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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 천마 · 186화목차

제186화 철옹성의 파멸

하늘을 뒤덮었던 차원 함대의 잔해가 불타는 비처럼 신서울의 상층부를 강타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화염. 그 중심에 선 강진혁의 등 뒤로, 형체 없는 마신(魔神)의 환영이 거대한 팔을 뻗어 잔해를 짓이겨 버렸다.

강진혁의 흑안(黑眼) 속에는 더 이상 시스템의 데이터 로그가 흐르지 않았다. 오직 파괴해야 할 대상과, 그를 얽매던 질서의 붕괴만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을 뿐이었다.

“백무현.”

낮게 울리는 목소리는 허공의 공기를 진동시켰다.

전방, 거대한 마장기갑 ‘아르카나’의 잔해 속에서 흉측한 형상의 사이보그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몸의 절반이 뜯겨나가 내부의 기계 장치와 인공 신경이 불꽃을 튀기며 노출되어 있었다.

백무현. 티타늄 그룹의 블랙 가드 총사령관이자, 강진혁이 기억하는 가장 거대하고 완고했던 통곡의 벽.

“크, 윽…… 기어이, 큭큭…… 기어이 여기까지 왔군. 실험체 07호.”

백무현의 입에서 검붉은 냉각수가 쏟아져 나왔다. 그는 자신의 가슴팍에 박힌 메인 코어, 그곳에 흐르는 강렬한 붉은빛의 자폭 회로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기계적인 신경망이 과부하로 비명을 질렀다.

“시스템은 명령했다. 네놈을 처리하라고. 네놈의 그 오만한 마공이 회장님의 완벽한 그릇을 망치기 전에……!”

백무현의 눈에서 과열된 붉은 레이저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자신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나노머신을 역류시켰다.

[SYSTEM ALERT: 자폭 모드 가동. 3,500층 마스터 돔 전체를 붕괴시킬 에너지를 방출합니다.]

강진혁의 시야에는 더 이상 푸른색의 HUD가 뜨지 않았다. 대신, 그보다 훨씬 본질적인 것이 보였다. 백무현의 흉부 핵을 중심으로 얽혀 있는 에너지의 흐름. 그 흉측한 뒤틀림.

“명령은 끝났다, 백무현.”

진혁이 한 걸음 내디뎠다.

그 짧은 보폭. 그러나 공간이 굴절되는 듯한 찰나의 이동.

“명령을 내릴 주인은 이미 잿더미가 되었으니까.”

“닥쳐라! 천마를 사칭하는 괴물 새끼!”

백무현이 절규하며 아르카나의 잔해를 폭발시켰다.

쾅-!

마치 소형 핵탄두가 터진 것과 같은 폭음이 마스터 돔을 뒤흔들었다. 섭씨 수천 도의 플라즈마가 진혁을 집어삼키기 위해 쇄도했다.

그 0.01초의 틈.

백무현의 자폭 회로가 완전히 임계점을 돌파하는 그 찰나의 순간.

강진혁의 오른손에 칠흑 같은 마기(魔氣)가 소용돌이쳤다.

단순한 내공이 아니었다. 시스템이 계산할 수 없는, 오직 스스로의 통찰로 빚어낸 순수한 마의 결정체.

[신천마신공(新天魔神功) 제4식 - 천마뇌신강(天魔雷神剛)]

치직, 치지직-!

푸른 뇌전이 마기와 융합되어 진혁의 손끝에서 형상화되었다. 그것은 현대의 고압 전류가 아니었다. 기혈을 타고 흐르는 마기가 외부의 에너지를 강제로 침식하여 만들어낸, 파멸의 뇌전이었다.

진혁의 손이 화염의 벽을 뚫고 지나갔다.

백무현의 가슴팍, 그 뜨겁게 요동치는 자폭 핵 속으로.

“가장 완벽한 무공은 상대의 힘을 뺏는 게 아니다.”

진혁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상대의 존재 이유를 근본부터 지우는 것이다.”

우두둑-!

백무현의 흉부 장갑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진혁의 손가락이 백무현의 메인 동력원, 그 자폭 회로의 심장부를 관통했다.

“커, 헉……!”

백무현의 눈이 경악으로 뒤집혔다. 그의 몸을 타고 흐르던 붉은 자폭 에너지가 진혁의 손을 통해 역류하기 시작했다.

아니, 역류하는 것이 아니었다.

진혁의 몸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마의 블랙홀이 백무현의 모든 에너지를 억지로 집어삼키고 있었다.

[만법귀마(萬法歸魔)]

백무현의 몸이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했다.

강철보다 단단했던 근육은 가루가 되어 흩어졌고, 나노 회로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마기에 오염되어 잿빛으로 변했다.

“이, 이게…… 무슨……!”

“네놈은 도구로 살다 도구로 죽는구나. 그게 네 무도의 끝이다.”

진혁이 손을 떼었다.

그러자 백무현의 흉부를 관통하고 있던 뇌전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안쪽에서부터 그의 회로를 태워버렸다.

콰아앙-!

외부로 터져 나와야 했을 자폭 에너지가 백무현의 몸 안에서 완벽하게 소멸했다.

잠시 후, 짙은 연기 속에서 백무현의 거대한 몸뚱이가 힘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더 이상 어떠한 기계음도, 시스템의 경고음도 들리지 않았다.

마스터 돔은 완벽한 정적에 휩싸였다.

강진혁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자신의 몸 안에서 요동치는 마기. 시스템의 족쇄 없이, 오직 자신의 의지로만 통제되는 이 힘이 혈관을 타고 뜨겁게 흐르고 있었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진혁은 시선을 들어 타워의 천장을 꿰뚫어 보았다.

신서울이라는 거대한 감옥. 그 너머, 창조주라 자처하며 이 모든 비극을 설계한 저 위를 향해.

그의 등 뒤에 서 있던 마신의 환영이 서서히 진혁의 몸 안으로 흡수되었다.

그것은 이제 환영이 아니었다.

강진혁 그 자신이 곧, 이 세계의 새로운 법칙이자 마신(魔神)이었다.

“윤아영.”

진혁의 부름에 허공에서 홀로그램이 아닌, 실제 통신 채널이 열렸다.

어디선가 덜덜 떨리는 윤아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진, 진혁 씨? 타워의 방어 시스템이…… 전부 꺼졌어요. 백무현의 신호도, 티타늄 그룹의 메인 서버도 전부 죽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진혁은 피 묻은 검을 회수하며 나직이 읊조렸다.

“다 끝냈다. 이제 다음 단계를 준비해.”

- 다음 단계라니요?

진혁의 흑안이 창밖, 구름 너머의 차원 균열을 향했다.

이제 티타늄 그룹은 없다. 하지만 진짜 적은 지금부터다.

“이 세계를 설계한 놈들의 본진을 찾는다.”

진혁의 말에 통신 너머의 정적이 길어졌다. 윤아영은 직감했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 차원이 다른 전쟁의 서막임을.

“알겠어요. 진혁 씨…… 아니, 천마님.”

통신이 끊겼다.

강진혁은 타워의 무너진 외벽으로 걸어 나갔다. 발아래로 불타는 신서울의 풍경이 보였다.

그는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디뎠다.

허공을 밟는 그의 발걸음 아래로 보이지 않는 마기가 계단을 만들었다.

철옹성이라 불리던 티타늄 타워가 그의 등 뒤에서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종말이자, 진정한 천마의 군림을 알리는 조종(弔鐘)이었다.

강진혁의 검이 다시 한번 붉게 빛났다.

하늘 위, 차원의 틈새에서 진혁을 응시하던 거대한 눈들이 그제야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숨어 있을 곳은 없다.”

진혁이 검을 치켜들었다.

그 순간, 신서울 전체의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것은 신들이 내려준 재앙이 아니었다.

오직 한 인간, 강진혁이 만들어낸 새로운 질서의 서막이었다.

그때였다.

무너진 잔해 속에서 옅은 빛이 새어 나왔다.

죽은 줄 알았던 백무현의 파편이 아닌, 티타늄 그룹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마스터 데이터’가 진혁의 머릿속으로 강제 전송되었다.

[SYSTEM MESSAGE: 축하합니다. 당신은 마침내 '폐기물'에서 '지배자'로 진화했습니다.]

[WARNING: 당신이 죽인 것은 가짜입니다. 진짜는 이미 이곳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진혁의 미간이 좁혀졌다.

데이터가 가리키는 방향.

그것은 진혁의 심장, 바로 자신의 단전 속이었다.

“뭐라고?”

자신의 몸 안에서,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불길하고도 익숙한 마기가 꿈틀거렸다.

그것은 강진혁이 익혀온 마공도, 시스템이 주입한 데이터도 아니었다.

1,000년 전, 천마의 유골에서 추출되었다던 그 ‘원형 코어’가 진혁의 심장 안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진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수련과 고통, 살육조차도 누군가의 거대한 설계 안에 있었다는 듯한 불길한 예감.

“설마…… 이 모든 게 다 예정되어 있었다는 건가?”

강진혁의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요동쳤다.

그것은 그가 제어할 수 없는, 다른 무언가의 박동이었다.

티타늄 타워의 붕괴음이 귓가를 때렸지만, 진혁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심장 안에서 1,000년의 잠에서 깨어난 진짜 천마가, 강진혁이라는 그릇을 찢고 나오려 하고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진혁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심장을 움켜쥐며, 자신을 잠식하려는 그 거대한 의지를 향해 검은 마기를 쏟아부었다.

“내 몸 안에서 기어 나오려 한다면, 그게 누구든 찢어발겨 주지.”

신서울의 하늘 위로 두 개의 그림자가 겹쳐졌다.

진혁의 그림자와, 그보다 훨씬 거대하고 사악한 천마의 그림자가.

진정한 사투는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심장 속에서 꿈틀거리는 이질적인 고동은 단순한 마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1,000년 전, 마교의 정점에서 천하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진천마(眞天魔)’의 잔혹한 의념(意念)이었다. 진무극이 이식했던 데이터 칩은 단순한 매개체였을 뿐, 그 심연에는 고대 천마의 파편화된 영혼이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강진혁의 육신이 비명을 질렀다. 혈관마다 끓어오르는 용암 같은 기운이 나노머신의 회로를 강제로 재배열하기 시작했다. 시스템의 제어를 벗어났다고 자부했건만, 정작 자신의 몸 자체가 1,000년 전의 괴물을 부활시키기 위한 완벽한 산란장(産卵場)이었다는 사실이 진혁의 이성을 자극했다.

“하, 하하하……!”

진혁은 피 섞인 웃음을 토해냈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검지로 짓눌렀다.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심장 부근을 십자로 갈랐다. 고통은 감각을 마비시키기 충분했지만, 오히려 그 통증이 진혁의 정신을 더욱 날카롭게 벼렸다.

“내 몸이다. 내 혈관이고, 내 단전이야.”

진혁의 눈빛이 보랏빛으로 번뜩였다.

심장 속에서 발악하는 고대의 의념을 향해, 그는 그간 쌓아온 모든 무공의 정수, [신천마신공]을 쇄도했다. 뇌전과 마기가 뒤섞인 진혁의 내공이 심장이라는 좁은 공간 속에서 맹렬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경고: 내부 에너지 간섭 지수 99%. 심장 파열 위험.]

시스템 로그는 이미 멸절했지만, 진혁의 직관이 그보다 더 정확한 경고를 보내오고 있었다. 하지만 진혁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도리어 단전의 출력을 800,000 MW에서 한계치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네가 1,000년 전의 천마라면, 나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천마다!”

우두둑.

뼈가 어긋나고 근육이 파열되는 소리가 고요한 마스터 돔 안에 울려 퍼졌다. 진혁의 몸 주위로 검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더니, 이내 그것이 실체화된 형상으로 변모했다.

과거의 천마와 현재의 강진혁.

두 존재의 의지가 진혁의 정신세계 속에서 충돌했다.

광활한 어둠의 공간.

그곳에는 옥좌에 앉아 있는,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거대한 존재가 있었다. 1,000년 전, 마교의 지존이라 불렸던 그 천마였다. 그는 진혁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던지며 손을 뻗었다.

- 네놈이 나의 육신을 빌려 쓰는 쥐새끼인가.

천마의 목소리가 진혁의 뇌리에 직접 울렸다. 그 위압감은 웬만한 인간이라면 정신이 붕괴하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그 옥좌를 향해 천천히, 그러나 거침없이 걸어갔다.

“쥐새끼라니. 시대가 변했음을 알지 못하는 구시대의 망령이 말이 많군.”

진혁이 손을 뻗어 자신의 검을 허공에서 소환했다.

[천마일검(天魔一劍)]의 형상이 진혁의 손에 쥐어졌다.

- 건방진. 나의 의지를 감히 거스르려 하느냐.

천마가 옥좌에서 일어섰다. 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공간 자체가 붕괴하며 진혁을 짓눌렀다. 쏟아지는 압력에 진혁의 무릎이 꺾일 뻔했다. 하지만 진혁은 이를 악물고 허리를 폈다.

“거스르는 게 아니다. 너를 집어삼켜 나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다.”

진혁은 옥좌를 향해 도약했다.

검은 마기와 붉은 뇌전이 뒤섞인 검기가 천마의 심장을 향해 쇄도했다. 고대의 지존과 현대의 초월자. 두 존재의 격돌은 소리 없는 폭발을 일으키며 정신세계를 뒤흔들었다.

[마신경(魔神境) 극의 - 만상멸세(萬象滅世)]

진혁의 검이 천마의 가슴을 관통했다. 동시에 천마의 손이 진혁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서로의 존재를 지우려는 치열한 사투.

진혁은 깨달았다. 이 싸움에서 지는 순간, 자신은 1,000년 전 천마의 의지에 잠식당한 꼭두각시가 된다는 것을.

“받아들여라, 강진혁!”

천마의 외침과 함께 진혁의 몸에서 폭발적인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현실 세계의 마스터 돔.

진혁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건물이 거대한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산산조각 났다.

“아악-!”

진혁이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그의 등 뒤로 나타났던 마신의 환영이 칠흑 같은 빛을 내뿜으며 진혁과 완전히 융합되었다.

[데이터 동기화 완료: 100%.]

[고대 마공의 완전한 흡수.]

진혁의 검은 눈동자 깊은 곳에 붉은 빛이 일렁였다.

그는 이제 1,000년 전의 천마를 자신의 의지 아래 굴복시켰다.

“……이제야 비로소 완전해졌군.”

진혁이 검을 거두었다.

주변의 파편들이 정지된 것처럼 허공에 멈춰 있다가, 이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의 몸 안에서는 더 이상 불협화음이 들리지 않았다.

고대의 마기와 현대의 기술, 그리고 스스로 개척한 의지가 완벽한 삼위일체를 이루었다.

진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신서울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는 보인다.

차원의 균열 너머, 이 모든 설계의 중심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창조주’들의 뒤틀린 눈동자들이.

“기다려라.”

진혁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하지만 그 한마디에는 우주를 뒤흔들 정도의 살기가 담겨 있었다.

“너희가 만든 그릇이 이제는 너희의 왕좌를 뺏으러 갈 테니까.”

진혁이 오른손을 쥐었다 펴자, 손가락 사이로 공간의 틈새가 찢어졌다.

그는 망설임 없이 그 틈새로 발을 들였다.

신서울의 지배자이자, 새로운 차원의 정복자.

진정한 천마(天魔)의 차원 정벌이 지금 막을 올리고 있었다.

어둠이 걷힌 자리에, 오직 새로운 신화의 서막만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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