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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127화목차

제127화 <검 끝에 맺힌 진실>

지하 2,000층의 공기는 무거웠다. 썩은 기름 냄새와 고대 마교의 잔해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뒤섞여, 이곳은 그야말로 지옥의 입구와 다름없었다.

강진혁은 숨을 골랐다.

초대 천마의 의념이 남긴 압도적인 살기는 물리적 중압감을 넘어, 진혁의 나노머신 회로를 미세하게 진동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긴장도 잠시, 요란한 기계음과 함께 거대한 강철 문이 찢겨 나가며 후사대 병력들이 들이닥쳤다.

"타겟 확인! 프로토콜 07호, 즉각 사살한다!"

무장한 특수전 후사대 대원들이 일제히 화력을 집중했다. 붉은 레이저 조준선이 진혁의 전신을 훑었다. 하지만 진혁의 눈은 이미 그들의 궤적을 읽고 있었다.

[SYSTEM: 전술 예측 보조 기능 비활성화.]

[SYSTEM: 사용자의 의념이 시스템의 연산을 상회합니다.]

HUD가 꺼진 시야 속에서도 진혁의 감각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는 발을 구르는 대신, 공간을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마영신보(魔影神步). 칠흑의 잔상이 겹쳐지며 진혁의 몸이 대원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검이 춤을 추었다.

강철이 베이는 소리보다 더 빠르게, 후사대 대원들의 아머가 반으로 갈라졌다. 비명도 채 지르기 전이었다. 단전 출력 125,000 MW의 마기가 검 끝에 응축되어, 닿는 모든 것을 입자 단위로 분해했다.

"겨우 이 정도인가."

진혁이 검을 거두며 냉소했다. 그 순간, 파편들 사이로 은색 수트를 입은 여인이 튀어 올랐다. 진세린이었다. 그녀의 양손에는 초고압 입자 도검이 푸른 빛을 내뿜고 있었다.

"강진혁! 네놈이 여기까지 온 건 예상했다만, 너무 무모해!"

진세린의 도검이 굉음을 내며 진혁의 머리를 노렸다. 진혁은 가볍게 검을 들어 그 공격을 쳐냈다. 챙-! 하는 금속음과 함께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얽혔다.

"진세린. 아버지가 시킨 일이겠지."

"닥쳐! 넌 그저 버려진 실험체일 뿐이야. 내가 여기서 끝내주지!"

진세린의 공격은 매서웠다. 그녀의 검격은 정교했고, 군용 코어의 출력을 십분 활용해 파괴적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알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의 검이 지나가는 궤적이, 진혁의 급소를 아슬아슬하게 빗겨가고 있다는 것을.

'의도적인 궤적이다.'

진세린의 검이 진혁의 왼쪽 어깨를 스치듯 지나갈 때, 그녀의 손목에 내장된 소형 데이터 포트가 진혁의 넥 커넥터에 닿았다. 찰나의 접촉. 진세린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받아. 이게 네가 그토록 알고 싶어 했던 '진실'의 파편이야."

데이터가 진혁의 뇌내로 흘러들어왔다. 순식간에 시야가 일렁였다.

[데이터 동기화 완료.]

[진무극 회장 개인 암호화 로그 분석 중...]

진세린의 검이 다시금 진혁을 몰아붙였다. 그녀는 소리를 높여 대원들이 듣게끔 연기했다.

"이게 네 실력이냐! 고작 그 정도 마기로는 내 아버지를 넘볼 수 없어!"

진혁은 그녀의 연기에 맞춰 검을 휘두르며 밀서를 분석했다. 뇌 속에서 펼쳐진 정보는 잔혹했다. 티타늄 그룹 중앙 타워 지하 생체 융합로. 그곳에는 1호부터 6호까지, 실패작이라 치부되었던 형제들의 시신과 온전한 코어들이 기계 장치와 강제로 융합되어 있었다. 진무극은 그들의 고통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완벽한 '신천마'의 그릇을 주조하려 했던 것이다.

진혁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탐욕. 그 단어조차 부족한 진무극의 뒤틀린 광기가 뇌리를 강타했다.

"세린, 진무극은 너조차 소모품으로 보고 있어."

진혁이 낮게 읊조리며 검을 크게 휘둘러 진세린을 밀어냈다. 진세린은 뒤로 물러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알고 있어. 하지만 난 그자의 딸이니까. 내가 내 손으로 이 지옥을 끝내야 해."

"그렇다면 길을 비켜라. 내 칼날은 그 노인네의 심장을 향할 테니까."

진세린은 대답 대신 자신의 입자 도검을 땅에 꽂았다. 그리고 후사대를 향해 차갑게 명령했다.

"모두 물러나라. 이놈은 내가 직접 처리한다. 누구도 방해하지 마!"

대원들이 주저하는 사이, 진혁은 다시금 마영신보를 전개했다. 그는 진세린의 곁을 지나쳐 지하 2,000층의 더 깊은 심연, 초대 천마의 의념이 기다리는 곳으로 질주했다.

뒤에서 진세린의 고함이 들려왔다.

"진혁! 그 안에는 함정이 있어! 아버지가 이미 1,000년 전의 그 유골 데이터를 변조해 뒀다고!"

함정.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진혁은 지하 심부의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곳에선 붉은 안개가 소용돌이치고 있었고, 그 중심에 1,000년 전 천마의 형상을 한 거대한 의념이 서서히 눈을 뜨고 있었다.

[기다렸다. 나의, 그리고... 나의 또 다른 파편이여.]

의념이 뿜어내는 마기가 현실의 공간을 일그러뜨렸다. 단순한 환각이 아니었다. 주위의 중력장이 비틀리며 진혁의 몸을 짓눌렀다.

'이것이 진정한 마공의 본질인가.'

진혁은 숨을 들이켰다. 단전 속의 125,000 MW의 에너지가 요동쳤다.

그는 천마검을 쥐고, 초대 천마를 향해 겨누었다.

"그릇 따위가 아니다. 나는... 강진혁이다."

검 끝에서 칠흑 같은 뇌전이 튀어 올랐다.

지하 2,000층의 공간이 진동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찰나, 진혁은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의념을 향해 마영신보(極)를 전개하며 수직으로 도약했다.

그때였다.

초대 천마의 의념이 입을 열었다.

[그릇을 깨부수려 하는가? 그렇다면 네놈의 영혼마저 그 대가로 지불해야 할 것이다.]

검과 검이 충돌했다.

폭발적인 마기가 지하 공간을 뒤흔들며, 천장에서 거대한 암석들이 무너져 내렸다. 진혁의 온몸에 붉은 핏줄이 터져 나왔다. 출력의 한계치가 다시금 위협받고 있었다.

하지만 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진세린에게 받은 밀서의 내용을 뇌리에 각인하며, 모든 마기를 검 끝으로 집중시켰다.

'이건 단순히 기술의 충돌이 아니다. 진무극이 만들어 놓은 가짜 신화와, 내가 직접 쌓아 올린 무도(武道)의 진검승부다.'

진혁의 검이 초대 천마의 의념을 파고들었다. 마기가 섞인 뇌전이 붉은 안개를 찢어발겼다. 그 순간, 진혁의 시야 한구석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Warning: 생체 코어 과부하 임박.]

[Warning: 제2의 적합자, 접근 중.]

심장부의 바닥이 갈라지며, 진무극이 숨겨두었던 또 다른 '최종 병기'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진혁의 얼굴을 한, 그러나 기계의 차가운 눈을 가진 복제체들의 군단이었다.

진혁은 입가에 피를 닦아내며 웃었다.

"이제야 진짜 파티가 시작되는군."

지하 2,000층의 어둠이 진혁의 마기에 의해 찬란하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의 검이 가리키는 곳은 이제 초대 천마의 의념이 아닌, 그 뒤에 숨어있던 진무극의 비열한 본체였다.

진혁은 발을 박차고 나아갔다.

이 지옥의 끝을 보기 위해.

지하 2,000층의 고요는 일순간 깨졌다.

진혁의 발밑에서 솟구친 마기(魔氣)의 파동이 바닥의 합금판을 종잇장처럼 구겨버렸다.

[SYSTEM: 기혈 역류 주의. 단전 출력 130,000 MW 돌파.]

경고창은 의미를 잃은 지 오래였다. 진혁은 시스템이 제시하는 안정적인 수치를 비웃듯, 기혈을 억지로 비틀어 체내의 나노머신을 강제로 과부하 상태로 몰아넣었다.

쿠구구구!

천장에서 쏟아져 내리는 파편들이 진혁의 검기(劍氣)에 닿는 즉시 가루가 되었다. 초대 천마의 의념이 뿜어내는 붉은 안개가 진혁의 앞을 가로막는 복제체 군단과 융합하기 시작했다. 진무극은 단순히 실패작들의 시신만을 모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뇌세포에 심어둔 연산 알고리즘을 1,000년 전 천마의 의념과 연결해, 물리적 실체를 지닌 '마신병(魔神兵)'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진무극, 네놈은 끝까지 비겁하군."

진혁이 낮게 뇌까렸다. 그가 마영신보를 전개하자, 칠흑의 잔상이 복제체들의 틈새를 유령처럼 파고들었다. 검이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기계와 살점이 뒤섞인 마신병들이 허공에서 폭사했다. 하지만 쓰러진 마신병의 코어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고 곧장 초대 천마의 의념으로 빨려 들어갔다.

[가여운 것. 고작 그 정도의 분노로 나를 넘어서려 하느냐?]

초대 천마의 의념이 진혁의 귓가에 속삭였다. 동시에 거대한 중력장이 진혁의 어깨를 짓눌렀다. 뼈가 비명을 질렀다. 나노머신이 급격하게 찢겨 나간 근육을 재구성했지만, 소모되는 에너지의 속도가 회복 속도를 훨씬 앞질렀다.

진혁은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짓눌리는 중력을 역이용해 발을 깊숙이 박았다.

'흡원천공(吸元天功) - 반전(反轉).'

진혁의 단전이 블랙홀처럼 요동쳤다. 밖으로 마기를 뿜어내는 대신, 외부의 중력장과 마신병들이 내뿜는 에너지를 강제로 자신의 혈관으로 끌어들였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에너지가 폭발할 듯 뜨거웠다. 마기가 나노머신과 결합하며 붉은 뇌전이 되어 진혁의 전신을 휘감았다.

"너는 1,000년 전의 낡은 그림자일 뿐이다!"

진혁이 포효하며 검을 위로 치켜들었다.

[뇌전마강(雷電魔剛) - 개(改): 천마참(天魔斬)]

칠흑과 푸른 빛이 뒤섞인 거대한 검기가 지하 공간의 천장을 뚫고 지상까지 닿을 듯 솟구쳤다. 공간 자체가 비명처럼 일그러졌다. 초대 천마의 의념이 짓고 있던 조소 섞인 미소가 일순간 경악으로 바뀌었다. 그 검기는 단순히 물리적인 힘이 아니었다. 진혁이 슬럼가에서, 니르바나의 동료들과, 그리고 진세린과의 사투 속에서 직접 깨달아온 '인간의 의지'가 집약된 일격이었다.

콰아아앙-!

지하 2,000층의 바닥이 거대한 구멍으로 변했다. 마신병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검기의 여파에 휩쓸려 소멸했다. 초대 천마의 의념조차 그 찬란한 뇌전에 찢겨 나가며 희미해져 갔다.

연기가 걷히자, 진혁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서 있었다. 검 끝에서는 여전히 타닥거리는 잔류 뇌전이 춤을 추고 있었다.

[SYSTEM: 단전 출력 145,000 MW. 육체 내구도 62% 하락.]

"끝인가?"

진혁이 차갑게 물었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대신, 지하 공간 저 멀리서 진무극의 비열한 웃음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훌륭하다, 07호. 아니, 이제는 '천마'라고 불러야 하나?

공간 전체가 진동하며, 벽면의 금속 타일들이 수납장처럼 열렸다. 그 안에서 기계 장치와 융합된 무언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진무극 본인의 모습을 한, 전신이 초합금으로 도배된 안드로이드였다.

- 네가 부순 것은 고작 데이터의 파편일 뿐이다. 진정한 시험은 이제부터다. 내 연구소의 모든 자원을 소모해 완성한, 신서울 그 자체를 제어할 수 있는 '신마(神魔) 알고리즘'이 네놈의 단전으로 옮겨갈 것이다.

진혁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말이 많군. 네놈의 심장도 내 검 끝에서 같은 소리를 낼지 궁금하군."

진혁은 망설임 없이 바닥을 박차고 나아갔다. 진무극의 안드로이드는 양손에서 플라즈마포를 전개하며 진혁을 향해 포격을 퍼부었다.

진혁은 검을 휘둘러 빔을 쳐내며, 마영신보를 최대로 전개했다.

'지금 내 출력이라면, 저 놈의 제어 코어를 단숨에 꿰뚫을 수 있다.'

하지만 진무극의 안드로이드는 만만치 않았다. 그것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진혁이 지금까지 싸워온 모든 강적들의 데이터가 입력되어 있었다. 바르바토스의 중력 제어, 제프로스의 괴력, 백무현의 방어 알고리즘까지. 진혁의 공격 궤적을 예측하듯, 안드로이드는 완벽한 방어와 반격을 수행했다.

챙! 챙! 챙!

강철과 강철이 부딪칠 때마다 불꽃이 튀었다. 진혁의 몸 곳곳에 상처가 깊어졌다. 하지만 진혁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기계적인 데이터의 연산. 그것이 진무극의 한계였다.

"네 놈은 단 한 가지를 모른다."

진혁이 안드로이드의 플라즈마포를 몸으로 받아내며, 검을 안드로이드의 가슴팍, 생체 코어가 박힌 부위에 꽂아 넣었다. 안드로이드가 경악하듯 뒤로 물러섰지만, 진혁은 검을 뽑지 않았다.

"무공은 데이터가 아니라, 살기(殺氣)라는 것을."

진혁의 손등에서 붉은 핏줄이 솟구쳤다. 흡원천공이 발동했다. 안드로이드의 생체 코어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에너지가 진혁의 손을 타고 역류하기 시작했다.

- 아니, 멈춰! 그 출력은 네 육체가 견딜 수 없어!

진무극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진혁의 육체가 팽창하기 시작했다. 출력은 150,000 MW, 160,000 MW를 넘어섰다. 피부가 찢어지고 뼈가 비명을 질렀지만, 진혁은 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Warning: 육체 붕괴 위험도 98%.]

"죽어서도 내 발밑을 기어라."

진혁이 검을 비틀었다. 안드로이드의 가슴팍에서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진무극의 제어 코어가 분쇄되었다.

쿠구구구-!

지하 2,000층 전체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진혁은 폭발하는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신서울의 지상을 향해 수직으로 도약했다.

그의 눈앞에는 이제 티타늄 그룹의 본사, 아폴론의 요새가 거대한 성채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이제, 이 도시의 밤을 끝낼 시간이었다.

진혁의 등 뒤로 칠흑 같은 마기가 날개처럼 펼쳐졌다. 신서울의 모든 전력이 그의 존재 앞에 떨고 있었다.

'이것이... 내가 완성한 천마(天魔)다.'

진혁은 요새의 정문을 향해, 그 어떤 방벽도 뚫어버릴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때, 요새 상층부에서 거대한 붉은 눈이 진혁을 응시하며 열리기 시작했다. 아폴론의 심장이, 최종 단계로 진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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