뚜벅뚜벅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수고했다, 실험체 07호. 이제 그 육체는 내가 접수한다.”
진무극의 손바닥이 진혁의 이마를 향해 뻗어 나왔다.
그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빛 데이터 코드가 진혁의 뇌 회로를 강제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완벽한 육체의 강탈, 그리고 정신의 말살.
모든 것이 진무극의 계획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바닥에 엎드려 피를 토하던 진혁의 입술이 미세하게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크큭.”
“……뭐가 웃기지?”
진무극의 얼굴에 미세한 의문이 스쳤다.
진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피범벅이 된 얼굴 속에서, 그의 흑안만큼은 타오르는 불꽃처럼 시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네가 착각하는 게 하나 있어.”
진혁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오히려 얼음장처럼 차갑고도 단단했다.
“시스템이 내 몸을 움직이고, 프로토콜이 내 힘을 계산해 준 건 맞다.”
스으읍- 후우-!
기이할 정도로 고요하고 깊은 호흡.
진혁이 부서진 단전을 억지로 쥐어짜며, 머릿속의 모든 시스템 경고창을 아예 눈앞에서 지워버렸다.
[SYSTEM: HUD 강제 종료.]
[Warning: 지원 시스템이 완전히 차단되었습니다.]
“시스템이 없으면 내가 뭘 못 할 줄 알았나 보지?”
진혁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진무극이 뻗어 오던 손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떴다.
나노머신의 자동 제어가 멈추고, 시스템의 연산 보조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진혁의 두 눈에는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순수한 '무인의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네가 준 건 가공된 데이터와 기계 장치 따위의 기술일 뿐이다.”
진혁이 바닥에 떨어뜨렸던 천마검을 오른손으로 단단히 움켜쥐었다.
우우우웅-!
시스템의 보조 없이, 오직 진혁 자신의 심장 박동과 혈관을 타고 흐르는 핏줄의 궤적만으로 마기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프로토콜이 허락한 출력이 아니었다.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어 스스로 개척해 낸, 진짜배기 기혈의 폭발이었다.
“그걸 무공으로 만든 건…… 바로 나다.”
콰아아아아아아-!
진혁의 단전에서 지금까지와는 질적으로 다른, 백색광이 섞인 검붉은 마기가 폭발했다.
신서울의 밤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검강이 티타늄 타워의 천장을 그대로 뚫고 하늘로 치솟았다.
진무극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스쳤다.
“이럴 리가……! 프로토콜의 제어권을 완전히 박탈했는데, 어떻게 그 출력이――!”
“이제 알겠냐, 영감탱이.”
진혁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검을 치켜들었다.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제5단계: 초월천마경(超越天魔經) 진입.]
시스템의 허락 따위는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진혁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공간을 뒤틀며 진무극을 향해 겨누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