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폐기장에서 눈을 뜨다
차가웠다.
감각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방이 어두웠고, 귓가를 울리는 것은 오직 규칙적인 기계음뿐이었다.
삐─, 삐─, 삐.
심장의 박동이 아니다. 그것은 티타늄 그룹의 생체 폐기물 소각로로 향하는 컨베이어 벨트가 내지르는 쇳소리였다.
‘……여긴가.’
강진혁(姜振赫)의 흑안이 서서히 떠올랐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시야의 구석구석이 희미하게 푸른 빛을 발산했다. 목과 손목을 따라, 은빛으로 뒤틀린 회로 선이 마치 뱀의 비늘처럼 피부 밑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티타늄 그룹의 불법 생체 실험체, ‘07호’.
그것이 지난 삼 년간 그가 가졌던 유일한 이름이자 낙인이었다.
―샤아아악.
머리 위에서 고열의 레이저 소각기가 뿜어내는 가쁜 숨소리가 들렸다.
가슴께가 뻐근했다. 아니, 정확히는 가슴이 있어야 할 자리가 뻥 뚫려 있었다. 티타늄 그룹의 수석 연구원 이현도의 명령으로, 그의 단전에 이식되어 있던 3세대 생체 코어가 강제로 적출되었기 때문이다.
코어가 없는 인간은 폐기물에 불과하다. 심장의 보조 동력이 사라진 육체는 단 몇 분 만에 세포가 괴사하여 죽음에 이르게 된다.
‘버려졌군.’
가장 가치 있는 실험체로 칭송받던 날들도 있었다. 고대 마교의 유적에서 발굴된 천마의 유골 데이터, 그리고 그 파편을 인간의 육체에 이식해 부활시키겠다는 미친 프로젝트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
하지만 실험은 실패로 규정되었고, 진무극 회장의 최종 테스트를 앞둔 시점에서 그는 단지 ‘결함품’이라는 이유로 이 불타는 쓰레기장으로 사출되었다.
스으윽.
“……처리 완료된 거 맞나?”
저만치서 철제 군화 소리가 들렸다.
티타늄 그룹의 최정예 처형 부대, ‘블랙 가드’의 하급 집행관들이었다. 그들의 전신을 감싼 2세대 전투용 나노마갑이 어둠 속에서 붉은 적외선 불빛을 번뜩였다.
“회장님 명령이야. 07호의 뇌 조직에 남아있는 마공 데이터 파편까지 완벽하게 소각하라고 하셨어. 완벽하게 파괴됐는지 확인해.”
“쳇, 성가시네. 이미 코어가 뽑혔는데 살아있을 리가 있나. 심장 박동 수도 제로라고.”
집행관 두 명이 컨베이어 벨트 위로 올라섰다.
그들의 손에 들린 고주파 진동검이 서늘한 은빛 광채를 뿜어냈다. 진혁은 눈을 감은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살고자 하는 집념 따위는 이미 오래전에 마모되었다. 하지만 이대로 개죽음을 당하기엔, 그들이 내뱉는 숨소리조차 역겨웠다.
툭.
집행관 한 명이 진혁의 머리채를 거칠게 움켜잡았다.
“쯧, 불쌍한 새끼. 차라리 태어날 때부터 슬럼가 밑바닥에서 굶어 죽는 게 나았을 것을.”
비웃음 섞인 음성이 머리 위에서 떨어졌다.
그 순간.
[SYSTEM INFO: 생체 신호 정지 임계점 돌파.]
[경고: 심실 부근의 잔류 에너지 코드가 이상 반응을 보입니다.]
[고대 마공 데이터 ‘천마 프로토콜(Heavenly Demon Protocol)’의 비상 백업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찌릿─!
뇌저를 후벼 파는 듯한 극심한 두통과 함께, 진혁의 시야가 완전히 뒤집혔다.
머릿속의 시냅스가 타오르는 듯한 고통 속에서, 기계적인 음성이 냉혹하게 뇌리에 박혔다.
[프로토콜 가동률: 3%.]
[사용자 육체의 손상률: 94.2%.]
[생존을 위한 비상 조치를 실행합니다. 대상의 생체 에너지를 강탈하십시오.]
‘……그래.’
진혁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입가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의 흑안은 더 이상 죽은 자의 눈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옥 끝에서 기어 올라온 짐승의 그것이었다.
“뭐야? 이 새끼…… 눈을 떴어?!”
머리채를 잡고 있던 집행관의 얼굴에 경악이 스쳤다.
그가 반사적으로 고주파 진동검을 진혁의 심장 부근으로 내리꽂으려 했다.
“이 미친 게─!”
콰득!
“크아악?!”
빛의 속도였다.
죽어 마땅했던 실험체의 팔이 쇳소리를 내며 튀어 올랐다. 진혁의 손이 집행관의 목덜미를 철근처럼 움켜쥐었다.
나노머신과 결합된 인공근육이 폭발적인 출력을 내뿜으며 집행관의 방어 나노마갑을 종잇장처럼 짓눌렀다.
[고대 마공: ‘흡원천공(吸元天功)’을 프로토콜 연산으로 재구성합니다.]
[대상의 1세대 생체 코어 에너지 및 나노머신 회로를 강탈합니다.]
우드득, 파직!
“커…… 컥! 컥! 이, 이게 뭐……!”
집행관의 목에서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의 목덜미와 진혁의 손바닥이 맞닿은 부위에서 시뻘건 화염 같은 마기(魔氣)와 푸른색 전기 스파크가 동시에 튀었다.
집행관의 단전에 박혀 있던 생체 코어의 출력이 강제로 역류하기 시작했다. 윙윙거리며 돌던 코어의 터빈이 진혁의 손바닥을 통해 빨려 들어가는 에너지에 의해 찢겨 나갔다.
[에너지 흡수율: 12%…… 45%…… 89%.]
[목표의 1세대 생체 코어 출력이 흡수되었습니다. (출력: 1,800 MW)]
[파손된 심실 조직과 신경계가 고속 재구성됩니다.]
“흐으…….”
진혁의 입술 사이로 뜨거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터져 나가 있던 심장 주변의 근육과 혈관들이 푸른빛을 띠며 악착같이 얽혀들었다. 멈춰 있던 심장이, 쿵- 하고 거대한 대지를 울리듯 다시 뛰기 시작했다.
단전의 공백이 채워지며 온몸을 타고 도는 피가 펄펄 끓어올랐다.
“리, 리더스트! 저새끼가 사령관님 부하를……!”
나머지 한 명의 집행관이 경악하며 총구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퍼버벅!
진혁의 발이 컨베이어 벨트를 박차고 나갔다.
마광신보(魔光身影)의 초보적인 궤적이 공중에 잔상을 남겼다. 인간의 반응 속도를 아득히 초월한 기동력이었다.
집행관이 방패를 들어 올리기도 전에, 진혁의 손바닥이 그의 안면을 그대로 찍어 눌렀다.
콰아앙!
철제 바닥이 움푹 파이며 집행관의 투구가 박살 났다.
진혁은 바닥에 처박힌 집행관의 머리통을 발로 짓밟은 채, 차가운 눈으로 소각로의 출입구를 바라보았다.
[SYSTEM INFO: 천마 프로토콜 v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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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용자: 강진혁 (실험체 07호)
■ 경지: 1단계 [마공각성 (魔功覺醒)]
■ 생체 코어 출력: 1,800 MW (흡수 완료)
■ 나노머신 동기화율: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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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 기술]
- 흡원천공(초급) : 대상의 에너지 및 나노 데이터 강탈
- 마광신보(초급) : 단거리 순간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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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를 가득 채운 푸른색 HUD의 글자들이 서서히 안정세를 찾았다.
진혁은 피투성이가 된 손을 주먹쥐었다 폈다.
손끝을 따라 시뻘건 마기와 미세한 나노머신 입자들이 소용돌이치며 흩어졌다.
‘티타늄 그룹.’
3년 동안 자신을 가두고, 인격을 말살하며, 데이터의 부품으로 쓰려 했던 거대 기업의 이름.
진혁의 입가에 짙고도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시작해 주지.”
비상 경보음이 지하 폐기장 전체를 메우기 시작했다.
진혁은 빗물이 들이치는 철제 계단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의 등 뒤로, 불타는 소각로의 불꽃이 밤하늘을 향해 거칠게 솟구치고 있었다.
철제 계단을 오르는 진혁의 발걸음마다 미세한 마기(魔氣)의 파문이 퍼져 나갔다.
끼익, 쾅.
지하 폐기장의 무거운 방폭문이 찢겨 나가듯 열렸다. 쏟아지는 찬바람과 함께 빗방울이 진혁의 젖은 머리칼을 타고 흘러내렸다.
신서울(Neo-Seoul)의 밤.
상층 마천루를 가득 채운 화려한 홀로그램 광고판들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지만, 그 아래에 자리 잡은 하층 슬럼가는 언제나 그렇듯 깊고 탁한 어둠에 묻혀 있었다.
삐비비빅─!
[SYSTEM INFO: 경고. 외부 구역 스캔 결과, 티타늄 그룹의 추적 부대가 접근 중입니다.]
[거리: 300미터 전방. 인원: 특수전 후사대 소속 기계화 보병 1개 분대.]
시야의 구석에 붉은색 경고등이 점멸했다.
진혁은 빗속을 응시하며 차갑게 가라앉은 흑안을 깜빡였다. 머릿속의 천마 프로토콜이 실시간으로 외부의 전력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었다.
‘1개 분대…… 고작 이 정도인가.’
이전이었다면 코어가 적출된 채 1초도 버티지 못하고 스러졌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의 진혁은 달랐다. 방금 전 흡수한 집행관의 1세대 생체 코어 에너지가 단전 구석구석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고, 나노머신은 끊어진 신경망을 완벽하게 재접합했다.
콰앙! 쾅!
저 멀리 하층 슬럼가의 좁아터진 골목길을 가로지르며 군용 장갑차 두 대가 나타났다. 차체 측면에 새겨진 티타늄 그룹의 문양이 은빛으로 번뜩였다.
장갑차의 상부 해치가 열리더니, 전신을 고성능 아머로 무장한 블랙 가드 대원들이 차례로 뛰어내렸다.
“거기 서라! 실험체 07호!”
대장격인 자의 음성이 스피커를 통해 찢어질 듯 울려 퍼졌다. 그들의 손에 들린 플라즈마 소총이 일제히 진혁을 겨눴다. 푸른 총구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의 파장이 빗방울을 증발시키며 하얀 수증기를 만들어냈다.
“폐기된 불량품이 여기까지 기어 나올 줄이야. 지저분한 쥐새끼 같은 놈.”
대원이 차가운 조롱을 내뱉으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하지만 진혁은 도망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쥐새끼?”
진혁의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벌어졌다.
낮게 깔린 목소리는 빗소리를 뚫고 대원들의 귓속에 선명하게 박혀 들었다.
“그 말이 맞군. 너희 같은 버러지들을 갉아먹기 위해 기어 나온 쥐새끼라면.”
“죽여라! 흔적도 없이 태워버려!”
투두두두둥!
플라즈마 소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시공간을 찢는 듯한 고주파음과 함께 수십 발의 에너지 탄환이 진혁을 향해 빗발치듯 날아왔다. 일반 인간은 물론이고 웬만한 2등급 초인조차 형체도 없이 증발할 화력 비였다.
[SYSTEM INFO: 탄막 궤적 분석 완료.]
[마광신보(魔光身影) 및 나노 장갑 경화 연산 개시.]
머릿속에서 설화의 목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진혁의 몸이 기괴할 정도로 유연하게 꺾였다.
슈우우욱!
날아오는 플라즈마 탄환들이 진혁의 잔상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며 뒤쪽의 철제 벽을 녹여버렸다. 폭발적인 가속력. 마광신보를 전개한 진혁의 형체는 마치 한 줄기의 검은 연기처럼 허공을 갈랐다.
“뭐, 뭐야?! 안 맞았어?!”
대원들이 경악하며 총구를 급히 돌렸다.
하지만 이미 눈앞이었다.
퍼억!
“커억!”
가장 선두에 있던 대원의 가슴께에 진혁의 손바닥이 그대로 박혔다.
단순한 육탄전이 아니었다. 손바닥을 감싼 미세한 나노머신들이 고주파 진동과 결합하여 대원의 방어 나노마갑의 결합 구조를 순식간에 분자 단위로 해체해 버렸다.
[흡원천공(吸元天功) 재발동.]
“끄아아아아아아악──!”
대원의 비명이 밤하늘을 찢었다.
방어복 내부의 생체 코어가 과부하를 일으키며 굉음을 냈고, 그 안에 축적되어 있던 푸른색의 생명력과 에너지가 진혁의 손바닥을 타고 역류해 들어왔다.
[생체 코어 에너지 흡수 완료. 출력 2,400 MW 도달.]
[나노머신 동기화율: 58.3%로 상승.]
온몸을 태우는 듯한 쾌감이 척추를 타고 뇌저까지 치솟았다.
진혁의 눈에 시뻘건 마기가 역력하게 서렸다. 단전에서 소용돌이치는 에너지는 이제 단순한 파편이 아니라, 완전한 하나의 ‘기운’으로 응집되기 시작했다.
“괴물…… 저 자식은 괴물이다!”
나머지 대원들이 공포에 질려 후퇴하며 방아쇠를 미친 듯이 난사했다.
하지만 진혁은 눈을 감은 채 그 모든 탄환의 궤적을 머릿속으로 읽어내고 있었다.
챙─!
진혁의 손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대원 하나가 들고 있던 고주파 진동검을 맨손으로 낚아채듯 빼앗았다.
단련된 나노 인공근육과 마기가 응집된 손바닥은 철갑마저 종잇장처럼 우그러뜨렸다.
“기다려라.”
진혁의 흑안이 장갑차 뒤에 숨어 떨고 있는 대장을 향해 꽂혔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니까.”
슈액!
진혁이 차낸 빈 플라즈마 탄창이 음속을 돌파하며 대장의 어깨를 관통했다.
비명조차 지를 새도 없이, 진혁의 형체가 그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스산한 밤비가 내리는 신서울의 하층 슬럼가.
거대 기업 티타늄 그룹이 숨기고자 했던 최악의 실험체가, 마침내 지옥의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SYSTEM INFO: 1단계 '마공각성'의 안정화가 진행됩니다.]
[다음 목표: 슬럼가 외곽의 '천마회' 거점 진입.]
진혁은 피투성이가 된 검을 땅에 끌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등 뒤로, 장갑차의 잔해가 화염에 휩싸이며 거대한 폭발음을 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