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화 기갑대대의 궤멸
붉은 노을이 내려앉은 신서울의 폐허 위로, 차가운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강진혁의 발밑, 대지는 이미 뇌전의 마기가 휩쓸고 지나간 자국으로 갈라져 있었다. 데이터의 총체였던 '가짜 천마'를 베어 넘긴 후, 시스템의 HUD는 완전히 침묵했다. 더 이상 인공지능의 차가운 음성도, 정교한 타격 궤적을 제시하는 보조 선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의지뿐.
그것은 진정한 자유이자, 거대한 고독이었다.
"나타나라."
진혁의 흑안이 서쪽 능선을 향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굉음을 내는 거대한 기계 군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티타늄 그룹의 마지막 보루라 불리는 제3기갑대대. 10대의 중장갑 전차 ‘티탄-IV’와 20기의 무인 자율 포탑 ‘센티넬’이 대지를 진동시키며 진혁을 포위해 들어왔다.
[타겟 확인. 실험체 07호, 강진혁.]
[제거 프로토콜 가동. 화력 집중.]
기계적인 음성이 전장을 메웠다. 기갑대대의 주포가 일제히 푸른 플라즈마 빛을 뿜어내며 진혁의 공간을 조준했다. 수만 MW의 출력을 쏟아낼 준비를 마친 병기들의 살의가 피부를 찔렀다.
하지만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가볍게 보법을 밟았다. [마영신보]. 칠흑의 잔상이 파편처럼 흩어졌다.
"계산 따위로 나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나."
진혁의 손끝에서 뇌전과 마기가 융합된 검풍이 일렁였다.
쿠구구구!
전신을 두른 [뇌전마강]이 공기를 태우며 팽창했다. 초당 300m. 인간의 물리적 한계를 아득히 넘어선 속도로 진혁의 몸이 기갑대대의 한가운데로 파고들었다.
전술 AI의 예측 궤적은 진혁의 잔상을 쫓기에 급급했다. 0.001초 단위로 수정되는 조준점은 진혁의 움직임을 단 한 번도 따라잡지 못했다.
"첫 번째."
진혁의 검이 호를 그렸다.
챙강-!
강철보다 단단한 티탄-IV의 전면 장갑이 종이장처럼 갈라졌다. 검 끝에서 터져 나온 고주파 마검강이 전차의 내부 핵융합로를 직격했다.
콰광-!
불기둥이 솟구치며 기갑대대의 선봉이 순식간에 불덩이가 되어 굴러다녔다. 멈추지 않는 돌진. 진혁은 뇌전의 궤적을 그리며 좁은 전장 사이를 뱀처럼 유영했다. 두 동강 난 무인 포탑들이 굉음과 함께 지면으로 곤두박질쳤다.
[경고! 예측 불가한 궤적. 탄도 보정값 오류!]
[대대장 명령: 전 구역 광역 포격 개시!]
기갑대대의 남은 병력들이 진혁을 향해 무차별적인 포탄을 쏟아냈다. 대지 전체가 함몰될 듯한 폭음이 이어졌지만, 진혁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만법귀마(萬法歸魔) - 파동 반사.]
그가 왼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허공에 칠흑의 장막이 펼쳐졌다. 쏟아지던 플라즈마탄들이 진혁의 의념에 닿는 순간, 그 궤적을 비틀어버렸다.
펑! 펑! 쾅!
반사된 포탄들이 아군이었던 센티넬 포탑들을 박살 냈다. 기갑대대는 자멸했다. 진혁은 그 혼란을 틈타 대대장의 지휘차량 위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지휘차량의 해치가 열리고, 강화 사이보그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이미 늦었다. 진혁의 손에 들린 검이 붉은 궤적을 남기며 그들의 사지를 분해했다.
"티타늄의 시대는 끝났다."
진혁의 검이 지휘차량의 관제탑을 관통했다.
지직, 지지직.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거대했던 기갑대대가 고철 덩어리로 변해 연기를 뿜어냈다. 진혁은 숨 한 번 고르지 않고, 타오르는 고철 속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에너지들을 응시했다.
파괴된 포탑과 장갑차의 코어들이 과부하를 일으키며 붉은빛을 발하고 있었다. 저것들을 흡수하면, 자신의 단전 출력은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이다.
그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흡원천공(吸元天功) - 개량.]
칠흑의 소용돌이가 대지를 덮쳤다.
전장에서 흩어지는 12개의 초고압 전력 코어 에너지가 진혁의 손바닥을 통해 몸 안으로 쇄도했다. 온몸의 혈관이 터질 듯한 팽창감을 느꼈다.
우웅-!
심장 근처의 기혈이 비명을 지르며 끓어올랐다. 단전 속에서 거대한 마기가 소용돌이치며 압축되기 시작했다.
단전 출력: 65,000 MW…… 72,000 MW…… 78,000 MW…….
출력이 미친 듯이 치솟았다.
'이 정도인가.'
하지만 부족했다. 아직 갈증이 느껴졌다. 진혁은 눈을 감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시스템의 도움 없이, 오직 자신의 기혈 흐름만을 따라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그때였다.
[SYSTEM INFO: 경고. 단전 출력 80,000 MW 돌파.]
[3단계 천마현신(天魔現身) 적합도 60% 진입.]
침묵하던 시스템창이 홀로그램이 아닌, 진혁의 의식 내부에서 직접적으로 타올랐다. 그것은 더 이상 외부의 간섭이 아니었다. 진혁 스스로가 만들어낸 정보 창이었다.
심장을 감싸고 있던 봉인이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균열을 일으켰다.
그 틈새로 1,000년 전 천마의 의념이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아직 끝이 아니야.'
저 멀리, 신서울의 심장부에서 또 다른 거대한 에너지가 태동하고 있었다. 진혁은 무너진 기갑대대의 잔해 위에서 고개를 들어 북쪽 하늘을 보았다.
그곳에, 진정한 괴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진혁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부러져 가는 천마검을 고쳐 쥐었다.
이제, 진짜 천마(天魔)의 길을 걸을 시간이었다.
그가 다시 한 번 대지를 박차고 솟구쳤다.
칠흑의 뇌전이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새로운 전설을 향해 날아갔다.
진혁의 몸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대기 중의 입자들이 마기에 눌려 비명을 질렀다. 80,000 MW를 상회하는 압도적인 에너지가 그의 혈관을 타고 흐르며, 세포 하나하나를 고밀도의 기계적 연금술로 재구성하고 있었다. 이제 그는 단순한 인간도, 개조된 병기도 아니었다. 기술의 정점과 무도의 극의가 충돌하여 빚어낸, 살아있는 재앙 그 자체였다.
신서울의 상층부, 소위 ‘천상의 정원’이라 불리는 구역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곳은 일반 시민의 접근이 엄격히 통제된 티타늄 그룹의 성역. 진혁은 망설임 없이 천상관문의 에너지 장막을 향해 뇌전의 검을 내리꽂았다.
콰아아아아아!
보라색 뇌전이 장막을 집어삼켰다. 방어막을 형성하던 양자 증폭기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하며 눈부신 섬광을 뿜어냈다.
[침입자 감지! 등급: 재난급(SS).]
[전 병력, 요격 태세 전환!]
성벽 위에서 수백 명의 블랙 가드가 일제히 사격 자세를 취했다. 그들이 든 것은 일반적인 화기가 아니었다. 티타늄 그룹이 야심 차게 개발한 ‘차원 분해 소총’. 생체 코어를 직접적으로 타격하여 세포 구조를 붕괴시키는 악마의 무기였다.
수천 발의 광선이 쏟아졌다. 진혁은 공중에서 몸을 비틀었다. [마영신보]의 극의, ‘귀영(鬼影)’이 발동했다. 수십 개의 잔상이 허공을 가득 채웠고, 적들은 어느 것이 진짜 진혁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허공에 총탄을 낭비했다.
"너무 느리다."
진혁이 가장 앞줄에 선 블랙 가드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서걱-
검이 지나간 자리에는 피 대신 붉은 섬광만이 남았다. 분해된 장갑차의 코어 파편들이 진혁의 의지에 반응하여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만법귀마]의 응용. 그는 주변의 모든 파편을 일종의 ‘투사체’로 변환시켰다.
"가라."
손가락을 튕기자, 수백 개의 금속 파편이 레일건의 탄환처럼 가속하며 블랙 가드들을 관통했다. 비명조차 지를 틈이 없었다. 정예라 불리던 블랙 가드들이 마치 갈대처럼 쓰러졌다.
성문을 돌파한 진혁의 눈앞에 거대한 홀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티타늄 그룹의 실권자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그들의 눈앞에는 신서울 전역의 생체 코어 로그가 실시간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진혁이 들어서는 것을 본 이사 중 한 명이 떨리는 손으로 통신 버튼을 눌렀다.
"실험체 07호… 아니, 강진혁! 네가 여기서 뭘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이건 자본과 질서의 파멸이야!"
진혁은 피 묻은 검을 바닥에 끌며 천천히 다가갔다. 그의 발자국마다 검은 마기가 낙인처럼 새겨졌다.
"질서? 너희가 만든 건 질서가 아니라 사육장이었다."
"우리는 인류를 진화시키려 했다! 천마의 데이터로 인간의 한계를 넓히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이사들의 광기 어린 외침에 진혁은 코웃음을 쳤다. 그들의 진화는 오직 자본의 증식과 지배를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진혁은 이사들의 머리 위로 검을 겨누었다.
"그럼 너희가 그 진화의 표본이 되어라."
그가 검을 휘두르려는 찰나, 이사들의 뒤편 벽면이 거대하게 개방되었다.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압도적인 생체 에너지. 그것은 지금까지의 병기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1,000년 전 천마의 혈액을 추출하여 배양한 ‘신마(神魔) 합성 코어’가 이식된, 진정한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진혁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눈동자에는 자아가 없었다. 오직 명령만을 수행하는 비어 있는 그릇.
[최종 방어 기제, '천마의 그림자' 가동.]
그것이 입을 열자, 진혁의 뇌리 속에 기괴한 울림이 울렸다.
‘내 껍데기를 쓴 아류여.’
그것은 진무극이 남긴 마지막 반전이었다. 진혁이 시스템을 파괴할 것을 예상하고, 미리 준비해 둔 ‘진짜 1,000년 전 천마’의 데이터를 덧씌운 괴물. 그것은 진혁의 모든 무공과 기술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카운터할 수 있는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분석 완료. 뇌전마강의 공진 주파수 산출.]
괴물이 진혁과 똑같은 자세로 검을 쥐었다. 그 모습은 거울을 보는 듯했다.
챙-!
두 검이 맞부딪혔다. 엄청난 충격파가 홀 내부의 강화 유리를 모조리 깨뜨렸다. 괴물의 검에서는 진혁의 뇌전보다 더 정교한, 푸른빛의 고주파 진동이 뿜어져 나왔다.
"분석해 보아라. 내 의지까지 훔칠 수 있는지."
진혁의 눈빛이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더 이상 뇌전이나 물리적 연산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독고운에게서 배운 ‘심법(心法)’의 근원을 자극했다.
기술은 데이터로 복제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술을 휘두르는 ‘의념’은 오직 스스로 벼려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진혁은 검을 버렸다.
모두가 놀라 눈을 크게 떴을 때, 그의 손에 칠흑 같은 마기가 응집되기 시작했다. [만법귀마 - 멸(滅)].
"내 근원은 코어가 아니다. 고통 속에서 벼려낸, 나 자신의 진리다."
진혁의 손바닥이 괴물의 가슴팍을 향해 쇄도했다. 괴물은 방어막을 생성하려 했으나, 진혁의 마기는 방어막의 물리적 법칙을 무시하고 직접 괴물의 코어를 옥죄었다.
콰득!
괴물의 가슴 속에서 생체 코어가 비명을 지르며 찌그러졌다.
"데이터는 부서질 뿐이다."
진혁의 마기가 괴물의 내부 회로를 타고 들어가 1,000년 전의 낡은 데이터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괴물은 단 한 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바스라지는 모래처럼 흩어졌다.
이사들은 공포에 질려 바닥을 기었다. 이제 신서울의 상층부에서 그들을 지켜줄 방패는 없었다.
진혁은 흩어지는 괴물의 잔해 속에서 반짝이는 작은 데이터 칩 하나를 낚아챘다. 그것은 진무극이 남긴 마지막 비밀이자, 1,000년 전 천마가 죽기 전 남긴 마지막 유언이 담긴 기록이었다.
칩을 손에 쥐자, 진혁의 눈앞에 환영이 보였다. 1,000년 전, 마교의 정점에서 세상을 멸하려 했던 천마의 모습. 그리고 그가 왜 이토록 잔인한 유산을 남겨야 했는지에 대한 진실.
그것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었다. 인간이라는 종(種)이 가진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피 묻은 비원(悲願)이었다.
"이제 모든 것이 명확해졌군."
진혁은 칩을 부수어 버렸다. 이제 데이터 따위는 필요 없었다. 그는 자신의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코어의 출력은 이제 95,000 MW를 넘어 100,000 MW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SYSTEM: 적합도 100%. 천마의 계승자 조건 달성.]
마지막 메시지가 떴다. 하지만 진혁은 그 시스템마저 완전히 지워버렸다. 그의 의식 속에서 시스템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그가 완성한 ‘신천마신공’만이 단전의 핵심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진혁은 홀을 걸어 나왔다. 창밖으로는 신서울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가 파괴한 타워들이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처럼 터지고 있었다.
그때, 윤아영의 통신이 빗발쳤다.
[진혁! 상층부 제어권은 잡았는데… 북쪽, 북쪽 구역에서 이상 신호가 잡혀! 이건 티타늄의 기술이 아니야. 무언가 거대한 게 깨어나고 있어!]
진혁은 고개를 들어 북쪽 하늘을 보았다. 아까 전 기갑대대를 전멸시킬 때 느꼈던 그 불길한 예감.
그것은 단순한 기계의 폭주가 아니었다. 1,000년 전, 천마의 본체조차 두려워하여 봉인했다던 ‘그것’이, 진혁이 시스템의 고삐를 끊어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신서울의 땅 밑을 파고들고 있었다.
"윤아영, 신서울의 전 전력을 나에게로 집중해라."
[뭐? 지금 출력을 더 높이겠다고? 그럼 네 육체가 버티지 못할 거야!]
"버티는 게 아니다."
진혁이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렸다.
"이 도시를 덮친 어둠을, 내가 직접 찢어버릴 뿐이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신서울 전체를 감쌌다. 10만 MW가 넘는 출력이 도시의 모든 전력망을 타고 진혁의 단전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것은 고통을 넘어선, 신에 도달하는 과정이었다.
하늘이 갈라졌다. 구름 사이로 칠흑 같은 번개가 쏟아지며 신서울의 밤을 낮처럼 밝게 비췄다. 지상에 남은 생존자들은 그 모습을 보며 전율했다.
그것은 더 이상 복수자가 아니었다.
역사 속에서 잊혔던, 그러나 반드시 돌아와야만 했던 진짜 마왕의 강림이었다.
쿠우우웅-!
신서울의 심장부가 진혁의 발길질 한 번에 뒤흔들렸다. 그의 앞길을 막아서는 모든 장벽이, 마기와 뇌전이 융합된 참격 한 번에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이제, 마지막 장을 닫을 시간이었다.
진혁은 신서울의 정점, 가장 어두운 곳에 도사린 고대 마교의 심장을 향해 칠흑의 뇌전이 되어 추락했다.
지옥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