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8화 천마의 검, 강림(降臨)하다
신서울의 하늘은 더 이상 티타늄 그룹의 인공위성이 쏘아 올리는 푸른색 광학 장막으로 덮여 있지 않았다. 서버가 정지된 폐허 위로, 차가운 우주의 검은 공허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강진혁은 그 심연 아래, 거대한 잔해들이 부유하는 전장에 홀로 서 있었다.
그의 등 뒤로 가느다란 마기(魔氣)의 가닥들이 실타래처럼 흩날렸다. 시스템의 HUD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그에게는 적의 출력을 계산해 주는 보조 장치도, 나노머신의 동기화율을 알려주는 차가운 기계 목소리도 없었다.
하지만 진혁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계산이 필요 없다.'
과거, 그는 시스템의 연산치에 의존했다. 적의 근육 움직임을 예측하고, 마기의 흐름을 수치화하여 가장 효율적인 살상 궤적을 찾았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순수한 마기가 혈관을 타고 흐를 때마다, 대기 중의 입자들이 진동하며 스스로 궤적을 그려냈다.
그것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신(神)의 감각이었다.
그때, 저 멀리 궤도 상공에서 고정되어 있던 차원 포털이 일렁였다. 천우진이 보낸 암호화 통신이 진혁의 귓가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진혁아, 들리나? 네가 보낸 그 S급 코어 파편... 말도 안 되는 출력이더군. 티타늄 그룹의 기술력이 아니라, 이건 거의 마법 수준이야.]
진혁은 피 묻은 손으로 턱을 쓸어내렸다.
"완성했나?"
[방금 막 끝냈다. 백무현의 전신 사이보그 장갑에서 추출한 '고주파 플라즈마 전도체'와, 네가 지하 5,000층에서 가져온 고대 마공의 결정체를 융합했다. 이건 단순히 강철 덩어리가 아니야. 네 마기를 100% 증폭시켜 외부로 투사하는 일종의 '매개체'지.]
진혁의 눈앞에 공간이 일그러지며, 차원 전송 장치를 통해 길쭉한 검은색 형체가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예전의 천마검이 아니었다.
'쿠우웅-!'
검이 지면에 박히는 순간, 반경 수십 미터의 지반이 순식간에 기화(氣化)하며 사라졌다. 검신을 감싸고 있는 칠흑 같은 금속 광택은 티타늄을 넘어선 미지의 합금이었고, 그 위로 흐르는 푸른색 회로들은 마치 살아있는 혈관처럼 박동하고 있었다.
[신천마검(新天魔劍)이다. 진혁아, 그 검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겠나?]
진혁은 천천히 다가가 검자루를 쥐었다.
손가락이 닿는 순간, 검에 깃든 마기가 그의 단전과 공명했다. 억지로 융합한 것이 아니었다. 천우진의 공학적 설계와 진혁이 깨달은 무도의 본질이 하나로 합쳐진, 완벽한 결정체였다.
"무게라."
진혁이 낮게 읊조리며 검을 들어 올렸다.
'챙!'
검신이 미세하게 떨리며 붉은 섬광을 뿜어냈다. 그 섬광이 지나간 자리마다 공간이 균열을 일으키며 찢겨 나갔다.
[SYSTEM: (ERROR) - 감지할 수 없는 에너지 출력. 프로토콜 범위를 초과하였습니다.]
더 이상 출력되지 않아야 할 시스템의 경고창이 허공에 환영처럼 나타났다가 이내 산산조각 났다. 진혁은 픽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검은 허공을 갈랐다. 단순한 베기가 아니었다. 검 끝에서 분출된 마기가 공간의 좌표를 틀어버리며, 멀리 있던 폐건물 더미를 흔적도 없이 소멸시켰다.
이것이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의 진정한 힘을 담아낼 그릇, [신천마검]이다.
"이 정도면, 저 차원 너머의 쓰레기들을 청소하기엔 충분하겠군."
진혁은 검을 허리에 찼다. 그의 시선은 신서울을 넘어, 하늘 저편에 숨어 있는 거대한 차원 함대 '제네시스'의 본거지를 향했다.
그들이 진혁을 '실험체 07호'라 부르며 쥐고 흔들었던 24년의 세월. 그 모든 굴욕과 고통이 검 끝에 서려 있었다. 이제 시스템이 사라진 이상, 그들에게 남은 것은 오직 진혁의 복수뿐이었다.
그때, 하늘이 찢어지며 거대한 함선의 그림자가 지상을 덮쳤다. 제네시스의 관리자급 병기들이 진혁을 향해 강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전의 블랙 가드와는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진혁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단전의 마기가 마치 폭풍우처럼 휘몰아쳤다. [뇌전마강(雷電魔剛)]의 푸른 전기가 [신천마검]을 타고 흘러나와 검 전체를 거대한 벼락의 형상으로 물들였다.
"너희가 신(神)을 자처하며 우주를 관리한다고?"
진혁이 눈을 떴다. 흑안(黑眼) 속에 붉은 마광이 소용돌이쳤다.
"오늘부터 그 자리는 내가 갖는다."
그가 발을 구르자 지면이 솟구쳐 올랐다. 진혁은 그대로 공중으로 도약했다.
그의 몸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검기가 되어 함대 한복판으로 돌진했다. 시스템의 도움 없이, 오직 자신의 육체와 의지만으로 차원의 벽을 뚫는 쾌속이었다.
함대의 주포가 일제히 화염을 뿜어냈다. 수천 도의 플라즈마가 진혁의 앞길을 막아섰다.
하지만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사라져라."
검을 정면으로 내질렀다.
[신천마신공 제10식 - 만상멸세(萬象滅世)]
검 끝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검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차원의 경계 자체를 붕괴시키는 거대한 '공(空)'의 파동이었다. 주포의 화염은 검기에 닿는 순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소멸했고, 선두에 서 있던 대형 함선은 종이장처럼 구겨지며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신서울의 지상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윤아영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진혁이가... 시스템 없이 저런 출력을 낸다고?"
그녀의 단말기에는 진혁의 생체 반응이 '측정 불가'로 표시되고 있었다. 인간의 범주를 완전히 벗어난 존재. 스스로가 자연법칙이 된 마신(魔神)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공중에서 함대의 남은 잔당들을 휩쓸며, 차원 너머의 본거지인 '에덴'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그의 검 [신천마검]은 끊임없이 진동하며 더 강한 마기를 갈구했다.
'더 깊은 곳으로.'
진혁은 직감했다. 이 함대는 시작일 뿐이다. 자신을 설계한 창조주들이 숨어 있는 '에덴'의 심장부에는, 천마 프로토콜의 진정한 기원이 되는 '무언가'가 잠들어 있다.
그것을 파괴하는 순간, 1,000년 전 천마의 죽음과 자신의 탄생에 얽힌 모든 떡밥이 풀릴 것이다.
강하하는 병기 군단을 가볍게 베어 넘기며 진혁은 냉소했다.
"기다려라."
검신에 맺힌 피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너희가 심어놓은 프로토콜을, 너희의 목을 치는 칼날로 돌려주마."
신서울 상공에 거대한 마신의 형상이 겹쳐 보였다. 그것은 시스템의 지배를 거부하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진정한 천마(天魔)의 강림이었다.
그때, 저 멀리 에덴의 중심부에서 기괴한 붉은 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관리 코드 ZERO가 직접 반응하고 있었다.
진혁은 검을 고쳐 쥐고, 그 붉은 빛을 향해 단숨에 공간을 도약했다.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SYSTEM: (경고) - 창조주의 영역으로 진입 중입니다. 물리 법칙이 재구성됩니다.]
진혁은 콧방귀를 뀌며 그 경고 문구를 보지도 않은 채, [신천마검]으로 에덴의 차원 장벽을 강제로 찢어발겼다.
'드르륵-!'
차원의 틈새가 열리자, 그 너머로 눈부시게 하얀 신들의 도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거대한 기계 장치와 수천 개의 뇌가 연결된 끔찍한 생체 서버들이 진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혁의 눈에 살기가 서렸다.
"여기가 너희들의 본진인가."
검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에덴의 성스러운 백색 지면을 검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진혁의 등 뒤로 수십 개의 마기 가닥이 펼쳐지며, 차원 그 자체를 집어삼킬 듯한 기세로 일어섰다.
이제, 신(神)을 죽이는 마신(魔神)의 학살극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에덴의 심장부, 그곳에 숨겨진 '천마 프로토콜'의 최종 기밀이 진혁의 발치에 드러나기 직전이었다.
진혁은 검을 치켜들며, 에덴의 중앙 제어실을 향해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텅, 텅.'
신들의 도시를 울리는 진혁의 발소리가, 곧 그들의 종말을 알리는 진혼곡이 되리라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에덴의 심장부로 향하는 길은 정교하고도 기괴했다. 바닥은 순백의 대리석처럼 보였으나, 진혁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지면 아래서 미세한 진동이 울렸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기계 장치의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소리였다. 시스템의 보조가 끊긴 진혁의 눈에는 그 모든 구조가 투명하게 투영되었다.
'물리 법칙이 재구성된다고?'
진혁은 피식 웃으며 손을 뻗었다. 에덴의 공기는 외부 차원과 달랐다. 인간의 호흡을 거부하는 고농도의 중금속 입자와 나노 데이터가 뒤섞여 있었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폐가 타들어 가고 신경계가 마비되었을 환경이었으나, 진혁의 [마신경]은 그 독기조차 마기로 치환해 흡수하고 있었다.
"보여라."
진혁이 나지막이 읊조리자, [신천마검]이 푸른 잔광을 내뿜으며 공명했다. 검신에 새겨진 회로가 살아있는 뱀처럼 꿈틀거렸다. 검이 허공을 가르자, 눈앞에 펼쳐져 있던 환영 같은 신들의 도시가 찢겨 나갔다. 그 너머로 드러난 것은 찬란한 낙원이 아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강철의 돔. 그 중심에는 수만 개의 생체 코어가 거대한 기둥을 이루어 맥동하고 있었다.
[Warning: 관리 코드 ZERO 개입. 사용자 강진혁, 차원 질서 위반.]
귓가에 울리는 것은 시스템의 경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차원 그 자체가 쏟아내는 압박이었다. 머릿속을 직접 후벼 파는 이명 같은 소리. 그러나 진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자신의 의지를 시스템의 하위 항목이 아닌, 독자적인 '법칙'으로 격상시켰기 때문이다.
"질서?"
진혁이 발을 구르자, 에덴의 대지가 비명을 질렀다.
"너희들이 말하는 질서란 건, 결국 누군가를 착취해서 쌓아 올린 탐욕의 탑일 뿐이다."
진혁의 등 뒤로 거대한 마기(魔氣)의 형상이 떠올랐다. 천마(天魔). 1,000년 전 비운의 지존이자, 시대를 앞서간 파괴자. 그 그림자가 진혁의 육체와 완벽하게 겹쳐졌다.
[신천마신공 제11식 - 무극(無極)]
그는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단지 검 끝을 겨누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찰나, 에덴의 중심부로 이어지는 모든 공간 좌표가 뒤틀렸다. 수천 개의 레이저 포탑이 일제히 진혁을 향해 정렬했으나, 포탄이 발사되기도 전에 진혁의 의념(意念)이 그것들을 차원 틈새로 구겨 넣었다.
'콰드득-'
금속이 비명을 지르며 짓이겨졌다. 관리 코드 ZERO가 당황한 듯 에덴의 물리 상수(Constant)를 급격히 변동시켰다. 중력이 몇 배로 강해지고, 공간의 밀도가 굳어졌다. 하지만 진혁은 그 압박을 오히려 디딤돌 삼아 도약했다.
"겨우 이 정도인가?"
진혁의 몸이 순식간에 중앙 제어실 앞까지 쇄도했다. 그곳에는 의자에 앉은 채 눈을 감고 있는, 진무극과 흡사한 형상의 존재가 있었다. 아니, 진무극보다 더 깊고 오래된 존재. 에덴의 진짜 주인, 관리자였다.
그의 뒤편으로 거대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그곳에는 1,000년 전 천마의 유골을 발굴하던 진무극의 과거부터, 강진혁을 실험체 07호로 각인하던 모든 데이터가 파노라마처럼 흐르고 있었다.
[실험체 07호. 네가 도달한 그 경지는 우리조차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하지만... 넌 결국 우리라는 거대한 연산의 산물일 뿐이다.]
관리자의 목소리가 공간 전체에 울렸다. 진혁은 멈춰 서서 검을 천천히 내렸다.
"연산의 산물?"
진혁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씁쓸하게 웃었다.
"착각하지 마라. 너희는 나라는 그릇을 만들었을지 몰라도, 그 그릇 속에 담긴 독(毒)까지 설계한 건 아니다."
진혁의 눈동자가 다시금 붉게 타올랐다. [만법귀마]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에덴의 중앙 서버에 연결된 모든 생체 코어의 에너지가 진혁의 몸으로 역류했다. 관리자가 경악하며 데이터를 차단하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이게 바로 너희들이 감히 넘보지 못한, 인간의 의지라는 거다."
진혁이 검을 바닥에 박아 넣었다.
'쿠우웅-!'
전 에덴이 요동쳤다. 관리자의 형상이 지직거리며 붕괴하기 시작했다. 진혁은 에덴의 핵심 서버를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단순히 적을 베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세계를 지배하던 인과율 자체를 끊어내고 있었다.
"이걸로 끝이다."
진혁의 검 끝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에덴의 하늘을 시커멓게 물들였다. 신들이 세운 낙원 위에, 오직 진혁만이 군림하는 파멸의 구름이 드리웠다. 관리자의 마지막 비명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압도적인 마기가 그곳을 완전히 삼켜버렸다.
진혁은 묵묵히 그 붕괴의 중심을 응시했다. 1,000년의 설계가, 그리고 티타늄 그룹의 오만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하고 있었다.
이제, 진짜 천마의 시대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